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65화 (165/189)

“왜 그래?”

“앞에.”

그가 초조한 모습으로 꼬리를 마구 흔들더니 갑자기 고개를 돌려 오른쪽을 향해 미친 듯이 날아갔다.

“빨리 이곳을 떠나야 해!”

시하가 고개를 돌려 보니 뒤쪽에 있는 하얀 안개 속에서 붉은 노을이 올라오고 있었다. 그 노을로 인해 그곳이 온통 붉은색으로 변해 있었다. 시하가 눈을 부릅뜨고 그곳을 바라봤다.

아니야, 저건 노을이 아니라 불이었어!

어디에서 나타난 건지 거센 불길이 활활 타오르더니 그들이 있는 곳까지 뻗어 오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몸에는 불길이 닿지 않고 있었다. 다만 불의 열기로 몸이 뜨거워지는 것은 느낄 수 있었다.

“봉족(鳳族)의 진화(眞花)예요.”

흑룡이 수염으로 그녀를 자신의 등 뒤로 밀면서 소리쳤다.

“애벌레, 어서 내 비늘 아래로 들어가. 어서!”

그의 등 뒤 왼쪽에 위치해 있는 발에 다른 비늘들하고는 달리 역방향으로 자라 있는 비늘이 보였다. 비늘이 서서히 열리더니 그 사이에 작은 틈이 생겼다. 시하는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빠르게 그곳으로 뛰어 들어갔다. 그러자 비늘이 갑자기 커지면서 그녀의 몸 전체를 덮었다.

눈앞이 어두워지더니 그 뜨거운 열기가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잠시 후, 그녀의 눈앞에 또다시 붉은 불빛이 보였다. 불길은 이제 흑룡의 몸 전체를 덮고 있었다. 시하는 심지어 그 불길이 흑룡의 비늘 가까이까지 올라와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대체 어떻게 된 일이지? 안개, 풍인, 그리고 흑룡까지 위협하고 있는 불길. 이런 진법은 처음이었다. 후지가 그녀에게 진법을 가르쳤을 때에도 이런 진법은 들어 보지 못했었다.

“찾았어요, 작은 주인님. 시스템의 자료 창고에서 찾아봤는데, 이곳에 깔린 진은 ‘오행서천진(五行噬天陳)’이었어요.”

“그게 무슨 뜻이야?”

“이 진법을 ‘서천’이라고 하는 것은 경계가 없기 때문이에요. 그리고 천지의 오행영기가 그곳에 모여 있어 모습을 바꿔 가면서 어떤 공격도 할 수 있어요.”

그 말은 이 진법에 봉족의 진화뿐만 아니라 다른 것도 들어 있다는 건데.

“이곳은 진법이 만들어 낸 작은 세계일 뿐 진정한 세계라고 할 수 없어요. 그리고 이곳에는 생물들이 머무르거나 생존할 수 없어 오행서천이라고 불러요.”

“그만, 어려운 말은 그만하고 이 진은 어떻게 뚫을 수 있는데?”

“그건 다시 찾아볼게요.”

한참이 지나서 시하가 다시 그 뜨거운 열기를 느낄 때쯤 한옥이 입을 열었다.

“작은 주인님, 이 진은 뚫을 수 없다는데요? 하지만 모든 진법은 모두 자기만의 운행 규칙이 있으니까. 그걸 찾아보면 뚫고 나갈 수 있을 듯해요.”

“어떻게 나갈 수 있지? 방법이 있어?”

“여기에 진법을 움직이는 방법이 있어요. 하지만 우리가 진법의 중앙에 있고 안에 있는 위치가 계속 변하고 있어서 전혀 예측하기 어려워요. 아, 전에 주인님이 남겨주신 그 법기 안에 신기가 하나 들어 있는데 그걸 사용하면 어떨까요?”

“신기?”

그런 것도 있어? 난 왜 몰랐지?

“그럼 뭘 더 기다려? 어서 갖고 와 봐.”

“잠깐만요! ……찾았어요!”

젠장, 그건 나침반이잖아! 그건 여행하면서 받아 놓았다가 깜박하고 삭제하지 않은 건데. 최소한 내비게이션이라도 꺼내 와야 하는 거 아냐?

“작은 주인님, 이 신기만 있으면 어떤 진법도 뚫고 나갈 수 있을 거예요.”

한옥이 흥분된 목소리로 말했다. 흥분한 나머지 시하의 표정은 전혀 개의치 않고 있었다.

시하가 실망한 표정으로 나침반 애플리케이션을 열어 보았다.

“말해 봐. 어디로 가야 하지?”

“우선 남쪽으로 20척이요.”

시하가 나침반을 바라보면서 머리 위에 있는 용의 비늘을 두드렸다.

“흑룡, 나에게 나갈 방법이 있어. 우선 오른쪽으로 20척만 가 봐.”

흑룡이 몸을 흔들거리며 아무 말 없이 그녀의 지시에 따라 방향을 바꿨다. 나침반이 정말 도움이 되어야 할 텐데.

시하는 한옥이 지시하는 대로 계속해서 방향을 전환했다. 심지어 아예 오던 길을 다시 돌아가기도 했다. 그 봉족의 진화는 점점 더 뜨거워지고 있었다. 그 열기에 시하는 호흡조차 어려워졌다.

“도착했어요!”

드디어 한옥이 큰소리로 소리쳤다.

“앞에 보이는 것이 바로 출구예요.”

한옥이 가리키는 곳을 자세히 살펴보니 하얀 안개만 보이고 특별한 것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한옥이 확신에 차서 소리친 걸 보면 앞에 출구가 있는 건 분명했다.

“흑룡, 앞에 보이는 곳이 출구야. 어서 그쪽으로 가!”

흑룡이 시하의 말에 꼬리를 흔들더니 앞으로 날아갔다. 하지만 거의 동시에 앞에 있는 뭔가에 몸이 부딪쳤다. 주변에 풀처럼 끈적끈적한 기운이 그들을 둘러싸고 있어 앞으로 나가려고 힘을 쓰면 쓸수록 더욱 나아가기가 힘겨워졌다.

시하는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뒤에서 봉족의 진화가 점점 더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다. 진화는 그들이 있는 그곳의 공기마저 태우고 있는 듯했다. 어서 빨리 그곳을 벗어나야만 했다.

흑룡이 갑자기 크게 울부짖자 금광이 짙게 비치기 시작했다. 그가 네 발을 앞으로 들어 올리며 뭔가를 움켜쥐자 뭔가 찢어지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이어서 흑룡이 몸을 앞으로 날리며 그 하얀 안개 속에서 벗어났다.

시하의 몸이 위로 붕 떠오르는 느낌이 들더니 귓가에 산이 진동하는 듯한 큰 진동 소리가 들려왔다. 잠시 후, 시하는 숨어 있던 흑룡의 비늘에서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흑룡! 너무 힘들어. 나 땅에 엎드려 좀 쉬고 싶어.”

흑룡은 잠시 눈을 껌벅거리다가 바로 땅에 엎드렸다. 시하가 흑룡의 몸을 자세히 살폈다. 흑룡의 몸에 상처가 없는 걸 확인한 시하는 그제야 안심하며 숨을 크게 내쉬었다. 흑룡은 정말 단지 피곤한 듯했다. 시하는 그제야 방금 그 숨이 막혀 버릴 듯한 상황에서 온전히 벗어난 듯했다.

사방을 둘러보니 그들이 도착한 곳은 어느 한 숲속이었다. 시하가 한참 그곳을 둘러보고 있을 때 갑자기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구지?”

몇 명의 사람들이 그들 앞에 우르르 나타나더니 손에 들고 있던 검을 겨누었다.

사람이잖아!

시하가 기뻐하며 속으로 소리쳤다. 신계에 올라온 후 처음으로 만나게 된 사람들이었다. 시하가 그들에게 인사하려고 하는 그때 갑자기 그들 중에 제일 앞에 서 있던 푸른 옷을 입은 남자가 놀라며 소리쳤다.

“이건 무슨 괴물이지?”

그가 얼굴이 하얗게 질리더니 두려운 표정으로 바닥에 엎드려 있던 흑룡을 노려봤다. 다른 사람들도 그의 말에 모두 흑룡을 노려봤다. 마치 아주 놀라운 상황을 목격한 사람들 같았다.

“이건 저 안개 속에서 나온 거예요.”

“절대 저 괴물을 성천경(星天境)에 들어가게 해서는 안 돼요. 그렇지 않으면 우리를 죽여 버릴지도 몰라요.”

“저 괴물을 죽여 버려야 돼요. 절대 살려 두면 안 돼요.”

“맞아요. 절대 안으로 들어가게 해서는 안 돼요.”

그들이 말을 마치더니 흑룡을 향해 법술을 던졌다.

“잠깐만요!”

이건 용족이라고요. 보면 모르나?

시하가 그들을 막으려고 했지만 이미 늦어 버렸다. 그들이 던진 술법이 이미 흑룡의 몸 가까이로 다가왔다. 하지만 하나도 예외 없이 모두 흑룡의 비늘에 막혀 작은 흔적조차 남기지 못했다.

“시끄러워 죽겠네!”

흑룡이 귀찮은 듯 꼬리를 흔들자 사람들이 던진 법술들이 순식간에 다시 그들에게로 튕겨 나갔다. 사람들은 미처 그의 반격에 대비하지 못하고 있다가 오히려 자신들이 던진 법술에 상처를 입고 바닥에 쓰러졌다. 그 공격으로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바닥에 쓰러져 피를 토하고 있었다.

“어? 애벌레, 어서 저길 봐 봐, 저기에 너랑 똑같이 생긴 벌레들이 있어.”

내가 벌레가 아니라고 얘기했잖아!

“여러분!”

시하가 흑룡의 반응은 무시한 채 앞으로 몇 걸음 나서며 그들에게 설명했다.

“저희는 다른 악의는 없어요. 다만 어쩌다 보니 이곳에 잘못 떨어진 것뿐이에요.”

“사람이에요!”

맞은편에 서 있던 사람은 시하의 말은 들은 척도 하지 않고 오히려 놀란 표정으로 더 크게 소리쳤다.

“요인(妖人)이다! 이건 분명 요인이야!”

“저 여자가 괴물을 이곳으로 데리고 온 거야. 여자를 죽여 버려야 해요.”

“죽이자! 죽이자!”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오더니 모든 법기를 시하를 향해 겨누었다.

사람 말은 듣지도 않고 공격만 하잖아?

하늘 가득 선기들이 그녀를 향해 날아오고 있었다. 순식간에 각양각색의 술법들이 하늘을 붉게 물들였다. 시하도 할 수 없이 자신의 주위에 위압을 풀어 놓았다.

“제 말을 좀 들어 봐요!”

순간 그들이 손에 들고 있던 선기들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사람들이 갑자기 그녀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바닥에 무릎을 꿇고 있었다. 사람들의 수행 계급은 높아 봤자 금선에 불과했다. 그 능력으로 용족을 건드리다니. 그 용기를 칭찬해야 할지 아니면 욕을 해줘야 할지 모르겠다.

“저 여자의 수행 계급은 신의 경지에 올라 있어요.”

그곳에 있던 사람들이 그제야 자신들의 실력이 얼마나 많은 차이가 있는지 알아채더니 뒷걸음을 치기 시작했다. 시하가 한숨을 내쉬며 위압을 거둬들였다. 그리고 설명을 하려고 입을 열었다.

“제 말 좀…….”

“이 마녀를 들여보내면 안 돼!”

그들 중 누군가가 크게 소리쳤다.

“어서 가서 수경수(守境獸)를 풀어놔야 해요!”

사람 말을 좀 들어 보면 안 될까? 난 아무것도 안 했잖아!

아쉽게도 맞은편에 몰려 있던 그 망상증에 걸린 촌민들은 황급히 검을 날려 도망가 버렸다. 그들은 조금이라도 늦었다가는 뭔가에 잡혀 먹히기라도 할 듯 황급히 그곳을 떠나 버렸다. 어떤 사람들은 심지어 서둘러 도망가다가 나무에 부딪치기도 했다. 순식간에 그곳 수림에는 시하와 흑룡만 남아 있었다.

너무 힘들잖아! 사람과 소통하는 것이 이렇게 어려운 건 처음이네.

“난 저 새로운 벌레들이 너무 싫어!”

흑룡이 수염을 덜덜 떨며 멀어져 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다가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

“흑룡 대인, 저들은 대인의 상대가 아니에요!”

시하가 흑룡의 비위를 맞추며 말했다. 흑룡의 성질에 화라도 나서 날뛰면 정말 사람들이 상상하는 그 괴물로 변해 버릴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흥!”

시하의 말에 기분이 좋아진 흑룡이 고개를 쳐들더니 자랑스럽게 말했다.

“그래 봤자 애벌레들이잖아. 애벌레, 이제 어디로 갈 거야?”

시하가 그제야 이곳에 온 목적을 떠올리며 지도를 펼치려고 하는데 갑자기 옆에서 요란한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하얗고 거대한 선수 한 마리가 그녀 앞에 나타났다. 온통 하얀 비늘로 덮여 있었고 네 개의 발을 갖고 있었다. 턱에는 기다란 덧니가 한 쌍 나와 있었고 머리 위에는 작은 산봉우리처럼 울퉁불퉁 몇 개의 혹이 올라와 있었다. 그리고 네 개의 다리에는 붉은 화염이 타오르고 있었다. 체형이 크긴 했지만 뭔가 허약한 느낌이었다. 그의 몸을 덮고 있는 비늘 밑으로 뼈의 형태가 다 드러나 있었다.

“수산수, 저들을 죽여 버려!”

어디선가 귀에 익숙한 소리가 들려왔다. 방금 도망간 무리들 속에서 사람들을 이끌던 이의 목소리였다.

이제 보니 이 사람들 망상증이 심각하잖아. 이제 좀 그만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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