소설리스트

6화. 남편 뒀다 뭐 해. (6/112)

#6화. 남편 뒀다 뭐 해.2020.11.21.

  소란은 1층 카페에 들어섰다. 강호가 손수 청첩장을 가지고 온다는 말이 아직도 믿기지 않았다.

‘진짜 오려나.’

급한 일도 아니고, 퀵서비스로 해결해도 되는데. 사람을 보내지 않고 직접 오겠다는 게 의외였다. 아니면 무슨 다른 할 말이라도 있나. 어쨌든 그가 도착한단 시간보다 조금 일렀지만 소란은 커피를 주문하고 자리에 앉았다. 막 2년 차인 그녀는 햇병아리 변호사로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날들을 보내는 중이다. 매일 몇십 건씩 처리해야 할 사건과 송무들이 산재해 있다. 새벽부터 출근해 간단한 음식으로 끼니를 때우며 밤늦게까지 처리하기 일쑤. 그것도 모자라 주말까지 잔업을 하는 일상이 반복되었다.

‘일단 일이라도…….’

빨리 처리해야 할 전자소송 건이라도 살필 요량으로 노트북을 꺼내려는데 누군가 소란의 테이블로 다가왔다.

“어머, 이게 누구니. 소란이 아니니?”

익숙한 음성에 소란은 고개를 들었다. 헤어진 전남친 백진상의 어머니, 박후길 여사였다.

“안녕하세요.”

“안녕 못 하지, 나는.”

박 여사는 핸드백을 테이블에 턱 올려놓으며 대뜸 소란의 맞은편에 앉았다.

“앉아도 되지?”

“이미 앉으셨어요.”

“여전하구나.”

반가운 얼굴은 아니다. 스스로 쿨하고 유쾌한 사람이라 일컫지만, 마주할 때마다 상대에게 기묘한 불쾌감을 주기도 했다.

“아, 여전하다는 건 좋은 뜻으로 한 말이야. 사람이 한결같아야지, 암.”

박 여사의 시종일관 웃는 표정이 불편했다. 소란은 얕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손님이 오실 거라서요, 지금은 말씀 나누기가 어렵습니다.”

“퇴근은 언제 해?”

“밤늦게 해요.”

“바쁘구나. 그럼 저녁은 언제 먹니?”

“저녁엔 잠시 선약이 있고요. 다음에 미리…….”

“다음에, 다음에. 너 내가 연락할 때마다 다음에 소리 하더라? 오죽하면 내가 여기까지 오니?”

그 말마저 박 여사는 웃으며 했다.

“너 좀 만나려고 사무실 찾아온 참인데, 한가히 카페에서 커피나 마시고 있길래 반가워서 들어온 거잖아.”

백 여사가 갑자기 들이닥친 이유를 소란도 알고 있었다.

“너 꾸짖으려는 것도 아니고, 그냥 얼굴 좀 보고 얘기만 하려고 온 거야.”

“그럼 짧게 말씀하세요.”

“접근금지 뭐, 그거 하겠다고 했다며?”

박 여사가 가식적인 미소를 거두고 굳은 얼굴로 몰아붙였다.

“진상이가 대체 뭘 그렇게 잘못했니? 너랑 만날 때도 공주님처럼 떠받들고 잘해주기밖에 더 했어? 널 못 잊고 애원하는 애한테 넌 어쩜 모질게 구니?”

“…….”

소란이 아무 말 없이 바라만 보자 박 여사는 득의양양해서 밀고 나갔다.

“진상이 지금도 밥 한술 못 뜨고 누워만 있어. 네 목소리 듣고 싶고, 네 얼굴 보고 싶다고 울먹이는데, 짠하지도 않아? 그간의 정이 있을 거 아니야.”

“…….”

“걔가 협박을 했어, 때리기를 했어? 네 털끝 하나 건드리기나 했니? 우리 진상이, 벌레 한 마리 못 죽일 만큼 마음 약한 애인 거 너도 알잖아. 그런 애한테 무슨 데이트폭력범이라도 되는 것처럼 접근금지……, 아휴, 내가 다 속상해서.”

박 여사는 손을 파르르 떨었다. 소란과 진상이 오래 만나는 동안 박 여사는 대놓고 반대한 적 없다. 그러나 가시 돋친 말로 소란의 가슴을 서늘하게 하곤 했었다. 진상의 어머니만 만나면 소란은 늘 마음이 너덜너덜해지는 기분이었다.

“내가 너 독하게 구는 거 생각하면 밤에 잠도 못 자겠고 숨도 안 쉬어져. 한 번만 더 찾아오면 접근 뭐 그거 하겠다는 게 말이나 되니?”

소란은 숨을 한 번 삼키고 입을 뗐다.

“아주머니. 꼭 신체적으로 위협을 가해야만 죄가 성립하는 건 아니에요. 헤어진 후에도 지속적으로 접근하고, 교제를 강요하고, 주변에 잠복하기까지 하는 거, 모두 정신적으로 피해를 주는 범위예요.”

“피해? 좋아하는 게 어떻게 피해를 주는 거야?”

“피해 맞습니다. 저는 일상생활이 어려울 정도로 불편을 겪고 스트레스를 받았어요. 범죄 유발이 예견되는 형사상 문제가 아니더라도, 민사집행법 제300조를 근거로 민사상 접근금지 가처분 신청이 가능해요.”

박 여사는 단번에 기분이 상한 얼굴로 소란을 노려보았다.

“기어이 그렇게 하겠다는 거야? 애 저 꼴로 죽어가는데도?”

소란은 나직한 목소리로 차분히 말을 이었다.

“그간의 정이라고 하셨죠? 그간의 정이 있으니 다시 나타나면 접근금지 가처분 신청만이라도 하겠다는 거예요. 진상이가 하는 게 바로 스토킹이에요. 사실은 처벌받을 수도 있는 겁니다.”

“너 지금 내 앞에서 변호사라고 유세하는 거니?”

“유세한 적 없습니다. 유세하고 싶지도 않고요. 다만, 진상이가 떼를 써서 될 일이 아니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은 거예요.”

처벌을 받게 한 것도 아니고, 그저 제게 접근하지 못하게끔 조치를 취하겠다는 것뿐이다. 그런데도 어머니까지 한달음에 달려와 압박하다니.

“너, 우리 진상이 돈 다 안 갚았다면서?”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듯 박 여사는 기어이 돈 얘기를 꺼냈다.

“네, 현재 상환 중입니다.”

몇 해 전 소란이 금전적으로 곤란을 겪던 시기에 진상은 큰돈을 빌려주었다. 아무리 사귀는 사이라 해도 돈거래만큼은 피하고 싶었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 이후로 지금까지 빚을 청산하기 위해 달려왔다. 교제 여부와는 상관없이 금전 관계는 깨끗하게 하고 싶었다. 소란이 남은 공부를 겨우 마치고 변호사 시험에 합격한 후, 지금의 로펌에 입사하고서 가장 먼저 한 일이 마이너스 통장의 개설이었다. 확실한 신원과 신용을 토대로 영혼까지 끌어모아 마련한 돈으로, 진상에게 빌렸던 금액 일부를 갚을 수 있었다. 그리고 남은 금액은 다달이 나누어 갚아나가는 중이다.

“매달 25일에 입금될 테니 그건 걱정하지 마세요.”

“그걸 언제 다 갚으려고? 너 겨우 2년 차잖아.”

박 여사는 대단한 약점을 잡았다는 듯 얼굴이 펴졌다. 참으로 투명한 사람이다.

“변호사 연봉 높아봐야 월급 받아 생활도 해야 할 테고, 품위유지비도 들겠지. 여기저기 돈 들어갈 곳도 많을 텐데 그 빚을 어느 세월에 청산하려고? 너 아직 네 오빠랑 둘이서 월세 빌라 산다면서?”

의기양양해져 퍼붓는 소리에 소란의 속이 끓었다. 그 자식은 참 별의별 얘길 다 엄마에게 전했구나 싶었다.

“네 아빠 병원에 있는 동안 집을 줄이고, 또 줄이고, 전세금까지 빼서 탈탈 털어 병원비로 다 들어갔다며. 그렇게 오래 병원에 뭉개고 있으면 집안 털어먹는 거 순식간이라니까.”

“말씀이 지나치십니다.”

“지나치긴 뭘 지나쳐. 사실은 사실이지. 그러니 네가 그렇게 힘들게 공부해서 변호사 되고도 여태 이 고생 하는 거 아니야.”

고생이라고 생각한 적 없다.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해 아버지를 살리고 싶었고, 오빠를 지키고 싶었다. 고슴도치들이 서로를 껴안듯, 뾰족한 가시를 품고도 아픈 줄 모르고 보듬어 안으려 했다. 그렇게 보내온 세월이다. 얄팍한 세 치 혀로 조롱할 수 있는 애정이 아니다.

“돈 받을 땐 좋다고 신나서 받고.”

좋다고 받은 적 없다. 빚이고, 짐이고, 아픔이었다. 당시 진상의 호의를 감사하게 생각하긴 했으나, 신이 나서 받은 적은 없다.

“갚을 땐 찔끔찔끔. 누가 너한테 다달이 용돈 받으려고 빌려줬다니? 진상이는 널 그만큼 깊이 생각하니까 선뜻 그 큰돈도 내주고 했던 거잖아. 그 마음을 그렇게 모르겠어?”

안다. 알기 때문에 더 무서운 돈으로 남은 것이다.

“그러니까 가족이 되면, 누가 그 돈 다 받으려고 하겠니. 내 돈 네 돈 할 거 없이 다 한집안 돈 되는 거지. 그러니 괜히 아등바등하지 말고 다시 우리 진상이랑 잘해봐. 그게 남는 거야. 네가 어디 가서 이만한 남자를 또 만나?”

박 여사의 결론은 진상과 같았다.  

“돈 빨리 갚을 필요 없어. 내 돈이 네 돈이고 다 같은 주머니고 그런 거지.”

  진상은 돈 말고 원하는 게 따로 있는 양 일부러 상환을 늦추며 요리조리 피하기도 했다. 끝내 이렇게 될 줄 알았다면, 그때 진상에게 돈을 빌리지 않았을 것이다. 아무리 힘들어도 어떻게든 다른 방법을 강구했을 텐데.  

“너 그때 어떻게 나한테 헤어지자고 할 수가 있었어? 내가 너 그렇게 어려울 때도 계산 하나 없이 돈부터 빌려줬는데…….”

  그게 무기였다. 돌이킬 수 없는 잘못을 저지르고도, 그래서 헤어지고 난 후 뻔뻔하게 찾아와서도, 백진상에겐 그 돈이 가장 큰 무기였다.

“소란아. 너 똑똑한 애잖니. 젊은 애들이 만났다가 싸웠다가 할 수도 있는 거지 뭐 그런 걸로 보네 마네 하면서 오래 애를 태워, 태우길. 내가 받아준다 할 때 잘 생각해. 돈은 다 됐고 일단 진상이부터…….”

“상환은 예정대로 하겠습니다. 진상이와 함께 정한 기한도 아직 남아 있고, 원금과 이자 모두 밀리지 않고 갚아가고 있어요.”

진상을 다시 만날 일 없다는 뜻이다.

“기어이 애 죽는 꼴 보려고 그러니, 정말? 진상이가 얼마나 몸이 약한지 다 알면서 이래?”

“진상이 성인이에요. 자주 아팠던 건 안타깝지만 그건 어릴 때라 했고, 지금은 매우 건강하다 들었습니다.”

“너 이런 식으로 하면 그 돈 다 갚는 날까지 내가 이렇게 매일매일 사무실 찾아올 수도 있어.”

“이것도 일종의 협박이에요.”

순간 박 여사가 움찔했다.

“스토커를 대상으로만 접근금지 가처분을 신청할 수 있는 건 아니에요. 채권자의 지나친 빚 독촉도 그 대상입니다.”

“너 정말…….”

“그리고 저 곧 결혼해요. 진상이랑 다시 잘해볼 일 없습니다. 아주머니도 애쓰지 마세요.”

“……뭐? 결혼?”

금시초문이라는 듯 박 여사가 되물었다.

“그게 무슨 소리야? 진상이가 너 다른 남자 만나는 거 같진 않다고 그랬는데? 걔가 널 얼마나 캐고 다녔는데 그 정도도 모를……, 흠, 이게 아니라, 아무튼 너 지금 거짓말하는 거지? 누굴 속이려고?”

뻔뻔한 스토커 모자는 소란의 말을 믿을 생각이 없나 보다.

“참 나, 내가 무슨 거머리도 아니고, 떼어내겠다고 그딴 거짓말까지 하면서 이래? 너 지금 내가 우습니?”

“거짓말 아닙니다.”

거머리는 맞지만.

“날 뭘로 보고 어쩜 끝까지 배은망덕하게 굴어? 내가 이 정도로 양보하고 널 며느리로 받아주겠다고까지 하는데…….”

“며느리로 받아주시면 곤란한데요.”

그때, 남자의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마주한 채 핏대를 세우던 박 여사도, 덤덤한 얼굴로 박 여사를 바라보던 소란도, 흠칫 놀라 옆을 돌아보았다. 테이블에 드리운 그림자는 존재 자체로 위협적이었다. 고개를 쭉 젖히자, 살벌하게 잘생긴 남자가 무표정하게 서 있었다.

“소란이는.”

“…….”

“저희 집안 며느리가 될 사람이라서요.”

내뱉는 말끝에 남자가 직사각형 봉투 하나를 테이블에 툭 내려놓았다.

“이, 이게 뭔데?”

박 여사가 놀란 눈으로 남자와 소란을 번갈아 쳐다보면서 급히 봉투를 열었다. 하얀색의 고급스러운 카드가 나왔다. 신랑 백강호. 신부 우소란. 결혼을 알리는 청첩장에는 두 사람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뭐, 뭐야?”

“보시다시피 청첩장입니다.”

“그러니까 왜 둘이 결혼하냐고! 이, 이게 말이 돼?”

박 여사가 분하고 당황스러운 마음을 참지 못했다.

“강호 네가 말해봐. 이게 무슨 상황이야?”

소란은 의아해 그들을 바라보았다. 보자마자 반말을 편하게 하는 것도 이상했는데, 강호 너라니? 아는 사이인가.

“여기 있는 우소란 변호사와 제가 결혼한다는 말씀을, 얼마나 자세히 드려야 합니까?”

“아니, 너 어쩜……! 얘가 말 안 하디? 9년이나 만난 남자친구 있는 거?”

강호는 태연하고도 서늘한 음성으로 되물었다.

“그게 무슨 상관인지.”

“그냥 9년을 만났어도 기함하며 안 데려갈 텐데 다른 사람도 아니고 네 사촌이랑…….”

“사촌이 아니라 육촌이겠죠.”

간단한 촌수조차 허투루 말하는 박 여사에게 강호가 정정해주었다.

“조부님끼리 형제, 아버지끼리 사촌, 그리고 백진상과 저는 육촌입니다.”

그제야 소란이 아, 하고 입술을 벌렸다. 백강호, 백진상. 친척이었구나. 한 번도 얘기를 들은 적이 없어, 성이 같다 해도 연결 지을 생각조차 못 했다. 그러고 보니 진상의 아버지 기업이 백화푸드의 자회사였는데. 그제야 소란은 이 관계를 납득할 수 있었다.

“육촌이든 육십촌이든 그게 문제가 아니고.”

“네, 문제 아닙니다. 소란이와 제가 서로 좋아 결혼하는 데도 전혀 문제없고요. 9년을 만난 전남친이 있든 전남편이 있든 상관없습니다.”

정중한 말투지만 쌀쌀하기 그지없었다. 당숙모인 박 여사조차 그의 위압감에 눌려 쪼그라드는 게 눈에 보일 정도였다.

“그러니 제 아내 될 사람에게 예의 갖춰주시기 바라는 게, 무리는 아니겠죠.”

“하아.”

박 여사는 한숨을 내쉬더니 입을 뗐다.

“……설마 회장님께 말씀드릴 건 아니지?”

생각을 마쳤는지 박 여사의 기세가 눈에 띄게 누그러져 있었다. 아니, 단번에 표정까지 비굴해졌다.

“우리 진상이가 앓아눕고 뭐 그런 거. 얘 소란이랑 9년을 만나고 뭐 그런 거 말이야. 어차피 너희 결혼할 건데 가타부타 얘기할 거 뭐 있어. 괜히 복잡하게.”

박 여사는 심하게 강호의 눈치를 살폈다. 회장님이라는 건, 강호의 할아버지인 백 회장을 가리키는 거겠지. 백 회장의 눈 밖에 나지 않기 위해 애쓴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 전에 숙모님께선 제 사람에게 예의를 지켜주셨으면 합니다.”

“그건 걱정하지 마.”

박 여사는 단번에 순순해졌다. 강약 약강. 강한 자 앞에선 넙죽 엎드리며 꼬리를 마는 위인이다.

“그럼 살펴 가세요.”

건조한 인사를 내뱉은 강호가 소란에게 손을 내밀었다.

“가자.”

그의 커다란 손이 소란의 자그마한 손을 감쌌다. 카페에서 나와 엘리베이터로 가는 동안 소란의 심장 박동이 빨라졌다. 문이 열린 엘리베이터에 들어가, 그가 소란의 로펌이 있는 층수를 눌렀다. 상승하는 동안이 영원처럼 느껴졌다. 잡힌 손은 따뜻하고 단단했다. 말없이 서 있는 강호의 얼굴을 흘깃 바라보았다. 그는 아직 손을 잡고 있었고, 소란 역시 손을 뺄 타이밍을 놓쳐 마냥 서 있었다.

“결혼해야겠다는 이유가, 이거였나?”

자신 역시 계약 결혼에 임할 사정이 있다고는 했어도 자세히 얘기한 적은 없다. 일일이 설명하기 참으로 구질구질한 상황이었다. 그런데 강호도 다 알게 됐다.

“네, 맞아요. 돈도 돈이지만 유부녀 타이틀도 필요하고.”

그렇다고 아무하고나 결혼할 수도 없고. 점점 심해지는 거머리 모자를 떼어내기도 요원하고.

“접근금지 가처분 신청하겠다고는 했지만 그것도 사실 2개월씩, 최장 6개월이라서요.”

이후엔 더 악화될 수도 있는 노릇이다. 진상이 포기하지 않는 한, 고통은 계속될 것이 분명했다. 차라리 박 여사가 반대하고 물 끼얹고 모욕하면 나았으련만. 그게 아니라 한달음에 달려와 내 아들 좀 다시 만나라고 하니 괴롭기만 했다.

“그렇다고 대표님을 일부러 이용한다든가, 그런 건 아니…….”

“이용해.”

그의 나지막한 목소리에 소란이 숨을 삼키며 올려다보았다.

“남편 뒀다 뭐 해.”

“…….”

“얼마든지 하라고, 이용.”

소란의 판단은 틀리지 않았다. 역시 백강호와의 결혼은, 접근금지 가처분보다 훨씬 효과적인 거머리 퇴치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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