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76화 (176/189)

시하는 후지의 억울한 표정을 보며 또다시 깊이 숨을 들이마셨다. 그리고 지친 표정으로 말했다.

“난 당신을 좋아해요.”

그의 눈이 순간 반짝였다.

“남매지간의 좋아하는 감정이 아니에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나도 내 누이를 좋아해.”

그는 뭔가 할 말이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몰라 망설이는 듯했다. 그러다가 바로 입을 열었다.

“많이 좋아해.”

그러고는 그녀에게 입을 맞추려고 했다. 시하는 마음이 더욱 차갑게 식는 것을 느끼며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오라버니가 되려면 다신 나에게 이런 행동을 하지 마요.”

“왜?”

“부적절한 행동이니까요.”

시하가 이마를 매만지며 말했다.

“당신이 지금까지 저를 누이라고 했지만 저희는 친남매도 아니잖아요. 이런 행동은 저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봐도 오해할 수 있어요.”

“다른 사람들이 무슨 상관인데?”

“…….”

왜 이렇게 못 알아듣는 거지?

“어쨌든 안 돼요.”

“아니!”

후지가 갑자기 퉁명스러운 표정을 짓더니 그녀를 자신의 품으로 끌어당기며 말했다.

“넌 내 거야.”

그리고 또다시 그녀의 입에 입을 맞췄다.

“후지!”

시하가 버럭 화를 내며 힘껏 그를 밀쳐내었다.

“왜 그렇게 말을 못 알아듣는 거죠?”

“제대로 알아듣고 있어.”

“뭘 안다는 거예요.”

알긴 개뿔.

“넌 나에게 남녀 간의 감정을 느끼는 거잖아.”

그가 다시 그녀를 자신의 품속으로 끌어당겼다.

“나도 느끼고 있어, 그 감정을. 아주 많이.”

갑자기 후지의 고백을 들은 시하는 머릿속이 하얘지고 시야가 흐려지면서 눈앞에 모든 사물들이 모호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귓가에 계속해서 후지의 목소리가 환청처럼 반복되었다.

“하하(夏夏), 숨을 쉬어야지!”

입술에 갑자기 통증이 느껴져서 정신을 차려 보니 후지가 그녀의 입술을 살짝 깨물고 있었다. 시하는 그제야 자신이 숨을 참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주위를 살펴보니 그녀는 이미 후지에게 안겨 침상 위에 올라와 있었다. 차가운 기운이 느껴져서 내려다보니 이미 옷도 벗겨져 있었다.

그녀의 가슴에는 후지의 손이 올라와 있었다. 방금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왜 이렇게 된 거지? 조금 당황스럽잖아?

시하의 가슴이 더욱 거세게 뛰기 시작했다. 후지가 그녀의 귓가에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그의 숨소리가 뭔가를 애써 참는 듯 점점 더 거칠어졌다.

“후지.”

“움직이지 마!”

후지가 급히 그녀의 말을 끊더니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잠시 후, 몸을 일으키더니 옆에 벗어 두었던 옷을 가져와 그녀의 몸을 꽁꽁 감싸기 시작했다. 후지는 그제야 안심한 듯 다시 그녀의 옆에 누웠다. 그리고 그녀의 몸을 더욱 힘껏 껴안았다.

“미안해.”

“아, 괜찮아요.”

“…….”

시하는 순간 너무 솔직했던 자신의 입술을 때리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뭐가 괜찮다는 건데? 계속해도 괜찮다는 거야 뭐야.

둘 사이에 어색한 기류가 흘렀다.

“나중에 결혼하면, 결혼하면 그때.”

“네, 네, 네.”

시하가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더욱 어색한 기류가 흘렀다. 그녀는 뒤죽박죽이 된 머릿속을 헤집으며 간신히 입을 열었다.

“방금 그 말은 무슨 뜻이에요?”

후지가 순간 어리둥절해하더니 그녀의 말을 이해하곤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속삭이듯 말했다.

“나는 너의 남자가 되고 싶어.”

순간 시하는 눈앞에 폭죽이 터지며 온 세상이 아름다운 색채로 변하는 듯했다.

평소에 냉담하기만 하던 후지에게 이런 면이 있을 줄이야.

“그럼, 왜 날 누이라고 부른 거예요?”

나에게 관심도 없는 줄 알았잖아요. 감정이 더 깊어지기 전에 다시 남매 사이로 돌아가려고 했었다고요.

“왜냐하면 내가 진짜 되고 싶은 건 너의 오라버니니까. 너의 친오라버니.”

“뭐라고요?”

시하는 순간 화가 나서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도대체 뭐가 되고 싶은 거죠? 지금 날 갖고 장난하는 거예요?

“난 너의 가족이 되고 싶어. 난 오랫동안 수행하면서 세상의 모든 일들에 담담해졌어. 삼계에 있는 모든 것을 내려놓을 수 있었지만 너만은 내 가슴에 계속 남아 있었어. 너도 나와 같은 마음이었으면 좋겠어.”

나는 당신을 좋아해요. 당신만 좋아하고 있다고요.

후지가 손으로 시하의 얼굴을 감싸더니 뭔가 확인한 듯 확신에 차서 말했다.

“나도 네가 나에게 진심이라는 걸 알아. 넌 진심으로 날 좋아해. 하지만 그 감정이 네가 시동을 좋아하는 것과 비교할 수 없을 거야.”

“그건 다르죠.”

가족을 사랑하는 것과는 다르지.

“그래, 달라. 시동을 찾기 위해 넌 삼계를 모두 뒤지고 다녔어. 어떤 위험이 있든 상관없이. 심지어 넌 그를 위해 나에게 이유도 묻지 않고 검을 들이대기도 했었어.”

시하는 유명지해에서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당시 후지가 시동을 죽인 줄로만 믿고 있었다. 시하가 바로 후지에게 설명했다.

“그땐 오해였어요.”

“하지만 만약 내가 정말 그의 적이었다면 넌 그의 편을 들었을 거야.”

“왜 자꾸 오라버니와 비교하는 거죠? 설마 정말 두 사람이 원수라도 되는 거예요?”

“만약 그런 날이 온다면?”

“…….”

“나도 알아. 내가 그때 그를 죽였다면 넌 우리 관계를 완전히 끊고 아무 망설임 없이 날 죽이려고 했을 거야.”

그가 확신에 찬 목소리로 그녀에게 말했다.

“하지만 반대로 시동이 나를 죽였다면, 넌 잠시 그에게 화가 나 있다가 나중에는 결국 그를 용서해줄 거야. 왜냐하면 그는 너의 친오라버니니까.”

“…….”

시하는 반박할 수 없었다. 후지의 말은 모두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시동이 시스템의 제어에서 벗어나는 것을 도우려고 후지가 검으로 그의 몸을 찔렀을 때와 같았다. 시하는 그에게 뭔가 말 못할 사연이 있다는 걸 알면서도 시동이 후지의 칼에 찔려 숨을 거두는 모습을 보자, 바로 검을 뽑아 공격했다. 그녀의 앞에 쓰러져 있는 그는 다른 사람도 아닌 자신의 유일한 가족이었으므로. 그걸 참으면 난 사람도 아니지.

시하는 다시 한 번 시동의 소식을 확인한 후에야 비로소 후지에 대한 분노를 진정시킬 수 있었다. 때문에 이 세상에 많은 감정들이 있지만 그 무엇도 혈육의 정을 뛰어넘을 수는 없었다.

“하하(夏夏), 넌 나에게 전혀 공평하지 않아. 내 마음엔 너만 있어. 너에겐 그저 가족 다음으로 중요한 남녀 간의 정일지 몰라도 나에게 넌 전부야.”

그의 목소리가 더욱 무거워졌다.

“나도 너의 마음속의 유일한 사람이 되고 싶어. 하지만 너에게 제일 중요한 사람은 시동이잖아. 네 생각을 바꿀 수 없다면 난 차라리 너의 가족이 되고 싶어. 진짜 가족 말이야.”

“…….”

“난 너의 남자도 되고 싶지만, 너의 가족도 되고 싶다고!”

그렇게 되면 연인의 정이든 가족의 정이든 둘 다 가질 수 있잖아!

그가 말을 마치더니 시하를 더욱 힘껏 끌어안았다. 그녀의 몸을 감쌌던 그의 옷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멍한 표정으로 그의 말을 듣고 있던 시하가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 그의 말에도 일리가 있었지만 어딘가 모르게 조금 이상했다.

“잠깐만요! 설마 오라버니를 질투하는 거예요?”

후지는 자신의 마음을 들켜 당황한 듯 다시 한 번 그녀를 끌어안아 침상으로 눕혔다. 그리고 황급히 말을 돌렸다.

“늦었어. 어서 자야지.”

와, 정말이잖아! 후지가 질투를 다 하다니. 근데 가도 너무 멀리 간 거 아니야? 처남이 될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더 잘해줘야 하는 거 아닌가? 어떻게 질투를 할 수가 있지? 처남이 될 사람에게 질투를 느끼다니 신선하다, 정말.

후지는 아무것도 모른 채 그저 그녀에게 자신의 마음을 들킨 것이 원망스러운 듯 화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시하는 더 이상 그를 자극하고 싶지 않았다. 이제 그의 마음을 알았으니 그가 뭐라 부르든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그의 말도 틀리지 않았다. 그녀는 확실히 애정보다 가족에 대한 정을 더 우선시하고 있었다.

하지만 모든 사랑이 그렇게 애정으로 시작해서 결국에는 연을 맺어주잖아. 시간이 지나면 결국 이 싸움의 승자는 후지 당신이라고요!

됐어. 이제 더 설명할 필요도 없겠어.

질투하는 후지의 모습은 귀여웠다. 시하는 그런 그의 모습을 조금 더 감상하다가 말했다.

“후지, 이제 날이 밝겠어요.”

“응.”

“이제 돌아가 봐요.”

“왜? 내가 안고 있으면 싫어?”

안고 있는 것도 안 돼? 역시 난 친오라버니가 아니라서?

“오빠는 아침마다 저를 깨우러 와요. 제가 좋아하고 아니고의 문제가 아니에요. 그가 당신을 보면 분명 가만있지 않을 거예요.”

이번엔 정말 당신을 죽일지도 모른다고요.

아침부터 공양이 시하를 찾아왔다. 전에는 조금 소탈한 모습이었다면 교장이 되고 난 후 그의 모습은 진중한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 그가 포권을 하며 시하에게 예를 갖추었다. 그런 그의 모습이 제법 교육자다웠다.

“상신님, 안녕히 주무셨어요?”

“그만해요. 저한테까지 그러지 마세요. 전 당신 제자도 아니잖아요.”

공양이 그제야 웃으며 다시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오랜만이에요. 하 동생.”

“됐네요. 평소에는 바쁘다고 그림자도 보이지 않더니 무슨 일로 찾아온 거죠?”

“역시 날 이해해주는 건 하 동생뿐이라니까.”

그가 고개를 돌려 시하의 등 뒤를 바라보더니 말했다.

“그 두 오라버니들은 어디 계신 거죠?”

“싸우고 있어요!”

시하는 천둥 번개가 치고 있는 북쪽을 가리켰다.

“아마 날이 저물기 전에는 끝나지 않을 거예요.”

그날 후지와 대화를 나눈 후 두 사람은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정식으로 사귀기로 했다. 시동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그들 사이의 감정 변화를 평소에는 드러내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서로 사랑하는 사람들이 만나다보면 때때로 분홍빛 기류가 흐르기 마련이었다. 바로 그들의 이상 기류를 눈치챈 시동이 그 자리에서 폭발했다.

그날 후지가 그에게 당하던 모습만 떠올려도 시하는 몸이 떨렸다. 그날 이후로 두 사람은 소소한 작은 싸움은 물론이고, 3일에 한 번씩은 아주 큰 싸움을 벌이곤 했다. 시동은 후지가 마치 범죄자라도 되듯 경계했다. 혹시라도 그가 시하에게 3m 이내로 접근하기라도 하면 크게 화를 내었다. 그렇게 두 사람은 매일 쉬지 않고 싸웠다.

“당신이 그들을 왜 찾는 거죠?”

시하가 공양을 바라보며 물었다. 공양은 두 사람을 피하고 싶어 하지 않았었나? 웬일로 그들을 찾아온 거지?

“사정이 좀 있어서요. 당신도 아시다시피 저희 제자들은 대부분 선계 이상의 계급이잖아요. 제가 갖고 있던 공법에도 선법은 부족하지 않고 평소에 그들을 가르칠 때에도 별다른 문제는 없었어요. 몇몇은 어렵게 수련을 마치고 이제 승계가 오르기도 했고요.”

“그럼 아주 잘된 거잖아요?”

그건 교장이 잘 가르치고 있다는 건데 뭐가 문제지?

“하지만 장홍과 몇몇 사람들은 원래 상선의 계급을 갖고 있었잖아요. 그 사람들은 수련도 아주 열심히 하고 있는데 무슨 영문인지 수행 계급이 더 올라가지 않고 있어요. 심경(心境), 오성(悟性) 모두 부족하지 않은데 무슨 일인지 계급은 오르지 않네요.”

“아, 그건 그들이 수신(修神)을 해야 하기 때문이에요.”

수선의 제일 높은 계급은 상선이기 때문에 그 이상 올라가려면 신이 되어야 했다. 때문에 그들이 아무리 많은 선기를 받아들인다고 해도 더 올라갈 계급이 없기 때문에 아무 소용도 없다. 시하가 선기를 신력으로 변화시키려고 할 때만 해도 아주 많은 힘을 들여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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