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59화 (159/189)

“자고 있는 용을 건드리면 큰일 나는 거 몰라? 너 대체 어디에서 굴러 온 거야? 부모는 누구지? 내가 찾아가서 혼내 줘야겠어.”

“전 부모님이 안 계셔요.”

시하의 말에 용이 놀라더니 휘날리던 수염마저 축 늘어뜨렸다. 뭔가 생각에 잠긴 듯하더니 그의 눈가에 알 수 없는 감정이 담겼다. 그가 다시 목소리를 높이며 말했다.

“그래서 그렇게 여기저기 뛰어다니고 있었구먼! 저리 꺼져! 이제 여긴 얼씬도 하지 마, 난 너 같은 애송이들은 딱 질색이니까.”

용이 말을 마치며 또다시 자신의 꼬리로 시하를 밀쳤다. 이번에는 지난번에 비하면 많이 부드러워져 있었다. 그는 그녀가 숲속으로 들어갈 수 있게 도와줬다.

시하는 어쩔 수 없이 다시 그곳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막 숲속으로 발걸음을 옮기려고 하는 순간.

“잠깐!”

금빛 용이 다시 그녀를 불렀다. 그가 자신의 꼬리를 바닥에 쓰러진 요괴들을 향해 휘두르자 거대한 광풍이 일며 그 요괴들의 몸에서 구슬들이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빨간색, 노란색, 초록색, 보라색 등 없는 색이 없을 정도였다. 그가 꼬리를 거두자 구슬들이 자동으로 그의 꼬리 위로 올라왔다.

“자!”

금룡이 자신의 꼬리를 내밀며 시하에게 말했다.

“가져가, 이렇게 저급한 선수의 내단은 나에겐 필요 없어.”

그가 말을 마치며 구슬을 와르르 쏟아 냈다. 시하가 자기도 모르게 그에게로 다가가 구슬들을 받아 안았다. 시하가 구슬들을 한아름 안고 있자 그 거대 용이 갑자기 머리를 숙이더니 기다란 자신의 수염을 그녀의 미간에 가져다 댔다.

순간 엄청난 기운이 반항할 틈도 없이 그녀의 신식 속으로 흘러 들어갔다. 그 기운은 시하의 신식 속을 한 번 돌더니 상한 곳을 복구하기 시작했다. 잠시 후, 엉망으로 훼손되어 있던 신식이 거의 원래의 모습으로 회복되었다.

“이렇게 저급한 선수들도 상대하지 못하다니, 용의 망신이로군.”

금룡이 시하의 신식에서 물러서더니 거대한 몸을 돌려 다시 돌아갔다.

“이제 가도 돼! 얼른 꺼져!”

시하가 선기가 가득한 내단을 끌어안고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그곳을 떠났다.

그렇게 나쁜 용은 아닌데?

“작은 주인님!”

한옥의 목소리가 다시 울려 퍼졌다.

“일어났어?”

시하가 기뻐하며 앉을 만한 곳을 찾아 앉았다. 그리고 손에 가득 안고 있던 내단을 내려놓고 자리를 잡고 앉아 내시를 시작했다.

“작은 주인님, 신식이 어떻게.”

완전히 회복된 시하의 신식을 보며 한옥이 의문스럽게 물었다.

“방금 그 용이 도와준 거야.”

“용이요? 신족의 그 용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그래.”

시하는 그가 잠든 사이에 일어났던 일을 모두 얘기해 주었다.

“작은 주인님, 그렇게 위험한 일을 다 겪으셨군요!”

한옥이 자신을 자책하듯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제가 조금 일찍 일어났어야 했는데.”

“네 잘못이 아니야.”

넌 이미 날 아주 많이 도와줬어.

“그리고 이번 일은 전화위복이야.”

그렇지 않으면 그녀의 실력으로 시동과 후지도 없는 이곳에서 신식을 회복할 방법을 찾지 못했으리라.

한옥이 한참 생각에 잠긴 듯 침묵하다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

“아, 작은 주인님, 이제 그 시스템의 정보를 모두 받았어요. 아직 일부 잠겨 있는 보안 자료들은 보지 못했지만 대략적인 상황은 이해했어요.”

시하가 긴장된 얼굴로 몸을 일으키며 물었다.

“말해봐. 이 시스템이 대체 뭔데?”

“이 시스템은 사람이 만들어 낸 것이었어요. 주요 목적은 이 세계를 감시하고 보호하여 안정된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었고요. 이 세계는 삼계가 아니라 삼천세계였어요. 작은 주인님, 저는 이제야 삼천세계가 정말로 존재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어요. 이제 보니 선계도 하나가 아니었죠. 저는 다른 세계의 자료들을 보고 깜짝 놀랐어요. 이 삼천계 안에 저 같은 식물들만 사는 세계도 있었어요! 너무 가고 싶어요.”

“우선 흥분하지 말고 계속 얘기해 봐.”

“네, 시스템의 역할은 바로 이 삼천계의 문제를 감시하여 화합을 도모하고 안정된 발전을 이끌어 내는 것이었어요. 그리고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경고하고, 그 일들을 처리하는 것이었죠.”

“잠깐만! 그 말은 감독만 하고 집행은 하지 않는다는 말이야?”

그건 아닐 텐데? 나와 오빠는 시스템이 끌고 왔잖아. 그 구멍을 막는 일도 그렇고 방법들은 모두 시스템이 알려준 것들이었는데. 그건 감독이 아니라 분명 간섭을 한 거였어.

“처음에는 그랬을 거예요. 원래 삼천계는 아주 안정적이었죠. 가끔 예기치 못한 작은 일들이 생기긴 했지만 바로 제거했었고요. 그리고 시스템은 실체가 없어서 직접 참여할 수가 없어요. 시스템은 아주 똑똑한 것 같아요. 마치, 미래에 대해 아주 많은 일들을 예측하고 있는 듯해요. 다만 그가 왜 그렇게 의욕이 없는 건지 모르겠어요.”

한옥이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그녀에게 말했다. 그는 시스템이 그렇게 대단한 능력을 갖고도 왜 그런 모습을 하고 있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반면 시하는 그가 왜 그런 모습을 하고 있는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처음에 시스템은 그저 일개 프로그램에 불과했다. 아무리 자주적인 의식을 갖고 있더라도 기계에 불과했다. 영혼이 없으니 아무런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다음은?”

“그다음은 삼천세계에 점점 더 많은 일들이 나타나 더는 제거할 수 없는 지경이 되었어요. 처음에는 작은 문제였는데 그 작은 문제들이 점점 더 많아졌고 그 작은 문제들이 쌓이면서 큰 문제가 되어 버렸죠. 심지어 어떤 곳에는 외계의 구멍까지 생겨났어요. 사태가 아주 갑작스러웠던지 그때의 기억이 아주 혼란스러웠어요. 어떤 부호들은 저도 무슨 뜻인지 알 수 없을 정도예요. 그리고 그 후에 어느 한 세계에 구멍이 나타나요. 구멍 안에는 혼돈의 기운이 가득해서 결국에는 그 세계를 망쳐 버렸죠.”

시하는 제일 처음 미션을 수행할 때 그녀가 막았던 그 구멍을 떠올렸다.

“아마도 이 일 때문에 시스템이 갑자기 삼천계의 일에 관여하는 듯했어요. 처음에 그는 도구 하나를 만들고, 그 일을 해결하기에 제일 유능한 사람을 찾았어요. 그리고 아주 적당한 방법으로 세계를 구하는 미션을 그들에게 맡겼죠.”

시하는 갑자기 자신이 배달하던 그 택배들이 떠올랐다. 설마 그때 그 택배를 받은 사람들이 앞으로 세계를 구할 거라고 시스템이 추측한 사람들인가? 시스템은 그들에게도 그녀처럼 미션을 주려고 했던 것일까?

“하지만 사람의 마음은 예측하기 어려웠죠. 시스템이 예측한 사람들이 일을 집행하지 않았어요. 심지어 많은 사람들이 극단적인 선택을 하며 문제를 해결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역효과만 일어났죠.”

그건 아주 정상적인 것으로, 바로 그들이 가지고 있는 탐욕 때문이었으리라. 영수만 봐도 알 수 있었다. 그는 자신에게 힘이 생기자 더 큰 힘을 원했다.

“시스템이 공구를 만들어 낸 이유는 원래 세계의 안정을 위해서였어요. 하지만 사람들은 그것을 이용해 세계가 더욱 빨리 멸망하도록 했어요. 그 도구를 얻은 사람들은 마치 하늘이 자신에게 내린 은총처럼 생각하고 모두 자신을 위해 사용했어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문제를 발견하고도 모른 척했죠.”

갑자기 시스템이 조금 불쌍해지네. 하지만 생각해보면 그럴 만도 하지. 그 도구를 받은 사람들은 모두 평범한 사람들이었는데 그 금수지를 받고 하루아침에 하늘로 올랐으니 누가 그걸 놓치려고 했겠어. 마치 가난해서 밥도 먹지 못하고 있던 가난뱅이가 어느 날 갑자기 로또에 당첨되었는데 그더러 모두 기부하라고 하는 거랑 뭐가 다르지?

물론 용오천은 내게 아무 망설임 없이 그 비적을 돌려줬었지만, 그런 사람은 소수에 불과해! 거의 만날 수 없다고 보는 것이 맞지. 모든 사람이 포기할 줄 아는 건 아니니까.

인간은 늘 그렇지, 봉사, 헌신 이런 품성들이 없는 건 아니지만 그런 품성 외에도 사욕을 채우는 탐욕도 있으니까. 이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을 거야. 결국 도덕이 밥을 먹여 주는 것도 아니고 생존은 모든 생물들의 영원한 과제이니까.

시스템의 계산도 잘못된 것은 아니었다. 그는 세계를 구하기에 제일 적합한 사람을 선택했다. 그의 계산이 맞았다. 세계가 곧 멸망하는데 누가 최선을 다하지 않을 수 있을까? 곤충들도 생존을 위해 애를 쓰니, 원래 난세에 영웅이 나오는 법이었다. 그러한 환경에서는 누구든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었으리라. 시스템의 잘못이라고 하면 시기를 잘못 만난 것뿐이었다. 그는 너무 일찍 그 도구들을 배송했다. 그리고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잊고 있었다. 사람은 언제든 변할 수 있다는 사실을!

겨우 진흙탕에서 벗어나 자축하고 있는 사람에게 다시 그 진흙탕 속으로 들어가 세상을 구해야 된다고 하면 그 미션에 응할 사람이 몇 사람이나 있을까? 설사 그것이 전 세계를 구하는 일이라고 해도 말이다.

“시스템의 그런 방법으로는 세계를 구할 수 없고, 사람들의 욕망만 증가시킬 뿐이야.”

“하지만 그는 실체가 없어요. 그리고 직접적으로 그 일에 관여하거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어요. 더욱 두려운 건 시스템이 전달한 그 도구들을 탐하여 외계의 생물들까지 들어오고 있었다는 거예요.”

시하는 머릿속에 지난번에 봤던 그 에일리언들을 떠올렸다.

“시스템은 그 탐욕을 막을 방법은 하나밖에 없다고 생각했어요.”

한옥이 무거운 목소리로 잠시 망설이더니 분노하며 말했다.

“시스템에게는 이 방법밖에 없었어요. 바로 삼천세계에 탐욕이 전혀 없는 그 한 사람을 찾아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었죠.”

“그는 나와 우리 오빠를 선택했어!”

“맞아요. 시스템은 자신에게 남은 거의 대부분의 힘을 이용하여 삼천계와 제일 가까이에 있는 외계의 문을 열어 그곳에서 한 사람을 불러냈죠.”

“잠깐만! 한 사람? 두 명이 아니고?”

나와 오빠가 여기에 있잖아.

“원래는 한 명이었어요. 시스템이 제일 처음 불러낸 사람은 주인님뿐이었어요.”

오빠 한 명뿐이었다고?

“근데 왜 내가 여기에 있는 거지?”

“불러낸 대상이 사라졌으니까요.”

뭐?

“시스템은 그 일로 아주 많은 능력을 소모했어요.”

한옥이 계속해서 시스템으로부터 얻은 데이터들을 설명했다.

“그리고 외계와 삼천계는 달라서 시스템이 삼천계에서는 뭐든 할 수 있지만 외계에서는 어려웠죠. 강제로 외계의 문을 열었으니 분명 뭔가 연쇄적인 반응이 있었을 거예요.”

한옥은 자신이 말한 그 단어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듯 머뭇거리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가장 직접적인 영향은 바로 시공간에 혼란을 일으키는 것이었어요.”

시하가 어두운 안색으로 얼굴을 찌푸렸다. 그 부분이 아주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정확히 어디가 중요한 건지는 알 수 없었다.

“시스템의 손상이 심각하여 자신이 불러낸 주인님의 법기 위에 들러붙게 된 것이었어요. 그런 다음 주인님을 집으로 돌려보내는 조건으로 미션을 수행하도록 했고, 그런 방법으로 삼천세계를 복구하려고 했어요.”

“그래서.”

시하가 주먹을 불끈 쥐며 입술을 깨물더니, 마음속에 치밀어 오르는 화를 누르며 그에게 물었다.

“그럼 시스템은 처음부터 아예 우리를 집으로 돌려보낼 생각은 없었다는 거야?”

“……네.”

한옥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시하의 눈치를 살피며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외계의 문을 여는 것에 너무 많은 능력을 소모하다 보니 당시에 시스템은 그럴 만한 힘도 여유도 갖고 있지 않았어요.”

시하가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오래전에 그 속셈을 눈치채고는 있었지만 이렇게 알고 나니 더욱 화를 주체할 수 없었다. 당장에라도 시스템을 끌고 나와 가장 고통스러운 방법으로 혼을 내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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