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내 아내 될 사람2020.11.10.
한 달 전. 강호는 할아버지 백무영 회장의 호출을 받았다.
- 와서 밥이나 먹고 가.
“바쁩니다, 저.”
- 바쁜 거 누가 몰라? 밥이나 먹잔 말이야. 밥도 안 먹고 일해?
강호는 여느 때처럼 바쁘단 핑계를 대며, 백 회장의 전화를 건성으로 받았다. 가뜩이나 연일 숨 가쁜 일정을 소화하고 있던 참이다. 시간이 없다는 게 영 거짓말은 아니었다.
“진짜예요. 상장 준비하느라 눈코 뜰 새 없어요.”
- 안다. 기사 봤어.
“당분간 찾아뵙긴 힘들 것 같…….”
- 나 죽는단다.
휴대전화를 떨어뜨릴 뻔했다. 올해 일흔여덟 살인 할아버지는 현재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지만 왕성한 에너지를 가진 분이셨다. 그런데 갑자기 죽는다니. 이게 무슨 날벼락인가. 국내 굴지의 식품전문기업 ‘백화푸드’의 전신인 ‘백세식품’ 창업주가 강호의 증조할아버지셨다. 창립자 2세이자 장남인 할아버지는 후계자가 되어 열정적으로 기업을 일구고 키워나가셨다. 현재는 명예회장이며, 당신의 퇴진을 기점으로 오너 경영을 끝내고 전문경영인을 두어 기업을 이어나가고 있다. 강호 역시 할아버지와 뜻이 맞았다. 그는 기업을 물려받지 않고 맨땅에 헤딩하는 극렬한 고생을 통해 지금의 회사 ‘비욘드 더 테이블’을 만들어왔다. 대대로 선한 영향력을 주는 집안이었다. 예로부터 어려움을 겪는 이가 있으면 발 벗고 나서 도와주었고, 마을에 재해가 들면 곳간을 열어 베풀었다. 일제 강점기에는 몰래 독립군을 후원했다는 사실이 나중에 드러나기도 했다. 그런 집에서 나고 자란 할아버지 역시 가풍대로 강직하면서도 마음이 풍요롭고 활기찬 분이다. 건강은 또 얼마나 잘 챙기시는가. 세상에서 가장 쓸데없는 걱정이 백 회장 걱정이라고, 강호는 그렇게 생각해왔다.
- 나 죽는다고.
“……지금 찾아뵐게요.”
앞뒤 따지지 않고 강호는 그날 바로 백 회장에게 달려갔다. 한 번도 약한 소리 한 적 없으신 분이기에 걱정은 크기만 했다.
강호는 백 회장이 나와 있다는 한식당 ‘산청재’ 본점에 도착했다.
“별채에 계십니다.”
강호가 들어서자마자 백 회장의 손자를 알아본 매니저가 바로 안내해주었다. 커다란 본관 건물에서 나가 후원의 산책로와 연못을 지나 별채까지 걸어가는 동안에도 강호는 내내 걱정뿐이었다. 나 죽는단다. 할아버지의 헛헛한 음성이 귓가에 맴돌았다. 얼마 전에 검진을 위해 입원하셨는데, 이상소견이라도 있는 것인가. 연세가 연세이니만큼 건강을 자신할 순 없는 상황이다.
“왔구나.”
백 회장이 강호를 반갑게 맞이했다. 언제나 손주 사랑이 극진한 할아버지였다.
“어서 앉자.”
별채는 단독으로 한 팀만 식사할 수 있도록 프라이빗한 분위기로 꾸며져 있었다. 창호를 바른 창문을 모두 열어두니 울긋불긋하게 물들기 시작한 단풍이 병풍처럼 펼쳐졌다. 그 안 넓은 테이블 가득 정갈한 음식이 차려져 있다.
“바쁘다더니 얼굴이 많이 상했구나.”
백 회장은 듬직하고 늘씬한 체구에 멋스러운 스타일을 자랑하는 노신사였다. 몇 해 전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할아버지는 경영에서 물러나면서 조금 약해지셨나 싶었지만 금세 기력을 찾고 안정적으로 지내셨다. 강호는 그 시기 학업을 마치고 회사를 설립하는 등 급격한 변화를 겪었기에, 할아버지에게 크게 신경을 쓰지 못하기도 했다. 그래도 늘 할아버지는 강인한 분이라는 이미지였기에, 강호는 제 앞 가리기에 바쁜 날들을 보냈던 게 사실이다.
“괜찮으세요? 어디가 안 좋으신 거예요? 장 박사님은 뭐라고 하세요?”
“일단 밥부터 먹자.”
“밥이 넘어갈 거 같지 않으니 말씀부터 하세요.”
손자의 시린 눈빛에 백 회장은 잠시 침묵했다.
“얼른이요.”
끝내 애탄 강호가 묵직한 음성으로 재촉했다.
“제가 지금 장 박사님께 전화드려요?”
이에 백 회장이 입을 열었다.
“강호 너, 김 보살 알지?”
김 보살이 왜 여기서 나와.
“장 박사님이 아니라…… 김 보살 할머니요?”
“그래, 김 보살이 그러는데.”
영 느낌이 좋지 않다. 김 보살은 돌아가신 할머니와 가장 친한 친구, 용하기로 유명한 어르신이다.
“네가 올해 안으로 결혼하지 않으면 죽는단다.”
“하아.”
강호는 허무함에 밀려 나온 숨을 탁 내쉬었다. 이게 또 무슨 아기동자 씻나락 까 먹는 얘긴가. 결혼하지 않으면 죽는다니. 그 진부한 협박을 어디서 써먹어.
“네가 결혼을 꼭 해야 한다는데, 내가 요즘 걱정하느라 잠도 설치고…… 할애비 눈 퀭한 것 좀 봐라.”
백 회장의 레퍼토리, 너도 이제 좋은 사람 만나 결혼해야지 소리는 지겹기만 했다. 아직 삼십 대 초반이다. 만혼이 대세인 요즘 세상에 그리 늦은 나이도 아니다. 그렇지만 선이라도 보라며 자꾸만 재촉하는 할아버지가 부담스러워 강호는 만나는 여자가 있다고 둘러댔다. 그러고는 저도 모르게 피해 다녔다. 아직은 결혼 생각이 전혀 없는 그였으니까.
“할아버지.”
옥이야 금이야 자신을 애지중지 키운 할아버지기에. 그 사랑과 관심이 얼마나 대단한지 잘 알기에. 강호는 그나마 나는 화도 잘 눌러 참고 천천히 입을 뗐다.
“일일이 들으실 필요 없어요. 그런 얘기를 요즘 누가 믿는다고요. 게다가 할머니나 김 보살 말씀 믿으셨지 할아버지한텐 씨알도 안 먹히던 거 아니었어요?”
그런데 이제 와서 왜 이러시지. 정말 혼자 되시고 많이 약해지신 건가.
“사실 김 보살 말이 틀린 적 있었나 생각해봤다. 그간 뭘 조심하라고 할 때마다 네가 그걸 어기면 꼭 사달이 나곤 했잖니.”
“우연의 일치예요.”
김 보살님도 그렇지. 결혼 안 하면 죽는다는 소리를 함부로 하다니. 그러나 어쩐지 백 회장은 상처받은 눈빛으로 대꾸했다.
“정말 죽는다고 해도 상관없다고?”
“저 안 죽어요. 그런 말 너무 믿지 마시라니까요.”
“네가 아니라 내가.”
백 회장이 엄한 얼굴로 정정했다.
“결혼 안 하면 죽는 건 네가 아니라 바로 나라고.”
다시 강호의 심장이 철렁했다. 그랬지. 그를 한달음에 뛰어오게 한 말은 바로 “나 죽는단다.”였으니까. 그건 백 회장의 죽음을 말하는 거였다.
“……말도 안 되는 소리예요.”
더 들을 필요도 없다는 듯 강호가 일어섰다. 이런 건 보통 당사자의 신상에 문제가 생긴다고 해야 하는 거 아닌가. 어디서 할아버지를 끌어들여.
“나 죽고 후회하지 말아라.”
말 한마디에 또다시 심장이 내려앉는다. 백 회장은 그의 하나뿐인 혈육이다.
“차라리 제가 죽는다고 하세요.”
무시라도 할 수 있게.
“내가 없는 소리 하는 거 아니다. 김 보살한테 가서 물어봐라. 알지? 난다 긴다 하는 사람들도 요즘 그 할매 예약 못 잡아 난리인 거.”
정치인이고 연예인이고 할 거 없이 줄을 섰다는 얘기도 귀가 닳도록 들었다. 강호는 다 쓸데없다고 생각했다. 자신은 그런 말에 휩쓸리는 스타일이 결코 아니었다. 김 보살이, 김 보살이, 하고 할머니가 매번 이런저런 소릴 전해도 적당히 흘려들었다. 할머니의 오랜 친구분은 김 보살, 그리고 계나린의 할머니 고복희 여사 두 분만 남으셨기에 못 만나시게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할머니의 교우관계까지 그가 간섭할 수는 없으니까. 그런데 돌아가신 후까지 영향을 주는 관계라니, 이건 얘기가 좀 다르다. 죽는다니. 그것도, 할아버지가. 설마 김 보살이 그런 말을 지어냈을까 싶을 정도로 참 독한 예언이었다.
“너 만나는 여자 있다며. 지난번에 그랬잖아.”
“그야…….”
“데려오라 해도 그렇게 핑계만 대고, 얼굴 한번 보여주지도 않고.”
대충 둘러댄 핑계였다. 여자는 애초에 있지도 않았다.
“그래도 여태 만나는 거 보면 괜찮은 여자 같은데.”
있어야 괜찮지. 없다니까요.
“그 여자랑 결혼해. 더 늦기 전에.”
“저 그만 가볼게요.”
“할애비 죽기 싫다.”
문으로 향하려던 강호의 걸음이 멈칫했다.
“아직 할 일도 많고, 보고 싶은 것도 많고.”
그의 가슴을 묵직하게 누르는 말.
“……할애비, 이렇게 죽긴 싫구나. 조금만, 아주 조금만 더 살았으면 해.”
미신이라고. 그저 헛소리라고. 단숨에 무시하고 싶은데, 그게 잘 안 됐다. 할아버지의 음성은 너무도 간절했다. 이렇게 죽긴 싫어.
“올해 안에 식 안 치르면 상 치른다.”
“할아버지!”
그새를 못 참고 라임을 맞추는 할비넴의 재간에는 당해낼 수가 없었다.
“네 회사에 들어가 있는 내 투자금, 목숨값이라고 생각해라.”
물론 협박에는 더욱 능하셨다.
“투자금이요?”
강호가 황당한 얼굴로 백 회장을 보았다.
“그래, 유망 스타트업 선정해 투자 진행한 사업 대상에 네 회사가 들어가 있었다.”
“하.”
전혀 몰랐던 일이다. 그가 실리콘밸리에서 일하던 동창과 함께 지금의 회사를 만들어낼 때, 이를 꼼꼼히 살핀 백 회장은 자신을 밝히지 않은 채 엔젤 투자자(자금이 부족한 신생 벤처 기업에 자본을 대는 개인 투자자)로서 몰래 투자했던 것이다.
“네 회사라서 무조건 한 건 아니다.”
강호는 여러 투자자를 만났고, 적지 않은 투자금을 유치해 기반을 탄탄하게 다졌다. 덕분에 모바일 기반의 사업에 동창 홍찬규의 기술력을 최대로 끌어낼 수 있었다. 다른 곳에서도 충분히 자금을 끌어올 정도의 능력이 손자에게 있는 것을 알았다. 백 회장은 순수하게 그 가능성과 사업성에 투자한 것이었다. 성공한 기업가답게. 그리고 지금은 이를 토대로 거래하는 중이다.
“너 만난다는 여자 한 달 내로 데려와 인사시키고, 올해 가기 전에 정식으로 결혼하지 않으면 투자금 회수 절차 들어갈 테니 그리 알아.”
강호의 머릿속이 하얘졌다. 자금이 빠진다니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다. ◇ ◆ ◇ 강호는 제 인생에 결혼은 없다고 생각했다. 결혼 후의 제 모습도 상상할 수 없었다. 강호는 ‘여자’와 엮여 좋았던 적이 단 한 순간도 없었다. 아이러니한 일이다. 그의 수려한 외모 때문에 예전부터 주변에 여자들이 넘쳤지만, 그 기억은 온통 소름이 돋는 것뿐이었다. 할아버지를 뒤로하고 ‘산청재’에서 나와 주차장으로 걸어가는데 숨이 막혔다. 셔츠의 윗단추는 이미 풀어뒀는데도 목이 갑갑했다. 강호는 운전석에 올라 시동을 켜려다 말고 머리를 헤드레스트에 기댔다. 목부터 어깨까지 경직되는 느낌이 그를 불쾌하게 했다. 오래전부터 느끼는 강박 증상이었다.
“하아…….”
강호는 길게 숨을 내쉬었다. 나 죽는단다. 투자금 회수 절차에 들어갈 테니 그리 알아. 할아버지의 협박과 애원이 어지럽게 얽혀들었다. 그때 강호의 시야에 누군가 들어왔다. 저 멀리 나무들이 가득한 길 사이, ‘산청재’로 이어진 돌계단을 따라 한 여자가 걸어 내려오고 있었다. 그의 정면으로 보이는 모습이었다. 아는 얼굴이다.
“……우소란?”
강호의 가슴에 따스한 바람이 불어들었다. 비로소 숨이 깊게 쉬어졌다. 하나 얄궂은 타이밍은 한 번도 강호를 그녀 앞에 데려다주지 않았다. 마치, 지금처럼.
“소란아!”
그녀를 부르는 듯 건물 쪽에서 한 남자가 손을 들고 뛰어왔다. 소란이 뒤돌아보았다. 남자가 싱글싱글 웃는 얼굴로 그녀의 앞에 와서 섰다. 뒷모습의 소란과 마주 선 남자의 얼굴만 멀리 보였다. 남자는 그녀의 트렌치코트를 팔에 걸고 왔다가 어깨에 걸쳐주었다. 그녀의 가방으로 보이는 여자 핸드백까지 들고 있었다. 강호도 안다, 저 남자를.
“……후, 오래도 만나네.”
스무 살이었던 그녀가 서른이 되도록 항상 곁에 있던 남자. 소란의 옆을 파수꾼처럼 지키던 남자친구. 두 사람은 아무도 갈라놓을 수 없을 만큼 견고한 사이로 보였다. 게다가 그는 강호의 친척이기도 했다. 가깝게 지내진 않지만 그래도 집안의 경조사 때마다 얼굴을 보는 관계. 그래서 더 껄끄러웠다. 눈에 담고 있는 순간조차 괴롭다. 쓰린 숨을 내뱉은 그가 차에 시동을 걸고 부우웅, 출발시켰다. 멀어지는 차 뒤로 소란과 남자 사이에 옥신각신 실랑이가 이어졌지만, 강호는 그걸 알 수 없었다. 두 사람은 이미 헤어진 사이라는 걸 그때는 몰랐다. 지금으로부터 불과 한 달 전의 일이다. ◇ ◆ ◇ 촤아아악. 커튼이 열렸다. 고급스러운 벨벳 소파에 앉은 강호가 보였다. 소란은 커튼 안쪽 공간에서 눈부신 조명 아래 새하얀 드레스를 입고 서 있었다.
“어머어머, 신부님! 정말 아름다우세요!”
숍 직원들이 물개박수를 치며 감탄했다. 소란은 온몸이 조그맣게 쪼그라들어 사라지는 것만 같았다. 대체 이 짓을 몇 번이나 더 해야 하는 걸까. 얼른 끝내고 여기서 나갔으면 좋겠는데.
“신랑님 정말 좋으시겠어요. 어쩜 이렇게 사랑스럽고 예쁜 신부를 만나셨어요?”
자본주의에 입각한 칭찬도 군말 없이 듣기 힘들었다.
“피부도 뽀얗고 몸매도 좋으시고. 드레스는 신부님처럼 이렇게 어깨선이 예뻐야 잘 어울리거든요. 팔까지 이어지는 라인이며, 허리며, 너무너무 예쁘신데 신부님 혹시 무용하셨어요?”
“하하, 그만하세요.”
소란은 어색하게 웃으며 손을 저었다. 뭐, 다 좋다. 아무리 입에 발린 말이라 해도 그들의 서비스 정신에 경의를 표하며 감사해할 수 있다. 다만 그게 백강호의 앞인 게 문제였다. 사랑해서 하는 결혼도 아닌데, 이런 상황은 심히 민망하기만 했다. 결혼 계약서에 합의 서명을 한 후 막 사흘이 지났다. 계나린과의 계약서를 원안으로 두고 수정에 수정을 거듭해, 백강호와 우소란의 결혼 계약서가 완성되었다. 아직 아무에게도 얘기하진 않았지만, 오늘 저녁 그의 집에 인사드리는 것을 시작으로 차차 주변에도 결혼을 알릴 계획이다. 이 결혼이 가짜라는 건 이제 두 사람만 아는 비밀이었다. 아, 또 한 사람. 최종 계약 때 계나린이 증인으로 참석해, 함구하기로 약속하고 이에 합의까지 하였다. 오늘 드레스 숍 방문은 소란과 강호의 결혼 준비 첫 코스였다. 남에게 미룰 수 없는, 두 사람이 직접 소화해야 하는 일정. 대장정의 시작인 것이다. 첫 코스부터 난항을 겪으면 완주까지 얼마나 힘들까.
“아무래도 신랑님들이 보시는 눈이 정확하시더라고요. 신부님께 잘 어울리는 느낌을 가장 잘 아셔서 그런가 봐요.”
소란을 바라보는 그의 눈빛은 범접할 수 없는 아우라마저 느껴졌다.
“신랑님은 어떠세요? 이번 드레스가 낫나요, 아까 드레스가 낫나요? 신부님께 어느 쪽이 더 어울릴까요?”
아아, 제발 그만. 공개적으로 발가벗겨지는 기분이다. 끝 모를 수치심에 드레스고 부케고 뭐고 다 던지고 도망가고 싶어졌다. 직원들의 질문에 강호가 그녀를 찬찬히 바라보았다. 대놓고 비웃기라도 하면 그건 더 창피한데, 설마 그러지는 않겠지. 마침내 그가 낮은 음성으로 느리게 말했다.
“제가 그걸 꼭 골라야 합니까?”
소란은 눈을 질끈 감았다. 저거 봐. 저거 보라고. 말을 해도 꼭 저렇게 인정머리 없게 해. 남들 아무리 뭐라 해도 나는 절대 그렇게 안 봤는데, 사람이 정말 매정하네. 피차 연애감정 없는 거 방방곡곡 소문낼 일 있나. 그러게 드레스 숍은 나 혼자 와도 된다고 했었는데, 왜 굳이 함께 와 이 창피를 겪게…….
“둘 다 예쁜데.”
……하는 게 아니네?
“내 아내 될 사람은 뭘 입어도 빛이 나서.”
“…….”
이어진 뜻밖의 발언에 소란은 입을 벌린 채 멍하니 그를 바라보았다.
“전부 다 예쁘니 하나만 고를 수가 없겠는데요.”
그의 입술에 옅은 미소가 걸려 있었다. 마치 진심인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