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63화 (163/189)

잠시 후, 그녀의 귓가에 금속품 같은 것들이 우르르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녀가 서 있던 자리에 금빛 찬란한 물품들이 가득 굴러 들어오면서 시하는 눈이 부셔서 눈도 제대로 뜰 수 없게 되었다.

금룡이 뭔가를 잡더니 그녀에게 건넸다. 자세히 보니 그건 한 무더기의 황금이었다. 황금은 돌처럼 큰 것도 있었고 진주처럼 작은 것도 있었다. 하지만 하나같이 황금빛을 반짝이고 있었다.

이제 보니 이 바닥 아래 깔린 것들이 모두 황금이었어?

“이건 내가 어렵게 구해 온 것들이야. 너무 예쁘지 않아? 잠이 안 오면 잠시 갖고 놀 수 있도록 빌려줄게. 다 갖고 놀면 다시 돌려줘야 해 알았지?”

그가 황금을 그녀의 품으로 밀어 넣더니 뒤뚱뒤뚱 몸을 움직여 방금 황금을 파낸 그 구덩이를 막고 앉았다. 마치 누군가 그곳을 발견이라도 할 세라 꼼꼼히 눌러 놓았다.

“가서 놀아!”

용이 그녀를 바라보며 꼬리를 휘저었다. 재촉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녀의 품에 안은 황금을 노려보고 있었다. 마치 그녀가 그 황금을 돌려주지 않을까 걱정하는 듯한 눈빛이었다.

시하가 입을 삐죽 내밀었다. 그리고 그 황금을 그에게 돌려주며 말했다.

“필요 없어!”

“별로야?”

금룡이 놀라며 실망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러면서도 황금을 받아 자신의 배 밑으로 감추는 것을 잊지 않더니 뭔가 결심한 듯한 표정으로 자신의 꼬리를 그녀의 앞으로 내밀었다. 그리고 마치 보물이라도 바치듯 덜덜 떨고 있었다.

“그럼 이 꼬리를 빌려줄게. 위에 있는 비늘을 세고 있다 보면 잠이 올 거야.”

“…….”

누가 네 몸의 비늘을 센대? 자기가 무슨 양이라도 되는 줄 알아?

“내 비늘은 아주 아름다워.”

그가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자신의 꼬리를 뽐내기라도 하듯 그녀 앞에서 이리저리 흔들었다.

“어떤 용도 나처럼 이렇게 아름다운 황금빛 비늘을 갖고 있지 않을걸? 너에게 잠시만 빌려줄 테니까 한 번 세어 봐.”

이놈의 용은 왜 이렇게 금색 물건을 좋아하는 거지? 시하가 크게 한숨을 들이마신 뒤 말했다.

“사실은…….”

시하는 자신이 왜 그곳에 머물 수 없는지에 대해 얘기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때 갑자기 하늘에서 거대한 울부짖음 소리가 들려왔다.

소리가 얼마나 큰지 온 대륙을 다 들썩하게 만드는 듯했다. 그리고 그 소리에는 아주 엄청난 위압이 느껴지고 있었다. 맑게 개었던 하늘에 먹구름이 몰려오면서 순식간에 캄캄하게 변했다. 그 울부짖음 소리에 살기가 느껴졌다.

금룡이 놀라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긴장한 모습으로 몸에 비늘마저 뻣뻣하게 곤두세웠다. 그러더니 자신이 그렇게 아끼던 황금은 신경도 쓰지 않은 채 시하를 데리고 먼 곳으로 날아가기 시작했다. 시하가 깜짝 놀라 그를 바라보았다.

용이라면 금룡과 같은 족속이 아니었나? 근데 왜 도망가는 거지?

금룡이 얼마나 빠르게 날았던지 풍경이 빛처럼 지나갔다. 잠시 후, 그녀 앞에 보이던 꽃밭과 나무숲도 더 보이지 않았다. 금룡은 그렇게 한참을 날아 어느 한 절벽에 도착해서야 멈춰 섰다.

“왜 그러는 건데?”

시하가 참다못해 그에게 물었다. 금룡은 아무 말도 없이 그저 자신의 그 긴 수염만 휘젓고 있었다. 그리고 극도로 긴장한 모습으로 그들이 방금 날아온 그곳을 뒤돌아봤다.

그의 눈빛이 향하는 곳을 따라 바라보자 그곳은 이미 불길이 하늘로 치솟고 있었다. 그리고 그 가운데 가끔 번쩍거리는 뇌광이 보였다. 가끔 그곳으로부터 커다란 용의 울부짖음 소리와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이어서 엄청난 위압이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그들이 이미 그곳으로부터 먼 곳에 와 있었지만 시하는 자기도 모르게 몸이 덜덜 떨렸다.

저건 봉황의 울음소리? 설마 용과 봉황이 싸움이라도 하는 걸까?

신족들의 싸움을 처음 목격한 시하는 놀란 표정으로 그 광경을 지켜봤다. 신족들의 싸움이라 그런지 어마어마한 규모를 자랑했다. 하늘로 솟아 오른 불길과 천둥 번개는 금방이라도 하늘을 찢어 놓을 듯 격렬했다. 방금 금룡이 제때에 그곳을 피하지 않았더라면 이제 갓 신의 실력을 갖춘 시하는 보나마나 뼈도 추스르지 못했으리라.

그들의 싸움은 꼬박 한 시간이나 계속됐다. 잠시 후, 그 어마어마한 불길이 서남쪽으로 옮겨 가면서 그 무시무시한 신압(神壓)도 점점 줄어들었다. 그리고 하늘에서 끊임없이 번쩍이던 천둥 번개도 더는 보이지 않고 있었다.

이제 다 싸웠나 보네. 시하는 그제야 한숨을 내쉬며 안심했다.

“내 뒤에 숨어 있어, 나오지 마!”

금룡이 긴장한 모습으로 소리치며, 꼬리로 시하를 자신의 몸 뒤로 밀었다. 그리고 이어서 거대한 자신의 꼬리로 그녀의 몸을 완전히 덮어 버렸다. 시하는 그의 꼬리에 눌려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는 신세가 되어 버렸다.

시하는 눈 깜짝할 사이에 그의 몸에 깔려 납작한 호떡이 된 기분이 들었다. 석양이 비치는 가운데 구름 속에서 뭔가 그들을 향해 날아오고 있었다. 잠시 후, 귓가에 득의양양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건 그 잡용이잖아? 어쩌다가 아직 살아 있는 거지?”

시하는 금룡의 꼬리가 덜덜 떨리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바람 샐 틈도 없이 꽉 막혀 있던 금룡의 꼬리에 아주 작은 틈이 생겼다. 시하는 그제야 밖의 상황을 자세히 관찰할 수 있었다.

공중에 두 마리의 용이 흔들거렸다. 한 마리는 순백의 몸을 하고 있었고, 다른 한 마리는 온몸에 푸른빛을 띠고 있었다. 그들의 몸은 금룡보다 크지 않았지만 그들의 몸에 있는 비늘이나 수염을 보면 뭔가 특별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푸른색과 하얀색이 서로 조화를 이루어 완벽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게다가 아름다운 석양까지 그들을 비추고 있어 그들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듯했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들이 내뱉는 말들은 그리 아름답지 않았다.

“만약 내가 너같이 생겼으면 그냥 죽어 버리고 말았을 거야.”

청룡이 차갑게 콧방귀를 뀌더니 춤을 추듯 하늘에서 몸을 돌리며 말했다.

“넌 우리 용족의 수치야.”

“맞아.”

백룡이 그의 말에 맞장구치며 깔보는 눈빛으로 금룡을 노려보더니 재밌는 장면이라도 목격한 듯 웃으며 말했다.

“어, 하하하, 저걸 봐. 자신의 비늘을 황금색으로 물들였어.”

“그러네. 네가 말해주지 않았으면 몰라볼 뻔했어. 정말 염색을 했잖아. 하하하하하. 너무 웃겨. 다른 색으로 염색하면 정말 그 발이 다섯 개인 금룡이라도 되는 줄 알아?”

“그러니까 말이야. 잡용 주제에 금룡 행세를 하다니.”

“꺼져!”

금룡이 몸을 심하게 떨며 거친 숨을 몰아쉬었고, 수염은 바람에 나부끼는 바람개비처럼 보였다. 바닥을 짚은 그의 네 발은 이미 땅속을 깊이 파고들고 있었다.

“아이고! 화도 내는 거야?”

청룡이 웃으며 비아냥거리는 말투로 말했다.

“우리가 뭐 틀린 말이라도 한 건가? 넌 주류에 들지 못하는 잡용이 맞잖아?”

“닥쳐! 난 잡용이 아니야. 함부로 말하지 마.”

“흥, 아니라면 왜 그 초라한 색을 감추는 건데?”

“그래. 잡용은 그냥 잡용일 뿐이야.”

백룡이 청룡의 말에 맞장구를 쳤다. 그러더니 뭔가 떠오른 듯 갑자기 공중으로 더 높이 날아올랐다. 그의 움직임에 하늘이 다시 어두워졌다. 그러자 갑자기 엄청난 소나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내 손을 잡아. 꽉 잡으라고!”

금룡이 서둘러 비를 피하려고 했지만 이미 늦어 버렸다. 황금빛으로 찬란하던 그의 몸이 순식간에 어두워지며 그의 몸을 황금빛으로 반짝여 주던 장식들이 조금씩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태양처럼 눈부시던 그의 몸이 빛을 잃더니 점차 칠흑처럼 어두운 검은 비늘을 드러냈다.

“죽여 버릴 거야!”

금룡이 화가 나서 소리치더니 몸을 일으켜 그들을 공격했다. 몸에 전광을 번쩍이며 청룡과 백룡을 향해 날아올랐다.

두 용은 그가 그렇게 나올 줄은 예상을 못 했는지 깜짝 놀라며 뒤로 물러섰다.

“흥! 잡용 주제에 감히 우리를 공격해?”

청룡이 꼬리를 흔들며 주위에 있는 전광을 물리쳤다. 하지만 밀려오는 신력을 미처 막지 못해 꼬리가 검게 그을렸다.

“너!”

청룡이 놀라며 금룡이 자신의 몸을 공격하려는 것을 발견하고 다급히 소리쳤다.

“잡용이 감히 동족을 공격해? 장로에게 일러서 널 우리 용족에서 아예 내쫓을 거야.”

그 말에 금룡이 멈칫하더니 공격을 멈추고 몸의 전광을 거두었다. 마치 충격이라도 받은 듯 절망하는 모습이었다. 그 모습을 지켜본 시하는 마음이 쓰라렸다. 그리고 그가 왜 이 꽃밭 아래 그렇게 많은 금을 감추고 있었는지 알 듯했다.

“흥, 넌 처음부터 쓸모없는 잡용이었어!”

금룡이 공격을 멈추자 여유가 생긴 청룡이 뒤로 몇 걸음 물러서서 복수라도 하려는 듯 처음보다 더 심한 말들을 퍼붓기 시작했다.

“장로가 너를 용곡 주변에 머물게 한 것만으로도 감사한 줄 알아야지. 감히 동족을 공격해?”

“맞아. 역시 배은망덕한 잡용이야. 그래서 온몸에 그렇게 초라한 검은 비늘을 갖고 있잖아. 비늘도 검으니까 마음도 검지. 정말 못생겼어.”

“정말 못생긴 잡용이야.”

“이곳과 정말 어울리지 않아.”

“맞아!”

제기랄, 더는 들어줄 수가 없네. 저 두 용놈들 미친 거 아냐?

“잠깐, 두 마리? 아니 하나는 기둥같이 생겼고, 하나는 긴 호박같이 생긴 너희들, 대체 무슨 자신감으로 남의 외모를 평가하는 거지?”

“지금 뭐라고?”

두 용이 그제야 아래에 있던 시하를 발견하더니 노려봤다.

“넌 뭐 하는 물건이지?”

“내가 뭐 하는 물건인지는 중요하지 않아. 중요한 건 너희 둘은 그 물건도 못 되는 놈들이라는 사실이니까. 혹시 눈알이 썩었어? 지들은 그렇게 생겨놓고 왜 엉뚱한 사람을 헐뜯는 거지? 아니지, 왜 엉뚱한 용을 헐뜯어? 온몸이 푸르뎅뎅한 것이 꼭 오이처럼 생겨서는, 이걸 볶아 먹어야 하나 아님 무쳐 먹어야 하나? 그렇게 생긴 오이들은 사람들도 싫어하거든? 그리고 너.”

시하가 고개를 돌려 백룡을 바라봤다.

“너는 그 희멀건 색이 예쁜 줄 알아? 너의 몸에서 반사되는 그 빛이 햇볕을 오염시키고 있는 건 알아 몰라? 너처럼 그렇게 허연 기둥은 이미 유행도 지난 색깔이거든. 위로만 길쭉하게 생겨 가지고는. 너희처럼 이렇게 못생긴데 자신감이 있는 용은 나도 처음 봐.”

“어디서 온 벌레지? 너 방금 뭐라고 했어?”

두 용이 화가 나서 날뛰더니 시하를 향해 자신들의 손을 뻗었다.

“내가 뭐라고 했는데? 너희는 귀도 없어? 귀가 있으면 들었을 거잖아!”

시하가 차갑게 소리쳤다. 그리고 방금 청룡의 어투를 흉내 내며 계속해서 소리쳤다.

“아이고, 불쌍하네. 이제 몇 살이나 먹었다고 귀가 다 안 들리나?” “누가 귀가 안 들린다고 그래!”

청룡이 화가 나서 자신의 비늘을 뻣뻣이 세웠다.

“어디서 기어 나온 벌레가 감히 나를 욕보여. 내가 네놈을 먹어 버릴 테다!”

그가 시하가 있는 곳으로 다가오려고 했다. 그 순간 시하의 눈앞에 갑자기 금룡, 아니 흑룡이 나타나더니 그들을 향해 으르렁거렸다.

“이 아이는 건드리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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