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지는 3년간 죽기 살기로 시하를 따라다녔다. 시동이 이제 술법을 사용하지 못했기 때문에 틈만 나면 시하를 꾀어 그쪽 세계로 데려가곤 했다. 허락은 개뿔, 내가 왜 허락을 해.
“시하는 어릴 때부터 내가 업어 키워 왔어. 입에 넣으면 녹아 버릴까. 품에 안으면 부서질까 애지중지 키워 왔지. 그런데 그 나쁜 놈이 지금 내 동생을 데려가려고 하는데 당신이라면 맘이 편할 수 있겠어? 내가 없을 때 혹시라도 동생을 괴롭히면 어떡해? 힘들게 하면? 상처를 주면?”
시동은 이미 미래의 비극까지 모두 보고 온 사람처럼 슬픈 표정을 지었다.
“내 동생이 어딜 봐서 그놈이랑 어울려? 근데 그놈이 감히 내 동생을 데려갈 수 있어?”
“동생분은 그 사람이 아주 잘해주신다고 그러던데요?”
“잘해주긴 개뿔, 그놈이 아무리 잘해준들 나만큼 잘해줄 수 있겠어? 잘해주면 나랑 싸우지도 말았어야지. 이제 동생 얼굴도 제대로 볼 수 없는 걸 생각하면 이 가슴을 불도저로 후벼 파는 것처럼 아파.”
“하지만 결혼하고 사장님 댁 바로 옆으로 오시는 거 아닌가요?”
“당신이 뭘 알아! 옆으로 오면? 옆에서 사는 게 같이 사는 거랑 같아? 불쌍한 내 동생, 이제 이 오빠 품에서 정말 떠나가려 하는구나. 이런 심정을 당신이 알아? 아냐고!”
그때 시동의 휴대전화가 갑자기 울리기 시작했다. 그가 전화를 받더니 갑자기 안색이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뭐라고? 보이지 않는다고? 신혼 방에 백 명도 넘게 배치시켰다면서? 근데 왜 보이지 않는 거지? 뭐라고? 왜 몰라, 내가 당신한테 월급을 왜 주는데? 어서 찾아봐!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고? 그게 말이 돼?”
“사장님!”
비서가 자신의 휴대전화를 가리키며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
“호텔 쪽에서 연락이 왔는데 신랑 신부가 이미 도착했다고 빨리 오시라고 합니다. 길시를 놓칠 수 있다고 빨리 오시라고……!”
시동이 갑자기 뭔가 떠오른 듯 급히 휴대전화를 눌렀다. 그러고는 화가 나서 길길이 날뛰며 큰소리로 욕을 하기 시작했다.
“젠장! 묵욱 이 나쁜 놈!”
자기 세계에서는 아무도 술법을 사용할 수 없다고 하더니! 내가 속았어!
* * *
어느 겨울날, 눈이 많이 내린 직후의 거리에는 왕래하는 사람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번화하던 지역이 그날은 한산하게만 느껴졌다.
추운 날씨 탓에 펫숍에 맡겨진 동물들마저 몸을 움츠린 채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다.
허영(虛影) 하나가 상점 안에 나타났다. 그는 하얀 고대 복장을 하고 검은 긴 머리를 하고 있었다. 주변에 있는 현대식 인테리어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었다. 그가 상점 안을 한 번 둘러보더니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곤, 낯선 주변 환경을 둘러보며 얼굴을 찌푸렸다.
“외계에서 왔어요?”
누군가 뒷문을 열고 나오더니 그에게 말했다.
“멀쩡한 외계인이 왜 여기에, 어?”
묵욱이 말을 멈추고 앞에 있는 사람을 아래위로 훑어보더니 웃으며 말했다.
“오, 아주 큰 인물이 오셨군요.”
고대 복장을 한 남자가 그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당신은 이 세계의 영?”
“그렇다고 할 수 있죠. 이곳 사람들은 저를 위면 관리자라고 불러요. 제 이름은 묵욱이에요. 당신과 같은 존재죠. 근데 위면 관리자가 이 위면에는 무슨 일로 온 거죠?”
설마 외교 때문에 찾아온 건 아니겠지? 상대는 여전히 무표정한 표정을 지으며 담담한 목소리로 그에게 말했다.
“우연히 이 세계를 발견하여 호기심에 한 번 와 본 것이오.”
남자가 고개를 들어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여기는 좀 이상하군.”
분명 영기는 없는데 평범한 사람들도 하늘을 날고, 땅속으로도 들어갔다.
“뭐가 이상해요. 별의별 위면이 그렇게 많은데 이상할 것도 없죠. 당신이 이상하다고 느끼는 건 그동안 그런 모습을 많이 보지 못했기 때문일 거예요.”
그 사람이 묵욱의 말에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묵욱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그가 휴대전화를 열어보더니 새로운 문자를 읽었다. 문자는 간단히 한 문장으로 쓰여 있었다.
‘치킨 먹을 건데 시간 괜찮아요?’
묵욱은 순간 기뻐하며 문자를 몇 번이나 들여다봤다. 그리고 한참 후에야 정신을 차리더니 따닥따닥 소리를 내며 답장을 보냈다.
옆에 있던 허영의 남자가 묵욱의 갑작스러운 감정 변화에 놀라더니 그의 손에 있는 정체불명의 법기를 힐끗 쳐다봤다. 남자가 휴대전화를 자세히 살펴보더니 깜짝 놀라며 그에게 말했다.
“이 여자는.”
묵욱이 바로 휴대전화를 거두며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그를 흘겨보았다.
“이봐요. 다른 사람의 위면을 그렇게 훔쳐보면 어떡해요!”
“미안하오. 하지만 상대는 평범한 사람인데 왜 그 여자와 억지로 인연을 맺으려는 거지?”
“당신이랑 무슨 상관이에요!”
묵욱은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르더니 자신의 마음을 들켜 버린 듯해 버럭 화를 내며 소리쳤다.
“인과를 볼 수 있는 게 뭐 대단한 일인 줄 아나 보지! 똑같은 솔로 주제에 당신이 뭘 알아요?”
“솔로?”
남자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그에게 물었다. 무슨 말이지?
“됐어요. 내 앞에서 뭘 숨겨요? 여길 호기심에 찾아왔다는 말을 믿을 줄 알아요? 외로워서 온 거잖아요! 모두 똑같이 억만 년 동안이나 솔로였으면서 지금 누굴 속여요!”
묵욱이 다시 액정을 만지더니 또다시 바보 같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흥, 난 솔로에서 곧 벗어날 거예요. 이제 당신과 다를 거라고요!”
그리고 뭔가 떠올랐는지 계속해서 실없이 웃어 대다가 갑자기 그에게 말했다.
“당신과 얘기할 시간이 없어요. 난 중요한 일이 있어서 이만!”
그가 문을 열고 방 안으로 들어가려다가 갑자기 다시 돌아서서 그에게 말했다.
“아, 그리고 당신 그 영체(靈体)로 절대 다른 사람들 눈에 나타나지 마요. 사람들이 귀신을 만난 줄 알 테니까. 제발 골치 아픈 일은 만들지 말라고요.”
그가 말을 마치더니 노래를 흥얼거리며 안으로 들어갔다.
남자는 다시 한 번 그 세계의 법규를 생각하다 그제야 묵욱이 말했던 ‘솔로’의 의미를 깨달았다. 그러고는 얼굴을 찌푸리고 생각에 잠겼다.
그는 세계지영(世界之靈)으로, 그가 소원하는 것이 곧 세계의 소원이기도 했다. 때문에 불필요한 일을 일으키지 않기 위해 그는 항상 삼천세계 안에 갇혀 지냈다. 태어나서부터 지금까지 진성에 갇혀 그 세계를 지키며 살아왔다. 그곳은 무궁무진한 별빛이 반짝이는 성공(星空)이었고 삼천세계가 모두 그의 발아래에 있었다. 그의 앞에 드러나지 않은 세계가 없었고 그는 모든 세계를 낱낱이 살펴볼 수 있었다. 모든 세계가 시끌벅적했지만 정작 그의 곁에 있는 건 차갑게 반짝이는 성진뿐이었다.
전에는 이에 대해 별다른 생각을 하지 않았다. 적어도 이 세계의 존재를 알고 이 세계의 영을 알게 되기 전까지는 그러했다. 그는 이 세계에 묵욱과 같은 사람도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 묵욱은 사람들 속에 들어가 자연스럽게 어울리고 있었다. 그리고 아무 두려움 없이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고 심지어 짝사랑하는 여자와 인연을 맺으려고 애를 썼다. 그의 삶은 말 그대로 풍부하고 다채로웠다.
묵욱의 방법에 동의하는 건 아니지만 그의 말만큼은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까지 오랜 세월 그곳에서 그는 홀로 외로웠던 것이다.
“521호요? 여기예요.”
입구에서 갑자기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군가 안으로 들어오려는 듯했다.
남자가 깜짝 놀라며 사람들 앞에 나타나지 말라고 했던 묵욱의 당부를 떠올렸다. 하지만 지금 당장 몸을 피하려고 해도 시간이 여유롭지 않았다.
“야옹.”
옆에 있던 애완동물용 가방에서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살았다! 그의 몸이 연기처럼 희미해지더니 가방 안에 있던 고양이의 몸속으로 들어갔다.
“사장님, 계세요?”
여자가 문을 열며 안으로 들어오더니 큰소리로 뒤에 있는 방문을 향해 소리쳤다.
“고양이를 데리러 왔어요. 지난주에 저희 오빠가 고양이를 이곳에 맡겼거든요. 주인 이름은 시동이에요.”
여자가 주변을 한 번 살펴보고 있는데 뒤에 있는 방 안에서 게임하는 소리와 함께 묵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양이는 밖에 있으니까 찾아가세요.”
“아.”
여자가 방금 남자가 들어간 그 고양이가 들어 있는 가방을 들어 올렸다.
“찾았어요.”
다시 한 번 가방 속에 있는 고양이를 확인하더니 뒤에 있는 방문을 향해 소리쳤다.
“사장님, 고양이는 제가 데려갈게요.”
“알겠어요. 알겠어요!”
안에서 묵욱이 귀찮은 듯 대답했다. 고양이가 들어 있는 가방을 안고 문으로 향하면서 여자는 작게 투덜거렸다.
“오빠는 고양이를 왜 이런 곳에 맡긴 거야. 나와서 얼굴 한 번 확인하지 않잖아. 저렇게 무책임하다가 고양이 잃어버리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중얼거리며 여자가 밖으로 나섰다.
* * *
“도착했다!”
시하가 집으로 돌아와 바로 고양이가 들어 있는 가방을 열었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고양이는 가방 속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왜 그러는 거야? 어서 나와! 병이 난 건 아니겠지?”
시하가 시동에게 전화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는데, 갑자기 고양이가 조심스럽게 밖으로 걸어 나왔다.
“혹시 다른 고양이들한테 괴롭힘을 당한 거야?”
시하가 장난스럽게 웃으며 고양이에게 말했다.
“집에서는 그렇게 까불더니. 제대로 혼나고 왔나 보네.”
고양이는 5년 전에 그녀가 펫숍에서 직접 데려왔다. 어렸을 때부터 그녀가 먹이도 주고 키워 왔는데. 어찌된 일인지 그녀하고만 친해지지 않았다. 고양이는 성질이 사납고 뭐든 물고 뜯는 버릇이 있었다. 하지만 시동하고는 사이가 좋아서 그만 보면 꼬리를 흔들고 뒤를 졸졸 따라다녔다. 시동 앞에서는 온갖 애교를 다 부리면서 그녀가 자신을 향해 손이라도 뻗으면 바로 발톱을 세우며 공격하려고 했다. 배은망덕한 고양이!
고양이가 이렇게 얌전한 모습은 처음이었다. 심지어 밖으로 걸어 나오더니 얌전히 그녀의 발 옆에 앉아 꼼짝도 않고 있었다.
“설마 정말 괴롭힘이라도 당한 거야?”
고양이의 모습에 마음이 약해진 시하가 잠시 망설이다가 손을 뻗어 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고양이는 아무런 공격도 하지 않은 채 조용히 엎드려 있었다.
정말 물지 않잖아!
시하가 감격하며 고양이를 꼭 껴안았다.
“착하지.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얌전하게 굴면 널 이제 뚱보라고 놀리지 않을게. 어? 너 얼굴에 언제부터 이렇게 붉은 털이 있었던 거야? 누가 염색이라도 시켰나?”
* * *
깊은 밤, 침실 안. 소녀는 고양이를 안은 채 깊게 잠들어 있었다.
갑자기 침대 앞에 검은 그림자가 나타나더니 입을 열었다.
“잘도 도망갔네요. 당신을 한참이나 찾았잖아요.”
잠시 후, 얼룩 고양이의 몸속에서 희미한 그림자가 나오더니, 그림자는 다시 투명한 허영의 남자로 돌아왔다.
“갑시다. 당신은 이 세계에 오래 머물 수 없어요!”
“알겠소.”
묵욱의 말에 흰옷의 남자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고개를 돌려 침대 위에 곤히 잠들어 있는 시하를 바라봤다. 그러더니 갑자기 얼굴을 붉혔다. 차갑기만 하던 그의 눈빛은 마치 그가 있던 그 세계의 성진처럼 반짝거리기 시작했다.
혹시 나도 솔로에서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순간 다른 사람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붉은 선이 그의 손가락을 감싸더니 다시 침대 위에 있는 여자의 손가락을 감쌌다.
“당신, 그 여자를 왜 묶는 거죠? 설마 고양이로 위장해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 거예요? 하지만 당신들은 같은 세계의 사람도 아니잖아요?”
“저 여자가 좋소.”
남자가 어색하게 입을 열더니 갑자기 뭔가 떠오른 듯 얼굴을 더욱 붉혔다.
“에효, 맘대로 해요. 하지만 경고하는데 얼른 마음을 접어요. 당신 그래 봤자 실체도 없잖아요. 어서요. 어서. 이제 당신 세계로 돌아가요!”
남자가 다시 한 번 침대 위를 바라보더니 그제야 묵욱을 따라 방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생각했다.
실체가 없다고? 혹시 육계라도 윤회하고 돌아와야 할까?
* * *
다음 날 아침. 야옹, 날카로운 고양이 울음소리가 그녀의 방 안에 울려 퍼졌다.
“와, 이런 배은망덕한 고양이, 또 날 긁은 거야?”
<내 오라버니가 마존일 리 없어> 완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