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우린 돌아가야 돼.”
“이봐. 애벌레.”
시하가 몸을 일으키려고 하는 순간, 흑룡이 마치 보물이나 바치듯 자신의 꼬리를 조심스럽게 내밀었다.
“여길 좀 봐. 금색이야. 나 금색으로 변했어.”
“알 속에서 왜 안 나오나 했더니 이것 때문이었어?”
흑룡이 놀라더니 고개를 돌리고 후지와 시동을 바라봤다. 그리고 뭔가 못마땅한 듯 자신의 꼬리로 두 사람을 밀쳐내며 말했다.
“벌레들은 저리 비켜! 난 우리 애벌레랑 할 말이 있으니까.”
그가 시하를 데리고 몇십 리나 되는 곳까지 이동해, 뭔가 비밀스러운 얘기라도 할 듯 누군가 들을까 조용히 속삭이기 시작했다.
“애벌레, 나 비밀 하나 발견했어.”
“무슨 비밀인데?”
꼭 이렇게 멀리까지 와서 얘기해야 돼?
“네가 나에게 준 그 알이 아주 특별한 효과가 있었어.”
“응?”
시하가 놀라며 그를 바라봤다.
단순무식한 줄 알았더니, 그런 것도 발견할 수 있었어?
한옥은 용이 다시 알로 돌아가는 것이 더 좋은 일이 될 수 있다고 한 적이 있었다. 그래서 흑룡이 알에서 깨어나지 않고 있을 때에도 뭔가 추측은 하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금색으로 변한 그의 모습을 보니 그 추측은 확신으로 변했다.
흑룡은 저번에 자신의 몸이 왜 검은색인지, 자신의 출생에 대한 비화를 잠깐 들려주었었다. 원래 태어나기로 한 날짜보다 며칠이나 앞당겨 알에서 나오면서 지금의 모습으로 태어나게 된 것이다. 외모 때문에 다른 용들의 업신여김을 받긴 했지만, 흑룡의 실력은 다른 용들에 비해 아주 뛰어났다. 그의 몸이 검은 이유는 다 자라지 못한 상태로 알에서 나와 영양이 충분하지 못했을 뿐이었다. 제대로 날짜를 다 채워서 나왔다면 그의 몸은 금색이었으리라. 근데 그가 이번에 다시 알로 돌아가면서 전에 채우지 못한 그 영양을 다 회복하고 원래의 색을 찾은 것이다.
“그걸 발견했다고?”
“당연하지. 난 아주 총명한 용이라고. 이번에 저 못생긴 새의 기운을 느끼지 않았다면, 네가 위험한 일을 겪을까 걱정만 되지 않았어도 안에서 더 있을 수 있었다고!”
“그래, 그래.”
네가 제일 잘났어.
“내 몸의 비늘색이 한 조각 변했을 때부터 난 이 알이 어떤 효능을 갖고 있는지 바로 알아볼 수 있었어. 자세히 보니 네가 준 그 알은.”
“응?”
“염색하는 효능이 있더라고!”
뭐?
“애벌레, 네가 해준 이 염색 혹시 퇴색하거나 그러진 않는 거지? 방수는 되는 거야? 방진은? 이거 얼마나 지속되는 거야? 미리 알려줘야 내가 준비를 하지!”
“잠깐, 흑룡!”
“왜?”
“내 생각엔 너 아직 알에 좀 더 있어야 할 것 같아!”
봉황이 강제로 오행서천진으로 들어온 후, 그곳에 많은 구멍들이 생겨났다. 구멍들은 천지와도 연결되어 곧 성천경까지 찢어질 듯했다. 그들은 한참 논의를 해보았지만 아무런 방법도 찾지 못했다. 심지어 한옥이 시스템의 자료 창고를 뒤져 보아도 답을 찾을 수 없었다.
더 심각한 것은 그 구멍들이 외부 세계와도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이었다. 해마다 쳐들어오던 그 요수들의 무리를 생각하면, 진법이 약해진 틈을 타서 선수든 요수든 그곳으로 몰려올 것이 분명했다. 지금 열려 있는 통로로 벌써 들어와 있을지도 몰랐다.
그리하여 제일 먼저 그들은 성천경의 사람들에게 구멍을 지키면서 조금이라도 이상한 움직임이 발견되면 바로 통보하도록 지시했다.
“어때요?”
시하가 고개를 돌려 방금 그곳으로 돌아온 공양과 역요괘에게 물었다.
“동쪽에는 아무 움직임도 없었어요. 그대로예요.”
공양이 대답하자 역요괘도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
“서쪽도 아주 안전해요. 요수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어요.”
“하하(夏夏).”
후지도 돌아와 고개를 흔드는 걸 보니 남쪽에도 아무런 움직임이 없는 듯했다. 시하가 얼굴을 찌푸렸다.
뭔가 이상한데? 벌서 일고여덟 일이나 지났으니 밖에 있던 요수들이 눈이 멀었다고 해도 진작 구멍을 발견하고도 남았을 텐데. 전에 진법이 약해졌을 때에는 요수들이 물밀 듯 몰려들더니 왜 지금은 들어오지 않는 거지? 설마 요수들도 출퇴근 시간을 지키는 걸까? 아직 출근 시간이 아니라 나타나지 않는 걸까? 아무리 생각해도 뭔가 이상했다. 어쩔 수 없이 북쪽으로 간 시동의 소식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시하가 한참 그 생각을 하고 있는데, 멀리서 시동이 날아오고 있었다.
“나 돌아왔어.”
“오빠, 거긴 어때? 북쪽에는 요수들의 움직임이 없었어?”
시하가 마음이 급한 나머지 한 걸음 앞으로 나서며 물었다.
“요수는 무슨,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인데?”
그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대꾸도 하지 않더니 갑자기 그녀를 끌어당기며 조용히 속삭였다.
“나 방금 좋은 물건 하나 발견했어. 특별히 너에게만 나눠줄게.”
그가 자신의 품속에 손을 집어넣으며 멍청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시하가 뭔가 이상한 낌새를 느끼고 뒤로 한 걸음 물러서며 그에게 소리쳤다.
“당신 누구지?”
이 사람은 오빠가 아니야!
“누구긴 누구야 나지! 그새 보지 못했다고 날 못 알아보는 거야?”
그가 억울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더니 갑자기 뭔가 떠오른 듯 기쁜 표정으로 말했다.
“네가 내 원래의 모습을 더 좋아할 줄 알았어.”
“원래의 모습? 혹시 흑룡?”
흑룡이 인간으로 변한 모습이 오빠와 같다는 걸 깜빡했다.
“말했잖아. 앞으로는 금룡이라고 불러!”
그가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시하의 말을 정정하며 소리쳤다. 그때, 공양이 놀라며 말했다.
“여, 여기 이 사람은 그때 그 용? 정말 시동 상선과 똑같은 모습이네요?”
공양은 금룡의 얘기를 들었지만 실물을 보는 건 처음이었다. 역요괘도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그를 자세히 바라봤다. 하지만 속임수에 익숙한 후지는 조금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앞으로 한 걸음 나서며 물었다.
“정말 아니야?”
후지가 얼굴을 찌푸리더니 갑자기 시하를 자신의 품속으로 끌어당기며 그가 보는 앞에서 시하에게 입을 맞췄다. 그 광경을 보면 바로 폭발하던 누군가와는 달리, 용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시하에게 물었다.
“너희들 지금 뭐 하는 거야? 짝짓기하는 거야? 벌써 발정기가 된 건가?”
“진짜 시동이 아니군.”
진상 확인을 위한 건지 아니면 자기 잇속을 위해서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런데 금룡, 갑자기 왜 사람 모습을 한 거야?”
“이게 다 그 벌레들 때문이잖아!”
금룡은 그동안 참았던 울분을 토해 내듯 그녀에게 하소연하기 시작했다.
“내 모습을 보더니 계속 나를 따라다니지 뭐야. 근데 넌 그들을 잡아먹지도 못하게 하니, 나도 어쩔 수 없이 이렇게 다시 돌아온 거야.”
“벌레?”
시하는 그제야 그가 말하는 벌레가 학원의 학생들이라는 걸 알고 물었다.
“그들이 왜 널 따라다녀?”
“내가 어떻게 알아? 뭔지 몰라도, 뭔가 반짝거리는 물건을 내 몸에 계속 쏘잖아. 분명 내 아름다운 모습을 질투하는 거야!”
그가 말을 마치더니 금빛이 도는 비늘 두 조각을 꺼냈다. 그러고는 진지한 표정으로 그녀에게 비늘 한 조각을 건넸다.
“방금 이걸 찾았어. 너에게만 주는 거야.”
누가 자기 비늘을 갖고 싶다고 했나? 그나저나 반짝거리는 물건이라면 설마 진법을 말하는 건가?
시하가 고개를 돌려 공양을 바라봤다.
“최근에 사람들에게 뭘 가르쳤어요?”
공양은 짚이는 것이 있는 듯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어수?”
그럼 지금 금룡에게 자신들이 배운 이론을 실험해본 거라는 말인가? 역시 배움에 충실한 순진한 사람들이야. 시하는 갑자기 요수들의 침입을 걱정하지 않아도 될 듯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생! 북쪽에는 요수들이 없었어. 근데 돌아오는 길에 뒷산에 들렀는데, 엄마야!”
그때 시동이 돌아와 옆에 본인과 똑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 금룡을 발견하더니 깜짝 놀라 말을 멈췄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거야?”
“여기는 금룡이야! 오빠, 뒷산에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거야?”
“아, 그 화봉이 일어났어.”
그가 시하의 말에 대답하면서 옆에서 열심히 비늘을 세고 있는 금룡을 살폈다. 시하가 그의 말에 바로 검을 부려 뒷산으로 날아갔다.
천장이 파손됐는데 요수들의 공격이 없다는 건 뭔가 이상한 일이야. 분명 밖에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이 분명해. 그리고 그 일은 화봉에게 물어봐야겠어.
그들이 뒷산에 있는 작은 건물에 도착하니 며칠 동안 쓰러져 있던 봉황이 역시나 깨어나 있었다. 그는 이미 사람의 모습으로 변신해 있었다. 그의 모습은 스무 살 남짓한 젊은 남자의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 그는 몸에 알록달록한 깃털로 만든 긴 장포를 입고 있었다. 그 모습은 뭔가 말로 형용하기 어려운 그런 이상야릇한 모습이었다.
방금 깨어나 정신이 혼미한 상태라 그런 건지 그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주변을 살피기 시작했다.
“이봐. 정신이 돌아왔어?”
시동이 제일 먼저 그에게로 다가가 손을 흔들었다. 봉황이 놀라 얼굴을 찌푸리더니 귀찮은 듯 쳐다보며 차갑게 말했다.
“당신들은 뭐지?”
그러고는 방을 한 번 둘러보더니 시동과 똑같은 모습을 한 금룡에게 사납게 소리쳤다.
“용족!”
그와 제일 가까이에 있던 시동이 공격을 시도하려는 그의 손을 누르며 소리쳤다.
“뭐 하는 거야! 이 지경이 됐는데 또 싸우려고? 너희 동물들은 왜 그렇게 승부욕이 강한 건데?”
“무엄하다!”
봉황이 시동의 손을 뿌리치더니 얼굴을 찌푸리며 소리쳤다.
“너같이 하찮은 종족이 감히 나의 몸을 만져? 꺼져! 우리 종족과 용족은 같은 하늘 아래 공존할 수 없어!”
“젠장!”
시동이 화가 나서 소리치더니 그를 원래의 자리에 앉히며 말했다.
“나야 뭐 너희들 일에 관여하고 싶어서 그러는 줄 알아? 다시 싸울 거면 우선 나부터 때려 봐. 그리고 다시 얘기해.”
이럴 줄 알았으면 이 배은망덕한 녀석을 구해주지도 않는 건데.
이미 상처를 입고 있던 봉황은 시동에게 잡혀 꼼짝도 못하고 화가 나서 불꽃을 뿜어냈다. 시동에게 잡혀 꼼짝 못하는 상황에도 그는 계속해서 금룡을 자극했다.
“흥, 용족이 언제부터 그렇게 비겁하게 다른 종족의 뒤에 숨었지? 능력 있으면 단둘이 한번 붙지!”
순간 시하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금룡을 바라봤다.
“내가 왜?”
뜻밖에도 금룡이 그의 말에 화를 내지 않고 차갑게 한 마디 하더니 하찮은 표정으로 이어서 말했다.
“당신네 봉족이랑 용곡에 있는 그 녀석들의 원한이 나랑 무슨 상관인데? 난 용곡에 살지도 않고 당신같이 못생긴 새랑은 생각이 좀 달라서 말이야.”
시하가 금룡을 향해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다. 봉황은 금룡의 말에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용족과 봉족 사이에는 항상 싸움이 있었다. 두 종족 모두 싸우는 걸 좋아해서 길에서 마주치기만 해도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꼭 한 번씩 싸워야만 했다. 때문에 봉황은 이렇게 이상한 용, 그것도 금룡은 처음 목격한 것이었다.
“그만, 그만.”
시하가 앞으로 한 걸음 나서며 용과 봉황의 사이에 서서 말했다.
“오해가 있으면 말로 해. 싸움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어. 그리고 봉황 너는 아직 상처도 다 아물지 않았어. 몸이 그 지경인데 싸우겠다고?”
봉황이 갑자기 시하에게 시선을 돌리더니 눈빛을 반짝였다. 그러고는 갑자기 앞으로 달려오더니 시하의 허리를 끌어당기며 품에 안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