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동이 말을 마치고 헛기침을 하더니 묵욱에게 말했다.
“구체적인 방법은 나중에 알려줄게요. 귀찮겠지만 우리를 다시 돌려보내 주면 그쪽 문제를 해결하고 와서 조금 더 집중적으로 가르쳐 드리죠.”
묵욱은 조금 아쉬운 듯 돌아서더니, 방 안에 있는 의자로 가서 앉았다. 그리고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우선 다른 위면은 저의 능력에 한계가 있어요. 지금은 그 통제 스위치가 없기 때문에 당신들을 여기로 돌아오기 전 그 시점으로 돌려보낼 수밖에 없어요. 바로 당신들이 그 성진지지(星辰之地)에서 돌아오기 전으로 돌아가는 거고, 시간은 당신들이 돌아오려고 했던 바로 그 순간으로 돌아가는 거예요. 시간은 한 달 줄게요. 그 안에 어떻게 관리자를 찾을지는 알아서 하시고요.”
“근데 파정은 어떡하죠? 우리는 그를 이길 수 없어요.”
이 상태로 돌아간다고 해도 다 같이 죽으면 무슨 소용이지?
“이길 수 없다고요? 당신들 바보예요? 이거 받아요. 이 신기만 있으면 그를 이길 수 있을 테니까.”
갑자기 어디에서 났는지 그가 두 개의 물건을 건네주었다.
“당신들 몸에 남아 있는 데이터를 삭제할 거예요. 어서 출발해요. 빨리 돌아오시고요!”
그가 말을 마치더니 그들을 방 가운데로 밀었다. 잠시 후, 두 사람의 주위에 익숙한 초록빛이 나타났다. 고개를 숙이고 내려다보니 그들 손에 아주 평범한 막대기 하나가 들려 있었다.
젠장, 이건 사기잖아! 이게 대체 무슨 신기라는 거지? 이걸로 파정과 싸운다고? 그건 자살 행위나 마찬가지잖아?
하지만 때는 늦어 버렸다. 잠시 후, 눈앞의 풍경이 바뀌더니 그들은 다시 그 별빛이 가득한 공간으로 들어와 있었다. 앞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서 가!”
“후지!”
한옥과 현대로 돌아가기 전에 머물었던 그 공간이 보였다. 후지가 파정에게로 달려가 검으로 결인을 하고 있는 그의 손을 잘랐다.
“당, 당신 어떻게!”
파정이 놀란 표정으로 후지에게 말했다.
“당신은 이 세계의 사람인데 어떻게 천지법규를 어길 수 있는 거지?”
파정 신존이 얼굴을 찌푸리더니 소매를 힘껏 휘두르며 후지를 밀쳤다.
“그럼 더욱더 살려 둬선 안 되겠군!”
얼음에 가로막혀 있던 별빛이 얼음을 뚫고 공격하기 시작했다. 시하가 깜짝 놀라며 아래로 내려가 바닥에 있는 후지를 안았다.
“후지!”
후지가 깜짝 놀라 그녀를 자신의 등 뒤로 감추며 소리쳤다.
“조심해!”
그 빛은 시하에게 내려와 바로 몸속으로 스며들었다. 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빛이 그녀의 몸을 관통했지만, 시하는 아무런 통증도 느낄 수 없었다. 무슨 일이지? 파정의 힘이 약해진 걸까?
“하하(夏夏).”
후지가 다급히 그녀를 끌어당기며 그녀의 몸을 살폈다. 하지만 시하의 몸에는 아무런 상처도 나 있지 않았다. 심지어 그녀의 옷에 구멍 하나도 뚫려 있지 않았다. 한옥은 그의 공격에 몸에 구멍까지 뚫렸었는데 왜 그녀는 아무렇지도 않은 걸까.
잠시 후, 하늘에 빛으로 된 담장이 나타나 세 사람을 둘러싸기 시작했다. 시하가 반사적으로 영검을 불러내려고 영력을 움직였지만 몸 안이 텅 빈 것처럼 아무것도 움직일 수 없었다. 마치 처음부터 아예 술법을 배워 본 적이 없는 것처럼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어떻게 된 일이지? 설마 방금 차원 이동을 하면서 몸에 있던 모든 능력이 사라진 걸까? 묵욱이 우리 몸에 남아 있는 데이터를 삭제했다고 했던 것이 이걸 얘기하는 걸까? 이건 사기잖아!
“풉!”
후지가 입으로 피를 토했다. 그의 몸이 점점 더 약해지며 얼굴이 창백하게 변해 갔다.
“후지!”
시하는 마음이 아팠다. 이제 그녀는 그의 상처를 치료할 수 있는 간단한 술법조차도 쓸 수 없었다. 당장에라도 돌아가 그 묵 씨를 때려죽이고 싶은 심정이었다. 후지는 뭔가 거대한 압력에 눌린 것처럼 계속해서 피를 토했다.
“후지, 후지!”
죽으면 안 돼요.
“이봐. 당신을 구하려고 다시 돌아왔는데 죽으면 안 돼!”
시동이 후지에게 소리쳤다.
“흥, 역시 다른 세계의 사람들이었어.”
파정이 갑자기 차갑게 콧방귀를 뀌더니 얼굴을 찌푸리고 그녀와 시동을 한 번 훑어봤다.
“천지위압에도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을 수 있다니.”
천지위압이 어디 있다는 거지? 시하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 아무 느낌도 없는데? 후지가 그것 때문에 이런 걸까?
“상관없어. 그래 봤자 개미떼에 불과하니까. 어서 ‘조화’를 이리 내놔. 네놈들을 가만두지 않을 거야.”
그가 말을 마치니 사방에서 빛으로 된 담장들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수천수만 개의 광인(光刃)들이 나타나 그들을 향해 다가왔다. 강풍이 날카롭게 그들의 얼굴을 스쳐지나갔다.
“하하(夏夏).”
후지가 습관적으로 시하를 자신의 등 뒤로 감추려고 했지만 몸이 움직이지 않아 피만 토해 냈다. 눈앞에 풍인이 그들의 몸을 치려 하는 순간, 시하가 자기도 모르게 손을 앞으로 휘저었다. 무섭게 날아오던 풍인들이 그녀의 손에 부딪치며 모두 사라져 버렸다. 통증은커녕 그녀의 손에 흔적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어떻게 된 일이지?
시하가 눈을 의심하며 다시 손을 내밀어 흔들어 보았다. 눈앞에 보이던 광인들이 그녀의 손에 부딪히자 아무 힘도 없이 모두 사라져 버렸다. 이 모든 것이 마치 장난처럼 느껴졌다.
시하가 고개를 돌려 시동이 있는 곳을 바라보니 그곳도 마찬가지였다. 두 사람은 마치 상처를 받지 않는 특별한 기능을 가진 듯했다.
“말도 안 돼!”
충격을 받은 건 그들뿐이 아니었다. 파정도 눈이 휘둥그레졌다.
“법규대진을 막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이건 천지법규라고!”
천지법규? 시하는 그들이 그곳으로 오기 전 묵욱이 왜 그들의 수행 계급을 제거했는지 이제야 알 수 있을 듯했다. 그래서 나에게 바보냐고 한 거였어? 그런 거였구나.
“당신들 대체 뭐지? 어떻게 법규의 공격을 벗어날 수 있는 거지?”
파정이 그들에게 물었다.
“법규? 당신의 법규가 우리랑 무슨 상관인데?”
시하와 시동은 다른 위면에서 왔기 때문에 그쪽 세계의 법규는 그들을 전혀 공격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들이 있던 세계와 이 세계는 전혀 다른 시스템이었으니까.
시하는 처음 이 세계에 왔던 때가 떠올랐다. 제일 처음 마수를 만났을 때에도 그의 법술이 그녀에게 전혀 먹히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때도 아마 같은 이유였던 듯했다.
하지만 나중에 시하가 용의 구슬을 삼키면서 영근이 생겼고, 법술을 수련하면서 그녀의 몸도 그 세계의 수행 계급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그 세계의 법규의 제한을 받게 되었던 것이었다. 묵욱이 그들의 수행 계급을 제거한 것도 바로 그 때문이리라.
그 세계의 법규 아래 있는 물건을 몸에 갖고 있지 않으므로 그들은 그 법규와 전혀 상관없는 사람이 된 것이다. 시하는 마음이 한결 가벼워져 형용할 수 없는 기쁨을 느꼈다. 시하가 바닥에 있는 막대기를 들고 파정을 노려봤다.
“당신 지금 뭐 하는 거지?”
뭔가 눈치를 챘는지 파정이 당황한 표정으로 시하를 바라보며 물었다.
“뭐 하는 거냐고?”
시하가 차갑게 한 마디 하더니 조금 건방진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
“오빠!”
“여기 있어!”
시동도 시하와 같은 마음으로 막대기를 등에 꽂고 섰다. 시하가 막대기를 흔들며 파정에게 소리쳤다.
“이리 와, 죽여 줄 테니까!”
두 사람이 막대기를 들고 동시에 그를 공격했다. 그들을 막고 있던 빛 담장이 몸에 부딪치며 순식간에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들은 순식간에 파정의 코앞까지 다가갔다.
처음에는 두 사람이 함께 때리다가 잠시 후에는 돌아가면서 한 번씩 빈틈없이 공격했다. 그들이 들고 있던 막대기가 끊어지자 이번에는 주먹으로 공격하기 시작했다. 두 사람이 주먹으로 잇달아 공격하면서 파정의 얼굴이 퉁퉁 부었다. 순간 그 공간에 파정의 각종 신음 소리가 가득해졌다.
“당, 당신들, 감히! 그만, 멈추라고! 아!”
두 사람은 어느 정도 지나고 나서야 공격을 멈추고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시하는 처음으로 사람을 때리는 일이 힘들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화가 나서 씩씩대던 파정도 바닥에 쓰러져 버렸다.
“당, 당신들은 날 죽일 수 없어.”
너무 심하게 부어서인지 파정의 얼굴은 다시 바뀌지 않고 있었다. 처음에는 술법을 이용하여 그들의 공격을 막으려던 파정은 자신의 법술이 전혀 먹히지 않고 있다는 걸 알고 공격을 아예 포기해 버렸다. 다만 그들을 약이라도 올리려는 듯 이렇게 말했다.
“나와 ‘조화’는 한 몸으로 삼천계보다 훨씬 높은 위치에 있지. 난 절대 사라지지 않아!”
“괜찮아!”
시동이 크게 웃더니 그의 도발에는 꿈적도 하지 않고 발로 그의 몸을 밟으며 말했다.
“우린 당신을 죽일 생각이 없어. 다만 당신이 생활하기 조금 불편할 정도로 때려주기만 할 거야.”
파정이 화가 나서 몸을 부르르 떨었지만 아무런 반항도 하지 못했다.
“대체 무슨 속셈인 거지?”
시동이 바닥에 주저앉아 있는 시하를 부축하며 파정에게 물었다.
“이 세계의 관리자는 어디에 있어?”
그들이 다른 세계에서 왔다는 사실을 알고, 용족과 봉족의 싸움을 일으켜 그곳으로 유인할 걸 보면 파정이 시스템보다 더 많은 것을 알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관리자가 어디에 있는지는 파정만 알고 있는 사실일 수도 있었다.
“관리자?”
파정이 놀란 표정을 짓더니 잠시 침묵하다가 입을 열었다.
“당신들이 그의 존재를 어떻게, 그를 왜 찾고 있는 거지?”
“쓸데없는 소리 그만해!”
시동이 발로 차며 막대기로 그의 머리를 두드렸다. 그리고 다소 불량한 표정으로 말했다.
“말해, 어디 있는 거지?”
그는 한참 뭔가 생각하는 듯하다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본존은 그의 위치를 알 수 없어. 하지만 이곳이 삼천계의 근원이라 그를 찾으려면 법규의 눈을 열어야만 해.”
“그럼 열어!”
시하가 재촉하며 소리쳤다. 한옥을 살리려면 관리자를 만나야만 했다.
“법규의 눈은 그렇게 쉽게 열 수 있는 게 아니야!”
시동이 차가운 얼굴로 막대기를 그의 얼굴로 가져갔다. 그리고 눈앞에서 힘껏 부러뜨리며 힘주어 말했다.
“열 거야, 말 거야?”
두 사람에게 맞은 게 위협이 됐는지, 파정은 어쩔 수 없이 겨우 일어서며 중얼거렸다.
“알겠어.”
그가 결인을 하며 조용히 뭔가를 읊조리자 갑자기 발아래에 진법이 나타났다. 진법이 서서히 솟아오르더니 머리 위까지 올라왔다. 진법이 점점 더 커지더니 안에 있던 글자 부호들이 위로 떠오르며 잠시 후, 눈 모양으로 변해 버렸다.
진법은 별빛이 반짝이던 그 공간을 환하게 비추었다. 시하와 시동이 눈을 가리며 자기도 모르게 뒤로 몇 걸음 물러섰다. 진법이 갑자기 다시 어두워지더니 또 다른 진법으로 바뀌었다. 그건 그들에게도 익숙한 바로 전송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