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73화 (173/189)

두 사람의 대화는 점점 산으로 가고 있었다. 그들이 나눈 대화만으로도 화요를 잡는 백과사전을 낼 수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시하가 그들의 대화를 막으며 입을 열었다.

“그만, 한옥은 나를 구하려다 이렇게 변신한 거야.”

남의 은혜도 모르는 그런 배은망덕한 일을 그렇게 광명정대하게 논의하고 있는 건 좀 아니지 않나.

“그는 여전히 그 한옥이야. 예전에 그 시스템이 아니라고. 그리고 한옥이 오빠와 후지를 이곳까지 데려오려고 얼마나 고생했는지 알아? 한옥을 원래의 모습으로 안전하게 돌려놓는다고 약속하기 전에는 절대로 나와 한옥을 갈라놓을 수 없어.”

아무래도 그 시스템의 음기가 너무 커서인지 후지와 시동은 여전히 걱정스러운 얼굴로 몇 번이나 확인했다. 심지어 직접 시하의 신식을 살피며 한옥이 예전에 그 한옥이 확실한지, 아니면 시스템이 위장한 건 아닌지 확인까지 했다. 그들은 그제야 조금씩 안심하기 시작했다.

시동과 후지는 야진궁에 대해 시하만큼 흥분하지 않았다. 아마도 시스템에게 여러 번 당해서인지 시스템이 이미 사라지고 나서도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하지만 진상을 밝힐 방법은 그 한 가지 방법밖에 없어 도전해볼 가치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그녀가 갖고 있는 단서는 단 한 가지였다. 바로 야진궁으로 통하는 통로는 혼돈지기의 입구와 닮아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통로는 신계에서 백 년에 한 번만 열린다고 했다.

근데 문제는…… 신계로 어떻게 가지?

시하가 선계를 떠나 있는 동안 후지와 시동은 이미 상선에 올라 있었다. 하지만 그들이 이 계곡을 나갈 수 있다고 해도, 선계에는 오를 수 있어도 신계에는 오를 수 없었다. 그렇게 되면 그들은 또다시 헤어져야 하고 그동안 시하가 했던 노력들이 모두 물거품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모여 앉아 한참을 논의한 끝에 결국 그들이 왔던 그 혼돈 입구를 통해 다시 신계로 돌아가기로 결정했다. 물론 정말로 신계로 돌아갈 수 있을지 위험 부담도 따르긴 했지만 세 사람이 또다시 다른 세계에서 떨어져 지내야 하는 것보다는 훨씬 좋을 거라고 생각했다.

“공양, 우리와 함께 신계로 가요.”

시하가 고개를 돌려 묵묵히 바닥을 쓸고 있던 공양에게 말했다.

“저요?”

그가 놀라더니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하 동생, 당신도 알잖아요. 저는 이곳을 나가면.”

“그래서 물어보는 거예요.”

시하가 무거운 목소리로 그에게 설명했다. 그 계곡은 천기(天機)가 막혀 있어서 공양은 계급이 오를 때마다 천뇌를 맞지 않을 수 있었다. 하지만 밖으로 나가면 그동안 미뤘던 겁뇌가 한 번에 그의 머리 위로 떨어져 그가 버티기 어려울 수 있었다. 때문에 그는 그곳을 지금까지 떠나지 못했으니, 그야말로 난제였다.

“당신의 계급이 이곳에서는 높을지 몰라도 신계에서는 출발점에도 가지 못할 거예요. 그리고 신계에서는 겁뇌를 맞지 않아도 돼요.”

그의 계급은 신계에서는 소경계(小境界)에 불과해 겁뇌를 맞을 만한 수준에 미치지 못했다. 때문에 뇌겁은 걱정하지 않아도 될 듯했다.

“물론 신계가 아래 세계보다 좋다고 확신할 수는 없지만 이곳에서 혼자 갇혀 지내는 것보다는 좋을 거예요.”

공양이 고민하기 시작했다. 평생 그곳에서 혼자 지낼 것인지 아니면 조금 위험하더라도 도전할 것인지. 하지만 분명한 건 최소한 그가 그곳을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좋아요. 하 동생. 저도 같이 갈게요.”

혼돈 입구를 통해 바로 신계로 들어갈 수는 있지만 문제는 어떻게 그곳을 뚫고 올라갈지가 문제였다.

저 입구는 거부반응이 있는 데다가, 한 사람은 상선이고, 다른 한 사람은 준상선이니 수행 계급을 공격하는 통로를 어떻게 뚫고 올라갈지 그것이 문제였다. 설마 저 사람들도 공장에서 나온 모습으로 돌아가야 하나? 흑룡은 알로 변했는데 그럼 저 사람들은 신생아로 돌아가야 하는 걸까? 근데 신계가 유치원도 아니잖아!

“동생, 휴대전화에 잠금 프로그램을 깔지 않았어? 만약 휴대전화의 다른 기능들을 사용할 수 있으면 그것도 사용할 수 있지 않을까?”

시하가 그의 말에 깜짝 놀라며 신식 속에 있는 한옥을 불렀다.

“한옥.”

그것은 시하가 심심해서 깔아 놓은 프로그램으로 다른 애플리케이션들을 잠시 사용할 수 없도록 잠가 두는 프로그램이었다. 당시에 시동이 항상 그녀의 휴대전화를 가져 가 게임을 하는 것을 막으려고 홧김에 받아 놓은 애플리케이션이었다. 소프트웨어를 잠글 수 있다면 수행 계급을 잠그는 것도 문제없을 듯했다.

신식 속에서 또다시 상자를 뒤지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오더니 한옥이 바로 흥분하며 소리쳤다.

“있어요. 작은 주인님, 찾았어요.”

시하의 눈앞에 도표 하나가 나타났다. 손을 내밀어 누르자 밝은 빛이 나오더니 세 사람을 감쌌다. 잠시 후, 세 사람이 그녀의 눈앞에서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검은색 도표 위에 세 사람의 얼굴이 나타났다.

수행 계급을 잠그는 거 아니었어? 사람까지 가두면 어떡해! 세 도표 아래에 있는 이름들은 뭐지? 공양은 그래도 정상적인데 나머지 오라버니1, 오라버니2는 뭐야? 그리고 후지의 이름 뒤에는 왜 물음표가 있는 거지?

“작은 주인님, 정말 효과가 있네요. 그들의 수행 계급을 전혀 느낄 수 없어요.”

한옥이 기뻐하며 소리쳤다.

“무슨 변고라도 일어나기 전에 어서 이곳을 나가요. 신계에 도착해서 신기를 해제하면 돼요.”

“……알았어.”

시하가 옆에 있는 알을 바라보다가 자기도 모르게 한숨을 흘렸다. 일찍 알았으면 흑룡도 알로 변신하지 않아도 되는 거였는데!

시하가 바로 위에 있는 혼돈 입구로 날아올랐다. 처음에 시간이 조금 걸린 것에 비하면 이번에는 아주 빨리 그 익숙한 숲에 도착할 수 있었다. 나무들이 대부분 쓰러져 있고 희미하게 뭔가 타는 냄새도 나는 듯했다. 확실히 지난번에 그 요수들의 공격을 받았던 그 숲인 듯했다.

시하가 바로 잠금 프로그램을 조정하여 세 사람을 풀어 주었다.

“여기가 신계야?”

시동이 주변을 살펴보며 물었다. 후지도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주변을 살폈다.

“영기가 조금 특별한 것 빼고는 별로 다를 것 없잖아.”

공양은 긴장한 표정으로 하늘을 바라봤다. 혹시 우레라도 내려오는 건 아닌지 한참을 살피더니 그제야 안심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우레는 정말 내려오지 않았다.

시하가 세 사람에게 간단히 그곳의 상황을 설명했다. 그 순간 익숙한 목소리가 그들 뒤에서 들려왔다.

“상, 상신님! 돌아오셨군요!”

밖에 한 무리의 수사들이 서서 놀란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장홍.”

시하가 무리들 중에 제일 뒤에 서 있는 사람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이렇게 빨리 만날 줄이야.

“아, 아주 잘됐네요!”

장홍이 기뻐하더니 갑자기 흥분하며 뒤에 있는 사람들에게 말했다.

“어서 사람들에게 두 상신님께서 평안히 야진궁에서 돌아오셨다고 전해요!”

“그럴 필요 없어요. 저는.”

금방 이곳을 떠날 거예요.

하지만 장홍은 그녀의 말을 듣지 못한 채 더욱 흥분하며 지시했다.

“그리고 나머지 세 구역에 있는 수사들에게도 이 좋은 소식을 전해야 해요. 모두 북쪽으로 한 번 다녀가라고 전해요.”

“잠깐만요. 그건.”

왜죠?

“아, 그리고 몇백 년 사이 상신처럼 또다시 야진궁에서 돌아온 사람이 생겼어요.”

“저기.”

“너무 잘됐네요. 이건 성천경의 복이에요. 괴물들을 물리칠 희망이 생겼어요.”

“잠깐만요.”

“그리고 사람들에게 우리 동부에서 제일 큰 도장(道場)을 갖고 있는 사람이 누군지 알아보고 어서 집을 옮기고 상신을 맞을 준비를 하라고 전해줘요.”

이봐요! 무슨 상황이지? 갑자기 왜 집을 옮겨? 난 다른 사람 방을 빼앗을 생각은 없다고요! 장홍 이 사람 열정이 지나친 거 아냐?

“동생.”

시동이 참다못해 시하에게 물었다.

“저 사람들과 잘 아는 사이야?”

“이틀 동안 알고 지냈는데, 친하다고 할 수 있을까?”

그곳에 몰려든 사람들의 열정이 점점 더 고조되는 가운데 눈빛도 반짝거리고 있었다.

시하는 신계에 도착한 첫날, 성천경 전체 주민의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함께 요괴를 물리쳤던 사람들이 여기저기에 소식을 전하니, 눈 깜짝할 사이 그녀의 소식이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그들은 그저 당황스러울 뿐이었다. 나중에 알게 된 바에 의하면 수만 년 동안 누구든 야진궁으로 들어가면 다시 돌아오는 사람이 아주 드물었다고 했다. 그곳으로 들어간 사람들 모두가 상당한 능력을 가지고 있었는데, 지금까지 야진궁으로 들어갔다가 돌아온 사람은 단 세 명뿐이었다. 제일 처음 돌아온 사람은 바로 전설 속의 그 합도에 성공한 파정 신존이었다. 그는 그곳에 천장을 만들고 성천경을 만들어 그곳 사람들이 괴물을 피할 수 있도록 도왔다.

두 번째 사람은 바로 동방경에 있는 상원신존이었다. 전해지는 말에 의하면 그는 오백 년 전에 그 야진궁에서 돌아왔다. 그리고 어마어마한 선법들을 가지고 나와 사람들에게 검을 부리는 법과 선기를 사용하는 방법을 가르쳐 백 년에 한번 나타나는 요수들을 물리칠 수 있었다.

세 번째가 바로 그녀였다.

그리하여 성천경의 주민들은 야진궁에서 돌아온 사람이라면 모두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으니, 성천경에 뭔가 거대한 변화를 가져올 거란 기대를 했다.

그들은 야진궁을 뭔가를 가르치는 학교 정도로 생각했다. 해외에서 학교를 마치고 돌아온 유학파로 통하는 듯했다.

시하는 그녀 앞에 까맣게 몰려든 사람들을 바라봤다. 그들은 눈빛을 반짝이며 뭔가 기대하는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시하는 자기도 모르게 그들의 시선을 피해 조용히 방 안으로 들어왔다. 사람들의 반짝이는 눈빛을 보고 있노라면 눈이 다 부실 정도였다. 그곳 사람들이 조금 순진한 건 알았지만 그 정도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 전에는 그녀를 그저 자기들보다 수행 계급이 조금 높은 선배를 바라보는 존경의 눈빛이었다면, 이번에는 숭배하는 듯한 눈빛이었다.

그리고 아예 산꼭대기에 커다란 깃발을 꽂아 놓고 그녀를 위한 전당을 세웠고, 그 앞에는 커다란 광장까지 만들어 놓았다. 며칠 사이 그녀가 전하는 말을 듣기 위해 몰려든 수사들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

집으로 가는 길을 찾아왔을 뿐이지, 학교나 세우려고 온 게 아니라고요!

“동생.”

시동이 의문스러운 표정으로 그녀에게로 다가오더니 물었다.

“저 사람들이 왜 나에게 흑룡 상신이라고 하는 거야?”

“그건 사람들이 오빠를 흑룡으로 봐서 그래.”

시하가 품속에 있는 흑룡의 알을 가리키며 말했다.

“흑룡이 전에 오빠의 모습을 하고 있었거든.”

시하가 그에게 흑룡이 변신했던 이야기를 모두 들려줬다.

“동생. 네가 이 오빠를 제일 좋아할 줄 알았어. 이게 바로 남매지간인 거지.”

시동이 일부러 옆에 있던 후지를 한 번 훑어보면서 말했다. 조용히 차를 마시고 있던 후지가 온몸에서 한기를 뿜어내는 바람에 손에 들고 있던 찻잔에까지 살얼음이 끼었다. 그가 고개를 돌려 시하를 바라봤다. 분명 아주 차가운 눈빛이었지만 그 속에 억울함이 담겨 있었다.

왜 내가 아니라, 마존으로 변신한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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