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71화 (171/189)

“한옥. 전에 삼천세계에는 신계가 딱 한 개만 있다고 했었지?”

“그래요! 근데 그건 왜 물어보시는 거죠? 이곳은 원세계니까 당연히 한 개밖에 없죠. 작은 주인님, 혼돈의 입구는 그냥 입구가 아니에요. 어서 구멍을 막으셔야 해요.”

“잘됐어.”

시하가 기뻐하며 보수를 신식 속으로 다시 돌려보냈다. 신계에 온 후 계속 답답하기만 하던 마음이 순간 편안해지는 느낌이었다.

“너무 잘됐어!”

“어? 작은 주인님, 구멍은 막지 않으실 거예요?”

한옥이 보수를 받아 창고에 넣으며 시하에게 물었다.

“막지 않아. 처음부터 막지 않았어. 막지 않을 뿐만 아니라, 지금은 막을 수 없어!”

무슨 뜻이지?

“삼계에는 이런 입구가 아주 많다고 하지 않았어? 그리고 혼돈지기는 두 세계가 연결되는 곳에 나타나지.”

“맞아요! 각 세계에 균열이 생겨서, 어어어! 설마 정말 저 혼돈 입구를 통해 야진궁으로 가시려는 건 아니죠?”

“맞아. 저 혼돈 입구는 한 개만 있는 것이 아니고, 세계는 처음부터 혼돈으로 연결되어 있었어. 그건 저 입구가 모두 연결되어 있다는 걸 증명해. 그리고 신계는 딱 한 개뿐이고!”

시하는 그 입구를 통해 그곳을 떠나려고 했다. 그곳이 사람들이 말하는 야진궁이든 아니면 다른 이상한 곳이라도 상관없었다. 다만 들어갔다가 다시 나올 수 없는 신계만 아니면 괜찮았다. 천도를 만나면 좋겠지만 만나지 못하더라도 시동과 후지를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작은 주인님, 정말 대단하세요. 저는 왜 저희가 이곳을 떠날 수 있을 거란 생각은 하지 못한 걸까요?”

한옥이 기뻐하며 몸을 흔들더니 갑자기 뭔가 떠오른 듯 물었다.

“그런데 작은 주인님. 혼돈 안은 아주 불안정해서 뭐가 있을지 아무도 몰라요. 만약 정말 야진궁과 같은 것이 있다고 해도 저희가 그곳까지 도착할 수 있을지는 확실하지 않아요. 그리고 아예 혼돈 속에 파묻혀 실종될 가능성도 있어요.”

“그렇게 깊게 생각할 필요 없어.”

기회는 단 한 번뿐이야. 그리고 이 구멍은 백 년에 한 번만 나타난다고 장홍이 그랬어. 그건 선계는 자동으로 혼돈지기를 복구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서 다른 영향을 끼칠까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야. 그리고.

“지금까지 우리가 얼마나 많은 위기를 이겨 왔는데. 이렇게 기다리느니 한 번 부딪쳐 보는 게 나아.”

한옥이 한참 말도 없더니 그제야 동의했다.

“알겠어요. 작은 주인님 말씀에 따를게요.”

시하가 법결을 하며 앞으로 다가가려 하자 흑룡이 잡아당겼다.

“지금 뭐 하려는 거야? 거긴 위험하다고 했잖아.”

“흑룡, 저 안으로 들어가 해결해야 할 아주 중요한 문제가 있어.”

시하가 앞에 있는 혼돈지기를 가리키더니 그를 안으며 말했다.

“그동안 나를 따라다녀 줘서 고마웠어. 이제 더는 널 데리고 저 위험한 곳으로 들어갈 수 없어. 미안하지만 여기에서 이만 헤어져야겠어. 네가 원래의 모습만 드러내지 않는다면 이곳 사람들이 너에게 상처 주진 않을 거야. 잘 지내고 있어! 그리고 기억해! 넌 세상에서 제일 좋은 용이야. 안녕!”

눈앞에 혼돈지기가 점점 더 작아지는 것을 보며 그에게 반복해서 당부했다. 흑룡이 어리둥절하여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는 틈을 타서 몸을 돌려 바로 그 혼돈지기 속으로 달려갔다.

시하가 흑백의 기체에 닿으려는 순간 사방팔방에서 그녀의 몸을 밀어내는 저항이 느껴졌다. 그 흑백의 기체는 갑자기 풍인으로 변하더니 금방이라도 그녀의 몸을 갈기갈기 찢어 놓을 듯했다. 영기를 움직이려고 해보았지만 혼돈지기의 영향으로 온몸이 제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금방이라도 몸 여기저기에 구멍이 날 듯했다. 마치 누군가에게 잔혹한 고문이라도 당하는 느낌이었다.

시하는 갑자기 전에 혼돈지기 속으로 들어갔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때에는 이렇게 심하진 않았었는데. 맞아, 혼돈지기 속은 수행 계급이 높을수록 거부반응이 더욱 크다는 사실을 깜빡했네. 됐어. 그래 봤자 수행 계급이잖아? 다시 수련하면 되지. 지금은 신식 속에 한옥이라는 부가 기능도 있잖아?

시하가 신식 속에 있는 한옥에게 말했다.

“한옥, 혼돈지기는 수행 계급이랑 상극이야. 난 모든 계급을 모두 버려야 돼. 그래야 공격을 피할 수가 있어. 그렇지 않으면 너에게도 영향이 갈 수 있어.”

“계급을 버린다고요?”

한옥이 놀라더니 갑자기 뭔가 떠오른 듯 말했다.

“잠깐만요. 작은 주인님, 그 방법을 사용하지 않아도 될 수 있어요. 시스템이 잠시 작은 주인님의 수행 계급을 봉인했다가 저희가 이곳을 나가면 다시 회복할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을 거예요.”

그런 신기도 있었다니 잘됐어. 다시 수행할 필요가 없게 됐어.

“좋아. 어서 열어 봐.”

“알겠어요!”

그러자 시하의 귓가에 띵! 소리가 들려왔다. 눈앞이 반짝하더니 백신 애플리케이션 하나가 나타났다.

하, 하하, 하하하! 역시 시스템은 일관성이 있어. 근데 왜 백신 애플리케이션인 거지? 수행 계급이 무슨 바이러스라도 된단 말일까? 나 이러다가 휴대전화 공포증이 생기겠어.

“작은 주인님, 작은 주인님!”

한옥이 시하의 마음은 전혀 눈치채지 못한 채 흥분하며 소리쳤다.

“어서 아래에 있는 그 노란색을 누르세요. 그래야만 작은 주인님이 수행 계급을 보전할 수 있어요.”

시하가 고개를 숙여 아래를 바라보자 그곳에 ‘스팸 금지’ 네 글자가 크게 쓰여 있는 애플리케이션이 보였다. 애플리케이션을 누르자 위에 스캔 화면이 나타나더니 1초도 지나지 않아 아래와 같은 데이터들이 나타났다.

보전 항목을 선택하십시오.

수행 계급: 하신(下神)(일반, 밑에서 세 번째 계급)

용모: 중하(최대한 적게 출입하는 것이 좋음. 그렇지 않으면 도시 미관에 방해가 될 수 있음)

성별: 여자(이지만 폭력성이 강한 남성적인 성향을 갖고 있음)

장비: 아래 세계에서 입고 온 수사의 복장(신계에서는 아주 궁핍한 복장으로 통함)

이 항목들은 대체 뭐지? 이런 걸 대체 어떤 놈이 만들어 낸 거야! 이런 장비 데이터는 대체 어디에서 갖고 온 걸까?

시하가 사라져 버린 시스템의 시체를 찾아서 혼내 주고 싶은 충동을 겨우 참으며 수행 계급 항목을 선택하려고 하는 순간, 갑자기 고통스러운 용의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흑룡!”

어떻게 여기까지 들어온 거지? 내가 들어오지 말라고 했을 텐데?

흑룡이 원래의 모습을 완전히 회복하고 있었다. 원래 천성이 신족이라서 그런 건지 그는 몸에 심각한 상처를 입고 피투성이가 되어 있었다. 견고하기만 하던 그의 비늘도 이미 산산조각이 나 있었고, 심지어 수염조차도 한 가닥 잘려 있었다.

그가 힘겹게 공중에서 몸을 움직이고 있었다. 아마도 핏물이 눈을 가려서인지 앞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크게 소리만 지르고 있었다.

이런 바보! 여길 왜 들어와? 세상의 오빠들은 하나같이 믿을 수가 없다니까!

“흑룡!”

시하가 다급히 그에게로 다가가 그의 머리를 감싸 안았다. 하지만 흑백 기운의 거부반응이 너무 거세지면서 그의 상태가 더욱 심각해졌다. 흑룡이 놀라더니 피로 붉게 물든 자신의 눈으로 힐끗 그녀를 바라보고는 머리를 그녀의 몸에 비볐다.

“가, 우리 여길 나가야 해!”

나가긴 어딜 나간다는 거야! 시하는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들이 들어온 그 입구는 이미 닫혀 버린 후였다.

“한옥, 그 백신 도표로 흑룡의 수행 계급도 보전할 수 있어?”

“안 돼요. 작은 주인님! 이 신기는 주인님과 작은 주인님만 사용하실 수 있고 외부인에게는 사용할 수 없어요.”

와! 어떡하지? 시하의 머릿속에 혼돈지기로 인해 그녀 앞에서 숨져 갔던 백룡이 떠올랐다. 그 모습을 떠올리자 시하의 마음이 조급해졌다.

“그럼 다른 건 없는 거야? 혹시 흑룡의 수행 계급을 낮출 수 있는 방법은 없어?”

신식 속에서 또다시 요란하게 뭔가 뒤지는 소리가 들려오더니 잠시 후, 한옥이 기뻐하며 소리쳤다.

“찾았어요. 시스템의 보안 창고를 뚫었을 때 찾은 물건인데 이걸 사용하면 될 듯해요.”

눈앞에 뭔가 반짝거리더니 순간 대화창 하나가 나타났다. 위에는 아래와 같은 문구가 쓰여 있었다.

[상품 설정을 복원할지 여부를 확인하여 주세요.]

상품 설정, 이건 휴대전화 데이터를 복원할 때 사용하는 거 아니었나? 이걸로 가능할까? 하지만 망설일 시간이 없어. 더 시간을 지체하다가는 흑룡이 죽을 수도 있어!

시하가 흑룡을 조준하며 확인 버튼을 눌렀다. 잠시 후, 이미 의식이 모호해져 가던 흑룡의 몸이 갑자기 작아지기 시작했다. 얼마 가지 않아 작은 알이 되어 버렸다.

이건 정말로 공장에서 나온 그때 모습으로 돌아갔잖아! 시하가 그 알을 안고 서둘러 자신의 수행 계급을 잠시 가두었다.

그 순간, 거부반응을 심하게 일으키던 혼돈지기가 갑자기 멈추더니 귓가에 거세게 들려오던 소리도 사라져 버렸다. 온 세상이 조용해졌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갑자기 익숙한 소리가 귓가에 들려왔다.

“왜 또 당신이죠?”

어두컴컴하던 공간에 문이 열리더니 아래에서 또 다른 문 하나가 열렸다. 순간 검은 종이를 가위로 오려 낸 듯 아래에서 돼지머리 하나가 불쑥 올라왔다.

돼지머리가 아니라, 돼지처럼 뚱뚱한 사람의 머리였다. 그는 얼마나 살이 쪄 있는지 머리에 각이 진 곳을 찾기 어려울 정도였다. 그의 두 눈은 가는 선 하나를 그려 놓은 듯했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그의 이목구비를 확인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다시는 돌아오지 말라고 했잖아요. 여기가 어디라고, 재밌어요?”

그 사람이 조금 화가 난 얼굴로 시하를 바라봤다. 그는 1m 정도 넓이의 문으로 몇 번이나 기어 올라오려고 시도했지만, 매번 몸이 끼어 성공하지 못했다. 그가 급했는지 양손으로 옆을 잡더니 위로 힘껏 몸을 솟구쳤다. 하지만 또다시 몸이 끼어 실패하고 말았고, 온몸이 자주색으로 변해 가고 있었다. 그가 도움을 요청하듯 그녀를 향해 손을 뻗었다.

“시하 동생, 도, 도와줘요.”

“절 알아요?”

“여길 떠난 지 백 년밖에 되지 않았잖아요! 어서 이 오라버니를 끌어내 봐요. 이러다 여기 끼어 죽을 거라고요!”

시하가 당황하며 그의 손을 잡아당겼다. 그러나 꿈적도 하지 않았다. 대체 뭘 먹고 이렇게 된 거야. 왜 이렇게 뚱뚱해진 거지?

“아야야, 살살, 살살해요. 아, 내 허리!”

그가 고통스럽게 소리를 지르더니 뻔뻔스럽게 말했다.

“빨리 좀 해봐요. 힘을 좀 쓰라고요! 백 년간 굶고 지냈어요? 왜 이렇게 힘이 하나도 없는 거죠?”

“당신 몸은 생각 안 해요?”

시하가 순간 화가 나서 그에게 소리쳤다.

“난 마음이 넓어서 살도 찌고 그런 거라고요. 근데 백 년간 보지 못한 사이, 당신은 왜 그렇게 마른 거죠? 꼭 병든 닭 같잖아요.”

그가 쉬지 않고 시하를 자극하더니 또다시 재촉하기 시작했다.

“빨리요. 날 여기서 꺼내요! 조금 있다가 또 다른 사람이 떨어질지도 모른다고요. 거기에 얻어맞기라도 하면 큰일 나요.”

“사람이 떨어진다고요?”

시하의 머릿속에 순간 전광석화와 같이 이름 하나가 떠올랐다. 그녀가 잡고 있던 손에 힘을 풀며 소리쳤다.

“공양!”

“아야!”

그가 비명을 지르며 아래로 떨어져 버렸다. 시하가 흑룡의 알을 안고 그 문 아래로 뛰어 내려갔다. 그러자 방금 그 뚱보가 돌 위에 앉아 신음을 내며 자신의 허리를 어루만지고 있었다. 분명 엉덩이를 만지고 싶은 듯했으나 손이 닿질 않았다. 시하가 주변을 살펴보았다. 그곳은 전에 원오가 절벽 아래로 그녀를 떨어뜨렸을 때와 변함이 없는 듯했다. 심지어 공중에 혼돈지기도 그때와 전혀 다르지 않았다.

아예 아래 세계로 떨어졌잖아! 안에 있다고 했던 야진궁은 어디에 있는 거지? 왜 이곳으로 떨어진 거지? 그럼 이 뚱보는 정말 공양인 걸까?

“공양, 당신이 왜?”

시하가 눈을 의심하듯 그를 한번 살펴봤다. 그동안 세월이 대체 당신한테 무슨 짓을 한 거죠? 분명 패기 넘치는 청년이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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