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82화 (182/189)

시하가 시동과 후지에게 간단하게 상황을 설명했다. 두 사람도 시하의 의견에 동의하며 옥패 위에 있는 내용을 확인했다. 그리고 바로 자리에 앉아 신기를 모아 진을 치기 시작했다.

다른 진법들과 다르게 오행서천진은 신력으로 만든 것이었다. 때문에 다시 돌리려면 신력으로 돌려야만 했다. 시하는 시동과 후지가 빠른 속도로 신계에 오른 것이 어찌 보면 너무 다행스러운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하가 체내의 신력을 움직여 진법에 접촉하자 진법 안에 있는 그 혼란스러운 기운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모든 신력을 집중하여 최대한 진법 안 구석구석으로 전달하려고 노력했지만, 어찌된 일인지 진법 안은 마치 경계가 없는 공간처럼 그 끝을 찾을 수 없었다. 순간 시하는 천유가 왜 봉족에게 그곳의 봉인을 맡겼는지 알 수 있을 듯했다. 그곳을 움직이기에는 그들의 신력이 많이 부족해 보였다.

젠장, 그럴 줄 알았으면 수련할 때 조금 더 열심히 할걸.

하지만 이미 시작한 이상 다시 멈출 수도 없었다. 시하의 몸속에서 마치 수도꼭지를 틀어 놓은 것처럼 신력이 밖으로 끊임없이 흘러나왔다. 시하의 마음이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젠장, 진법을 너무 쉽게 봤어. 오빠와 후지가 있으면 문제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많은 신력이 필요할 줄이야. 이러다 세 사람 모두 안으로 빨려 들어가겠어.

시하가 심란한 마음으로 생각에 잠겨 있던 순간, 그녀의 뒤에서 갑자기 엄청난 신력이 느껴졌다. 순간 거의 바닥나고 있던 그녀의 신력이 다시 채워지는 듯했다. 고개를 돌려 보니 금룡이 두 손을 그녀의 등 뒤에 대고 신력을 전달하고 있었다.

“저 벌레들이 너무 싫긴 하지만 애벌레 너의 얼굴을 봐서 내가 한 번 참아 볼게.”

“금룡!”

시하의 가슴이 뭉클해졌다. 네가 그러니까 내가 울고 싶잖아. 역시 넌 멋진 용이었어. 그가 뭔가 떠오른 듯 시하의 귓가에 조용히 속삭였다.

“나중에 내 비늘 염색해주는 거 잊지 마.”

“그, 그래. 내가 꼭 도와줄게.”

금룡이 나서자 봉황도 참다못해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 옆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그녀에게 신력을 전달하기 시작했다.

두 신족의 지원에 힘입어 시하와 두 사람은 순식간에 진 안 곳곳에 신력을 전달할 수 있었다. 그리고 드디어 진법 중심을 찾았다. 세 사람이 눈빛을 맞추더니 동시에 결계를 하며 진법을 되돌렸다.

순간 오행서천진에 금빛이 반짝이더니 오색찬란하던 진법이 금빛으로 둘러싸이기 시작했다. 진법 변두리에서 밝은 빛이 솟아오르더니 날카로운 칼날처럼 그들 옆에 있던 진법을 잘라 냈다. 순간 하늘땅이 흔들리는 엄청난 진동이 울려 퍼졌다.

거대한 진동 소리가 하늘로 솟아오르더니 그녀의 발아래 있던 땅들이 갈라지기 시작했다. 원래 안개에 뒤덮여 있던 성천경이 서서히 사라져 갔다. 잠시 후, 그들 앞은 검은색으로 변해 있었다. 마치 온 세계가 절단된 것처럼 보였다.

“성천경이 신계에서 떨어져서 아래 세계로 내려갔어요. 작은 주인님, 저희 성공했어요!”

시하는 그제야 안심하며 앞에 있는 빈 공간을 바라봤다. 역요괘와 공양과 작별인사도 나누지 못하고 헤어진 것이 마음에 걸렸다.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성천경이 이제 보이지 않고 있었지만 하늘과 땅 사이에 그 진동은 아직도 멈추지 않고 오히려 더 거세지기만 했다. 심지어 발아래 있던 땅이 자꾸 앞에 있는 빈 공간을 향해 뻗어 나가고 있었다.

“어떻게 된 거죠?”

시하가 흔들거리는 몸을 지탱하려다가 자기도 모르게 옆에 있던 후지를 잡았다.

“천지의 법규에 따라 이곳의 빈 공간을 복구하려는 거야.”

후지가 무거운 목소리로 그녀에게 말했다.

“천지의 법규요?”

“맞아요. 작은 주인님.”

한옥이 신식 속에서 후지의 말에 동의하며 설명했다.

“신계는 천지와 아주 가까운 곳에 있기 때문에 천지의 법규가 저 빈 공간을 그냥 남겨 두지 않을 거예요. 성천경이 아래 세계로 내려왔으니 신계에서는 저 빈 공간을 복구하려고 하겠죠.”

그 말은 신계의 일부분이 잘려 나갔으니 스스로 그걸 채우려고 한다는 말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눈앞의 빈 공간이 점점 더 빨리 줄어들면서 지면의 흔들림도 더욱 거세지더니 잠시 후, 그들 앞에 육지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육지가 점점 더 가까워지더니 어디선가 울부짖는 소리도 들려왔다. 그 소리는 어딘가 모르게 봉황과 용의 울음소리와 닮아 있었다.

맞은편 풍경이 점점 더 가까이 다가왔다. 눈앞에 펼쳐진 풍경에 깜짝 놀라 그들은 자기도 모르게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이제 빈 공간은 완전히 사라지고, 아주 높은 화산이 나타났다.

“용곡!”

금룡이 놀라서 소리치더니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주변을 살폈다.

“이, 이게 대체 무슨 일이지?”

곳곳에서 흘러나온 핏줄기가 강물처럼 흘러내렸다. 멀지 않은 곳에 산처럼 높은 용들이 쓰러져 있는 모습들이 보였다. 그들은 이미 숨을 거둔 것처럼 보였다.

용의 시체도 있고 봉황의 시체도 보였다. 사방이 모두 불꽃으로 뒤덮여 있고 여기저기에서 용과 봉황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시하의 마음이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무슨 일이 있는 게 분명해. 그것도 아주 큰일이 일어났어.

금룡이 다시 용으로 변신했다. 동시에 봉황도 인간에서 다시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가더니 용곡이 있는 곳을 향해 날아갔다.

시하와 시동, 후지는 검을 부려 그들의 뒤를 따랐다. 용곡 근처에 이르자 용과 봉황의 울부짖음이 더욱 뚜렷하게 들려왔다. 심지어 구름 사이로 힘차게 용솟음치고 있는 용과 봉황의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주변에서 술법들이 공격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가끔 거대한 몸이 공중에서 떨어지고 있었다.

“용과 봉황이 싸우고 있어!”

시동이 소리쳤다. 여기저기에서 용과 봉황이 한데 엉켜 싸우며 거대한 몸집으로 하늘을 가리고 있었다. 멀리에서도 영력의 격동을 느낄 수 있었다. 바닥은 이미 경계를 알 수 없을 정도로 불바다가 되어 있었다.

“저건 뭐지?”

시동이 갑자기 손을 들어 앞에 높이 보이는 허공을 가리켰다. 시하가 고개를 들어 보니 구름 사이로 아름다운 궁전 하나가 희미하게 보였다. 궁전 주위를 뭔가가 감싸고 있어 멀리에서도 엄청난 위엄이 느껴졌다. 궁전은 위엄에 눌려 뭔가 저항할 수조차 없는 분위기를 자아내며, 마치 이 세계와는 별개로 아래에서 일어나는 참혹한 상황과는 전혀 상관없이 평온한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다.

“야진궁!”

봉황이 갑자기 크게 소리치더니 긴장했다.

“어떻게 여기에 나타난 거지?”

시하가 그의 말에 놀라 다시 한 번 멀리 높이 솟아 있는 궁전을 바라봤다. 저게 바로 야진궁이라고?

“야진궁이 갑자기 이곳에 나타난 걸 보면 종족 안에 분명 뭔가 큰일이 일어난 것이 분명해.”

봉황이 다급히 날개를 움직이며 말했다.

“더는 싸우면 안 돼. 그렇다가는.”

그리고 말을 마치지 못했다. 하지만 그가 암시하는 바는 분명했다. 용과 봉황 두 종족이 지금까지 사이가 좋지 않았던 건 맞지만, 한 번도 이렇게 크게 싸운 적은 없었다. 모두가 정상급의 신족들이라 실제로 싸움이 일어나면 전체 신계가 흔들릴 수 있다는 걸 인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우려하는 바가 정말 그들의 눈앞에 펼쳐졌다.

그러고 보니 성천경의 오행서천진이 그렇게 된 것도 이들의 싸움 때문인 모양이군.

“빨리 가 봐야 해.”

봉황은 날개를 힘껏 흔들더니 앞으로 날아가려고 했다. 하지만 그들 앞에 웬 다른 봉황 한 마리가 떨어졌다. 봉황의 울부짖음 소리와 함께 그들 옷에 피가 흩날렸다.

“폐하?”

깊은 상처를 입은 다른 봉황이 깜짝 놀란 눈빛으로 그에게 소리쳤다.

“아직 살아 계셨어요? 너무 잘됐어요, 폐하! 그렇게 쉽게 용족의 손에 죽을 리가 없다고 생각했어요!”

“누가 용족의 손에 죽었다고 그래?”

“천유가 그랬어요! 갑자기 폐하가 사라지고 나서 저희가 계속 찾았지만 찾을 수 없었어요. 그래서 야진궁에 도움을 요청하러 갔더니 천유가 폐하께서 용족의 손에 죽었다고 알려주지 않겠어요? 그래서 저희가 이곳에 찾아와 폐하를 위해 복수하려고 했던 거예요!”

또 그놈의 천유!

“허튼소리! 난 용곡으로 간 적도 없어.”

두 종족이 싸운 이유가 그것 때문이었어?

“안 돼, 이제 그만 멈춰야 돼!”

봉황은 말을 마치더니 힘껏 날개를 움직여 그들이 싸우고 있는 곳을 향해 날아갔다.

“애벌레, 나…….”

금룡은 시하를 바라보더니 초조한 모습으로 몇 번 발을 굴렀다. 시하가 그의 마음을 이해하며 손을 흔들었다.

“어서 출발해서 이제 그만 싸우라고 해. 넌 지금 금룡이니까 그들은 너의 말을 들을 거야.”

“응, 조심해야 돼.”

금룡은 맞은편을 향해 날아갔다. 시하의 마음속에 뭔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그 합도에 성공했다던 그 파정 신존은 대체 어떤 인물인 거지? 봉황이 천장 안에 갇혀 있는 걸 알면서 왜 봉족에게 그가 용족의 손에 죽었다고 거짓말을 했을까? 왜 용족과 봉족, 이 두 종족 간의 싸움을 주도했지?

이런 사람이 정말 우리가 돌아갈 수 있게 도와줄 수 있는 걸까?

“동생!”

시동이 그녀의 손을 끌어당겼다.

“우린 야진궁으로 가자.”

시하가 주먹을 불끈 쥐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가 무슨 생각을 하든 야진궁이 바로 앞에 있고, 집으로 돌아갈 수 있는 기회가 바로 앞에 있는 이상, 시하는 적어도 그곳에 찾아가 정확한 정보를 들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 사람은 방향을 바꾸어 야진궁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가는 길에 장애가 있을 거라고 예상했지만 예상과는 달리 가는 길이 아주 순조롭기만 했다. 그들은 잠깐 사이 바로 야진궁 앞에 도착할 수 있었다.

분명 그곳도 같은 신계에 있었지만 어찌된 일인지 다른 세계에 들어온 것처럼 두 종족의 싸움 소리는 전혀 들리지 않았다. 멀지않은 곳에 높이를 알 수 없는 높은 석문이 보였다. 석문 위에는 각종 기괴한 문자들이 새겨져 있어 멀리에서도 뭔가 어마어마한 기운이 느껴졌다.

시하가 무겁게 걸음을 옮기며 시동에게 물었다.

“오빠, 그 파정이라는 사람을 찾으면 우리 정말 집으로 돌아갈 수 있는 거야?”

“아마도. 그 사람 외에 다른 사람은 없을 거야.”

“그럼…… 후지는 어떡하지?”

드디어 지금까지 우려했던 그 일에 직면하게 되었다.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아 있을 줄만 알고 천천히 준비하려고 했지만 야진궁이 이렇게 빨리 그들 앞에 나타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열애를 시작한 지 이제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헤어져야 한다니 마음이 찢어지듯 아팠다.

그때 후지가 앞으로 한 걸음 나서며 그녀를 끌어안았다.

“걱정하지 마. 나도 너와 함께 갈 거야.”

“네? 저희와 같이 간다고요? 하지만 내가 살던 세계는 이곳과 완전히 달라요. 저도 어떻게 될지 장담할 수 없는데, 당신은.”

“괜찮아. 네가 어디로 가든 나도 그곳에 같이 갈 거야.”

“그만, 그만!”

시동이 후지의 멱살을 잡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며 그들에게 말했다.

“아직 그런 얘길 할 때가 아니야. 용과 봉황, 이 두 종족의 싸움을 보니 그 파정 신존이라는 작자는 절대 좋은 사람이 아니야. 분명 다른 음모가 있을 거야. 그러니까 지금은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대비하고 있어야 된다고, 알겠어?”

그의 말에 시하가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그리고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던 그 혼란스러운 마음을 떨쳐 내며 입을 열었다.

“그래, 일단 안으로 들어가자.”

“좋아.”

후지가 품에 안았던 시하를 풀어주는 대신 그녀의 손을 꼭 잡았다. 순간 시동은 표정을 어둡게 굳혔지만 뜻밖에도 후지의 손을 뿌리치지 않고 돌아서서 앞에 있는 대문을 향해 걸어갔다.

지금은 시하의 기분이 별로니까, 나중에 내 세계에 도착하면 그때 가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녀석을 떼어 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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