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67화 (167/189)

시하가 남자와 여자의 차이를 상세하게 설명하며 몇몇 남자들의 모습을 그려 주었다. 시하의 설명을 들은 흑룡이 다시 변신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마도 시하가 그의 변신 실력을 너무 높이 평가한 듯했다. 흑룡이 몇 번이나 변신했지만 한 번도 제대로 된 모습으로 변신하지 못했다. 남자로 변신하려고 하니, 어깨가 없거나 다리가 없거나 늘 뭔가 부족했다. 시하는 그의 머릿속에 대체 남자는 무슨 모습을 하고 있는지 들어가 보고 싶은 심정이었다.

“귀찮아 죽겠네!”

흑룡이 화가 나서 변신해서 작아진 자신의 손을 흔들었다.

“아예 들어가서 모두 먹어 버리면 되지 않을까?”

“마지막으로 한 번만 바꿔 보자.”

시하가 손가락을 들어 보이며 그에게 말했다. 이번에는 돼지머리로 변신해도 아무 말도 하지 말아야겠어.

“딱 한 번만이야.”

흑룡이 그제야 고개를 끄덕이더니 다시 금빛을 뿜어내며 변신하기 시작했다. 잠시 후, 그가 키가 아주 훤칠한 남자의 모습으로 변신했다.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소나무처럼 단단한 몸매를 갖추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얼굴을 확인하는 순간 시하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 이 얼굴은.

“어때? 이제 괜찮아?”

“오빠?”

이건 오빠의 모습이잖아!

“딱 한 번이라고 말했어. 이제 다시 변하지 않을 거야. 이제 가자!”

그가 말을 마치더니 마을이 있는 곳을 향해 내려갔다가, 시하가 움직이지 않자 다시 돌아와 그녀의 손을 끌어당겼다.

“왜 그러고 서 있어? 빨리 가자. 얼른 따라와. 넌 착한 애벌레니까 다른 애벌레들에게 나쁜 행동을 배우고 그러면 안 돼. 알겠지?”

그 순간 시하의 머릿속에 어렸을 적, 매번 오빠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동생, 너는 착한 아이니까. 다른 친구들에게 나쁜 걸 배우면 안 돼. 알겠어?”

표정이랑 행동 모두 그때랑 너무 똑같잖아. 이, 이렇게 똑같을 수가 있나?

시하는 옆에 있는 흑룡을 이끌고 조용히 마을로 들어섰다. 최대한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는 방법으로 상황을 알아보고 싶었다. 하지만 그 아름다운 꿈은 마을로 들어서는 순간 저 멀리 날아가 버렸다.

“상, 상신(上神)!”

그들이 마을에 들어서자 산만 한 배에 회색 장포를 입은 수사가 갑자기 그들을 지목하더니 크게 소리를 질렀다.

“왔어요. 두 사람이 왔어요!”

설마 이렇게 빨리 알아챈 걸까? 아직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지금이라도 도망갈까?

어마어마한 사람들이 그들에게로 몰려왔다. 시하가 그들을 뚫고 도망을 가야 할지 고민하고 있던 그 순간, 앞에 서 있던 사람들이 갑자기 그들을 향해 절을 하기 시작했다.

“상신께 인사 올립니다!”

어라? 무슨 상황이지?

시하는 할 말을 잃고 멍한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봤다. 방금 그들을 제일 처음 발견했던 사내가 흥분하면서 말했다.

“너무 잘됐어요. 정말 두 분의 상신께서 오셨네요. 이제 저희도 살 수 있겠어요. 여기까지 오시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아, 아니에요. 모두를 위한 건데요. 뭐.”

시하가 너털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어떻게 된 일인지 상황은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지만, 보아하니 그들에게 악의를 품은 것처럼은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을 보고 아주 기뻐하면서 흥분된 모습을 보였다.

“한 번에 두 분씩이나 올 줄은 몰랐네요.”

“두 분 상신께서는 어느 동부(洞府), 어느 산문(山門)에서 오셨는지요?”

산문? 동부? 왜 모두 요괴들에게나 쓰는 명칭 같지? 내가 혹시 서유기로 온 걸까?

“어, 저기, 옥화파 수릉봉이요!”

시하가 예전에 살던 지명을 얘기했다.

“옥화파, 수릉봉?”

사람들이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다시 물었다.

“저기, 그곳은 어디에 있는 선산인가요?”

“거긴 여기서 멀리 떨어진 십만 팔천 리나 되는 곳에 있는 작은 선산이에요. 면적이 얼마 되지 않고, 선기는 짙은 편이에요.”

시하가 옆에 있던 흑룡을 바라보며 헛기침을 한 뒤 말을 이었다.

“어흠, 가족과 함께 어려서부터 그곳에서 폐관을 하고 수련을 했어요. 그렇게 세월이 가는 줄 모르고 수련을 하고 있다가 처음 밖으로 나왔어요.”

“그런 거였군요!”

그 사람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아무 의심도 없이 그녀의 말을 믿는 듯했다. 오히려 더욱 공경하는 눈빛으로 그들을 바라보더니 다시 한 번 절을 하면서 말했다.

“두 분이 함께 폐관을 하셨군요. 그러다가 저희 서신을 받고 여기까지 오셨구요?”

서신? 그게 뭐지?

“당연하죠! 저희는 그것 때문에 여기로 온 거예요. 당신들을 위해 봉사하는 거죠!”

그녀가 말을 마치자 사람들이 그제야 기뻐하기 시작했다. 그 회색 장포의 수사가 앞으로 나서더니 그들을 안내했다.

“저의 이름은 장홍(仉鴻)이라고 해요. 급한 상황이라. 우선 두 분께 전황부터 소개해 드릴게요.”

뭐? 전황이라고? 지금 싸우고 있었던 거였어? 지금이라도 도망갈까?

“두 분께서는 저를 따라오시죠.”

이미 도망가기에는 늦은 듯했다. 장홍이 이미 돌아서서 길을 안내하고 있었다. 시하가 시린 마음을 안고 입술을 깨문 채 그의 뒤를 따랐다.

어쩔 수 없이 끝까지 가야겠네.

시하는 안으로 들어가고 나서야 그곳이 그렇게 작은 마을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길 옆에는 간소한 천막들이 쳐져 있었다. 그저 작은 노점들이라고 생각했었는데 가까이에서 보니 수사들이 휴식하는 임시 거처 같은 곳이었다.

주변을 살펴보니 많은 사람들이 보였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상처를 입고 있었다. 어떤 사람들은 스스로 상처를 치료하고 있었고, 어떤 사람들은 네다섯 명의 사람들이 모여서 도와주고 있었다. 그들이 지나가자 포권을 하며 인사를 하는 모습을 보니 시하가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화목한 분위기였다.

시하는 안으로 들어갈수록 더욱 의문스러웠다. 그들이 대체 무슨 싸움을 하고 있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아래 세계에서 만났던 문파 싸움하고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다. 그곳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각기 다른 복장을 하고 있었고 사용하는 법기들도 서로 달랐다. 심지어 그곳에는 민머리의 불수도 있었다.

분명 그들은 각기 다른 문파에서 온 것처럼 보였지만 뜻밖에도 아주 단결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대체 그들의 적은 누구이기에 그렇게 각기 다른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완전히 단결된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장홍이 그들을 네다섯 사람쯤 들어갈 수 있는 크기의 천막 안으로 안내했다. 시하가 그들 뒤를 따라오던 십여 명의 사람들을 바라봤다. 그곳이 중심 천막이라고는 하지만 그렇게 호화스럽지는 않은 듯했다. 공간의 술법도 없고 간단히 작전을 논의할 수 있는 장소인 듯했다. 안으로 들어서자 역시나 그곳은 성인 네다섯 명 정도만 수용할 수 있는 작은 천막에 아무런 진법도 설치되어 있지 않는 듯했다.

단순하기 짝이 없는 천막이잖아.

“두 분 상신께서는 이곳으로 앉으시죠.”

장홍이 천막 안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담요를 가져다 놓으며 말했다. 시하가 그가 주는 담요 위에 앉았다.

“올해는 두 분 상신께서 계셔서 저희가 무사히 이 추위를 넘길 수 있을 것 같아요.”

장홍이 한바탕 그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하더니 망설임 없이 아무것도 없는 맨바닥에 주저앉았다.

한옥은 이곳이 신계이긴 하지만 그곳에 있는 수사들의 수행 계급이 대부분 현선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고 얘기했던 것이 떠올랐다. 확실히 몇몇 수사들만 상선에 올라 있었다.

장홍만 보더라도 무슨 이유에서인지 이미 계급이 오르고도 남아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이제 갓 신계에 입문한 그녀를 상신이라고 불렀다. 아마도 오행서천진 안에 있는 수사들은 신계 수행 계급을 가진 사람이 아주 적은 듯했다. 시하는 자신이 이제 신계에서 시작하는 단계에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그곳에서 그런 대접을 받을 줄은 꿈에도 모르고 있었다.

“제가 두 상신께 이곳의 상황을 설명해 드릴게요.”

장홍이 진지한 표정으로 배를 두드리더니 갑자기 자신의 옷 속으로 손을 집어넣어 그들 앞에 짐승의 가죽 한 필을 꺼내 놓았다.

배가 그렇게 큰 이유가 이런 걸 숨기고 있어서였군.

장홍이 짐승의 가죽을 펼치더니 손가락으로 뭔가를 가리키며 엄숙하게 말했다.

“여길 보세요. 이게 바로 북쪽 전체를 그려 놓은 지도예요.”

시하가 고개를 들어 그곳을 바라봤다.

이게 무슨 지도란 거지? 젠장, 전부 동그라미밖에 안 보이잖아. 당신네 지도는 이렇게 생겼어요? 이런 지도로 싸움에서 이기는 것이 더 이상하겠네.

하지만 그곳에 있는 사람들은 당연한 듯 그 지도를 바라보고 있었다. 심지어 옆에 있던 흑룡마저 이상한 점은 전혀 발견하지 못한 눈치였다. 흑룡은 오히려 신기한 듯 짐승의 가죽을 이리저리 만지며 냄새를 맡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갑자기 차가운 표정으로 가죽을 던져 버렸다.

“상신님, 여기가 바로 저희가 머물고 있는 곳이에요.”

장홍이 시하의 속마음은 전혀 모르고 짐승의 가죽 위에 그려진 삼각형 모양을 가리키며 말했다.

“3일 후, 저들은 북쪽에서 이곳으로 진격해 올 거예요. 저희가 지금 있는 곳이 제일 마지막 방어선이라 더 물러설 수 없어요.”

이건 아마도 문화 차이에서 오는 문제일 거야. 아마도 신계의 지도는 추상파 화가가 그린 것이 분명해.

시하는 크게 숨을 들이마신 후 마음을 가라앉혔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그들이 설명하고 있는 전황을 들으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그곳의 정황을 살펴보려고 했다.

그들이 지금 있는 그곳은 성천경(星天境)이라고 하는 곳이었다. 시하가 추측한 대로 그곳은 오행서천진에 둘러싸여 있었다. 그곳 사람들은 그것을 ‘천진’이라고 불렀다. 아무도 그 천장 밖을 나가 보지 못했고, 아무도 밖의 세계가 어떻게 생겼는지 몰랐다. 다만 그 천장은 매년 겨울이 다가오면 약해져서 가끔 괴물들이 뚫고 들어와 사람을 해친다고 했다.

그리하여 매년 이맘때가 되면 수사들이 모두 한자리에 모여 그 괴물을 물리치고 그곳을 지킨다고 했다. 천장에는 모두 네 개의 구멍이 있고 동서남북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모든 구멍은 동부 수사들이 책임지고 막고 있었는데, 사람들은 그것을 의무로 생각했다. 괴물들의 능력은 높기도 하고 낮기도 했지만 모두 동쪽에 집중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들이 있는 북쪽에 수사들이 제일 적고, 매년 사망자도 많이 발생하고 있어 그들을 상대하기가 아주 어려운 상황이었다.

생각했던 대로 성천경 수사들은 모두 수행 계급이 보통 현선 이상이었지만 신계에 오른 사람은 많지 않았다. 전체 성천경에 명성이 있는 수사는 열 손가락에 꼽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 수사들마저 그런 집단 활동에는 참여하지 않으려고 했다.

북쪽은 올해 들어 더욱 재수 없는 일만 생긴다고 했다. 무슨 일인지 지금까지 괴물들이 제일 적게 나타나던 북쪽에 아주 많이 그것도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었다. 게다가 들어오는 괴물들마다 모두 높은 계급이라 그로 인한 손실이 아주 참혹했다. 그렇게 서너 차례의 공격을 당하고 나니 이제 그곳의 인원은 절반이나 줄어들었다.

다행히 임시로 그곳의 지휘를 맡고 있던 장홍이 나머지 세 곳에 도움을 요청하면서 희망이 생겼다. 그리하여 그들이 그곳으로 온 것이었다.

그래서 저들이 우릴 지원자라고 생각한 모양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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