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중에 천둥 번개가 번쩍거리더니 채찍처럼 거수의 몸을 내리쳤다. 거수가 갑자기 크게 비명을 질렀다. 그러자 칠흑처럼 검던 눈이 갑자기 붉은색으로 변하더니 몸에 있던 화염들도 활활 타오르기 시작했다. 거수가 비명을 지르더니 그들을 향해 달려오기 시작했다. 순간 지면이 흔들리더니 바닥에 커다란 균열들이 생겼다. 시하가 중심을 잡지 못하고 하마터면 그 틈 사이로 떨어질 뻔하다가 간신히 균형을 잡고 일어섰다.
“무슨 물건이지?”
흑룡이 얼굴을 찌푸리더니 거수를 향해 꼬리를 흔들었다. 순간 쿵쾅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기세등등하던 거수가 흑룡의 꼬리에 얻어맞더니 몸이 몇백 미터 밖까지 날아갔다. 우렁찬 진동 소리와 함께 거수가 숲에 있던 나무들을 넘어뜨리며 바닥으로 쓰러졌다. 역시 어떤 짐승이든 용족 앞에서는 모두 종이호랑이에 불과했다.
거수가 고통스러운 비명 소리를 내는 동시에 사람의 비명 소리도 들렸다.
“아!”
갑자기 거수의 몸에서 신식이 떠오르더니 바로 공중으로 사라졌다. 선수의 몸에 어떻게 사람의 신식이 있을 수 있지?
시하가 긴장된 마음으로 그곳으로 다가가 신식으로 그의 몸을 살피기 시작했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선수의 목 위로 네 개의 고리가 보였다. 그 고리들은 아주 단단히 밀착되어 있어 마치 영혼에까지 파고든 것처럼 보였다. 이 몇 겹의 고리들이 그의 움직임을 제어하고 있는 듯했다.
누군가에게 제어당하고 있는 걸까? 하지만 다행히도 흑룡이 꼬리를 흔들어 대는 바람에 그 네 겹의 고리 위에 있던 신식이 사라져 버렸다.
시하는 순간 동물 학대의 현장에 와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괴수든 선수든 수사들과 그들 사이가 그렇게 평화로운 관계는 아니었지만 수사에게 굴복당한 괴수는 보지 못했었다. 대부분 계약을 맺어 서로 상부상조하는 관계는 봤어도 이렇게 아예 선수의 육체를 학대하여 강제로 굴복하도록 하는 모습은 처음 목격했다. 보아하니 이 괴수가 바로 그 사람들이 말했었던 수산수인 듯했다.
시하가 참다못해 신력을 모아 그의 몸을 꽁꽁 묶고 있는 고리를 부수어 버렸다.
다섯 겹의 고리가 부서지자 앞에 있던 거수의 몸이 아주 작게 변해 버렸다. 시하는 그제야 그의 몸이 얼마나 말라 있었는지 제대로 볼 수 있었다. 흰 비늘 외에 뼈밖에 보이지 않았다. 눈도 움푹 들어가 있어 마치 해골처럼 보였다.
“어?”
흑룡이 언제 왔는지 바닥에서 끙끙거리고 있는 어린 괴수를 보더니 냄새를 맡기 시작했다.
“왜 괴수의 몸에서 용의 기운이 느껴지고 있지?”
“용의 기운?”
“아주 미세하기도 하고, 다른 기운도 섞여 있긴 하지만 용의 기운이 분명해.”
설마 이 선수가 용의 혈통인 걸까? 그러고 보니, 만약 선수가 이렇게 마르지 않았다면 겉모습만 봤을 때…….
“도철!”
시하가 깜짝 놀라며 그의 머리 위에 올라와 있는 그 울퉁불퉁한 혹을 바라봤다. 만약 저 혹이 뿔로 자라난다면 정말…….
“도도? 너 설마 도도?”
바닥에 있는 어린 선수는 아무 반응도 없었다. 그저 끙끙거리며 고통스러운 신음만 낼 뿐이었다.
아니야. 도도는 변신하면 어린아이로 변신했었어. 그리고 이제 나이도 들어서 이미 뿔도 나와 있을 거야. 설마 이 세상에 똑같은 모습을 한 도철이 또 있는 걸까?
그러고 보니 이곳은 신계였지. 용족이 대부분의 영역을 장악하고 있으니 또 다른 도철이 나타난다고 해도 이상할 건 없겠네!
“끙.”
바닥에 있던 어린 선수가 신음 소리를 냈다. 그는 고통스러운지 작은 발을 쳐들고 이리저리 흔들고 있었다.
시하가 주머니를 열어 안에 있던 선석을 한참 뒤졌다. 그리고 구석에서 구전환혼단을 꺼내 그의 입에 넣어 주었다. 하지만 어떻게 된 일인지 시하가 구전환혼단을 그에 입에 넣어주자 잠시 후 다시 토해 냈다.
시하가 놀라며 바닥에 떨어진 구전환혼단을 주워 입에 다시 넣어 주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가 다시 토해 냈다. 그렇게 두세 번을 반복했지만 그는 여전히 토해 내기만 했다.
이놈의 선수가 죽으려고 작정했나!
“왜 자꾸 진흙을 먹이는 거야!”
흑룡이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바닥에 떨어진 구전환혼단을 바라보더니 시하에게 말했다.
“선수들은 진흙을 먹지 않아.”
누가 흙을 먹였다는 거야!
“난 약을 먹이고 있는 거야. 선수의 상처가 너무 심해서 약을 먹이고 있는 거라고!”
특히 방금 선수가 고리들을 너무 오랫동안 쓰고 있었던 탓에 원신이 상해 있었다.
“이 선수의 상처는 그 진흙으로 치유할 수 없어. 차라리 이걸 먹이는 것이 나을 거야. 이걸로 원기를 회복할 수 있어.”
선석? 시하가 시험 삼아 선석을 그의 입에 넣어 보았다. 역시나 그 선석이 그의 몸속으로 들어가더니 도철의 쇠약한 몸이 힘을 얻기 시작했다.
효과가 있어! 시하가 기뻐하며 더 많은 선석을 그의 입에 넣어 주었다. 그제야 어린 도철이 원기를 회복하고 몸의 상처도 회복했다. 그가 큰 눈을 굴리며 시하를 바라보았다.
“끙끙, 끙.”
어린 도철은 아직 말은 하지 못하고 머리를 그녀의 손에 비비더니 겨우 몸을 일으켜 시하의 품에 안겼다. 시하가 그를 안고 그의 털을 쓰다듬으며 몸을 살폈다.
“흑룡, 우선 여기를 떠나자.”
그 망상증에 걸린 사람들이 언제 또 몰려올지 몰랐다. 게다가 시하는 이제 그들의 선수를 훔친 몸이 되어 버렸다.
“선수를 데려가겠다고?”
흑룡이 귀찮은 표정으로 그녀의 품에 안긴 선수를 바라봤다. 그가 신족의 위압을 뿜어냈다.
“그건 낮은 계급의 혼혈 선수에 불과해. 구해준 것만으로도 과분하다고.”
어린 도철이 그를 바라보더니 몸을 덜덜 떨었다. 흑룡의 그 용족에 대한 자긍심이 또다시 발작했다.
“하하, 용감무쌍한 흑룡 대인님, 대인님의 눈에는 이 어린 선수가 당연히 하찮아 보이시겠죠. 하지만 그를 이곳에 혼자 버려두면 방금 그 사람들이 다시 이 어린 선수를 데려다가 가둘 거예요.”
이제 이 정도 비위는 아무것도 아니지.
“만약 당신이 구해준 이 흑룡이 다른 사람에게 잡혀 가기라도 하면, 그건 당신 체면도 떨어지는 일 아니겠어요? 이게 다 당신의 그 명성을 위해서 그러는 거라고요”
흑룡이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며 뭔가 고민하는 듯하더니 시하에게 말했다.
“네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다 알아들을 수는 없지만, 그래도 네가 내 능력이 대단하다는 건 알고 있는 모양이야.”
“흑룡 대인은 이 세상에서 제일 힘이 세고, 천추만대에 그 명성이 자자해서 삼계를 통일할 거예요.”
“그건 당연하지.”
흑룡이 기뻐하며 자신의 꼬리를 가볍게 흔들었다. 그러고는 시하를 번쩍 들어 올려 흔드는 바람에 시하의 품에 있던 어린 도철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흑룡이 그의 얼굴을 바라보더니 입을 열었다.
“더러워 죽겠네! 넌 나의 새끼니까 다른 선수는 안으면 안 돼.”
그가 말을 마치면서 시하를 자신의 뿔 사이에 앉혔다. 그리고 자신의 오른쪽 손가락 두 개를 이용해 바닥에 떨어진 어린 도철을 집어 올렸다.
“이제 출발해!”
그가 말을 마치더니 순식간에 그 숲을 빠져 나왔다.
흑룡은 그를 데리고 두 시진이나 날아 이미 그 숲을 벗어나고 있었다. 시하의 마음이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목표가 사라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시하의 계산대로라면 그들은 이미 지도에서 봤던 그 선기가 가득한 지경에 도착한 듯했다.
지도는 자세한 설명은 하지 않고 있었다. 다만 그 지도 위에 있던 짙은 선기는 오행서천진 밖이라는 것만 알려주고 있었다. 진법 안에 있는 세계가 아주 컸지만 진법 밖에 있는 선기의 농도와는 많은 차이가 있었다. 진법 안에 있는 선기는 그렇게 농도가 짙지도 않고 심지어 신력도 아주 적었다.
그들이 용곡을 나온 후 그렇게 많은 날을 달려왔지만 사람 그림자는 보이지도 않았다. 흑룡의 말에 의하면 그는 지금까지 그곳에 살면서 인족(人族)은 보지 못했다고 했다.
시하는 삼천세계의 일로 인류가 모두 작은 세계로 가 버린 듯했다. 황무지가 된 신계에는 이미 인족이 존재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오는 길에 살펴보니 적지 않은 인족들이 눈에 띄었다. 수행 계급 차이는 꽤 많이 나는 듯했다. 수행 계급이 낮은 사람은 연기, 축기, 그리고 높은 사람은 금선, 현선 등 딱히 제한도 없는 듯했다.
그리고 삼계에는 용족도 전설 속에만 존재하는 인물인데, 이곳 사람들은 용족과 이웃처럼 지내고 있었다. 흑룡은 괴수라서 그런 걸까? 그 점도 아주 이상했다.
다만 전에 그들이 봤던 오행서천진은 인족들의 안전을 위해 특별히 히 위험한 신계에서 멀리 떨어뜨려 놓은 듯했다. 하지만 이렇게 큰 진법을 누가 설치한 걸까? 천도 외에 누가 이렇게 어마어마한 힘을 가질 수 있을까?
시하는 그게 누구든 그도 분명히 천도와 관련이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반드시 그 사람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를 찾아야만 다시 돌아갈 수 있으리라.
하지만 지금 그녀에게 제일 급한 것은 그곳의 상황을 제대로 살펴보는 것이었다. 하지만 흑룡과 도철이 걸림돌이 되고 있었다. 도철은 그래도 괜찮았다. 선수이긴 하지만 워낙 어리기도 하고 상처를 치료하고 있었기 때문에 영수대(靈獸袋, 영수를 넣어 두는 주머니)에 넣어 두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흑룡은.
전에 병아리도 영수대에 넣어 본 적이 있지만 아직 어린 봉황이었고 신족의 힘이 왕성하기 전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하지만 흑룡은 이미 성장한 용이고 힘도 다른 용들보다 세서 조금만 움직여도 영수대가 망가질 것이 분명했다. 시하가 지척에 보이는 작은 마을을 내려다보며 생각에 잠겼다.
“흑룡, 너 이곳에 남아 있을래? 내가 소식을 듣고 올 때까지 이곳에서 기다릴래?”
“나는 왜 같이 가면 안 되는데? 설마 내가 저 애벌레들을 무서워하기라도 할까 봐? 흥, 이 꼬리로 저런 애벌레들은 단번에 쓸어 버릴 수 있다고.”
“난 그저 저 사람들이 시끄럽게 떠들어 너를 귀찮게 할까 봐 그러는 거야.”
보아하니 이곳에도 망상증에 걸린 사람들이 아주 많은 듯했다.
“우리 인생은 낯선 것투성이니, 항상 조심해야 돼. 너는 이렇게 체격이 거대하니까 사람들이 경계하면 제대로 된 정보를 얻어 내기도 어려울 거야.”
흑룡이 꼬리를 흔들며 잠시 망설이더니 한참 후에야 입을 열었다.
“그럼 나도 너처럼 이렇게 변신하면 안 돼?”
“너 변신도 할 수 있어?”
“몸을 돌돌 말아서 너처럼 만들면 되지. 그게 뭐가 어려워?”
만약 흑룡이 변신할 수 있다면 편리할 듯했다. 시하가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어서 변신해 봐.
그러자 금빛과 함께 그의 몸이 점점 작아지기 시작했다. 잠시 후 그의 몸이 점점 그녀와 똑같은 사람의 모습으로 변해 갔다.
“어때? 비슷해?”
비슷한 게 아니라 똑같잖아?
“이렇게 하는 것도 재밌네.”
그가 신기한 듯 손을 들었다 놨다 하며 자신의 모습을 살폈다. 그리고 자신의 가슴을 만지며 마치 학자라도 된 듯 진지한 표정으로 물었다.
“너는 왜 여기에 살이 더 많아? 크진 않지만, 그래도 불편하지 않아?”
“……방금 크지 않다고 한 말은 취소해! 그리고 넌 나와 똑같으면 안 돼. 그러면 쉽게 눈치챌 수 있다고.”
쌍둥이라고 해도 이렇게까진 닮진 않았을걸. 그리고 그 얼굴에 그렇게 굵은 목소리는 어울리지도 않는다고.
“귀찮네. 그럼 어떻게 변하면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