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동이 후지를 바라보며 차갑게 콧방귀를 뀌더니 그제야 부채를 거두며 말했다.
“방금 네가 공양과 함께 어딘가로 떠나는 걸 느꼈는데, 돌아올 때 보니 모르는 사람의 기운이 느껴져서 말이야. 어떤 사람인지 확인하러 왔지.”
그가 역요괘를 확인하더니 깜짝 놀라며 그녀에게 물었다.
“이 사람이야?”
화석처럼 굳어 있던 역요괘가 시동을 보더니 그제야 정신을 차린 듯 후지의 뒤로 가서 몸을 숨겼다. 그러고는 시동을 바라보며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태, 태, 태사조님, 마, 마존이잖아요!”
후지가 그런 그를 한 번 바라보더니 역요괘의 그 기대 어린 눈빛이 무색하게도 대꾸했다.
“당신 누구지?”
시하는 역요괘가 다시 한 번 화석으로 돌아가는 듯했다. 그런 역요괘의 모습을 바라보다가 후지에게 대신 설명해주었다.
“여기는 역요괘예요. 옥조의 아들이요.”
후지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있다가 뭔가 떠오른 듯 계속해서 물었다.
“옥조가 누구지?”
기억이 돌아왔다고 하지 않았나? 옥화파의 태사조가 자기 문파의 장문도 기억하지 못하고 있다니 어떻게 된 일이지? 이미 옥화파의 장문이라고 설명까지 했는데 아직도 저렇게 멍한 표정을 짓고 있다니. 안면 인식 장애로는 최고이지 않을까.
“됐고, 하하(夏夏), 왜 근처에서 도철의 기운이 느껴지는 거지?”
“아, 그건.”
시하가 그에게 설명하려는 순간, 갑자기 하늘에서 거대한 진동 소리가 들리며 뭔가 부딪치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잠시 후, 마치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땅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시하는 몸의 균형을 잃고 앞으로 쓰러졌다.
“하하(夏夏)!”
“동생!”
시동과 후지가 동시에 그녀의 양손을 잡아 일으켰다. 하지만 그 진동은 멈추지 않고 점점 더 심해졌다. 마치 온 하늘땅이 다 흔들리는 듯했다.
“북쪽이야!”
시동이 고개를 돌려 오른쪽을 바라봤다.
“소리가 저쪽에서 들려오고 있어.”
시하가 사람들과 눈빛을 교환했다. 잠시 후, 각자 영검을 불러내 북쪽으로 날아갔다.
제일 학원의 위치가 바로 성천경의 북부에 있었다. 그들이 역요괘가 있는 곳으로 날아오는 바람에 그곳에는 사람이 별로 많이 남아 있지 않았다. 그들은 몇 분 정도 날아 바로 그 변경에 있는 천장에 도착했다. 뭔가 충돌하는 듯한 진동 소리는 바로 천장 속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흰 안개만 보이던 그곳에 어떻게 된 일인지 붉은 불빛이 보이고 있었다. 그리고 가끔 여우 모양의 물체가 비치고 있었다. 뭔가 거대한 물체가 오행서천진 안에서 부딪치고 있는 듯했다. 진법을 둘러싼 장벽이 점점 더 짙은 붉은색을 띠면서 뜨겁게 달궈졌다. 그 열기에 근처에 있던 나무숲이 모두 잿더미로 변해 버렸다.
“요수일까요?”
시하가 추측하기 시작했다. 오행서천진은 매해 조금씩 약해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해에는 아직 그 시기가 다 차기도 전에 요수의 무리가 나타났었다.
“아니!”
시동이 고개를 저으며 그녀의 추측을 부인했다.
“요기를 전혀 느낄 수 없어. 요수는 아니야.”
그럼 뭐지? 오행서천진이 이렇게 파괴되었는데?
뭔가에 부딪히는 듯한 그 충동은 점점 더 맹렬해지고, 바닥의 흔들림도 점점 더 심해져 가고 있었다. 사방에 있던 영기마저 이리저리 혼란스럽게 움직였다. 그리고 하늘에 생긴 균열이 점점 확장되더니, 사방팔방으로 뻗어 나가 하늘에 검은 줄무늬가 생기기 시작했다. 마치 온 세계가 찢어지는 듯했다.
“계속 이렇게 가다가는 천장은 물론이고 전체 성천경이 모두 사라지게 생겼어.”
시하가 붉은 불빛을 바라보며 다급히 소리쳤다.
“내가 안으로 들어가서 무슨 일인지 확인해봐야겠어.”
“안 돼!”
후지와 시동이 동시에 소리치며, 양쪽에서 시하의 팔을 꽉 잡고 저지했다.
“너무 위험해.”
시하가 그들에게 한옥이 있어 무사히 빠져나올 수 있다고 설명하려는 순간, 갑자기 쿵하는 소리가 들리며 천장에 균열이 나타났다. 순간 안에서 화염이 밖으로 뿜어져 나오면서 그들에게로 다가왔다.
“어서 물러서!”
후지가 그녀와 역요괘를 데리고 뒤로 물러섰다. 시하가 고개를 돌려 그곳을 바라보자 앞에 있던 모든 것들이 이미 불길에 타 버리고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불길은 오히려 더 거세게 타오르고 있어 마치 영원히 꺼지지 않을 것처럼 보였다. 불길은 이상하게 겉은 붉은색이고, 안쪽은 자줏빛을 띠고 있었다. 그리고 아주 높은 열기를 뿜어내었다.
“이, 이건 대체 뭐죠?”
역요괘가 입을 열었다. 이건 일반적인 불이 아니잖아.
한옥에게 시스템 데이터 창고를 찾아보라고 지시하려던 순간, 그녀의 귓가에 또다시 찢어지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천장의 균열이 점점 더 커지며 화염이 맹렬하게 타오르더니 갑자기 안에서 새가 울부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천장 안에서 거대한 물체가 나왔다. 새의 모습을 한 그 물체는 몸에 긴 깃털을 달고 있었고 온몸이 화염처럼 불타오르고 있었다.
“노란 병아리!”
시하가 소리쳤다. 어떻게 여기에 있는 거지? 잠깐, 아니지. 병아리는 어린 새끼였는데, 지금 눈앞에 보이는 저 물체는 엄청 크잖아. 저 모습은 한눈에 봐도 이미 다 자란 봉황인데.
“노란 병아리잖아?”
생각해보니 오빠도 병아리를 만났었지. 전에 그가 병아리에게 음계의 구멍을 막으라고 시켰었잖아. 설마 정말 병아리일까?
봉황은 중상을 입은 듯 힘껏 하늘을 날아오르다가 높이 날지 못하고 바로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의 몸에 있는 불길이 높아질수록 울부짖음 소리는 점점 더 약해졌다.
시하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그곳에 다가가려고 하자 역요괘가 막았다.
“하 씨, 어서 여길 좀 봐요. 이 영수대, 왜 이러는 거죠?”
그가 긴장된 얼굴로 전에 시하가 그에게 건넸던 그 영수대를 보여줬다. 원래는 보통의 그냥 주머니처럼 보이던 영수대에서 갑자기 금빛이 반짝이며 뭔가 갈라지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이 안에 도도 말고 또 뭐가 있죠?”
흑룡의 알이 안에 있는 걸 깜빡했어. 시하가 서둘러 주머니를 받아 사람 키만큼 자란 알을 꺼내 놓았다. 원래는 흰색을 띠던 용의 알이 금색으로 변해 있고 그 위에 알 수 없는 무늬들이 나타나 있었다. 흑룡의 알에 계속해서 균열이 생겨나고 있었다.
설마 흑룡이 나오려는 걸까? 지금? 이렇게 공교로울 수가.
알이 완전히 깨지며 안에서 용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순간 뭔가가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원래는 사람 키만큼 크던 그림자가 온 하늘을 가릴 만큼 몸집이 점점 더 커지기 시작했다. 원래 흑룡보다 훨씬 큰 모습이었다.
그런데 왜 금색인 거지? 흑룡 아니었어? 어쩌다가 품종까지 바뀐 거지?
변이에 성공한 흑룡이 공중에서 몸을 한 바퀴 돌리더니 갑자기 아래로 내려와 봉황이 있는 방향으로 날아갔다. 시하가 초조한 마음으로 그곳을 바라봤다.
뭘 하려는 거지?
잠시 후, 금룡이 공중으로 날아오르려는 봉황을 잡더니 날카로운 발톱으로 봉황의 날개에 구멍을 뚫었다. 그리고 그를 공중에서 아래로 눌러 버렸다. 엄청난 뇌광이 봉황의 몸에서 반짝거리더니 그의 몸에서 타오르고 있던 불꽃이 절반이나 줄어들었다. 이어서 봉황의 몸이 큰 진동 소리와 함께 바로 바닥으로 떨어졌다. 봉황이 이에 물러서지 않고 바로 금룡에게 달려들며 몸에서 비늘 조각 몇 개를 훑어 냈다. 용과 봉황이 한데 엉켜 하늘에서 처절하게 싸우고 있었다.
이, 이게 대체 무슨 일이지?
왜 말 한마디도 없이 저렇게 싸우는 거지? 둘이 무슨 원한이라도 있는 걸까? 왜 저렇게 서로 죽이지 못해 안달이야?
“멈춰!”
시하가 다급히 소리치며 그들이 있는 곳으로 다가가려고 했다.
“하하(夏夏).”
하지만 후지가 그녀를 말렸다.
“동생, 가면 안 돼.”
시동도 후지의 말에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저들은 지금 너의 말을 들을 수도 없어. 그리고 저들은 신수라 네가 막을 수도 없고. 보통 신수들이 아니야. 화봉은 봉황 중에서도 왕족이야. 그리고 발이 다섯 개인 금룡도 그렇고.”
두 족속들 사이에 제일 강한 자들의 대결인 셈이었다. 그럼 저들의 싸움은 두 종족의 왕위 쟁탈전이라도 된다는 건가?
“저렇게 계속 싸우다가 성천경도 다 망가뜨리는 거 아니에요?”
주변에 있던 균열들이 점점 더 커지고 있다고요!
“어떡하죠?”
시동이 눈썹을 치켜세우며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화봉과 금룡 모두 공격성이 아주 강해. 그리고 하나는 화계 속성을 지니고 있고, 다른 하나는 뇌계 속성을 가지고 있어서 전혀 누를 방법이 없…….”
갑자기 뭔가 떠오른 듯 시동은 말을 멈추고 고개를 돌려 시하를 바라봤다. 시하도 순간 그의 의중을 파악했다. 두 사람이 동시에 소리쳤다.
“수계(水系)!”
잠시 후, 시동의 말을 이해한 후지도 두 사람과 거의 동시에 반응하며 함께 하늘로 날아올랐다. 하지만 역요괘는 여전히 아무것도 모른 채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그 자리에 그대로 남았다.
뭐지? 무슨 일인데 나만 몰라? 설명 좀 해줘!
그가 질문할 틈도 없이 하늘에는 이미 진법이 만들어졌다. 갑자기 동시에 세 줄기의 폭포가 하늘에서 떨어지더니 그 주변을 모두 적셔 놓았다. 순간 아래에 있던 흑룡과 봉황, 그리고 역요괘까지 모두 그들이 뿜어내는 물줄기에 몸이 흠뻑 젖어 버렸다.
함께 뒤엉켜 싸우고 있던 흑룡과 봉황이 끝내 싸움을 멈췄다. 물로 봉황의 진화를 끌 수는 없었지만 최소한 그의 몸에 전기는 일으킬 수 있었다. 엄청난 물이 그의 몸으로 쏟아지자 지지직 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금룡의 몸에 전기가 일어나자, 반경 몇 리나 되는 주변은 물론 흑룡의 몸까지 감전됐다.
봉황의 몸에서 타오르고 있던 불도 순간 사라졌고, 흑룡과 봉황 모두 한동안 아무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다.
“그만해요!”
시하가 바로 그들에게로 날아갔다. 감전으로 인한 충격이 그렇게 크지 않아서 그들의 몸에 상처를 입히기보다는 집중력을 흩어 놓은 정도였다. 흑룡은 자신의 꼬리로 봉황의 날개를 감싸고 있었는데, 시하가 자신에게로 다가오는 걸 보고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애벌레, 지금 뭐 하는 거야? 저 못생긴 새는 저들의 우두머리야. 내가 반드시 죽여야 된다고!”
“저 새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죽인다는 건데? 어서 내려놔. 이러다 정말 죽게 생겼잖아!”
봉황은 이미 큰 상처를 입었기 때문에 흑룡을 상대할 만한 힘도 없는 상태였다.
“난 용이니까 당연히 죽여야지!”
흑룡이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여전히 봉황을 놓아주지 않으려고 했다.
“용곡에 있을 때 장로가 그랬어. 우리와 저 못생긴 새들과는 원한이 있어서 반드시 죽여야 한다고.”
“언제부터 그렇게 다른 용의 말을 잘 들었지?”
시하의 말에 흑룡은 표정을 굳히고 그제야 정신을 차리며 말했다.
“맞아. 내가 왜 그 녀석들의 말을 들어야 하지?”
흑룡이 말을 마치더니 바로 봉황을 풀어줬다. 봉황이 울부짖으며 바닥으로 떨어졌다. 모든 기력을 소진한 듯 눈빛까지 흐려져 있었다.
잠시 후, 그의 몸이 점점 줄어들기 시작했다. 얼마 가지 않아 그의 몸은 작은 병아리만큼 줄어들었다. 불길이 사라진 그의 몸에 알록달록한 털과 혈흔만이 남아 있었다.
시하는 그제야 안심하더니, 그가 왜 오행서천진으로 뛰어들려고 했는지 의문을 느꼈다.
“오빠?”
시하가 시동을 불렀다. 시동이 앞으로 다가와 봉황을 살피더니 한 참 후에야 입을 열었다.
“아직 죽지 않았어. 내단에 손상을 조금 입은 것뿐이야. 다행히 아직 부서지진 않아서 몸을 조금 추스르면 좋아지겠어.”
시하가 천장 주변에 있는 희미한 균열들을 살피다가 순간 뭔가 불길한 예감을 느꼈다. 복구할 수 있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