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옥, 방법을 찾았어?”
시하가 신식 속에서 자료를 찾고 있는 한옥을 다그쳤다.
“하나 찾긴 했는데, 한 번 시도해보세요. 제가 시스템의 창고에서 뭔가 발견하긴 했는데 이걸로 구멍을 막고 요수들이 흘러나오는 것을 막을 수 있을 거예요. 아마도, 유용할 거예요.”
“아마도?”
“네, 저도 가능할지는 잘 모르겠어요. 창고에서 발견한 이 물건은 저도 처음 보는 거라서요. 아직 다른 자료는 더 찾아보지 못했지만 이 위에 있는 글씨를 보면, 신기(神器)인 모양이에요.”
“좋아. 얼른 보여줘 봐!”
이것저것 생각할 여유가 없어. 빨리 이 엉망진창인 상황을 종식시키기만 하면 돼.
구멍에서 아직도 요수들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는 점점 선계 계급의 요수들이 나타나고 있었다. 이러다가 곧 신수들도 나올 판이었다.
시하는 그제야 그녀의 영수대에 도철이 있다는 것을 떠올렸다.
“알겠어요. 작은 주인님, 손을 내밀면 전달해줄게요!”
시하가 고개를 끄덕이며 비어 있는 왼손을 내밀었다. 눈앞이 반짝이더니 익숙한 문자가 눈에 들어왔다.
물품 전송 중, 10%, 20%, 30%.
진행도 표시줄은 숫자에 따라 점점 더 커지고 있었다. 시하의 마음이 긴장되기 시작했다. 한옥은 처음으로 시스템 창고에서 물건을 꺼내 왔다. 그것도 신기였는데 문제는 어떻게 생긴 물건인지 알 수 없었다. 잠시 후, 진행도 표시줄이 100%까지 채워졌다. 시하의 귓가에 띵! 소리가 들려왔다.
잠시 후, 왼손에 밝은 빛이 비치더니 길게 생긴 물건 하나가 그 빛 속에서 나타났다. 뭔가가 가볍게 그녀의 손에 떨어지는 것이 느껴지면서 빛은 사라지고 옅은 노란색 포장을 한 반창고가 나타났다.
젠장! 이게 무슨 신기라는 거야! 왜 하필 반창고지? 이렇게 큰 구멍을 이걸로 막으라고? 차라리 생리대를 주지 그러냐?
“한옥! 지금 나랑 장난해? 나한테 이 반창고를 주는 이유가 뭔데?”
얻어맞은 다음에 상처에 붙이라고?
“어, 이게 반창고예요? 작은 주인님은 알고 계셨군요. 정말 대단하세요. 그거면 구멍을 막을 수 있을 거예요.”
그냥 봐도 평범한 반창고인데? 물론 위에 방수 반창고라고 쓰여 있긴 하지만 이게 한 통에 몇천 원밖에 하지 않는 그 반창고라는 사실은 바뀌지 않잖아?
“어쨌든 다른 방법은 없어요. 작은 주인님, 한 번 시도해보는 것이 어때요?”
시하가 깊이 숨을 들이마시며 손에 들고 있는 반창고를 시스템의 얼굴에 붙여주고 싶은 충동을 가까스로 눌렀다. 지금 다른 방법은 없으니 시도해보는 수밖에 없겠네.
시하가 반창고 포장을 뜯고 검을 꽉 부여잡은 뒤 사람들 속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낙성진을 발동하여 마지막 남은 검기를 휘저었다. 잠시 후, 순식간에 십여 마리의 용이 나타나더니 커다란 울음소리를 내며 요수들이 나온 방향으로 몰려가기 시작했다.
바닥에 빼곡하게 몰려 있던 요수들이 갑자기 시하가 날린 검기에 쓰러졌다. 검용(劍龍)이 순식간에 숲을 공지로 만들어 버린 것을 바라보며 시하가 검을 날려 앞으로 날아갔다.
그 검은 구멍이 바로 눈앞에 있었다. 안에는 칼날처럼 날카로운 강풍이 밖으로 불어나오고 있어 얼굴마저 아프게 했다. 구멍 안에서 희미하게 밝은 빛이 나오고 있었다.
시하는 더 이상 자세히 관찰할 시간이 없었다. 손에 들고 있던 반창고를 들어 구멍 입구를 향해 날렸다.
가 버려!
잠시 후, 반창고가 떨어졌다. 이리저리 몸을 흔들며 유유히 바닥으로 떨어졌다.
젠장! 아주 유용한 신기라며? 신기는 개뿔! 이건 그저 평범한 반창고잖아?
어흥.
갑자기 구멍 안에서 낮은 비명 소리가 들리더니 표범처럼 생긴 머리가 나타났다. 체형이 아주 커서 오륙 미터 정도밖에 되지 않던 구멍에 그의 머리가 꽉 끼었다. 그의 몸 일부가 다른 구멍에 걸려 있는지 계속해서 버둥대고 있었다. 그가 구멍에 끼어 허둥대는 바람에 그 주변에 조금씩 균열이 생기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니 그의 몸이 얼마나 큰지 가늠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 그의 몸집이 얼마나 큰지 그것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 정말 중요한 건 그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신력이었다.
이건 신계 요수야.
시하의 마음이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어떡하지? 요수가 나오게 되면 흑룡이 나설 수밖에 없는데. 이 신계 요수가 나온 후에는 또 어떤 요수가 나타나는 걸까?
“한옥, 반창고가 왜 아무 소용도 없는 거지?”
“저도 몰라요, 작은 주인님, 잠깐만요! 제가 한 번 찾아볼게요.”
“빨리 서둘러!”
시하는 그 요수가 입구에 걸려서 나오지 못하는 틈을 타, 검용을 이용해 다시 안으로 돌려보내려고 했다. 하지만 요수가 갑자기 그녀를 향해 입을 벌렸다. 입안에서 전광이 반짝였다.
시하가 깜짝 놀라 바로 옆으로 물러섰다. 잠시 후, 그의 입에서 거대한 번개가 번쩍거리며 나오더니 주변을 재로 만들어 버렸다.
뇌(雷) 속성을 가진 신수라니. 우레는 짐승들에게 적수 아니었어? 신계의 짐승들은 이렇게 대단한 걸까?
“찾았어요. 작은 주인님!”
신식 속에서 한옥이 종이 한 장을 들고 흥분하며 소리쳤다. 설마 설명서를 찾은 건 아니겠지?
“이 설명서에서 말하길 신기는 특수한 능력이 있어야만 발동할 수 있대요.”
진짜 설명서잖아! 위에 생산일자는 없어? 유효일자는?
“작은 주인님, 그건 신력을 불어넣어야만 움직일 수 있대요.”
“알았어!”
시하가 방향을 바꾸어 아래로 내려갔다. 그녀가 피한 곳은 사각지대라 구멍 입구에 끼어 있는 요수가 아무 공격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시하는 바닥으로 내려가 방금 떨어뜨린 반창고를 찾기 시작했다. 반창고는 다행히 멀리 가지 못하고 바로 아래에 있는 나무 위에 떨어져 있었다.
시하는 반창고를 주워 바로 몸속에 얼마 남아 있지 않은 파란 신력을 움직였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그 신력을 반창고 속으로 주입시켰다. 그러자 손가락만 한 크기의 반창고가 팔뚝 크기만큼 커져 버렸다.
헉! 시하가 계속해서 신력을 주입시켰다. 반창고는 풍선에 공기를 주입하듯 점점 더 커지고 커졌다. 잠시 후, 이미 그 크기가 십여 미터에 달했다. 풍계술법(風系術法)을 이용해 살짝 흔들자 갑자기 거대한 반창고가 하늘에 있는 그 구멍으로 날아가 구멍을 막아 버렸다.
시하가 구멍 입구를 더 견고하게 막으며 이미 절반이나 나와 있던 신계의 요수를 안으로 밀어 넣었다. 주변에 있던 강풍도 음침한 기운도 모두 사라져 주변이 다시 온기를 회복했다.
숲에는 다시 요수들이 나타나지 않았다. 하늘에는 하늘을 거의 절반이나 가리고 있는 반창고만 남아 있었다.
“…….”
이게 대체 뭐지.
방법이 조금 이상했지만 어쨌든 구멍을 막는 데에는 성공할 수 있었다. 싸움은 수사들의 승리로 끝났다. 그들이 다시 천막으로 돌아오자, 사람들은 거의 구세주인 양 시하를 바라보았다.
“상신님, 정말 대단하세요. 이번 싸움은 상신님께서 해결하신 거예요. 근데 구멍을 막은 방법 아니, 신기의 이름이 뭔가요?”
“하하하, 별거 아니에요.”
“저희는 정말 복이 많은 것 같아요. 그렇게 보기 어려운 광경을 다 보고.”
장홍이 눈을 반짝이며 시하에게 물었다.
“그 신기뿐만 아니라 그전에 보여주셨던 그 투명한…… 그걸 뭐라고 하죠?”
“맞아요. 저희 모두 깜짝 놀랐어요.”
엽에 있던 사람들이 우르르 시하의 주변으로 몰려와 놀라운 표정으로 바라봤다.
“그래요. 마치 괴물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맞아요. 그 십여 마리의 짐승들은 상신께서 키우고 계신 건가요? 위력이 엄청나던데요?”
“에휴! 근데 나타나자마자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니, 정말 아쉽네요!”
“맞아요. 하지만 상신님, 걱정하지 마세요. 나중에 저희가 그런 비슷한 요수를 만나면 몇 마리 잡아다가 드릴게요.”
“그래요!”
그들은 말을 하면 할수록 점점 더 흥분했다. 심지어 흑룡조차 의문 가득한 눈빛으로 시하를 바라봤다.
이, 이건 무슨 상황이지? 대체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거지?
시하가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생각을 거듭하다가 한참 후에야 정신을 차리며 물었다.
“당신들이 말하고 있는 건, 설마 검기를 말하는 거예요?”
방금 시하가 보여줬던 검기라고 하면 방금 그 용 모양의 검기를 말하는 듯했다.
“이제 보니 그 짐승이 검용이었어요?”
장홍이 놀란 표정으로 시하에게 물었다.
“상신께서는 열 마리나 되는 용을 거두어 그걸 굴복시키시다니. 정말이지, 저희 모두 깜짝 놀랐어요!”
“어, 잠깐만요! 당신들 설마 검기를 요수로 착각하는 건 아니죠?”
“아니에요?”
그가 놀란 표정으로 시하에게 묻자 사람들도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당연히 아니죠!”
시하가 자기도 모르게 흑룡을 한 번 쳐다봤다. 그래, 용족도 이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건 마찬가지인 듯하네.
“그건 제 검기예요! 검기라고 하는 것은 제가 검으로 만들어 내는 기운이에요. 형상은 검을 사용하는 사람의 검의로 만들어 내는 것이고, 각기 다른 검 동작을 취하고 사용자도 달라요. 심지어 선기의 속성과 공법도 달라 모두 다르게 나타나죠. 이건 진짜 요수가 아니라 그저 검초(劍招, 칼을 부리는 움직임)가 만들어 내는 표현일 뿐이에요.”
하지만 사람들은 시하의 말에 여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시하의 체면을 생각해서인지 모두 고개를 끄덕이고 서로 눈치만 보았다. 시하가 제일 앞에 서 있던 장홍에게 말했다.
“묻고 싶은 것이 있으면 물어봐요.”
“한 가지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있어요. 검초가 뭐예요? 검의는 또 뭐고요? 그리고 공법은 또 뭐죠?”
한 가지라고 하지 않았어? 젠장 세 가지나 되잖아.
“당신들 설마, 한 번도 검법을 수련한 적이 없는 거예요?”
사람들이 다시 한 번 서로를 바라보더니 단호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법술은요? 설마 법술도 수련한 적이 없는 거예요?”
그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진법은요? 단약, 어수(御獸), 법부는요?”
사람들 모두 고개를 저었다.
시하는 그제야 그들이 왜 그렇게 요수들과 이상하게 싸웠는지 알 수 있을 듯했다. 한 번도 제대로 된 술법을 배워 본 적이 없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검법, 법진, 제부(制符), 연단 이런 과정을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듯했다.
“당신들 수행 계급은 어떻게 오른 거죠?”
“수행 계급이요? 그건 그냥 앉아서 좌선하면 되는 거 아니에요?”
파란 옷의 수사가 시하에게 대답했다.
“좌, 좌선?”
“오래 앉아 있을수록 수행 계급이 높이 올라가요. 저는 천 년이나 넘게 앉아 있었어요. 홍 도우는 삼천 년이나 앉아 있었고요. 상신님은 수행 계급이 그렇게 높으시니, 아마도 아주 오래 걸리셨겠네요?”
그 정도로 앉아 있으면 엉덩이가 다 썩겠네. 다들 그렇게 수행 계급을 올린 거라고? 아래 세계의 수사들이 들었으면 속 터졌을 듯하군.
“당신들 모두 검은 부릴 수 있지 않아요?”
검을 부릴 수 있으면 기본적인 검법은 배웠다는 건데?
“아, 그건 전에 계시던 원(元) 상신께서 가르쳐주신 거예요.”
장홍이 감격스러운 표정으로 그녀에게 말했다.
“듣자하니 원 상신님은 상신에 오른 후 바로 그런 방법들을 깨달으시고 그걸 널리 전승하셨다는군요. 저희는 수천수만 년이 흐른 지금에야 겨우 두 발로 걸을 수 있는 법을 터득할 수 있었는데 말이에요.”
그럼 전에는 어떻게 걸어 다녔는데? 시하는 아무래도 자신이 새로운 사고방식으로 이들을 바라봐야 할 듯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하는 크게 숨을 들이마시고 천천히 자세한 상황들을 묻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