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62화 (162/189)

시하가 기뻐하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 작은 신력을 몸속으로 끌어들이자 선기까지 함께 들어와 버렸다. 시하는 어쩔 수 없이 따라 들어온 선기를 다시 몸 밖으로 배출했다.

그 방법이 통했는지 잠시 후, 그 선기 안에 이제 아주 작은 신력만 남아 있었다. 선기를 덜어 내자 시하의 단전 속으로 뭔가 급하게 들어오는 느낌이 들면서 온몸에 기운이 불끈 솟는 듯했다.

이게 바로 신력이야!

시하는 서둘러 같은 방법으로 몸 안의 선기를 조절했다. 그리고 누에고치에서 명주실을 뽑아내듯이 몸 안에 남아 있던 선기들을 조금씩 밖으로 배출했다. 그 방법은 아주 고도의 집중력을 필요로 했다. 때문에 신식을 상하게 해서도 안 되고, 누군가의 방해가 있어서도 안 되어서 그녀는 오직 그 일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한옥도 신식 속에서 조용히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가끔 그녀의 신식에 상처가 나타나는 곳이 보이면 바로 시스템 창고로 가서 단약과 법기 같은 것들을 가져와 회복하는 일을 돕곤 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도 모른 채, 시하는 자신의 단전 안에 있던 선기 중에서 신력을 모두 뽑아내고서야 간신히 멈출 수 있었다. 원래 선기로 가득 차 있던 단전 속이 이제는 텅텅 비어 있었다. 대신 그 단전 속에는 이제 가끔 푸른 불빛만이 반짝거리고 있었다. 그 빛은 아주 희미하여 작은 입김에도 금방 꺼져 버릴 듯했다.

하지만 무슨 영문인지 그 작은 불빛이 그녀의 단전을 가득 채우고 있던 그 선기보다 훨씬 유용할 거라는 느낌이 들었다. 원래 뭐든 농축되면 더 강력해지듯이 말이다.

시하의 수행 계급은 이미 회복되었다. 거기에다 공법을 변경한 관계로 주변에 있는 선기로는 조금 부족한 느낌이 있었다. 한옥이 옆에서 열심히 돕고 있었지만 그녀의 단전 속에 있는 그 푸른빛의 신력은 여전히 그 크기를 유지하고 있었다.

시하가 깊게 숨을 들이마시며 정신을 집중한 후 다시 주변의 선기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잠시 후, 뜻밖에도 그녀의 오른편에서 아주 익숙한 기운이 느껴졌다.

시하가 깜짝 놀라며 주머니를 밖으로 꺼냈다. 주머니 안에는 지난번에 금룡이 그녀에게 준 내단들이 들어 있었다. 그 푸른빛의 신력은 바로 그 내단 안에서 나온 것이었다.

금룡은 그 물건을 먹고 싶지 않다고 했었다. 그렇다면 이 내단 안에 있는 신력은 바로 흡입할 수 있다는 걸까?

시하는 구슬 하나를 들어 시험 삼아 몸속에 있는 신력 속으로 넣었다. 그러자 왕성한 신력이 그 기운을 타고 단전 안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신력이 마치 수문을 열어 놓은 것처럼 끊임없이 단전 안으로 들어갔다.

시하는 밀려오는 신력에 미처 대응하지 못하여 하마터면 경맥에 손상을 입을 뻔했다. 서둘러 바닥에 앉아 심법을 움직이니, 온몸에 선기가 가득 찬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머릿속에서 뭔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려오더니 수행 계급이 지선에서 현선까지 올랐다.

너무 빠른 거 아냐?

시하는 복권에 당첨된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현선에 올랐지만, 주변에서는 아무런 반응도 일어나지 않았다.

“왜 뇌겁이 없는 거지?”

전에는 하다못해 영석이라도 떨어졌었는데.

“작은 주인님, 여기는 신계예요. 지금은 지선을 넘어선 것뿐이에요. 그러니까 신계의 뇌겁까지는 맞을 필요가 없어요.”

그러고 보니 전에 지선에 올랐을 때도 뇌겁은 맞지 않았는데, 그렇다면 이 뇌겁이라는 것은 제일 낮은 계급에만 제한된 걸까?

갑자기 억울한 생각이 드는 건 기분 탓일까? 하지만 뇌겁이 없으니까 이제 마음 놓고 신력을 흡수할 수 있겠어.

시하는 자신의 신식을 열어 그 내단 속으로 들어갔다. 순간 엄청난 신력이 밀려오는 것이 느껴졌다. 시하는 미리 준비하고 있다가 신속하게 공법을 움직였다. 그녀의 단전이 조금씩 채워지기 시작했다.

수행 계급도 급속도로 올라가고 있었다. 그녀는 중간에 있는 계급은 아예 뛰어넘어서 바로 대경계에까지 올랐다. 현선, 금선, 중선, 상선. 잠시 후, 그녀의 단전이 모두 채워졌다.

“작은 주인님, 어서 멈춰요. 계속 가다가는 단전이 폭발할 수 있어요.”

“나도 멈추고 싶어!”

시하가 조금 끌어들인 후부터는 신력이 그녀의 제어를 벗어나 스스로 몸속으로 밀려들어 가고 있었다. 처음에는 분명 내단 한 개를 끌어들였는데 어찌된 영문인지 나머지 내단들도 함께 바람처럼 날아 들어가고 있었다. 시하는 최선을 다해 몸속에 넘쳐나고 있는 신력을 누르려고 했다. 하지만 아무런 소용도 없었다. 단전이 이미 모두 찼지만 신력은 여전히 단전 속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시하는 그녀의 단전 속에서 뭔가 갈라지는 듯한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그리고 아직 단전 속으로 들어가지 못한 신력들은 그녀의 경맥 속을 헤집고 다니면서 여기저기에 상처를 입혔다.

한옥이 그녀의 신식 속에서 어찌할 바를 몰라 이리저리 바삐 움직였다. 시하는 자신의 몸속을 누군가가 칼로 에는 듯한 통증이 느껴졌다. 혈관들이 터지면서 붉은 피가 밖으로 뿜어져 나왔다. 순식간에 그녀의 몸 전체가 피로 물들었다. 몸속에 있는 신력이 이미 모두 폭발하여 전체 단전이 그 형체를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였다. 곧이어 그녀의 몸도 단전처럼 폭발하여 목숨까지도 위태로울 듯했다.

그런데 그때, 갑자기 낯선 신압(神壓)이 몸속으로 들어오더니 폭발하고 있던 영기가 마치 천적을 만난 것처럼 조용해지기 시작했다. 이어서 미친 듯이 밀려들던 신력도 줄어들었다.

“작은 주인님, 지금이에요!”

시하가 정신을 가다듬고 마지막 힘을 다해 공법에서 알려준 방법에 따라 신력을 압축하기 시작했다. 마치 반죽을 하듯 신력을 조금씩 압축하고 또 압축했다.

얼마나 지났는지 드디어 단전 속에 그 신력은 하나의 구슬로 압축됐다. 원래는 푸른빛을 띠던 신력이 짙은 자줏빛으로 변했다. 그리고 그녀의 경맥 속에 있던 신력들도 이제 안정되기 시작했다. 시하는 그제야 한숨을 내쉬었다. 자줏빛 구슬이 갑자기 반짝거리더니 단전 속에서 나타나 그녀의 신식 속으로 들어갔다.

순간 시하는 온몸의 피로가 모두 사라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여기저기 구멍이 뚫려 있던 그녀의 경맥도 조금씩 회복될 기미를 보이고 있었다. 시하는 그제야 눈을 번쩍 뜰 수 있었다.

“미련하기는!”

그녀의 머리 위에서 누군가 푸념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시하가 깜짝 놀라며 고개를 들어 보니 거대한 용의 머리가 보였다.

“작은 주인님, 방금 그 신력은 이 용이 눌러 준 거였어요.”

금룡이 도와준 거라고?

“이렇게 미련한 애송이일 줄은!”

금룡이 화가 난 듯 자신의 턱에 길게 늘어진 두 개의 수염을 흔들며 말했다.

“죽고 싶어? 내단은 원기를 없앤 다음에 먹어야 한다는 걸 몰라? 내가 근처에 있지 않았다면 넌 이미 죽었어. 알아?”

원기라니, 그게 뭔지는 몰라도 시하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고마워.”

“흥!”

그가 고개를 흔들며 차갑게 콧방귀를 뀌더니 의기양양한 모습으로 말했다.

“네가 우리 집 앞에서 죽을까 봐 마음에 걸렸을 뿐이야. 그렇지 않으면 내가 왜 널 도와주겠어!”

“그래, 고마워요. 용 대인님!”

그렇게 말하니까 제법 용의 위엄이 느껴지는걸.

용이 깜짝 놀라며 시하를 바라봤다.

“네가 어떻게 내 이름을 알지?”

“어? 네 이름이 금룡?”

“아니! 난 대인이야.”

“……하하, 이름이 정말 세련됐네. 어쩐지 이렇게 위풍당당한 모습을 하고 있나 했네.”

“당연하지. 그건 내가 스스로 지은 이름이야.”

금룡이 기분이 좋은지 꼬리를 이리저리 흔들기 시작했다. 그가 꼬리를 흔드는 바람에 땅이 다 진동했다. 시하는 다행히 자신이 그의 비위를 맞추는 데에 성공한 듯해 안심하고 있었다.

“애송이라 약해 빠지긴 했어도 보는 눈은 있군.”

용이 득의양양한 모습으로 고개를 숙이고 그녀를 살피더니 눈빛을 반짝이며 물었다.

“근데, 그렇게 미련한데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남은 거지?”

“…….”

“그래. 네가 나를 알아봤으니, 내가 널 거두기로 하지.”

그게 무슨 뜻이지?

금룡은 더 이상 설명하지 않고 바로 손을 내밀더니 그녀를 잡았다. 시하가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그녀의 몸은 이미 높이 들려 있었다. 잠시 후, 그들은 전에 지나온 곳으로 들어갔다.

“에잇, 이렇게 작은 것을 얼마나 키워야 클 수 있을지 모르겠네.”

금룡이 자신의 발로 그녀를 밀치더니 고뇌하는 표정을 지었다.

이놈의 용이 정말 내 부모라도 되려는 걸까? 난 넋두리를 한 것뿐이었는데!

“네 진짜 모습은 뭔데? 나에게 한 번 보여줘 봐.”

“진짜 모습?”

그건 또 뭔데? 이놈의 용이 갑자기 무슨 바람이 분 거지? 나 여기에 계속 있으면 안 될 듯싶은데.

“너 아직 변신도 못 하는 거야?”

그가 갑자기 무슨 생각을 한 것인지 이상한 눈빛으로 바라보더니 말했다.

“그래서 집에서 쫓겨난 거였어?”

“뭐?”

“걱정 마. 난 그렇게 속된 용이 아니니까! 넌 비록 장애가 있는 용이긴 하지만, 난 널 키워 줄 의향이 있어.”

“…….”

누가 장애가 있다고 그러는 거야!

“하지만 그전에 이름을 지어줘야겠어.”

“잠깐만! 난.”

이름이 있다고!

“난 대인이고 넌 이렇게 작으니, 소인이라고 하면 되겠네! 오늘부터 너는 내 새끼야.”

“…….”

난 아무 말도 하지 않았잖아! 왜 자기 맘대로 결정하는 거지?

“날이 저물었으니 어서 자. 일찍 자야 키도 크지.”

그가 말을 마치더니 자신의 손으로 그녀를 번쩍 들어 올렸다. 그리고 몸을 둥글게 똬리 튼 다음 그녀를 자신의 배 밑으로 밀어 넣었다.

그녀의 귓가에 용의 코골이 소리가 천둥 치는 소리처럼 들려왔다.

용족들은 원래 이렇게 다들 정이 넘치고 남의 말은 듣지 않는 걸까?

시하는 그가 자는 틈을 타서 조용히 도망가려고 했다. 하지만 어떻게 된 일인지 뱃가죽에도 눈이 있는지 그녀가 기어 나오려고 하면 바로 눈치를 채고 몸을 더 꼭 감싸 다시 원래의 자리로 끌어당기곤 했다. 시하는 그에게 깔려 죽지 않으려면 이쯤에서 포기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시하는 다시 자리로 돌아와 마음을 가라앉힌 뒤 상처를 입은 경맥을 회복하면서 그가 일어나기를 기다리기로 했다.

하지만 금룡은 그렇게 3일이나 자고 있었다. 시하의 상처는 이미 아물었지만 금룡은 여전히 자고 있었다. 시하는 더 기다리지 못하고 전에 그가 두 번이나 그들의 소리에 깨어났던 기억을 떠올렸다. 금룡은 소리에 예민한 듯해, 숨을 크게 들이마신 뒤 소리쳤다.

“불이야!”

잠시 후, 그녀의 몸이 가벼워지더니 금룡이 눈을 크게 부릅뜨며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사방을 살펴보더니 별다른 위험이 감지되지 않자 그제야 자신의 수염을 늘어뜨리며 엄숙한 표정으로 말했다.

“장난치지 말고, 어서 자. 그렇지 않으면 키가 크지 않을 거야.”

“할 말이 있어. 사실 난 용이 아니야. 난 사람이야.”

“나도 알아.”

“응?”

“넌 소인이잖아.”

금룡이 득의양양한 모습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그래, 네가 그 이름을 맘에 들어 할 줄 알았다니까.

“……그게 아니라, 난 용족이 아니라 인간이라고. 때문에 그렇게 오랫동안 잘 필요도 없어. 그리고 내 이름은 시하라고 해.”

“잠이 오지 않아?”

“어, 그래!”

근데 핵심은 그게 아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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