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후, 그 구멍이 완전히 채워지면서 완전한 입방체 모양으로 회복됐다. 그리고 그 위에 있던 한옥의 몸이 서서히 그 입방체 가운데로 스며들더니 몸을 동그랗게 말고 잠든 모습을 했다.
시하가 손을 내밀어 한옥을 잡으려고 하자 그녀의 손이 그 입방체를 뚫고 지나가 버렸다.
어떻게 된 일이지?
“한옥은 이제 완벽하게 복구되어 지금은 온전한 상태예요. 당신은 그쪽 세계의 사람이 아니니 그를 만질 수 없는 건 당연하죠.”
그럼 우린 어떻게 그 관리자를 찾을 수 있다는 거지?
“한옥을 만지려면 이 세계의 매개가 필요해요. 뭐가 좋을까.”
묵욱이 턱을 만지며 생각에 잠겨 있다가 입을 열었다.
“아, 그 ‘조화’라고 하는 시스템이 당신들 휴대전화에 갑자기 나타났었다고 했죠? 그럼 휴대전화를 사용해요. 어? 내 휴대전화는 어딜 간 거지?”
시동은 밖으로 나갔다가 계산대에 위에 있는 휴대전화를 주워 다시 들어와 그에게 건네었다.
“가지고 있어요.”
묵욱이 휴대전화를 받지 않고 여전히 앞에 있는 화면들을 조작하며 말했다.
“제가 그 조화의 본체를 한옥과 연결시킨 후 데이터의 흐름을 통해 저의 휴대전화에 저장할 거예요. 그럼 당신들은 그 휴대전화로 그 관리자를 찾을 수 있죠. 혹시라도 발생하게 될 일을 대비해 다른 프로그램들도 설치해 둘게요.”
그가 말을 마치자 단상 위에 있던 한옥과 시스템이 작은 빛으로 변하더니 눈앞에서 사라져 버렸다.
“아, 당신 전화번호가 어떻게 되죠?”
그가 갑자기 고개를 들더니 가까이에 있던 시하를 바라보며 말했다. 시하가 그에게 자신의 전화번호를 알려줬다.
“지구의 문명 수준을 고려해, 당신들이 이해하기 어려울까 싶어서 당신이 예전에 사용하던 그 모습으로 설치했어요. 아마 당신이 사용하던 휴대전화와 똑같이 사용할 수 있을 거예요. 쓰던 그대로 사용하면 돼요.”
그가 다시 프로그램을 조작하다가 손을 멈추고 말했다.
“자! 휴대전화에 있는 지도를 열어봐요. 목적지가 보이죠? 아, 전화는 하면 안 돼요. 이건 사실 광컴퓨터라서 기능이 이 지구의 문명을 훨씬 뛰어넘거든요. 때문에 혹시라도 전화를 하게 되면 다른 휴대전화까지 복제할 수 있으니까 주의하세요.”
시동이 서둘러 지도를 몇 번 눌러 보다가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아무 반응도 없는데요? 고장 난 거 아니에요?”
“그럴 리가요! 내 광컴퓨터가 당신들이 갖고 있는 그 보잘것없는 휴대전화와 같은 줄 알아요?”
그가 말을 마치고 시동의 손에서 휴대전화를 빼앗아 힘껏 지도를 눌렀다. 하지만 역시나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말도 안 돼. 휴대전화를 누르기만 해도 바로 전송되어야 하는 건데.”
그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이리저리 살펴보더니 깜짝 놀란 표정으로 소리쳤다.
“이건 제 광컴퓨터가 아니잖아요!”
“잠깐만요!”
시하가 다가와 휴대전화를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이, 이건 내 휴대폰이야! 오빠 이것 좀 봐. 여기 뒤에 고양이가 물어뜯은 자국이 있잖아.”
“네 휴대전화?”
시동이 말을 멈추고 깜짝 놀란 표정으로 시하를 바라봤다. 시하도 시동을 바라보며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순간 두 사람의 머릿속에 같은 생각이 떠올랐다. 설마.
“묵욱, 오늘이 며칠이죠?”
“202X년 X월 X일, 그건 왜요?”
큰일 났어! 시하가 철렁 내려앉는 가슴을 안고 황급히 상점 밖으로 뛰어나가 주변을 둘러봤다. 그리고 어느 마트 오른쪽에 있는 길모퉁이로 걸어갔다.
202X년 X월 X일은 그녀가 차원 이동을 했던 바로 그날이었다. 그날 그녀는 A마트 부근에서 차원 이동을 했었다. 미친 듯이 달려가 보니 멀지 않은 곳에 방금 생선포를 산 자신의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그 순간 그녀는 휴대전화에 뭔가를 누르고 있었다. 시하가 깜짝 놀라 소리쳤다.
“안 돼!”
“여보세요. 오빠.”
순간 전송 시스템이 작동하더니, 그녀의 모습이 순간적으로 사라져버렸다.
이제 보니 전에 난 이렇게 차원 이동을 하게 된 거였어. 시스템 때문이 아니라 생선포를 사러 갔다가 묵욱의 휴대전화를 잘못 가져오는 바람에 차원 이동을 하게 된 거였어!
결국 스스로 차원 이동을 한 셈이었다. 그래서 휴대전화에 그렇게 이상한 애플리케이션들이 많이 보였던 것이고. 이제 보니 그게 모두 묵욱이 관리자를 찾으라고 설치한 것들이었다.
“우리 돌아왔어.”
그때 시동이 그녀의 뒤를 쫓아오더니 종이 인간이 아니라 진짜 사람의 모습으로 돌아온 그녀의 몸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리고 이어서 뭔가 생각난 듯 말했다.
“놓쳤어?”
“응.”
시하가 고개를 끄덕였다. 시하는 울음을 터뜨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왜 오빠가 차원 이동을 하게 되었는지 이제야 알았어. 내가 미안해!”
시하가 제일 마지막으로 전화를 건 사람은 바로 시동이었다. 시동은 시하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그런 말 하지 마. 어쨌든 우린 이미 차원 이동을 하고 돌아왔잖아. 돌아가서 묵욱에게 어떻게 하면 좋을지 물어보자.”
“……응.”
“이제 보니 내가 당신들을 그쪽 세계로 보낸 거였네요?”
앞뒤 상황을 모두 알게 된 묵욱이 초조한 표정으로 방 안을 왔다갔다 서성이기 시작했다.
“젠장, 이제 그쪽 세계 관리자에게 어떻게 이 일을 설명해야 하지? 혹시 그쪽에서 이상한 일을 저지르진 않았죠?”
“어땠을까요?”
시하는 그렇다 쳐도 시동은 그쪽에서 마존이라는 칭호까지 얻지 않았는가.
“하!”
묵욱이 울상을 하고 또다시 방 안을 서성이더니 물었다.
“그러니까, 당신들은 관리자를 찾지 못했다는 거네요?”
“그래요!”
“그건 말도 안 돼요. 전송 주소가 바로 그 관리자 근처였다고요.”
“아, 시스템이 저에게 열 차례에 걸쳐 택배를 배송하도록 했어요. 매번 한 사람에게 한 개의 택배를 배송했죠.”
“그건 내가 프로그램을 자극하려고 일부러 설정한 거고요.”
묵욱이 그녀에게 설명했다.
“관리자가 아무 이유 없이 사라지진 않았을 거예요. 스스로 의식을 억제하기 전까지는요. 때문에 제가 조화 시스템에서 관리자의 물건을 가져와 그 기운으로 상대의 의식을 자극하려고 했다고요. 만약을 대비해 열 번으로 설정한 거고요.”
묵욱이 자신의 머리를 감싸며 괴로운 표정을 지었다.
“열 차례에 걸쳐 택배를 배송하는 동안 자신이 관리자라고 했던 사람은 없었어요?”
“네!”
“젠장! 왜 그렇게 재수가 없는 거죠?”
그건 당신이 준 그 프로그램이 쓰레기라 그런 거 아닐까요?
“아, 그리고 제가 택배를 다 배송한 후, 시스템은 저에게 구멍을 막도록 했어요.”
“그건 당연한 거예요. 열 번이나 전송에 실패했으니까 다시 본능으로 돌아가 행동한 것뿐이에요. 그 화요가 다시 잠들었군요.”
묵욱이 시하를 한 번 쳐다보더니 이어서 말했다.
“저는 당신들이 관리자를 반드시 찾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에 돌아오는 프로그램은 설치하지 않았거든요.”
그 결과 열 차례 배송에 모두 실패하고 그들은 그곳에 그렇게 오랫동안 머물러야만 했다. 그리고 나중에 한옥이 시스템과 바로 결합할 수 있었던 건 원래부터 시스템 내부에 잠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럼 이제 어떡하죠?”
“어떡하긴 뭘 어떡해요! 당신들은 이미 돌아왔잖아요. 그러니까 이제 돌아가서 당신들 하고 싶은 대로 해요.”
“아직 관리자도 찾지 못했고 한옥은 아직도 좋아지지 않았잖아요.”
게다가 후지가 아직 그곳에 있었다. 잘 지내고 있는 걸까?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죠? 다른 위면의 일이니 내가 상관할 바가 아니에요.”
시하는 순간 묵욱을 한 대 쥐어박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 일은 우리 때문에 일어난 일이고, 한옥의 몸에 있는 프로그램은 당신이 설치한 거예요. 제대로 일을 할 거면 끝까지 마무리를 지어야죠. 그리고 만약 그쪽 관리자가 당신이 자신의 통제 스위치를 건드린 걸 알게 되면 화가 나지 않을까요?”
“내가 무서워할 줄 알아요? 날 자극할 필요 없어요. 이 일에 관여할 생각 없으니까. 이제 몸도 회복되었으니 더 상관하지 말고 그만 돌아가요.”
그가 상점 문을 열며 말했다.
여기서 그만두면 한옥과 후지를 구할 수 없을 텐데.
시하가 초조한 마음으로 고개를 돌리는 순간, 상점 안에 있는 묵욱과 그 여자의 사진이 눈에 띄었다. 순간 시하의 머릿속에 뭔가 번뜩이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시하가 큰소리로 시동에게 말했다.
“오빠, 방금 사료를 무료로 가져간 그 여자 성이 뭐였더라?”
시하의 소리에 묵욱이 걸음을 멈췄다. 시동이 순간 시하의 의중을 눈치채며 대답했다.
“서류에는 성이 심 씨라고 적었던 것 같은데?”
“정말? 이럴 수가! 예전에 오빠를 좋아했던 그 선배 언니도 성이 심 씨였는데.”
“그래? 이 오빠가 원래 매력이 어마어마하잖아. 어렸을 때부터 날 좋다고 따라다니는 여자들이 줄을 섰을 정도지. 거짓말이 아니라 사람을 끌어당기는 법은 책으로라도 낼 수 있을 정도야. 워낙 경험이 풍부하니까!”
“정말?”
“당연하지, 새언니로 삼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얘기만 해. 한 달도 되지 않아 바로 데려올 테니까.”
“우리 돌아가서 학원이나 차리자. 좋아하는 상대를 어떻게 넘어오게 할 수 있는지 그걸 가르치는 거야. 특히 그 심 씨 성을 가진 그런 분들 말이야.”
“그야 문제없지!”
두 사람이 계속해서 묵욱을 향해 미끼를 던지며 문을 나서려는 순간, 묵욱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시동의 앞을 가로막았다.
“잠깐만요!”
드디어 미끼를 물었네.
“묵 관리자님, 무슨 분부라도 있으신가요?”
시동이 히죽히죽 웃으며 그에게 물었다. 묵욱이 주먹을 불끈 쥐며 그에게 물었다.
“당신이 그렇게 대단해요?”
“당연하죠.”
거짓말이 아니라, 시동 본인은 여자들에게 정말 인기가 많은 편이었다. 얼마나 많냐면 유치원 때부터 한 번도 본인 돈으로 간식을 사 먹어 본 적이 없을 정도였다. 많은 여자애들이 시동의 환심을 사기 위해 간식을 사 들고 줄을 섰기 때문이다.
묵욱은 잠시 망설이더니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
“좋아요. 당신들을 그 세계로 다시 돌려보내 줄 테니까 나 좀 도와줘요!”
“문제없어요. 여자 꼬시는 건 어렵지 않으니까.”
시동이 웃으며 묵욱을 안심시켰다.
“말만 하세요. 여자를 꼬실 때 제일 중요한 건 바로 인내심이에요. 너무 서두르면 안 되죠. 아, 두 분 혹시 어떻게 알게 된 사이죠?”
“……인터넷이요.”
“아, 인터넷 친구였군요.”
묵욱의 표정은 점점 더 진지해졌다. 짧은 시간 동안 시동은 그에게 여자를 꼬시는 방법을 몇십 가지나 열거하고 있었다. 묵욱은 반신반의하는 표정을 짓더니 시간이 지날수록 뭔가 큰 깨달음을 얻은 사람처럼 고개를 끄덕이며 당장이라도 실천에 옮겨 보고 싶어 안달이 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 모든 것이 불과 10분 만에 일어난 일이었다. 스승과 제자를 만난 듯 화기애애한 모습으로 대화를 멈추지 않고 있었다.
“저기, 오빠?”
시하가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시동을 불렀다. 한참 대화에 열을 올리던 시동이 말을 멈추고 시하를 바라봤다.
그렇게 얘기만 하다가 언제 돌아갈 건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