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70화 (170/189)

그곳 사람들의 수행 계급은 평균적으로 볼 때 아주 높은 편이었지만 술법이나 진법 등 공법들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검을 부리는 방법조차 어느 한 상신은 수만 년에 걸쳐 우연히 알게 된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그렇게 육박전을 벌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법기라고 손에 들고 있던 것들을 자세히 보니 그것은 그냥 일반 강철 검에 불과했다. 조금만 힘을 줘도 바로 부러지는 그런 검들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말했다.

“괜찮아요. 모두 한 개씩은 가지고 있으니까 이걸로 싸우면 돼요.”

헉. 지금껏 그렇게 비참한 선인들은 처음 보았다. 그들은 선계의 품격을 평균 이하로 떨어뜨리고 있었다. 시하는 말 없이 하늘만 바라봤다. 그러다가 그곳이 봉쇄되어 있는 세계라는 걸 깨닫고는 다시 동정하는 마음으로 그들을 바라봤다.

역시 신계의 삶은 참으로 고달프네. 그래 봤자, 문제 하나가 발생한 것뿐이잖아!

하지만 시하는 한 가지 그들에게 궁금한 것이 있었다. 만약 그들이 진법을 할 수 없다면…….

“밖에 있는 그 ‘오행서천지’, 그러니까 당신들이 그 천장이라고 하는 건 누가 만든 거죠?”

그렇게 정교한 진법이라면 진법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은 만들어 낼 수 없었다. 한옥은 그렇게 고급스러운 진법은 1년에 입구 하나 만들기에도 시간이 부족할 것이라고 했다. 시하는 그 일이 그 세계로 넘어가게 된 것과 연관이 있을 것이라 추측했다.

“천장은 천도가 만들어 놓은 거예요!”

시하는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또 그놈의 천도!

“천도라고 확신해요? 다른 사람이 만든 건 아니고요? 구체적으로 이 진법에 대해 아는 사람이 있어요?”

시하가 찝찝한 마음으로 그에게 질문했다. 장홍이 그녀의 질문에 놀라더니 대답했다.

“천장은 천도만 만들 수 있는 거예요! 파정 신존(破淨神尊)이 합도(合道)한 후, 세간에는 이 천장을 만들 수 있는 사람이 다시 나타나지 않았어요. 상신께서 관심이 있으시면 물어보실 수는 있을 거예요.”

“뭐라고요? 그게 무슨 뜻이에요?”

“합도한 파정 신존만이 천장에 대해서 알 수 있으니 신존께 물어보시라는 말이었어요.”

“그 사람 합도했다고 하지 않았어요? 합도는 죽었다는 뜻 아니에요?”

“당연히 아니죠!”

그가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냐는 듯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합도는 천도와 합하는 걸 의미해요. 지금까지 파정 신존만이 합도의 기준에 부합할 수 있었죠.”

시하가 놀라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 말은 천도가 바로 그 파, 신존?”

“파정 신존이요.”

“그가 어디에 계신지 저에게 알려줄 수 있을까요?”

시하가 흥분하여 그의 손을 잡으며 물었다. 이거 완전 횡재한 기분인데! 여태 천도가 그저 하나의 대명사인 줄로만 알았는데, 지금 보니 지도에서 말하는 하나님, 예수와 같은 개념이었잖아. 정말로 천도로 불리는 인물이 있을 줄이야. 희망이 있어. 나와 오빠가 집으로 돌아갈 희망이 생겼어.

“파정 신존은 당연히 야진궁(夜辰宮)에 계시죠.”

장홍은 시하가 왜 그렇게 흥분하고 있는지 이유를 알 수 없어 어리둥절하고 있었지만 묻는 말에 순순히 답하고 있었다.

“야진궁이 어디에 있어요? 저를 그곳으로 데려다줄 수 있어요? 아니면 지도를 그려줘도 돼요. 추상파 지도라도 상관없어요.”

“상신님, 지금은 그를 찾을 수 없어요.”

“왜요?”

시하가 어두운 표정으로 그에게 물었다. 설마 정말 죽은 건 아니겠지?

“야진궁은 이 세계에 있지 않아요. 야진궁으로 가는 통로가 있긴 한데 그 통로가 열리는 위치가 정해져 있지 않다고 해요. 그리고 열린다고 해도 한 시진 내에 바로 사라지고, 통로 안은 아주 위험해서 대부분 사람들이 들어갔다가 돌아오지 못한다고 했어요. 또한 무사히 안으로 들어간다고 해도 운이 좋아야만 신존을 만날 수 있다더군요. 전해지는 말로는 천장이 만 년 전에 대위기를 만난 적이 있었는데 수사들이 통로를 통해 안으로 들어가 파정 신존의 가르침을 받아 그 방법대로 천장을 복구할 수 있었다고 했어요. 그렇게 신통한 능력을 갖고 있는 걸 보면 분명 합도에 도달한 그분일 거예요.”

“그런 거였군요.”

그 말은 파정 신존이 정말 천도가 맞는지는 이들도 확실히 모르고 있다는 얘기네?

“맞아요. 하지만 길이 열리는 시간은 비교적 안정적이에요. 보통 백 년에 한 번 열리니까요.”

“그럼 다음에 통로가 열리려면 시간이 얼마나 지나야 하는 거죠?”

“길지 않아요. 10년 전에 한 번 열렸으니까 상신님께서 들어가시려면 길어 봤자 90년 정도밖에 안 걸려요. 금방이에요.”

젠장! 당신에게는 90년이 금방이야?

시하는 그곳에서 손 놓고 90년 동안 세월이 흐르기만 기다리고 있을 수 없었다. 아무리 선신에게 시간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는 하지만 그렇게 마냥 기다리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기다린다고 해도 시동과 후지는 그녀가 돌아오기를 기다리고만 있지 않으리라. 전에 시동은 그녀를 만나기 위해 목숨까지 걸었다. 근데 이번에는 그의 눈앞에서 시하가 사라졌으니 이번엔 또 어떤 일을 벌일지 아무도 몰랐다.

우선 돌아가는 방법을 찾지 못하더라도 후지와 시동을 빨리 찾아야만 했다. 시하는 90년을 기다릴 것이 아니라 어서 그들에게로 돌아가야만 했다.

파정 신존을 찾지 못한다면 다른 방법을 찾아봐야 해.

“한옥, 시스템에게는 선계로 돌아가는 방법이 정말 없는 거야?”

시하가 한옥에게 시스템의 창고 자료를 찾아보게 하고, 한편으로는 선계로 돌아갈 다른 방법은 없는지 생각해 보았다.

“작은 주인님, 신계는 다른 삼천세계와 달라요. 이곳은 원세계(源世界)라 뚫을 수가 없어요. 특별한 상황이 아니면 돌아가기는커녕 통로를 열 수조차 없을 거예요. 전에 시스템이 붕괴되던 때처럼 거대한 힘이 있거나 아니면 특수한 천지이변이 있기 전에는 어림도 없어요.”

“그래? 정말 아무 방법도 없는 거야?”

시하가 낙심하고 있는데 갑자가 장홍이 다급히 달려왔다.

“상신님, 상신님, 좋은 소식이에요. 좋은 소식이요! 천장에 통로가 생겼어요. 야진궁으로 가는 통로요!”

“뭐라고요? 백년에 한 번 열린다고 하지 않았어요?”

설마 시기가 조정되기라도 한 걸까?

“저도 원인은 알 수 없어요. 아마도 상신님이 운이 좋으신가 봐요.”

장홍이 기쁜 표정으로 잠깐 생각에 잠기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근데 이번에 열린 통로는 전에 열렸던 통로보다 조금 작아요. 보시면 아실 거예요. 아, 흑룡 상신님은 이미 가셨어요.”

흑룡? 아침부터 왜 안 보이나 했더니 거기에 가 있었던 거야?

시하가 칼을 빠른 속도로 부리며 그곳으로 달려갔다. 흑룡이 하늘 높은 곳에서 미간을 찌푸리고 앞을 바라보고 있었다. 내내 오만하기만 하던 그가 어찌된 일인지 뭔가 심각해 보였다.

“흑룡!”

시하가 큰 소리로 부르니, 그가 고개를 돌려 여전히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오지 마!”

순식간에 그녀의 곁으로 다가온 그는 그녀를 데리고 뒤로 몇 걸음 물러섰다. 무슨 일이라도 일어날세라 그녀를 잡아당기더니 자신의 등 뒤로 밀었다.

“여길 떠나야 돼, 여길 떠나야 된다고!”

시하가 놀라며 그에게 물었다.

“대체 왜 이러는 거야?”

여기서 더 밀면 나 아래로 떨어진다고.

“저 안의 기운이 이상해. 분명 뭔가 안 좋은 물건이 있을 거야.”

그가 눈썹을 높이 치켜세우더니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난 저 물건이 싫어.”

“뭐라고?”

시하가 자기도 모르게 그의 어깨 너머로 앞을 바라봤다.

방금 전에는 입구가 조금 어두운 것만 볼 수 있었는데, 지금에야 그곳을 자세히 살펴볼 수 있었다. 전에 시하가 반창고를 붙였던 그곳에 언제 나타난 것인지 기체 한 덩어리가 있었다. 그 기체는 흑백으로 어우러져 나선형 모양으로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그 모습이 마치 주변에 있는 모든 것을 안으로 삼킬 것처럼 보였다.

근데 모습이 어딘가 모르게 좀 익숙한 것이 마치…….

“작은 주인님, 혼돈지기예요!”

한옥이 시하의 신식 속에서 깜짝 놀라며 소리쳤다.

정말이네! 왜 갑자기 이곳에 혼돈지기가 나타난 거지? 그건 삼계가 무너지기 전에 있던 구멍인데? 전에 아래 수선계에 있을 때 이미 하나를 막았었는데?

“상신님, 통로가 열렸어요.”

장홍이 그 기체 덩어리를 가리키며 신나서 말했다.

“지금 절 놀리는 거예요? 이게 정말 그 야진궁인가 하는 그곳으로 가는 통로 맞아요?”

“맞아요. 이 통로는 백년에 한 번 나타나지만 위치가 정해져 있지 않아요. 근데 이번에는 왜 10년 만에 나타난 건지, 저도 잘 모르겠네요.”

시하가 조금 망설였다. 하지만 그의 표정을 보니 거짓말을 하는 것처럼은 보이지 않았다.

“한옥, 왜 신계에 갑자기 혼돈지기가 나타난 거지?”

시하가 신식 속에 있는 한옥에게 물었다. 보아하니, 혼돈지기가 그곳에 처음 나타나는 것이 아닌 듯했다.

“아마도 전에 시스템이 강제로 주인님과 작은 주인님을 이 세계로 데리고 온 결과인 듯해요. 그때, 시공에 혼란이 일어나 이 세계에 구멍이 생겨났고, 혼돈지기는 그때 만들어진 거예요.”

“하지만 어제는 없었잖아!”

어제는 이곳에 ‘오행서천진’에 생긴 구멍밖에 없었잖아. 근데 갑자기 왜 혼돈지기의 구멍으로 변한 거지?

“‘오행서천진’은 진법이긴 하지만 그 자체가 하나의 세계라서 두 세계가 교차하는 곳이 극도로 불안정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어요. 그리고 전에 그 요수들이 강제로 진을 뚫으면서 그렇지 않아도 약하던 경계선이 무너지게 됐지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혼돈지기가 나타난 거예요.”

“그 말은 이것도 또 하나의 삼계의 구멍이라는 거야?”

“맞아요! 혼돈지기가 아직 작고 이곳은 제일 안정된 신계이니 잠시 동안은 별문제 없을 거예요. 지금까지의 구멍들 중에 영향이 제일 적겠지만 만약 구멍을 계속 방치해 두면 점점 커져서 언젠가는 이 세계에 영향을 미칠 거예요.”

“하지만 장홍은 이 구멍이 처음 나타난 게 아니라고 했어. 이 통로로 사람들도 들어갔었다고 했고. 그리고 매번 구멍이 열려 있는 시간도 매우 짧다고 했는데.”

그럼 이 통로는 대체 어디로 통하는 거지? 안에 정말 그 야진궁이 있는 걸까?

“그건 저도 잘 몰라요. 이런 구멍은 시스템의 특별한 공구가 아니면 복구할 수 없어요. 아니면, 저희 우선 이 구멍부터 막을까요?”

한옥이 작은 가지를 흔들며 시하에게 말했다.

“시스템의 원래 목적은 삼계의 붕괴를 막는 것이에요. 여기에 다른 건 몰라도 구멍을 막을 만한 재료는 아주 많아요.”

그가 말을 마치자 갑자기 시하의 손이 뜨거워지며 그 위에 ‘보수’라는 글자가 새겨진 물건이 떨어졌다. 전에 그녀가 모현선부로 갈 때 구멍을 막았던 것과 같은 모양이었다.

“우리 얼른 이곳을 떠나야 돼!”

흑룡이 그녀와 한옥의 신식 대화를 듣지 못하고, 시하를 자신의 등 뒤로 숨기며 재촉했다.

“난 저 흑백 덩어리를 싫어해. 안에 용혈의 기운이 느껴져.”

“용혈?”

시하가 흑룡에게 자신이 그 구멍을 막을 수 있다고 얘기하려다 깜짝 놀라 주춤하며 물었다.

“그래. 그것도 한 마리가 아니야. 아주 많아. 내가 살던 용곡보다 많아. 그리고 안에는 아주 짙은 사기(死氣)가 느껴져. 너무 위험해. 어서 떠나야 해!”

혼돈은 원래 생과 사를 대표하는 음과 양, 이 두 가지 기운이 합쳐진 것이니 그곳에서 사기가 느껴지는 것은 당연했다. 근데 용기는 어디에서 온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게다가 혼돈지기는 갑자기 나타난 것이었다.

삼계에서 봤던 그 구멍이라고 해도……. 잠깐! 삼계?

시하는 순간 그곳에 통로가 있다는 말이 일리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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