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81화 (181/189)

그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그곳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깜짝 놀랐다. 그리고 그녀의 가까이에 있던 두 사람이 동시에 폭발했다.

“뭐 하는 거지?”

“당장 그 손 내려놓지 못해!”

후지와 시동이 동시에 그에게 달려들어 시하의 허리를 감싸고 있던 그의 손을 풀었다. 그리고 후지가 시하를 끌어당겨 자신의 품에 안았다. 시동은 멸시하는 눈빛으로 봉황을 바라보다가 후지의 품에 안겨 있는 시하를 다시 자신에게로 끌어당기며 말했다.

“그 손 놔, 어서! 내 동생을 누가 함부로 안으라고 했어!”

“나 어디서 당신을 본 것 같아.”

봉황이 다급히 해명하며 그녀가 있는 곳을 바라봤다. 그녀를 바라보는 그의 눈빛에는 완벽하지 않은 자신의 기억에 대한 망연함과 또 억울함이 섞여 있었다.

봉족들은 이렇게 직설적인 방법으로 작업을 거는 걸까? 잠깐? 저 눈빛을 어디서 본 듯한데.

시하는 자기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

“병아리?”

봉황은 눈을 반짝이더니 시하에게 물었다.

“날 알아?”

시하가 옆에 있던 시동을 쿡쿡 찌르며 그에게 조용히 물었다.

“시동, 정말 병아리일까?”

“그럴 수가 없잖아. 병아리는 작은 새끼 봉황으로 변해 아래 세계에 남아 있다고 하지 않았어?”

“그렇긴 한데, 신족이니까 신계에 돌아왔을 수도 있잖아?”

그렇다면 왜 나를 알고 있는 거지?

“만약 병아리면 왜 너만 알아보고 난 못 알아보겠어?”

“음.”

설마 기억 상실증 이런 거 아닐까? 보아하니 자신의 기억에 대해 완전히 확신하는 듯하지도 않은데.

“그리고 난 병아리가 성년이 된 모습을 봤어. 그야말로 경국지색이 따로 없었다고. 병아리가 자라서 신계에 돌아올 수는 있어도 설마 성별까지 바뀌겠어?”

그의 말도 일리가 있어 시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전에 병아리가 사람으로 변신한 모습은 어린 여자아이의 모습이었다.

그렇다면 그냥 우연이었을까?

시하가 한참 생각에 잠겨 있는데 침상 위에 있던 남자가 갑자기 그녀의 소매를 끌어당겼다. 냉담하고 거만하던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는 그가 눈빛을 반짝이며 말했다.

“혹시 다른 화봉도 만난 적 있어?”

이제 보니 동명이인일 뿐이었나. 시하가 그제야 안심하며 말했다.

“그래, 근데 넌 왜 천장 안으로 들어간 거지?”

시하가 그제야 그를 찾아온 진짜 목적을 떠올리며 물었다.

“밖에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

“천유(天喩)의 지시를 받들어 진 안을 복구하고 봉인하기 위해서였지. 난 천유의 부름을 받았어. 여기 봉인에 문제가 발생해서 복구하려고 했던 거야. 하지만 무슨 일인지 이번 복구는 전과 다른 듯해. 내가 진법 안에 갇히게 됐거든. 안에서는 방향도 알 수 없어서 강제로 뚫고 밖으로 나온 거야.”

“복구? 네가 말한 봉인은 오행서천진을 말하는 거야?”

“오행서천진이 뭔데? 천유는 이 진법 안에 아주 극악한 물체가 살고 있어서 무슨 일이 있어도 밖으로 빠져나가게 해서는 안 된다고만 얘기해줬어. 하지만 매년 봉인이 한 번씩 약해졌는데 바로 그날을 위해 우리 종족이 필요했어. 우리는 봉족의 진화를 사용해 봉인을 복구하고 요수들이 밖으로 나가지 못하도록 막고 있었지.”

그의 말을 들은 시하와 일행들이 모두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전에 시하가 진 안으로 들어갔을 때 확실히 봉황의 진화를 봤었다. 그리고 진법이 매년 한 번씩 약해지는 것도 사실이었다. 그렇다면 봉황도 요수들의 침입을 막고 있었다는 말이었다.

성천경에 1년에 한 번씩 요수들이 몰려왔던 건 봉족들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들의 생각과 달리 한편에서는 들어오지 못하도록 막고 있었고, 다른 한편에서는 나가지 못하도록 막고 있었던 것이다.

“이번에는 천유가 미리 사전에 경고해서 내가 직접 와서 살피려고 했던 건데.”

그가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주변을 살피더니 시하의 옷깃을 잡아당기며 말했다.

“여기가 바로 봉인 안이야? 혹시 그 봉인된 그 물체를 본 적 있어?”

“걱정 마, 여긴 위험하지 않아. 그런데 네가 말한 천유는 대체 뭐지?”

“천유는 바로 천도의 성지(성인의 뜻)를 얘기하는 거야! 사대 신족 중에 우리 봉족만이 천유를 받을 수 있어! 용족은 절대 받을 수 없지.”

또 그놈의 천도!

“좀 더 자세히 말해봐. 넌 왜 그 일이 천도의 뜻이라고 생각한 거지? 그리고 어디에서 그 천유를 받은 거야? 누가 그 천유를 내린 건데?”

“당연히 우리 봉족의 성지 야진궁에 있는 파정 신존이 직접 하달받은 거지.”

“야진궁!”

그가 말을 마치자 금룡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소리쳤다.

“너 혹시 야진궁이 어디에 있는지 알아?”

시하가 다급한 나머지 그의 손을 잡으며 물었다.

“야진궁은 우리 종족의 성역이지.”

그는 시하가 잡은 자신의 손을 흐뭇하게 바라보더니, 포옹이라도 간절히 바라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건 모든 신족들이 다 아는 사실인데?”

모든 신족들. 사람들의 시선이 갑자기 금룡에게로 쏠렸다.

“왜 날 보는 거야?”

금룡이 사람들의 시선에 당황하더니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말했다.

“난 다른 용들하고도 친하지 않다고!”

그러니 다른 신족에 대해 모르는 건 이상한 일도 아니겠지?

“…….”

어휴, 저 불쌍한 금룡. 시하가 봉황에게 야진궁에 대해 좀 더 물어보려고 하는 순간, 갑자기 지면이 또다시 진동하며 하늘에서 뭔가 갈라지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큰일 났어!”

안색이 변한 시동이 먼저 밖으로 달려 나갔다. 시하와 나머지 일행들도 그의 뒤를 따라 밖으로 나섰다가 그들 앞에 벌어진 광경을 보고 놀라 멈춰 섰다.

거대한 균열이 하늘에서부터 내려오고 있어 마치 그들이 있는 세계를 금방이라도 찢어 놓을 듯했다. 하늘에서 뭔가 반짝이는 물체들이 떨어지고 있었다. 균열이 사방으로 뻗어 나가며 지면 곳곳이 갈라지기 시작했다. 북쪽에서 시작해서 사방이 파괴되고 있었다.

“작은 주인님, 오행서천진이 무너지고 있어요!”

한옥이 갑자기 신식 속에서 다급히 소리쳤다.

“계속 이렇게 가다가는 성천경과 진법 모두 사라질 거예요.”

“봉인이 무너지기 시작했어. 어떻게 된 일이지?”

봉황도 의아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천장으로 가요!”

시하가 영검을 불러내 사람들과 함께 북쪽으로 향했다. 멀리에서 거대한 영기가 느껴지더니 몹시 뜨거운 기운이 미친 듯이 성천경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흰 안개만 가득하던 오행서천진은 불꽃들로 만발했다. 갖가지 불꽃에 덮여 이미 원래의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그 공격은 밖으로부터 들어오고 있는 듯했다.

밖에 분명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이 분명해.

한옥이 찾은 지도를 보며 시하가 진 밖으로 나가려다가 다시 돌아와 역요괘와 공양을 보며 말했다.

“역요괘, 공양! 어서 가서 다른 사람들에게 천장에서 멀리 떨어지라고 알려줘요. 저희는 나가서 상황을 좀 살필게요.”

두 사람이 눈빛을 맞추더니 고개를 끄덕이곤 학원 방향으로 날아갔다. 그들은 아직 계급이 신계(神階)에 도달하지 못했기 때문에 밖으로 나가기에는 조금 무리가 있었다.

두 사람이 멀어지는 것을 확인하고 시하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진 안으로 들어갔다. 처음 진을 뚫고 들어왔을 때 곳곳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던 것과는 달리, 진으로 나가려고 보니 아무런 장애도 없어 아주 쉽게 진 안으로 들어설 수 있었다. 심지어 지도도 필요 없는 듯했다.

그럴수록 시하는 더욱 걱정스러웠다. 그 진법은 그들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심각한 상태에 이르렀다는 걸 증명했으니까.

일각도 되지 않아 그들 앞에 출구가 나타났다. 시하와 일행이 발견하고 속도를 높여 출구를 빠져나왔다. 출구를 나서는 순간 엄청난 열기가 그들을 향해 밀려왔다. 순간 후지가 진법을 만들어 그들을 보호했다. 그들은 그제야 그 열기를 피할 수 있었다.

시하가 진법 밖을 자세히 살펴보니 그곳에는 황폐한 벌판만 남아 있었다. 그곳은 나무가 빼곡하게 들어선 숲이 분명했지만 어찌된 일인지 그곳에는 이제 먼지만 날리고 있고 초록색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황폐한 땅이 되어 있었다. 지면에는 여기 저기 구멍이 나 있어 법술의 흔적들이 곳곳에 남아 있었다. 여기저기 구멍이 나 있어 어느 곳 하나 멀쩡하지 않았다. 심지어 아직도 사방에서 타고 있는 불덩이들이 보이고, 주변에 높은 산들은 이미 모두 민둥산이 되어 있었다.

엄청난 싸움이 있었던 것이 분명했다. 그것도 규모가 아주 큰 싸움이. 그들 앞에 펼쳐진 그 황폐한 풍경은 그 끝을 알 수 없을 정도로 아주 멀리까지 펼쳐져 있었다.

“작은 주인님, 어서 오행서천진을 보세요.”

한옥이 다시 깜짝 놀란 목소리로 소리쳤다. 시하가 고개를 돌려 진법을 보니 외부에 있던 선기의 공격으로 울긋불긋 화려하게 타오르고 있던 진법이 점점 더 불안정한 모습으로 변해 가고 있었다. 얼마 버티지 못하고 진법이 곧 사라질 것처럼 보였다. 진법 안에서 사방으로 찢어지고 있는 성천경이 보였다.

“진법이 무너지려고 하고 있어.”

후지가 무거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보아하니 10분도 버티지 못할 듯해.”

시동이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럼 어떡하지?”

안에는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남아 있는데, 지금 당장 그곳을 빠져나오기에는 시간이 너무 촉박하잖아. 그리고 밖으로 나온다고 해도 그 밖은 더 위험한 상황이고.

“한옥, 자료 창고에서 자료들을 찾을 수 있지? 어떻게 하면 진법을 복구할 수 있어?”

“작은 주인님, 오행서천진은 이미 50%나 손상되어 있어요. 진법 설명서에서는 복구가 어렵다고 나와 있고요. 이제 시간이 없어요.”

한옥에게도 그럴듯한 방법이 없어 보였다.

“역전이라면 모를까. 짧은 시간 안에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아무것도 없어요.”

“역전? 무슨 뜻이야?”

“그건 전체 진법을 거꾸로 돌리는 거예요. 오행서천진은 원래 신계를 기반으로 강제로 만들어 놓은 독립적인 공간이었죠. 한 마디로 일종의 보호 구역 같은 곳이에요. 만약 진법을 거꾸로 돌린다면 다시 갈라놓을 수도 있을 거예요.”

“갈라놓는다고?”

“네, 다시 말해서 전체 성천경을 신계에서 떼어 내는 거죠. 이후로는 더 이상 신계의 일부분이 아니라 삼천계 중에 독립된 세계가 될 거예요. 하지만 신계에서 나오면 성천경의 선기와 영맥은 하나로 독립하게 되어 다시는 신계와 연계할 수 없을 거예요. 품질도 떨어져서 아마도 선계나 일반 세계처럼 변화되겠죠.”

“그런 걸 따질 시간이 없어. 어서 방법을 말해봐.”

신계와 떨어져도 다 같이 죽는 것보다는 낫잖아?

“알겠어요. 작은 주인님.”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의 손에 옥패 하나가 나타났다. 그리고 바로 그들의 눈앞에 문자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바로 오행서천진을 돌리는 방법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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