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하가 조심스럽게 돌아서며 그곳을 벗어나려고 했다.
“당신!”
영수가 갑자기 돌아서더니 시하를 무섭게 노려봤다.
젠장! 눈치는 왜 그렇게 빠른 거야.
“은인님, 이제 보니 당신께 고맙다는 얘기를 해야겠네요. 전에는 저에게 그 공간을 주셔서 제가 신선이 되는 것을 도와주셨고, 지금은 제가 신이 되도록 도와주셨으니까요.”
난 그런 유별난 감사 인사는 받지 않아도 괜찮은데, 난 그저 미션에 충실했을 뿐이야!
“근데, 이곳은 영기가 아주 충족해서 예전에 그 공간하고는 완전히 다르네요. 당신을 이곳에 남겨 둘 필요가 없을 듯해요.”
세상에! 이런 배은망덕한 놈.
시하가 바로 몸을 숨기려고 했지만 움직일 수 없었다. 시하의 몸이 그에게 붙잡혔다.
“이제 꺼져 줘야겠어!”
그가 큰소리로 외치며 그녀에게로 손을 내밀었다.
그런데 잠시 후, 거센 바람이 일었다. 하늘을 절반이나 가득 채운 거대한 꼬리가 하늘에서 내려오더니 영수의 몸을 쳤다.
순식간에 방금 전까지도 득의양양하던 사람이 차마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모습으로 변해 버렸다.
거대한 울부짖음 소리가 하늘에서 울려 퍼졌다.
“어디에서 기어들어 온 벌레야. 시끄러워 죽겠네!”
그 꼬리는 아직도 분이 덜 풀렸는지 이미 먼지가 되어 버린 그곳을 다시 한 번 내리쳤다. 그가 꼬리를 내리치며 또다시 울부짖었다.
“방금 잠들었는데 계속 빽빽거리니까 잠들 수가 없잖아!”
순식간에 영수의 몸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이게 바로 배은망덕의 인과응보인 거지!
주위가 갑자기 흔들리더니 거대한 그림자 하나가 솟아올랐다. 잠시 후, 평지에 금빛이 감도는 둥근 원기둥 모양의 산봉우리 하나가 솟아올랐다. 시하는 깜짝 놀란 표정으로 눈앞에 솟아오른 산봉우리를 바라봤다.
용, 엄청 큰 용이잖아!
크기나 위압만 놓고 보더라도 지금까지 시하가 봤던 용들의 몇십 배는 더 되는 듯했다. 용이 눈앞에 있는 것만으로도 시하는 전신이 사시나무처럼 덜덜 떨렸다. 용이 숨이라도 한번 내쉬면 금방에라도 몸이 날려갈 듯했다.
“어떻게 한 마리가 더 있는 거지?”
젠장, 안 돼!
시하가 긴장하며 몸을 움츠렸다. 분명 도망가야 했지만 손발이 말을 듣지 않았다. 거대한 꼬리가 그녀의 몸을 향해 내려오고 있었다. 시하가 자기도 모르게 눈을 질끈 감았다.
영수를 피했더니 이젠 이 용에게 맞아 죽는 것일까?
“어?”
갑자기 거대한 꼬리가 그녀의 머리 위에 멈춰 섰다. 그리고 잠시 후, 거대한 용 머리가 그녀에게로 다가오더니 뭔가 확인이라도 하듯 그녀의 냄새를 맡았다. 그의 엄청난 숨소리에 시하가 하마터면 뒤로 넘어갈 뻔했다.
금색의 거대한 용이 한참 시하의 냄새를 맡더니 큰 눈을 굴리며 뭔가 당혹스러운 듯한 표정을 지었다.
“벌레가 아니었어?”
누굴 보고 벌레라는 거야.
“어디서 젖비린내가 나는 거지?”
그가 긴 수염을 날리더니 뭔가 생각에 잠긴 듯한 모습을 보이곤 잠시 후,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저리 꺼져, 어디서 이런 애송이가 와서 날 귀찮게 하는 거야. 꺼져!”
그가 말을 마치며 꼬리를 흔들더니 그녀의 몸을 가볍게 뒤로 밀쳤다. 시하는 갑자기 자신이 재난 속에서 살아남은 유일한 생존자가 된 기분이 들었다.
고마워!
시하는 발이 닿는 대로 한 곳을 향해 미친 듯이 뛰어갔다. 멀리서 용이 경고하듯 소리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다시는 이곳으로 오지 마.”
절대로, 반드시, 다시 이곳으로 오는 일은 없을 거야. 영수가 그 모양이 된 걸 생각하면, 세상에, 너무 끔찍하다고!
용이 그녀를 애벌레로 봤든 어떤 물건으로 봤든 그것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았다. 우선 그로부터 멀리 도망가는 것이 우선이었다.
시하는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달렸다. 얼마나 달렸을까 그녀가 앞을 향해 미친 듯이 달리다가 어느 허공을 밟으며 바닥에 쓰러졌다. 시하는 그제야 걸음을 멈추고 다시는 일어서지 못했다. 이쯤 되면 멀리 온 거겠지?
거친 숨을 몰아쉬며 오랜만에 이렇게 달려본다는 생각을 하는데 갑자기 차원 이동을 했던 그날이 떠올랐다. 그날 그 거대한 고양이에게 쫓겨 숲을 미친 듯이 달렸었다. 정말이지 다시는 그런 경험을 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 고양이에 비해 방금 그 용은 뭔가 논리적인 면이 있는 듯했다. 그러고 보니 전에 그 흰 용의 구슬도 받았었고, 그에게서 그들 능력의 일부분을 전승했었지. 물론 나중에 그걸 병아리에게 넘겨주긴 했지만 나의 몸에 아직 용족의 기운이 남아 있을 가능성은 충분해. 방금 그 용은 그걸 발견한 거고, 그래서 나를 새끼 용으로 착각한 걸까?
시하가 그제야 숨을 돌렸다. 지금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몸이 아니라 능력이 아주 왕성한 때라도 절대 그 용의 공격은 피해 가기 어려웠을 듯했다.
영수는 아주 잔인했다. 그는 시하의 몸에 있던 시스템을 자신의 몸속으로 옮기려고 수행 능력을 모두 빼앗아 갔다. 그리고 시스템이 자폭하는 바람에 그녀의 신식도 모두 훼손돼 버렸다. 지금 그녀의 몸은 그야말로 구멍 뚫린 풍선처럼 사방으로 기가 빠져나가고 있었고, 그 때문에 이제 그녀의 수행 능력은 지선은커녕 축기기에도 미치지 못했다.
잠시 쉬고 나서야 시하는 주변을 살펴볼 수 있었다. 그곳은 이름을 알 수 없는 식물들이 빼곡히 들어선 밀림이었다. 식물들은 모두 충분한 영력을 갖고 있어 아래 세계에서 천년만년 자란 식물들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 공기 중에도 아주 짙은 영기가 흐르고 있었다. 이곳은 정말 신계인 모양이었다.
시하의 마음속에 갑자기 화가 치밀어 올랐다. 신이 되면 됐지 왜 날 이렇게 괴롭히는 건데? 난 신이 되고 싶은 생각도 없었고, 어렵게 오빠를 찾은 지 이제 몇 시진도 지나지 않았는데. 젠장, 후지까지 잃어버렸잖아! 정말 큰일이네. 신계는 개뿔, 지금 나랑 장난해?
시하는 영수의 조상 십팔 대까지 저주한 뒤, 그제야 마음의 화를 가라앉히고 생각에 잠기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보면 그래도 하늘은 그녀의 편인 듯했다. 적어도 방금 만난 그 용 외에 이곳은 안전한 편이었다.
“야옹.”
등 뒤에서 갑자기 누군가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시하의 눈앞에 검은 그림자가 언뜻 비치더니, 고양이 모습을 한 요괴가 나타났다. 처음 만났던 그 고양이에 비하면 이 고양이는 한눈에 봐도 배는 더 커 보였다. 그리고 입 밖으로 튀어나온 이빨은 살기를 뿜고 있었고 꼬리도 하나 더 많았다. 그의 꼬리는 부드러운 털이 아니라 날카로운 가시들로 둘러싸여 있었다.
젠장, 지금은 생선포도 없는데!
시하가 크게 숨을 들이마신 뒤 두려움을 가라앉혔다. 진정해야 돼. 당황하면 안 돼! 방금 그 거대한 용도 피했고, 시스템의 제어에서도 벗어났어. 이깟 고양이한테 죽을 리가 없잖아.
시하가 자신의 영검을 불러냈다. 그녀의 수행 계급은 연기에 불과하고 사용할 수 있는 선기도 없었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후지가 가르쳐준 검기가 있었다. 어찌됐든 도전해 보는 거지. 저 녀석에게 상처를 입힐 수만 있다면 아예 출구가 없는 건 아니야.
고양이가 초록색 눈알을 굴리며 그녀를 노려보더니 발을 몇 번 굴렀다. 마치 공격할 틈을 노리기라도 하는 듯 한참 시하를 노려보더니 잠시 후, 입을 벌리며 야옹, 하고 울부짖었다. 그가 시뻘건 입을 벌리고 공격해 왔다.
시하가 긴장하며 모든 선력을 검 위로 응집시켰다. 그리고 검으로 그의 공격을 막은 뒤 몸을 숙여 기회를 엿보다가 그의 몸에 가장 부드러운 부분인 복부를 공격했다. 시하의 귓가에 뭔가 부러지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검이 부러진 것이다!
무슨 고양이 뱃가죽이 이래? 쇠로 만들어진 걸까? 완전 철옹성이잖아.
울고 싶었지만 눈물이 나지 않았다. 기회를 놓칠 수가 없었다. 시하는 두 동강이 난 검을 꼭 부여잡았다. 마지막 남은 힘을 다해 힘껏 그를 공격하며 드디어 그의 발 위에 작은 흠집 하나를 내는 데 성공했다.
“야옹.”
요괴는 아팠는지 고개를 숙이고 자신의 발을 혀로 핥았다. 그 광경을 지켜볼 틈도 없이 시하는 돌아서서 방금 왔던 그 길로 미친 듯이 달릴 준비를 했다. 방금 그녀가 왔던 그 길에는 요괴가 보이지 않았었다. 그건 아마도 그 금빛 용의 구역이라 그런 듯했다. 지금 요괴에게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바로 그 구역으로 다시 들어가는 방법밖에는 없었다. 그 속으로 들어가지만 않는다면 그 용을 만날 일도 없어 보였다.
지금으로서는 그곳으로 다시 들어가는 방법 말고 다른 돌파구는 없어 보였다. 시하의 생각은 확고했지만 그녀가 마주한 현실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그녀가 막 돌아서서 두 걸음 정도 도망갔을 때쯤 그녀의 앞에서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들려오더니 앞에서 봤던 그 고양이와 똑같은 모습의 괴물이 나타났다.
잠시 후, 두 마리, 세 마리, 네 마리, 다섯 마리로 계속해서 늘어났다. 여긴 고양이 소굴인 걸까? 원래 집에서 사는 동물 아니었나? 왜 다 뛰쳐나온 거지?
시하는 처음으로 절망스러운 생각이 들었다. 십여 마리의 요괴가 그녀를 둘러쌌다. 그들이 시하를 보며 군침을 흘리고 있었다.
숨을 깊이 들이마시며 시하가 공격하려는 순간 갑자기 그녀의 손에 뭔가 끈적끈적한 것이 느껴졌다. 시하가 고개를 숙여 보니 몇 장의 부적이 그녀의 손에 들러붙어 있었다. 이건, 전송부잖아! 이걸 잊고 있었네.
지난번에 감방에서 쓰고 남은 걸 소매에 넣고 있었다.
“야옹.”
시하를 둘러싸고 있던 고양이들이 저마다 울부짖기 시작하더니 그녀를 향해 공격해 왔다. 더 망설일 틈도 없이 마지막 남은 선력을 다해 손에 들고 있던 전송부를 비볐다. 순간 시하의 몸이 밝은 빛으로 휘감겼다. 순식간에 다른 풍경으로 변하자 시하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후지가 준 이 전송부가 그래도 쓸모가 있는…….
“야옹?”
시하의 귓가에 또다시 고양이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거대한 요괴가 몸을 일으키더니 당혹스러운 눈빛으로 주변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계속해서 그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며 그녀를 노려봤다.
하, 하하, 하하하, 젠장, 고양이들은 왜 같이 이동한 거야! 후지, 나랑 얘기 좀 할래요?
“야옹.”
배가 고팠는지 요괴들이 몸을 일으키더니 망설임 없이 위협적인 울음소리와 함께 그녀에게로 다가왔다. 시하는 더 반항할 힘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시뻘건 아가리들을 바라보며 자신이 몸이 사방으로 찢겨 나갈 모습을 상상했다. 그리고 머릿속에 묘비에 쓸 문구도 생각했다.
절대 전송부를 믿지 마!
갑자기 그녀의 옆으로 큰 바람이 일더니 몸을 일으키던 고양이들이 모두 나가떨어졌다. 얼마나 세게 떨어졌는지 그들의 내장이 바닥에 다 흘러나와 있었다. 시하의 귓가에 익숙한 소리가 들려왔다.
“입 닥쳐! 날 깨우지 말라고 분명히 얘기했잖아!”
하하, 다행히 다시 돌아왔네! 역시 사람은 말이 많으면 안 돼!
“왜 또 당신인 거지?”
금빛 용이 이번에는 정말로 화가 났는지 자신의 수염을 바람에 날리는 낙엽처럼 펄럭이며 물었다.
나도 오고 싶어서 온 게 아니라고!
“너 도대체 정신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
뜻밖에도 거대 용은 자신의 꼬리로 시하를 내리치지 않고 있었다. 화가 났는지 몸에 있는 비늘을 부르르 떨면서도 그녀를 공격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