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57화 (157/189)

[띵!]

갑자기 머릿속에 익숙한 소리가 들려왔다.

[불법 침입자 발견! 불법 침입자 발견!]

시스템이 다급히 띵띵!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영수 이 나쁜 놈! 시스템도 이 나쁜 놈을 두려워하네!

시하가 잠시 정신을 차렸다. 갑작스러운 영수의 습격에 시스템이 놀랐는지 통증을 일으키지 않았다. 그리고 눈앞에 보이던 그 시계도 더는 보이지 않고 있었다.

[불법 침입자 발견! 불법 침입자 발견!]

[방어 시스템 작동.]

[역량 부족으로 방어 시스템 작동 실패.]

[시스템 강제 전환.]

영수가 애플리케이션을 하나둘씩 삼키자, 신식 속에 가득하던 도표들이 순식간에 절반이나 줄어 있었다. 시스템의 애플리케이션도 흔들거리며 곧 영수의 신식에 가까이 다가가고 있었다. 이상한 것은 영수의 수행 계급도 계속해서 상승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의 계급은 이제 중선에서 상선 초기, 중기, 후기, 대원만에까지 이르렀다.

젠장! 내 신식 속에 있을 때에는 아무런 소용도 없다가 왜 영수의 몸에 가서는 저런 대단한 능력을 발휘하는 건데!

“하하하하, 드디어 신이 될 수 있겠어.”

영수는 점점 더 미친 듯이 웃음을 터뜨렸다. 수행 계급이 급속도로 상승하면서 그가 불러낸 영혈제는 점점 더 무서운 힘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그가 더욱 거세게 시동과 후지를 공격했다. 얼마 가지 못해 두 사람 모두 상처를 입고 피를 흘렸다.

“오빠!”

젠장, 이런 미친놈.

영수의 계급은 계속해서 오르고 있었다. 결국 그가 상선에 올랐다.

같은 시각, 그들이 있는 공간이 흔들리더니 공중에 거대한 검은 입구가 나타났다. 입구는 마치 하늘을 찢어 놓은 것처럼 그 깊이를 알 수 없었고 짙은 천도의 위엄을 드러내고 있었다.

위엄이 느껴지는 위압이 그 구멍으로부터 나오더니 온 천지를 뒤덮었다. 순간 모든 세계가 멈춘 것처럼 모든 움직임들이 멎었다. 후지와 시동마저 그 위압에 눌려 꼼짝하지 못했다. 그 미친 듯 날뛰던 영혈제도 멈추었다.

“이건, 신계의 입구? 이건 분명 신계의 입구일 거야.”

영수가 캄캄한 그 입구를 노려보며 소리쳤다.

“하하하하, 난 비승할 거야. 드디어 신이 될 수 있어!”

영수가 시하를 잡은 채 그 입구를 향해 날아올랐다.

“하하(夏夏)!”

“동생!”

후지와 시동이 다급히 소리쳤다. 하지만 영수가 내뿜는 위압에 눌려 시하를 구하기는커녕 제대로 설 수 조차 없었다.

영수 이 변태 같은 자식, 비승을 하면 했지, 왜 나까지 잡고 난리야. 시스템이 필요하면 그렇다고 말을 했어야지, 내가 얼른 줬을 텐데!

시하는 그가 왜 자신을 그곳까지 끌고 왔는지 금방 알 수 있었다. 왜냐하면 신식 속에서 영수가 계속해서 강제로 애플리케이션들을 끌어들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가 다급히 신속하게 애플리케이션을 끌어들였다. ‘선인’ 자가 새겨진 그 애플리케이션조차 영수의 신식 속으로 끌려들어 가고 있었다. 그리고 도표들은 곧 색을 잃었다!

아마도 흡입력이 너무 강해서인지 원래는 밝게 빛나고 있던 것들이 갑자기 회색으로 변신했다. 그리고 영수는 그 캄캄한 입구 속으로 날아 들어가고 있었다.

눈앞이 캄캄해지더니 잠시 후 시하의 몸이 깊은 어둠속으로 들어갔다. 그와 동시에 갑자기 음성을 변조한 시스템의 소리가 들려왔다.

[목표물의 이동으로 숙주의 요청에 충족하지 못함.]

[자폭 시스템 가동.]

뭐라고?

[역량 준비 완료, 작동!]

안 돼!

시스템의 ‘선인’ 자 애플리케이션이 진동하더니 갑자기 밝은 빛을 내며 신식 속에 있는 영수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아!”

영수의 신식이 비명을 지르며 밖으로 튕겨 나왔다. 하지만 시스템은 멈추지 않고 밝은 빛을 더욱 강하게 비추었다. 시하의 신식 속은 밝은 빛으로 가득 찼다.

젠장, 내 신식 속에서 자폭하면 어쩌자는 거야!

엄청난 통증이 몰려왔다. 통증은 전에 느꼈던 것과 달리 열 배나 더 고통스러웠다. 마치 영혼을 칼로 난도질당하는 것처럼 차라리 죽고 싶은 심정이었다. 너무 아파!

“작은 주인님!”

신식 속에서 한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시하가 마지막 힘을 다해 그에게 소리쳤다.

“어서 도망가!”

“하지만 작은 주인님이!”

“어서, 어서 도망가!”

“안 돼요!”

한옥이 고집을 부리더니 자신의 가지를 흔들며 시스템이 내뿜는 그 밝은 빛은 아랑곳하지 않고 변형되고 있는 그 애플리케이션을 공격했다. 한옥이 온 힘을 다해 자신의 가지로 애플리케이션을 감싸기 시작했다.

“난 용감한 꽃이야, 난 용감한 꽃.”

“한옥…….”

시하의 의식은 점점 더 흐릿해지고 있었고 그녀의 몸은 그 어두움 가운데로 빠져 들어가고 있었다.

* * *

눈을 뜨자 그녀의 눈앞에 파란 하늘에 하얀 구름이 떠다니는 모습이 보였다. 시하가 놀라며 자리에서 일어나 앉았다. 그림자도 있고, 호흡도 있고, 사지가 멀쩡했다.

죽지 않은 건가? 이건 정말 기적이야!

한옥!

시하가 일어나 그 자리에 앉아 바로 신식을 살폈다. 머릿속에 뭔가 찌르는 듯한 통증이 느껴졌다. 아마도 전에 시스템이 자폭하면서 오는 통증인 듯했다. 신식이 완전히 해체되진 않았지만 여기저기에 상처를 입고 있어 조금만 건드려도 통증이 느껴졌다.

시하가 급한 마음에 자신의 통증은 개의치 않고 신식 속으로 들어갔다. 그녀의 신식은 텅텅 비어 있어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여기저기 상처 입은 흔적들만 남아 있어 아주 미세한 선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한옥, 한옥, 한옥!”

시하가 큰소리로 한옥의 이름을 불렀다. 제발 아무 일도 없어야 돼. 하지만 시하가 아무리 불러보아도 아무런 대답도 들리지 않고 있었다. 아닐 거야. 한옥은 지금까지 내 신식 속에 있었어. 이렇게 아무런 흔적도 없이 사라질 수는 없을 거야.

“한옥!”

“작, 작은 주인님?”

갑자기 작은 소리가 그녀의 신식 속에 들려왔다. 아주 미세한 소리라 주의 깊게 듣지 않으면 알아듣기 어려울 정도였다.

“한옥?”

시하가 깜짝 놀라며 신식 속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그러자 그녀의 눈앞에 네모난 도표가 흔들거리며 투명한 몸통을 보일 듯 말 듯했다.

설마 이 도표가 한옥?

“작은 주인님, 괜찮으세요?”

익숙한 한옥의 목소리가 도표 안으로부터 들려왔다.

“난 괜찮아.”

시하가 무너진 마음을 추스르며 한옥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그 도표를 자세히 살펴봤다. 그 도표는 시하가 한 번도 보지 못했던 것이었다. ‘선인’ 자가 새겨진 그 시스템도 아니었고 시하가 봐 왔던 그 어떤 애플리케이션도 아니었다. 초록색 도표 한 가운데에 다 시들어 가는 하얀 꽃 한 송이가 보였다. 그 위에서 아주 익숙한 기운이 흐르고 있는 걸 느끼며 시하는 그 도표가 바로 한옥이라고 확신했다.

근데, 한옥이 왜 애플리케이션으로 변신한 거지?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네가 왜 이런 모습으로 변한 거야?”

“저도 모르겠어요.”

한옥이 당혹스러운 목소리로 뭔가 기억을 떠올리려는 듯 생각에 잠기더니 이어서 말했다.

“그것이 자폭하려 하는 순간 선력이 아주 강해졌었어요. 작은 주인님의 신식이 견디지 못할 듯해, 급한 마음에 그걸 삼켜 버렸죠.”

시스템을 먹었다고? 너무 위험하잖아. 그건 나와 오빠조차 제어하지 못하고 있던 시스템인데, 그걸 먹었다고?

“괜찮아? 어디 불편한 덴 없고? 위가 아프다거나 토하고 싶다거나 그렇진 않아?”

그렇게 함부로 아무거나 삼키면 어쩌자는 거야.

“괜찮아요. 그냥 배불러요!”

“…….”

“작은 주인님, 물건들이 하나같이 네모나고 크기도 크고, 그리고 너무 많아요. 제가 뭔가 무소불능한 존재처럼 느껴져요.”

시하가 그의 말을 듣고 뭔가 떠올렸다. 설마 아니겠지?

“너 설마, 전체 시스템을 모두 삼켜 버린 거야?”

“저도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지금도 뭔가 소화가 안 되는 느낌이에요. 도표들의 기억이 하도 기이해서 제가 보고도 이해할 수 없어요. 대다수의 것들은 잠겨 있고요.”

“네가 그 기억들을 볼 수 있어?”

시하가 그의 말에 깜짝 놀라 물었다.

“저도 제가 흡수한 기억들이 이 도표들의 것인지 잘 모르겠어요.”

그가 의문에 찬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무슨 구멍이니, 복구자니, 최고급 지령이니 저는 도통 무슨 기억들인지 이해할 수가 없어요. 작은 주인님, 이 물건이 대체 뭐죠?”

“나도 몰라.”

시스템이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나타났다. 전에는 시스템에게 지능적인 면이 있어서 대화도 가능했고, 심지어 서로의 의견이 맞지 않을 때에는 논쟁도 가능했었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그 후로는 시스템이 점점 더 강경하게 나오더니 아예 더는 제어할 수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특히 이번에는 그녀가 미션을 거부하자 바로 벌을 내리고 심지어는 생명까지 위협하며 신식 속에서 자폭까지 했다. 만약 한옥이 그녀를 구해 주지 않았으면 이미 목숨을 잃었을 수도 있었다.

“한옥, 다 삼켜 버린 게 확실해? 다른 부작용은 없고?”

“아마도 그럴 거예요. 이미 그의 혼백을 느낄 수가 없는 걸 보면 이제 소화된 듯해요. 이제 더 이상 저를 위협할 수 없을 거예요.”

“그럼 됐어.”

보아하니 시스템의 자아는 이미 사라진 모양이야.

“그리고 제가 보기엔, 시스템이 주인님과 작은 주인님에 대해서 아주 많은 것들을 알고 있는 듯했어요.”

“우리 일에 대해서?”

“네. 무슨 외계 집행자니, 사회적 긴급 방안이니, 각성 계획이니 하는.”

한옥이 의문 가득한 목소리로 시하에게 말했다. 대체 이게 다 무슨 뜻인지?

“또 뭐가 있었는데? 혹시 우리가 돌아갈 수 있는 방법 같은 것은 없었어?”

시하가 다급한 마음에 두 주먹을 불끈 쥐며 한옥에게 물었다. 만약 한옥이 시스템을 흡수하고 정말 그를 통제할 수 있다면, 그렇다면 우리도 돌아갈 방법이 있지 않을까?

그녀의 신식이 폭발하면서 시스템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됐을 뿐 아니라 이제 동료까지 얻게 되었다.

이런 걸 두고 전화위복이라고 하는 걸까?

“하지만 제가 삼킨 물건들이 너무 많고 복잡하여 소화하는 데 시간이 좀 걸릴 모양이에요. 그래야만 제가 필요한 것들을 찾아낼 수 있을 듯해요.”

“급할 것 없어! 조심해야 돼. 그 시스템은 우리도 뭔지 아직 모르고 있어. 뭔가 덫을 남겨 뒀을지도 몰라.”

“걱정하지 마세요. 작은 주인님, 문제없어요.”

한옥이 들어가 있는 도표가 부르르 떨리더니 그의 목소리가 점점 더 약해졌다. 그리고 도표가 또다시 깜박이더니 투명도가 바뀌었다. 시하가 몇 번이나 한옥을 불러 보았지만 한옥은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아마도 시스템의 데이터를 흡수하고 있는 중인 듯했다.

시하가 그제야 안심하며 눈을 뜨고 주변의 환경을 살피기 시작했다. 그녀가 서 있는 곳은 산과 들에 꽃이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신기한 것은 꽃 한 송이마다 모두 엄청난 영력을 갖고 있어 그냥 향기만 맡는 것으로도 수행 능력이 증가되는 듯했다. 신식에 상처를 입지만 않았어도 금방 수행 계급이 한 단계는 올라갔을 듯한 느낌이 들었다.

여기는 어디지? 어떻게 이렇게 짙은 영기가 있는 것이지? 설마 우리가 정말 신계(神界)에 도착한 것일까?

“신계야. 이렇게 짙은 영기는 신계밖에 없어!”

시하가 생각에 잠겨 있는데 갑자기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많이 흥분된 상태로 미친 듯이 소리 질렀다.

“하하하하하, 신계야, 내가 드디어 신선이 됐어!”

어떻게 영수가 아직 살아 있는 거지? 지금 내 힘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을 텐데. 여기 없는 사람처럼 조용히 있으면 모르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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