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놈들은 어디 있는 거지?”
그가 사람들 속으로 내려오더니 제일 먼저 옥화부터 찾았다. 옥화가 두 사람이 있는 곳을 가리키자 그가 돌아서서 다가왔다.
“흥, 대체 어떻게 생긴 놈들인지, 이름은 뭔지, 어, 하 씨!”
그가 말을 멈추더니 갑자기 다소 격앙된 목소리로 소리쳤다. 그의 목소리에서 풍기던 엄숙함은 모두 사라지고 마치 귀신이라도 본 듯 놀란 표정을 짓고 있었다.
“당, 당신이 어떻게 여기에?”
그가 떨리는 목소리로 그녀를 가리켰다. 시하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
“당신은 누구죠?”
“설마 날 잊은 거예요?”
그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잠시 후, 온몸을 부르르 떨며 그녀에게 소리쳤다.
“양심도 없는 사람 같으니, 내가 누구 때문에 이렇게 된 건데! 어떻게 날 잊을 수 있죠? 당신만 아니었어도 난 이런 모습으로 변하지 않았을 거예요. 이런 곳에 와서 집에도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고요!”
“이봐요.”
말이 좀 이상한데.
“날 농락하고 버렸잖아! 난 백 년이나 당신을 기다렸다고요! 백 년이요! 근데 지금에야 나타나요?”
“잠깐.”
이 그림은 내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그림인데? 이봐요. 말을 그렇게 함부로 하면 어떡해요!
“당신이 어떻게 날 잊을 수 있죠? 날 잊다니, 감히 나를 잊다니!”
그가 점점 더 큰소리로 소리치더니 검을 빼 들며 소리쳤다.
“내, 내가 오늘 당신을 죽여 버릴 거야!”
그가 말을 마치더니 결계를 하며 그녀에게로 다가왔다. 하늘에서 수천수만 개의 천둥 번개가 떨어졌고, 그가 손에 들고 있던 검도 붉은 천둥 번개 모양으로 바뀌었다. 그가 검을 들고 그녀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놀란 표정으로 시하를 바라봤다. 공양마저 묵묵히 옆으로 한 걸음 물러섰다.
“…….”
와, 난 아무 짓도 하지 않았는데. 내가 마치 이 남자를 농락이라도 한 것처럼 바라보는 그 이상한 표정은 대체 뭐죠? 내 마음속엔 후지 한 사람밖에 없다고요!
그의 천둥 번개가 곧 그녀의 어깨를 공격하려는 그 순간, 시하도 어쩔 수 없이 결계를 하며 그의 공격을 막았다. 시하는 신력을 움직여 상대의 손을 잡은 뒤 비틀었다. 그리고 그를 바닥에 주저앉히며 물었다.
“당신 대체 누구죠? 제대로 좀 얘기해봐요.”
괜히 내 순결을 더럽히지 말라고요!
“당, 당신이 감히 나를 때려?”
그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질책하듯 그녀를 노려봤다.
“이런 나쁜 사람 같으니! 내가 눈이 삐었지. 당신 말을 다 믿다니. 젠장, 계급은 언제 이렇게 오른 거예요?”
그가 점점 더 거세게 소리쳤다. 한편으로는 그녀를 욕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자신의 억울함과 원통함을 호소하듯 애잔한 표정을 지었다. 그야말로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광경이었다. 그녀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표정이 점점 이상해지고 있었다.
시하는 자신이 쓰레기라도 된 듯한 기분에, 더는 참지 못하고 그의 엉덩이를 걷어차며 소리쳤다.
“젠장, 알아듣게 얘기해봐요! 난 당신을 모른다고요!”
“모른다고요? 내 성은 역, 이름은 요괘예요. 그래도 모른다고 할 거예요?”
“역, 역, 역요괘?”
시하가 깜짝 놀라 그의 얼굴을 다시 한 번 살폈다. 정말이잖아! 키가 조금 자라고, 얼굴이 조금 하얘지고, 모습이 조금 이상해지긴 했지만 분명 예전에 그 오만하기 짝이 없던 그 역요괘가 분명했다.
“당신이 어떻게 여기 있는 거죠?”
역요괘는 백 년 전에 이미 성천경에 도착했다. 바로 후지와 그녀가 시스템에 의해 천택대륙으로 옮겨진 그때였다. 시하는 당시에 후지에게 역요괘에 대해 물었지만 후지는 그가 그곳에 나타나지 않았다고 했다. 때문에 시하는 그가 아직도 수선계에 남아 있거나 그들처럼 다른 세계로 옮겨졌을 거라고 생각했다. 근데 그가 이렇게 성천경으로 옮겨져 천원신존(天元神尊)이 되어 있을 줄이야.
“멋있네요. 역요괘. 백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상선에 오르다니.”
“흥, 이게 뭐라고, 그래 봤자 아직 당신보다 아래잖아요.”
역요괘는 여전히 이해할 수 없었다. 분명 그는 그 희소하다는 뇌 영근임에도 불구하고 수행 계급이 여전히 그녀에 미치지 못하고 있었다. 아래 세계에 있을 때에도 그녀를 이길 수 없더니 어렵게 수행하여 상선에 올랐지만 이 세계에서조차 아직 그녀보다 아래에 있다니 정말 이해할 수 없었다. 그녀는 마치 처음부터 그를 막으려고 태어난 듯했다.
“아, 오늘 강의는 어떻게 된 거죠?”
시하가 멀지 않은 곳에 보이는 전당을 가리키며 말했다.
“왜 아무 잘못도 없는 공양의 일을 방해해요? 그리고 상원이라는 그 이름은 대체 뭡니까? 왜 멀쩡한 이름을 놔두고 개명을 해요?”
개명을 하면 했지 왜 그렇게 허세 가득한 이름으로 바꾼 거지? 역요괘라는 이름이 어때서?
“누가 이름을 바꿨다고 그래요! 제 별호가 원래 상원이었거든요! 그리고 당신들이 ‘제일 학원’을 세웠다는 걸 저도 알고 있었어요.”
그곳에 도착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상선에 오를 수 있었다. 처음에는 한동안 그 일로 마음이 들떠 있었지만 자세히 보니 상선은 그곳 사람들의 기본 계급에 불과했다. 그곳에서 상신은 어딜 가나 볼 수 있어서 화신이 아니면 눈에도 띄지도 못했다. 그리하여 역요괘는 한동안 자신의 수행 계급 때문에 전전긍긍해야만 했다. 그러다가 서서히 그곳의 수사들은 아래 세계의 수사들과 많이 다르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들은 속마음이 투명한 건 말할 것도 없고 외부 사람들에 대해 경계하는 마음이 전혀 없었다. 시하가 느꼈던 것처럼 그곳 사람들은 순진하기 짝이 없었다. 그는 그곳에 있는 동안 한 번도 좌절감을 느껴 보지 못했다. 뿐만 아니라 항상 그들의 사심 없는 도움의 손길에 감동하고 있었다.
제아무리 강철 심장을 가진 사람이라도 그렇게 진심 어린 그들의 모습에 융화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역요괘도 사실은 마음이 악한 사람이 아니다 보니 서서히 그 사람들에게 물들어 가고 있었다. 서로를 위하는 그들의 모습에 역요괘의 마음도 서서히 동화되기 시작했다.
어느 날, 역요괘가 무심결에 술법을 사용하다가 그곳 사람들이 그 방면의 지식을 전혀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는 그들에게 어검과 같은 간단한 술법들을 가르치기 시작했고 그로 인해 선민(仙民)들의 생활이 조금씩 편리해졌다. 그리하여 그는 그곳 사람들이 우러러 모시는 스승이 되었고 나중에는 상원신존이라는 칭호도 얻게 되었다.
“하지만 50년째 사람들을 가르치지 않고 있다면서요? 이유가 뭐예요?”
가르치기로 했으면 계속 가르칠 것이지 왜 그만둔 거지? 자신이 유명인도 아니고 숨긴 왜 숨어? 수선계에서는 수백 년, 수천 년도 가르치는데 아무리 그래도 어떻게 50년을 가르치고 그만둘 수 있지?
역요괘가 놀라더니 얼굴을 찌푸리며 소리쳤다.
“난 그러고 싶지 않은 줄 알아요? 저도 가르쳐주고 싶었다고요. 하지만 내가 뇌 영근이라 뇌 영근의 술법만 가르칠 수 있는 걸 어떡해요?”
그걸 잊고 있었네. 누구나 공양처럼 전부 가르칠 수 있는 건 아니었지.
“저는 그저 생활에서 통용할 수 있는 어검밖에는 가르칠 수 없었어요.”
그가 억울한 표정으로 푸념하듯 말했다.
“단부진기 이런 것들은 저도 배워 본 적이 없어서 대략적인 것만 알고 있어요. 심법도 그나마 뇌 영근을 가진 제자에게만 가르칠 수밖에 없었고요.”
뇌 영근은 그렇게 흔한 영근이 아니다 보니 성천경을 다 뒤져도 딱 한 사람인 옥화만 갖고 있었다.
“잠깐만요!”
시하가 갑자기 뭔가 떠올랐는지 그에게 물었다.
“저 사람들의 어수술법(御獸術法)을 설마 당신이 가르친 거예요?”
“저는 영수를 계약한 경험도 없어서 구체적인 조작법을 잘 몰라요. 사람들이 매년 요수의 무리와 싸우는 걸 보고 요수들을 물리치는 방법에 대해 얘기한 적은 있었죠. 근데 그건 왜 물어보는 거예요? 설마 사람들이 정말 요수들을 물리쳤어요?”
“하하! 물리칠 뿐만 아니라, 요수 한 마리를 묶기도 했죠.”
“뭐, 뭐라고? 요수요?”
시하가 자신의 영수대에서 도도를 풀어놓았다.
“이건!”
커다란 진동음과 함께 거대한 영수가 그들 앞에 나타났다.
“도, 철!”
역요괘가 뒤로 한걸음 물러서더니 갑자기 자신 앞에 나타난 거대한 거수를 바라보며 침을 삼켰다.
도도는 마침 자고 있다가 눈을 가늘게 뜨더니 그녀를 한 번 바라봤다. 그가 시하를 보고 신음 소리를 잠깐 내더니 다시 몸을 움츠리고 잠에 들었다.
시하가 도도를 만난 경위를 그에게 들려주고 영수대를 그의 손에 넘겨주었다.
“당신이 벌인 일이니 도도는 당신이 맡아요.”
그러니까 엉터리 교육이 사람을 잡는다니까.
역요괘가 손을 덜덜 떨며 그것을 받아 들더니 도도를 다시 영수대에 넣었다. 도철이 전에 봉인을 뚫었던 일을 떠올렸는지 갑자기 이상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는 이제 상선이었기 때문에 도철을 상대하는 건 아무것도 아니었다.
“아, 태조부님도 함께 오셨다고 하지 않았어요?”
그가 주변을 살펴보며 그녀에게 물었다. 아무리 살펴봐도 보이지 않는데 어디 있다는 거지?
“저를 속인 거 아니죠?”
“아, 저기서 싸우고 있어요.”
“싸, 싸우고 있다고요? 누구랑 싸우는 거죠?”
“저희 오라버니랑요.”
“태사조부가 당신 오라버니라고 하지 않았어요? 근데 오라버니가 또 있다는 거예요? 누구죠?”
시하가 그에게 설명하려는 순간 멀리에서 들리던 그 진동음이 갑자기 멈추었다. 고개를 들어 바라보니 익숙한 그림자가 그들을 향해 날아오고 있었다.
“그들이 돌아오고 있네요.”
역요괘가 기뻐하며 바로 자리에 일어서더니 그녀가 가리키는 쪽을 바라봤다.
정말 태사조부님이시잖아.
그가 그에게 예를 갖추려다가 옆에 있는 사람을 발견하고 순간 몸을 멈칫했다. 그는 검은색 옷을 입고, 손에는 골선법기(骨扇法器)를 들고 있었고, 얼굴에는 노기가 가득했다. 옥화파에 걸려 있던, 각 파에 전달되었던 바로 그 화상 속 인물이었다.
“마, 마존! 시, 시.”
“시동이요. 저의 친오라버니죠”
“…….”
“아, 깜빡하고 있었는데 저의 이름은 하시가 아니라 사실 시하예요.”
“…….”
역요괘는 화석처럼 그 자리에 굳어 버렸다.
“동생.”
멀리에서 시동이 그녀를 부르며 손을 흔들더니 뭔가 급하게 물을 것이 있는지 다급히 다가왔다. 그의 옆에 있던 후지도 갑자기 속도를 높이더니 순식간에 그녀 앞으로 이동했다.
“하하(夏夏).”
그가 먼저 시하를 자신의 품속으로 꼭 껴안았다. 순간 시원한 향기가 풍기며 그녀의 귓가에 익숙한 음성이 들려왔다. 부드러운 그의 목소리가 귓가를 간질이자, 달콤한 향기가 온몸을 감싸 안는 듯했다.
시하도 후지를 안으려는 순간 갑자기 그가 눈앞에서 멀리 사라지며 옆자리가 텅텅 비어졌다.
“이런 금수 같은 자식!”
시동이 후지를 멀리 차 버리고 시하를 자신의 등 뒤로 숨겼다.
“한 번만 더 건드려 봐. 죽여 버릴 거야! 다른 사람을 찾아보라고, 시하는 아직 어리니까!”
연령 28세의 어린아이가 된 시하가 할 말을 잃었다. 후지가 얼굴을 찌푸리며 온화하던 표정을 차갑게 굳혔다. 그러고는 손에 있던 검을 들어 올리며 소리쳤다.
“싸울 테면 와 봐.”
“아이고, 내가 무서워할 줄 알고?”
그가 부채를 펴며 공격 태세를 갖추었다. 시하가 시동을 막으며 소리쳤다.
“오빠! 이제 그만 좀 할래?”
대체 며칠을 싸울 거야?
“동생. 너 어떻게 저 자식 편을 들 수가 있어? 부모님께 이 오빠 말을 잘 들을 거라고 맹세했던 거 기억 안 나?”
“그만, 그만, 그만! 그나저나 왜 이렇게 빨리 돌아왔어? 무슨 일이라도 있었던 거야?”
평소에는 날이 저물어야 싸움을 멈추더니 웬일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