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54화 (154/189)

시동의 우려가 맞았다. 엄격히 말하면 그들도 다른 행성에서 이 세계로 들어온 침입자들이었다. 그렇다면 그들도 그 에일리언들 중 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었다. 조금 다른 것은 얼마나 위험한지 그 크기에 대한 차이밖에 없었다.

만약 정말 시스템의 지시대로 계속해서 모든 미션들을 수행했더라면 어땠을까? 정말 우리를 돌려보내 줬을까? 아니면 우리 두 사람을 ‘침입자’로 만들어 제거해 버렸을까?

백번 양보해서 시스템이 지금까지 우리의 수고를 봐서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시스템에게 정말 우리를 돌려보낼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만약 그 능력이 있다면 왜 굳이 우리에게 다른 세계들의 구멍을 막도록 했던 거지?

시하의 온몸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시하는 오빠의 추측을 더욱 확신하게 되었다. 왜냐하면 시동은 추측하고 있었지만 시하는 확실히 시스템의 거짓말에 한 번 당한 경험이 있었다.

일찍이 그런 특수한 미션을 수행하기 전에 택배 배달원으로 이미 여러 세계를 오가며 용도를 알 수 없는 금수지를 전달했었다. 그 결과, 시스템은 시하를 그 세계로 끌어들인 후 계속해서 미션을 전달했다.

“나는 오래전부터 의심하고 있었어. 다만 확신이 없었을 뿐이야.”

처음에는 그도 그렇게 조급해하지 않고 시스템의 목적을 정확이 알아보려고 했다. 하지만 다른 건 모두 걸 수 있었지만 동생까지 걸 수 없어 그렇게 급히 시스템을 벗어난 것이었다.

“너의 2호가 나의 시스템과 연결되어 있었을 거야. 내가 벗어났으면 너도 아무 문제 없었을 거고.”

시하가 머리를 끄덕였다. 유명지연을 나온 후 2호가 조금 이상해지기 시작하더니 그녀가 비승한 후부터는 아예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그럼 오빠는 왜 태명파에 있었던 거야?”

이렇게 많은 비밀 통로는 왜 파놓은 거지?

“영수 때문이었어.”

시동이 어두운 안색으로 대답했다.

무슨 뜻이지?

“……설마 정말 남자를 좋아하는 건 아니지?”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날 좋아하는 여자들이 얼마나 많은데. 난 그저 그 사람이 조금 이상했어. 그 사람,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금선에 불과했고 중선이 되려면 한참 멀었는데, 몇 년 사이 수행 계급이 갑자기 상승하더니 지금은 중선 후기까지 올라 있었어.”

“그게 뭐가 이상한 건데? 노력한 걸 수도 있잖아?”

하지만 후지는 한번에 3계급도 올랐는데.

“혹시 그에게서 뭔가 위화감이 느껴지지 않았었어? 마치 우리가 예전에 미션을 수행했던 그 대상들처럼 말이야.”

“그 말은…….”

“난 그저 추측을 하는 것뿐이야. 이제는 내 몸에 시스템이 없어서 정확히 알 수는 없어. 만약 그에게 문제가 있다면 그의 몸에서 집으로 돌아갈 수 있는 단서를 찾을 수도 있을 듯해. 그리고 네가 선계에 왔으니 분명 함께 왔을 거야. 그래서 내가 여기서 기다린 거고.”

시하는 그의 말을 통해 그동안의 의문들을 풀 수 있었다. 하지만 영수를 봤을 당시에는 그를 보기만 해도 눈을 더럽힌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자세히 관찰할 여유가 없었다.

“그리고 어쩌다가 후지와 같이 있게 된 거야?”

시동이 갑자기 물었다. 시하가 대답할 새도 없이 갑자기 귓가에 후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 누이야.”

“이제 우리 대화까지 엿듣는 거야? 염치도 없이 신식으로 나누는 대화까지 엿듣는 거냐고.”

“난 쭉 이곳에 있었어.”

“그리고 누가 당신의 동생이지?”

시하가 바로 두 사람의 대화를 끊으며 끼어들었다.

“됐어, 됐어! 내가 저 사람을 끌어들인 거야.”

애초에 시하는 처음부터 그들이 나누는 신식 대화방으로 후지를 초대했다. 다만 그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을 뿐이었다.

“후지가 남도 아니고, 사람이 많으면 방법도 많아질 것 아냐.”

“그가 남이 아니면 뭔데?”

시동이 그와 당장이라도 싸울 것처럼 물었다.

“둘 다 내 오라버니야. 한 명은 내 남자이니, 여기에 남은 아무도 없어.”

“방금 저자가 너의 뭐라고? 다시 한 번 말해봐!”

시하가 전에 있었던 일을 떠올리며 자기도 모르게 얼굴을 붉혔다. 시동은 이미 화가 난 상태라 검을 들고 후지에게로 다가가 소리쳤다.

“후지! 네놈을 가만두지 않을 거야!”

“오빠!”

이미 두 사람은 엉겨 붙어서 싸우기 시작했다. 두 사람이 서로 양보하지 않고 치열하게 싸우는 바람에 비밀 통로에는 잠시 두 사람이 내뿜는 살기로 가득했다. 그리고 위에 있던 돌들도 아래로 떨어지고 순식간에 그곳이 뒤흔들렸다. 남은 두 사람이 설 자리가 없을 만큼 안이 난장판으로 변해 갔다.

시하가 그들을 막으려고 했지만 갑자기 검기가 날아와 그녀의 옆에 큰 웅덩이를 만들었다. 갑자기 발아래에서 쿵 소리가 들리더니 그녀의 몸이 밑으로 떨어졌다.

“동생!”

“하하(夏夏)!”

두 사람이 싸움을 멈추더니 신속히 다가가 그녀를 구해 냈다. 하지만 중간에 두 사람이 다시 서로를 향해 주먹을 날리는 바람에 시하의 몸이 몇십 미터 높이에서 돌바닥 위로 떨어졌다.

“동생!”

“하하(夏夏)!”

두 사람이 서둘러 시하를 부축했다.

“꺼져!”

두 사람 모두! 역시 오라버니라는 존재들은 믿을 수가 없어. 아 내 엉덩이, 아파 죽겠네.

“어쩐지 안 보인다 했더니, 여기에 숨어 있었네.”

그들의 뒤에서 갑자기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시하가 고개를 돌려 소리 나는 곳을 바라보다가 깜짝 놀라 소리쳤다.

“영수!”

운도 없지, 어쩌다가 또다시 마주친 거야.

온몸에 붉은 옷을 입은 영수가 멀지 않은 곳에 서서 그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전에 단정했던 모습과는 달리 뭔가 악한 기운이 느껴졌다. 그의 눈빛도 지난번보다 많이 달라진 걸 느낄 수 있었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시하는 안 좋은 예감이 들었다.

시하가 생각에 잠겨 있는 사이 시동이 앞으로 한 걸음 나서며 시하를 자신의 뒤로 숨겼다.

“영수 장문, 오랜만이네요.”

“육 장로?”

영수가 놀라더니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

“당신이었군요. 어쩐지 저들이 석옥에서 도망쳐 나올 수 있나 궁금했는데, 뭐 그래도 상관없어요. 우리를 배신했으니 죽을 각오를 해야 할 거예요.”

“그 냉정함과 무정함은 여전하군!”

시동이 부채를 펴 들더니 긴장감은 전혀 없는 모습으로 말했다.

“나한테는 한 마디 질문도 없이 내가 태명파를 배신했다고만 생각하는 거예요? 만약 제가 억울한 거면 어쩌려고요?”

시동이 눈을 가늘게 뜨며 주변을 한 번 살폈다.

“장문은 저한테 무슨 비밀을 들켰기에 그렇게 급히 사람을 죽이려는 거죠?”

영수의 얼굴이 갑자기 파랗게 질렸다.

시하는 놀라 주변을 둘러보며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그제야 그곳이 어떤 곳인지 자세히 볼 수 있었다. 그곳은 축구장만 한 크기의 넓은 곳이었고, 사방에 혈흔이 보였는데 뭔가에 의해 스며든 자국인 듯했다. 그녀가 서 있는 곳은 오륙 평 정도 되는 흰색의 평평한 바닥이었다. 그곳은 비밀 통로가 있는 바로 그 아래에 있었는데, 그 바닥 밑은 비어 있었고 안에서 뭔가 움직이는 듯한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발아래에 있는 하얀 돌 위 여기저기에 붉은 핏자국이 남아 있었다. 공기 중에도 피 비린내가 가득하여 금방이라도 토할 듯했다.

시하는 긴장되기 시작했지만 그 아래에 뭐가 있을지 감히 상상조차 하기 두려웠다. 영수는 장문이면서 왜 이런 곳에 있는 것일까? 아주 담담한 모습을 보니 이곳에 자주 오는 듯했다. 설마 이곳도 영수가 만든 것일까?

“괜히 변명하지 않아도 돼요.”

영수가 차갑게 웃더니 시동을 쏘아봤다.

“당신들 모두 오늘 이곳에서 죽을 각오나 하지.”

그가 손을 움직이더니 몸에서 붉은 장검을 불러냈다.

“이봐, 불사조!”

머릿속에 시동이 신식으로 전음(傳音)하는 소리가 들렸다. 방금 영수를 대하던 목소리에 비하면 많이 피곤한 목소리였다.

“조금 있다가 내가 저자를 막을 테니까 동생을 데리고 이곳을 먼저 나가.”

“알았어.”

후지가 손에 들고 있는 검을 더욱 힘껏 잡으며 대답했다. 서로 죽이지 못해 안달이다가 이렇게 빨리 한 편이 되다니. 그런데…….

“혹시 호산대진이 있다는 걸 잊은 건 아니죠?”

도망가길 어떻게 도망간다는 건지.

“다시 말해서 영수는 계급이 중선인데 왜 혼자 덤비려는 거지? 함께 물리치면 안 되는 거야? 언제부터 그렇게 원칙을 따졌지?”

시하가 그의 아픈 곳을 건드렸다. 너무 맞는 말이라 할 말이 없잖아.

“두 사람은 앞으로 공격해. 난 뒤를 맡을 테니까.”

그들은 그렇게 상의를 마친 뒤 공격에 나섰다.

“좋아, 동생 너도 조심해.”

시동이 시하에게 당부했다.

“응.”

그들이 양쪽에서 공격하려고 하던 그때, 소심이 갑자기 위에 있는 비밀 통로에서 날아 내려왔다.

그리고 뭔가 물으려다가 갑자기 깜짝 놀라며 눈을 크게 뜨더니, 영수의 뒤를 바라봤다. 그제야 세 사람은 영수의 뒤에 있는 사람을 주목했다. 하지만 상대는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옷은 흐트러져 있었고, 몸에 혈흔이 묻어 있는 데다가 호흡도 아주 약한 듯했다,

“소근이 왜.”

소심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영수가 얼굴을 찌푸리더니 화가 난 표정으로 뒤로 한걸음 물러서며 바닥에 있는 사람을 가렸다.

“너까지 탈출했을 줄은 몰랐네.”

소심은 무슨 생각을 한 건지 미친 듯이 기뻐하며 말했다.

“영수, 이제야 그 여자의 진면목을 보게 된 모양이군.”

시하는 놀란 표정으로 기뻐하는 소심의 얼굴을 바라봤다. 이 여자가 미친 건가? 바닥에 쓰러져 있는 소근의 상처는 보나마나 영수가 한 짓이 분명한데,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자신의 신부에게 이런 짓을 한 사람을 저런 표정으로 바라보진 않았을 텐데?

“난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지. 당신이 언젠가는 반드시 알게 될 거라는 걸. 그 여자는 쓰레기예요! 나야말로 당신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이라고요.”

“소심.”

영수가 얼굴을 찌푸리며 귀찮은 듯한 표정을 짓더니 뭔가 떠오른 듯 갑자기 표정을 바꾸며 말했다.

“맞아. 소심, 나한테 진정으로 소중한 사람이 누구인지 이제야 알았어. 내가 잘못했어.”

소심이 감동받은 얼굴로 그에게로 다가가려고 했다. 시하가 깜짝 놀라 그녀를 잡아당겼다. 시하는 그녀가 정신을 차리도록 따귀라도 날리고 싶은 걸 꾹 참으며 말했다.

“바보야? 저 사람이 너한테 한 짓을 잊었어? 지금 저 사람을 믿으면 안 돼!”

“놔요! 당신이 뭘 알아요? 이건 모두 저 여자가 영수를 유혹해서 자처한 일이라고요.”

“맞아! 소심, 내가 이제야 바로 볼 수 있게 됐어. 소근은 나를 사랑하지도 않았어. 그녀는 장문이라는 나의 신분만 봤을 뿐이야.”

영수가 소심을 지긋이 바라보며 말했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그의 눈빛에는 뭔가 차가움이 숨겨져 있었다. 그의 얼굴 어디에도 진심은 보이지 않았다.

“소근은 내가 방심하는 사이 나의 법기를 빼앗으려 했어. 그래서 내가 급하게…….”

“난 당신을 믿어요.”

소심이 그의 품에 안겼다. 그녀는 감동한 나머지 눈물을 왈칵 쏟아 내고 있었다.

“영수, 너무 잘됐어요. 드디어 절 이해했군요.”

“소심.”

역시 유유상종이네.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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