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61화 (161/189)

시하가 하얀 안개로 둘러싸인 한 곳을 가리켰다. 그곳은 아주 많은 기운이 흐르고 있었다. 지도 속에 선기가 가득한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었지만 그곳은 뭔가 달랐다. 그 하얀 안개들은 서로 연결되어 있는 것처럼 그곳을 맴돌고 있었다. 뭔가 감추려는 듯 그곳을 감싸고 있는 흰 안개 속에서 은은한 빛이 새어 나왔다. 하얀 안개 속에 가려져 자세히 보지 않으면 볼 수 없는 희미한 빛이었다.

“어? 제가 한번 살펴볼게요. ……이곳에 뭔가 단절시키는 법술이 걸려 있는지, 안에 상황을 전혀 살펴 볼 수 없어요. 다만 저 안이 아주 넓다는 건 느낄 수 있어요.”

그렇다면 이곳은 더더욱 뭔가가 이상하다는 건데?

“그럼 우선 여기부터 가 봐!”

시하가 바로 영검을 불러내 그곳으로 날아갈 준비를 했다.

“잠깐만요. 작은 주인님. 지금은 가면 안 될 듯해요.”

“왜?”

“작은 주인님, 이곳은 신계예요.”

“그래서?”

“용처럼 천성이 신족인 것 외에는 신계의 한계를 넘어선 사람만이 이 신계에 오를 수 있어요. 그러니까 이 세계에서는 사람이든 괴수든 최소 그 수행 계급이 상선 이상은 된다는 말이에요.”

젠장! 그러고 보니 내가 아직 햇병아리 신세인 걸 깜빡하고 있었네.

시하는 그녀를 습격했던 거대한 고양이를 떠올렸다. 지금에야 그 요괴들이 어떻게 몸속에 그렇게 충분한 내단을 가지고 있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처음에 시하는 그 금룡이 뭔가 대단한 줄 알았지만 지금 보니 그들은 요괴가 아니라 선수였다. 요괴와 선수의 차이는 아주 극명하게 나뉘었다. 그리고 그곳에는 그런 모습의 선수들이 곳곳에 포진되어 있었다.

내가 운이 좋았던 걸까?

한옥의 말이 맞았다. 지금 그녀의 실력으로는 그 감추어진 신비한 곳에 다다르기는커녕 금룡의 지역을 나서는 순간 누군가에게 먹힐 것이었다. 지금 그녀에게 가장 시급한 것은 수행 계급을 올려 최소한 반항할 힘이라도 기르는 것이었다. 지금 그녀에게는 한옥밖에 없었다. 후지와 시동이 언제까지나 곁에 있어 줄 수도 없었다. 시하의 마음속에 갑자기 학구열이 불타올랐다.

“한옥, 오빠와 후지와 연락할 수 있는 방법이 정말 아무것도 없는 거야?”

“……네. 삼천계에서는 서로 통하는 일이 아주 어려워요. 삼천계를 벗어나는 법보가 있으면 모를까. 예를 들어서 작은 주인님이 외계에서 갖고 온 그 신기(神氣) 같은 거요.”

신기? 휴대전화를 얘기하는 건가?

시하는 오빠가 재로 만들어 버린 자신의 그 값비싼 휴대전화를 떠올리자 마음이 아파 왔다. 내가 이것 때문에 자신과 연락을 하지 못하고 있는 걸 알게 된다면 오빠는 어떤 기분일까?

“좋아, 그렇다면 내가 먼저 수련해야겠네.”

결심했어. 이 일은 금방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야. 우선 수행 계급을 올린 다음 다시 얘기해봐야겠어.

시하는 폐관을 하기로 결심했다. 좋은 장소를 찾아 숨으려고도 생각 했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지금 그녀가 있는 그 금룡의 구역보다 안전한 곳은 없는 듯해 그곳에 머물기로 했다. 시하는 나무 그늘을 찾아 앉아 기를 몸속으로 끌어들였다. 우선 전에 있던 그 수행 계급부터 회복해야 했다.

시하는 기를 몸속으로 끌어들이면서 신계의 선기가 얼마나 짙은지 몸소 느낄 수 있었다. 눈을 감자 사방에서 짙은 선기들이 앞다투어 그녀의 몸속으로 들어왔다. 시하는 밀려오는 선기에 하마터면 사레가 들릴 뻔했다. 그리고 갑자기 몰려드는 선기에 경맥이 상하지 않도록 서둘러 단전으로 이끌었다.

단전이 빠른 속도로 몸속에 돌기 시작하더니 그녀의 수행 계급도 서서히 회복되기 시작했다. 그녀의 몸의 수행 능력은 영수에게 거의 빼앗겼지만 그래도 원래 있던 실력이라 다시 수련을 시작하니 처음처럼 그렇게 어렵진 않았다. 마치 다 쓴 배터리에 전기를 꽂고 충전하듯이 그냥 앉아서 기다리면 되었다.

그녀가 지금 유일하게 할 수 있는 것은 단전을 움직여 선기가 안으로 더 빨리 들어갈 수 있게 하는 것이었다. 선기가 단전에 가득 차자 그녀의 몸속에서 활기를 잃고 있던 경맥들이 순식간에 배나 더 커지고 있었다.

그녀의 귓가에 뭔가 부서지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그러자 단전 안이 또다시 비워졌다. 시하는 이제 자신의 계급이 축기 정도에 이른 듯했다. 하지만 그 실력으로는 어림도 없었다.

시하가 깊게 숨을 들이마신 후 마음을 가라앉히고 계속해서 선기를 끌어들였다. 신식 속에 있던 한옥도 작은 가지를 이용해 그녀의 경맥 속을 오가며 열심히 선기를 단전으로 이끌었다.

열심히 수련을 하다 보니 시하는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도 잊고 있었다. 그녀의 귓가에는 오직 수행 계급이 올라가는 소리밖에 들리지 않았다. 적어도 몸속에서 뭔가 부러지는 듯한 소리가 들리기 전까지는 오직 그것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몸이 자유로워지고 정신이 맑아지면서 아주 편안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작은 주인님, 드디어 수행 계급이 회복되셨어요!”

한옥이 흥분된 목소리로 소리쳤다.

“그래.”

시하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아직 지선의 계급으로는 갈 길이 멀었다.

“하지만 난 아직도 이제 막 숲에서 나온 조금 힘이 센 괴수에게도 먹힐 수 있는 그런 수준이야.”

“괜찮아요. 계속해서 수련하면 돼요. 제가 옆에서 도울게요.”

“수련을 계속하는 건 어렵지 않지. 중요한 건 어떻게 수련을 해야 할지 그게 문제야.”

“네? 작은 주인님, 심법수련(心法修練)을 갖고 있지 않으세요?”

시하는 지금에야 근원적인 문제를 떠올렸다. 선계에 비승한 후 그녀의 머릿속에는 온통 어떻게 하면 시동을 찾을 수 있을지 그 방법밖에 없었다. 수련에 대해서는 아예 관심도 없었다. 가끔 하더라도 후지가 옆에서 얘기해주면 그걸 따라 하는 정도였다. 때문에 그녀는 선계의 수련공법은 어떤 것인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 당연히 어떻게 시작해야 하는지는 더더욱 모르고 있었다.

“괜찮아요. 작은 주인님, 저는 갖고 있으니까요!”

“뭐라고?”

“잊으셨어요? 여기가 바로 시스템의 창고잖아요. 안에 뭐가 아주 많아요. 공법, 신기 모두 이 안에 있어요.”

시스템이 그런 기능도 있었네! 이제 보니 한옥이 시스템을 삼킨 것이 아니라 금고를 턴 듯한데.

“작은 주인님, 필요한 것이 있으면 말씀하세요. 제가 찾아 드릴게요.”

이걸 뭐라고 표현해야 하지? 한옥, 너 정말 대단해!

“네가 알아서 찾아봐. 지선이 수련할 수 있는 공법이면 되니까.”

“알겠어요!”

한옥이 들뜬 모습으로 공법들을 찾기 시작했다. 잠시 후, 시하의 신식 속에 책 한 권이 나타났다. 시하가 깜짝 놀라 책을 살펴보자 책 속에서 고풍스러운 금빛 문자들이 나와 그녀의 신식 속으로 들어갔다.

“작은 주인님, 이건 시스템의 책장 제일 높은 곳에서 가져온 거예요. 제일 높은 곳에 올려놓은 걸 보면 분명 고급 공법이 들어 있을 거예요.”

확실히 고급스러워 보이긴 하네. 여기 있는 글자나 부호들을 보면 하나같이 뭔가 위력이 있어 보이고, 그걸 보고 있으면 내 신식이 다 아파 오는 걸 보면.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어!”

하지만 이게 다 무슨 말이지? 나 문맹이라고, 그것도 아주 까막눈.

“그건, 아마도 책에 있는 문자들이 모두 고대 문자들이라 그럴 거예요. 저도 사실 잘 모르겠어요.”

헉, 너도 모르는 거였어?

“그럼 어떡하지?”

글을 읽을 수 있는 사람을 찾으려고 해도 지금은 찾아갈 사람도 없잖아?

그때 한옥이 있는 도표가 갑자기 덜덜 떨리더니 그 위에서 나무 넝쿨 같은 것이 나와 그녀의 신식 아래쪽을 향해 휘저으며 뭔가를 낚으려 했다. 한옥이 넝쿨을 한참 휘젓더니 애플리케이션 하나를 낚았다.

“찾았어요!”

한옥이 흥분하며 그 애플리케이션을 흔들었다.

“시스템이 완전히 제거된 건 아니라서 회복하면 다시 사용할 수 있을 거예요.”

신식 아래에서 시스템을 회수할 수도 있었던 거야?

한옥이 말을 마치더니 자신의 가지를 흔들어 그 애플리케이션을 위로 낚아 올렸다. 시하는 그제야 그 애플리케이션에 있는 네 글자를 발견할 수 있었다. 천도번역!

애플리케이션 도표가 위로 날아오르자 옆에 있던 금빛 글씨체들이 빨려 들어가더니 그 애플리케이션의 왼편에 나타났다. 그리고 잠시 후, 애플리케이션의 오른편에 그녀에게도 익숙한 그 글자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하하, 이제 투덜댈 힘도 없네. 즐거우면 됐지!

그제야 시하는 그 책 속에 있는 공법들이 어떤 것들인지 자세히 살펴볼 수 있었다. 그 책 위에는 ‘개천벽지(開天劈地)’라고 쓰여 있었다.

어떻게 개천벽지의 신법이 이곳에 있는 거지? 이건 고급스러워도 너무 고급스럽잖아! 읽는 사람의 수준도 봐 가면서 책을 골라야 하는 거 아니냐고, 이걸 내가 어떻게 읽지?

“이 심법에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

한옥이 어리둥절한 목소리로 시하에게 질문하더니 또다시 뭔가 떠오른 듯 말을 이었다.

“아, 그러고 보니 시스템의 창고 안에 이 책에 있는 심법에 맞춘 또 다른 신기가 있었어요.”

한옥이 다시 한 번 자신의 가지를 흔들자 밝은 빛이 그녀의 신식 속으로 비치더니 품속까지 들어왔다.

그녀는 뭔가 묵직한 것이 품에 느껴졌다. 잠시 후, 엄청난 선기가 그녀에게로 밀려오더니 바로 전체 숲으로 퍼져 나갔다. 시하가 고개를 숙여 보니 손에 황금빛이 감도는 도끼가 들려 있었다. 하나도 아니고 두 개의 황금 도끼였다. 도끼 위에는 그녀가 익숙한 문자로 이렇게 쓰여 있었다. 개산(開山)!

이거라면 하늘은 물론이고 우주까지라도 날아갈 수 있겠는데? 한옥이 시스템의 보고를 뒤진 행위에 대해 시하는 이렇게 표현했다.

“한옥! 너 정말 뽀뽀해주고 싶어!”

정말 든든하잖아. 오라버니들과도 비교가 안 돼. 그것도 아주 엄청난 심법을 얻었으니 계속 수련하면 정상까지 오를 거야.

시하는 다리를 틀고 앉아 심법에 따라 수련을 하기 시작했다.

자세히 보니 이 ‘개천벽지’라고 하는 심법은 그녀가 지금까지 보아 왔던 심법들하고는 전혀 달랐다. 하지만 아무리 선계의 심법과 일반계의 심법의 수준이 다르다고 해도 기본 중심은 모두 통하고 있었다. 수련하는 방법은 다르지만 어찌됐든 기본적인 것은 모두 통했다.

최종 목표는 모두 단전 안으로 흡입하여 경계의 한계를 뚫는 것이었다. 하지만 혹시라도 심마(心魔)에 부딪치면 그 통증을 이겨 내지 못하고 실패하게 된다. 그러나 이 서책에는 어떻게 선기를 체내로 흡입하는지에 대한 방법뿐만 아니라 어떻게 선기를 신력으로 만들어야 하는지까지 들어 있었다.

그래, 이건 아주 특급 공법이었어.

하지만 그녀가 있는 곳은 신계라 그런 특급 공법을 얻었다고 해도 신기할 것도 없었다. 시하가 깊이 숨을 들이마시며 신식을 밖으로 풀어놓았다. 그리고 공법의 가르침대로 최선을 다해 주변의 선기를 느끼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그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공법이 말한 그 신력은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공법은 선력도 선기와 영기처럼 어디에나 존재하는 것이라고 얘기해주었지만 현실은 전혀 다른 듯했다. 급하게 먹은 밥은 체하는 법, 시하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선기에 집중해보기로 했다. 하지만 여전히 특별할 만한 것은 나타나지 않고 있었다.

시하는 참다못해 주변에 있던 신기를 아무거나 한 움큼 잡아다가 자세히 살펴보았다. 그리고 자신의 신식을 아예 그 속으로 집어넣고 탐색하기 시작했다. 잠시 후, 신식을 통해 선기 중심으로 들어가자 전과는 다른 느낌의 기운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것은 아주 작아서 선기가 그 속으로 들어가 찾지 않았으면 전혀 느낄 수 없을 만한 크기였다. 그것은 선기와 하나로 엉켜 있어 신력이라고 하기보다는 선기의 핵심이라고 하는 것이 오히려 더 정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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