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53화 (153/189)

“중간에 지도가 바뀌면서 만 년이 지났고, 여기로 올라와서 만 년, 얼굴이 바뀌고 나서 몇천 년, 앞전에 폐관하고 2천 년이 지났으니까.”

시동이 손가락을 접으며 세어 보더니 길게 한숨을 쉬었다.

“우리 하하(夏夏)가 옆에 없어서 이 오빠는 너무 외로웠어.”

그가 말을 마치더니 눈물도 흐르지 않는 마른 눈을 비비며 눈물을 훔치는 시늉을 했다.

“너희가 걱정하니까 분위기를 좀 바꿔 보려고 그런 거잖아.”

시하는 더 이상 시동에게 질문하지 않았지만 마음이 많이 아팠다. 그가 홀로 이곳에 머문 시간은 그리 짧지 않은 시간이었으니까. 시하는 자신이 걱정할까 시동이 얘기하지 않은 부분도 있을 것이라 추측했다.

“하 언니, 왜 그래요?”

소심이 걸음을 멈추고 돌아왔다. 석옥 밖으로 나온 뒤 밖에 있는 선기와 방금 먹은 단약의 효과로 그녀의 상처는 이미 치유되어 있었고 안색도 많이 회복된 상태였다. 후지까지도 시하에게로 돌아와 방금 시동의 말에 놀라 힘이 빠져 있는 그녀의 손을 잡아끌었다.

“하하(夏夏)?”

시하가 입을 열기도 전에 시동은 후지의 손을 밀쳐 내며 시하를 끌어당겨 자신의 뒤로 숨겼다.

“내 동생의 손을 누가 함부로 잡으라고 했지?”

“저리 비켜.”

시하가 두 사람이 또다시 으르렁대자 말리고는 두 사람과 손을 각각 한 손씩 잡고 앞으로 걸음을 옮겼다. 잠시 후, 시하가 방금 전의 일을 떠올리며 시동에게 물었다.

“오빠, 근데 왜 태명파에 있었던 거야? 그리고 어쩌다가 육 장로가 된 거야? 휴대전화는 또 어떻게 된 거고?”

“장로는 어쩌다가 된 게 아니야. 내가 능력이 출중하니까 된 것이지.”

그가 뭔가 숨기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시하는 그 일에 대해 묻기보다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것에 대해 물었다.

“오빠, 휴대전화가 우릴 데려갈 수 없다는 건 무슨 말이야?”

그가 미소를 거두며 잠시 후,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엄숙한 모습으로 입을 열었다.

“동생, 우리가 수행했던 그 이상한 미션들 기억나?”

“당연히 기억하지.”

“네가 생각하기엔 그 미션들에 어떤 연관성이 있다고 생각돼?”

“그건 잘 모르겠지만 그 모든 일은 세상을 구하는 좋은 일이었지.”

“바로 그거야, 세상을 구하는 일이었지! 나는 너보다 더 일찍 이곳으로 왔어. 세상을 구하는 그 미션은 내 휴대전화 아니, 그 시스템이 이미 수백 개도 넘게 보내왔지.”

“그렇게나 많이?”

어쩐지 내가 가는 곳마다 오빠의 흔적들이 있다 했어.

“응, 하지만 그때부터 지금까지 난 아직도 이곳에 머물고 있어.”

“그 말은 미션들이 영원히 끝나지 않는다는 거야?”

“그렇다고 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어.”

“그게 무슨 뜻이야?”

“지금까지 나는 그 미션을 수행하기 위해 달려왔어. 구멍이 있으면 막고, 잘못된 일이 있으면 바로 잡고, 나쁜 사람이 나타나면 제거하고 한 번도 다른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어. 가끔 의외의 일이 발생하여 규범에서 조금 벗어나는 일도 있었지만 모두 세계를 구하는 것이었어. 그리고 그렇게 난 그 에일리언을 만나기 전까지…….”

시하가 그 말에 갑자기 사람의 몸에 들러붙어 영혼을 삼켜 버리던 검은 촉수를 떠올렸다.

“그 촉수들을 오빠도 봤었어?”

“응, 그들은 사람의 영혼을 삼키고 있었어.”

“맞아.”

“영혼뿐 아니라 다른 물건들도 삼킬 수 있었어. 실체는 없었지만 엄청난 번식력을 갖고 있었지. 그런 물건을 방치했다면 아마도 몇 년 안에 바이러스처럼 사방으로 확산되어 세계가 멸망했을 거야.”

시동의 말이 맞았다. 당시에도 바로 그 점 때문에 시하도 급히 가체사로 갔었던 것이다.

“근데 그거랑 시스템이 무슨 상관인데?”

시스템이 그 미션을 보내왔다고 해도 모든 일에는 경중이 있기 마련인데.

“다른 미션들과 다를 건 없잖아?”

“보기에는 그렇지. 하지만 이번 미션에 확실히 특별한 점이 있었어.”

“특별한 점?”

“내 미션은 ‘구멍을 복구하고 행성 침입자를 제거하라!’였어.”

“행성?”

“그래. 그들은 다른 행성에서 들어온 거였어. 그래서 그렇게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었던 거야. 나중에 시스템이 미션을 수행하는 도구를 줬지.”

“무슨 도구?”

“종자 같은 거였어.”

“종자.”

시하가 잠깐 생각에 잠겼다가 눈이 휘둥그레져 그에게 물었다.

“혹시 잠룡연에 있던 그 정생련을 오빠가 심은 거였어?”

“응, 시스템이 정생련으로만 그 침입자를 막을 수 있다고 했거든. 하지만 난 그렇게 하지 않았지. 내가 그 침입자들을 가까이할수록 이상하게 나를 장악하고 있던 그 시스템의 영향력이 약해졌었어. 휴대전화마저도 먹통이 되었지. 그래서 나는 잠시 유명지연을 막은 다음 그 악한 기운이 환해 전체에 퍼지도록 그냥 내버려뒀어. 그리고 계속해서 시스템에게서 벗어날 방법만 찾고 있었지.”

“그럼 내가 저번에 오빠를 만났을 때도.”

“그땐 내가 시스템의 장악에서 벗어났을 때였어. 우리 둘의 시스템은 아마 연결되어 있었을 거야. 시스템이 나를 장악했다면 너도 마찬가지였겠지. 그래서 내가 시스템에서 벗어나면 너도 자연스럽게 벗어 날 수 있었을 거야. 다만 시스템이 내 원래의 몸에 뭔가 남겨 놓아 그 휴대전화가 내 근처에 계속 나타날 수 있었던 거고. 내가 그걸 따돌리려고 몇 번이나 노력했지만 매번 내 주머니에 나타나곤 했어. 때문에 난 그 시스템을 따돌리려면 내 원래의 몸에 계속 머무를 수 없었지. 그러다 찾은 것이, 후지였어.”

“후지에게 그 몸에서 벗어나게 해 달라고 한 거야? 미쳤어? 만약 무슨 일이라도 났으면 어쩌려고 그랬어!”

“아니야. 내가 어떻게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동생을 두고 떠날 수 있겠어. 나는 이미 모든 시간을 계산하고 있었어. 구멍의 봉인이 뚫리는 순간을 기다렸다가 음기가 끌어 온 뇌겁을 충분히 받은 다음, 강제로 비승에 성공했지. 그리고 마침 그때만 영혼이 흔들릴 수 있어서 영혼과 내 몸과의 연결을 끊을 수 있었고, 몸에 상처를 입는 걸 피해 무사히 이곳까지 올라왔어. 그리고 봉인이 뚫렸기 때문에 시스템은 나에게 집중할 겨를 없이 제일 먼저 구멍을 복구하는 데에만 전념했어. 그 결과 내가 그 도박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거야!”

시하는 더는 참지 않고 주먹으로 그의 배를 힘껏 때렸다. 순간 득의양양하던 시동이 허리를 구부리며 비명을 질렀다.

“승리는 개뿔, 목숨을 걸고 도박을 해? 만약 비승에 성공하지 못하면? 그건 생각이나 해봤어? 그 음기들을 제어하지 못했으면 어떡할 뻔했는데? 원래 몸으로 돌아가지 못하면 어떡할 건데? 시스템이 그 구멍은 신경도 쓰지 않았으면 어떡할 뻔했냐고! 그리고 나는 어떡하는데!”

시동은 예전만 해도 그렇게 신중하지 못한 사람이 아니었다. 무슨 일이든 먼저 그녀와 상의하고 충분히 생각한 다음 움직이는 사람이었다. 근데 헤어져 있는 사이 시동이 아예 자아를 내려놓고 자신의 목숨까지 걸고 도박을 하려 했다는 사실에 마음이 아팠다.

시동은 시하의 꾸지람에 풀이 죽었다. 그는 시하가 갑자기 유명지연에서 나타날 줄은 모르고 있었다. 그것도 하필이면 그가 모든 준비를 마친 마지막 순간에 만나게 될 줄이야. 3천 년 전에 시하와 통화한 후 시동은 대륙 모든 곳을 돌아다니며 그녀를 찾았다. 눈앞에서 오빠가 죽는 걸 목격했으니 놀라는 것이 어찌 보면 정상이지.

시동은 시하가 크게 분노하는 모습을 지켜보다가 남매지간의 연이 끊어질까 염려되었는지 바로 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아 말했다.

“하 대인님, 제가 잘못했어요! 이 하찮은 소인의 불찰은 잊어버리시고 부디 마음을 넓게 가지시길 부탁드립니다!”

“꺼져!”

“하 언니.”

소심이 갑자기 입을 열더니 바닥에 있는 시동을 일으키며 시하의 눈치를 살폈다. 그러고는 뭔가 떠오른 듯 앞을 가리키며 말했다.

“앞에 길이 막힌 듯해요.”

시하와 시동이 앞으로 걸어가 보니 통로가 뭔가에 막혀 앞이 캄캄했다. 시하가 후지가 들고 있던 화염을 들고 그곳을 살폈다. 그러자 그 어두움 가운데 희미하게 법부의 흐름이 느껴지더니 통로의 다른 입구가 보이기 시작했다.

“이건.”

“아마 태명파의 호산대진일 거야. 대체 무슨 일로 영수 장문을 건드린 거야?”

시하가 난감한 표정으로 묵묵히 뒤에 서 있던 후지를 바라봤다. 그도 시하를 바라보다가 눈이 마주쳤다. 그의 머릿속에 그전에 일들이 새록새록 떠올라 얼굴이 화끈거리기 시작했다.

둘이서 쌍으로 공짜 19금 영화를 관람했다고 어떻게 말을 하지?

그놈의 장문, 너무 찌질한 거 아냐? 어쩌다가 자신들의 일을 엿들은 걸 가지고 호산대진까지 펼쳐 놔? 그게 그렇게까지 화낼 일인가?

“오빠, 혹시 다른 길은 없는 거야?”

시하가 화제를 다른 곳으로 돌렸다.

“있긴 하지! 다만 내가 전에 심심해서 비밀 통로들을 많이 파 놓긴 했는데, 너무 많이 파 놓는 바람에 정확히 그 통로들이 어디에 있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네.”

두더지야? 얼마나 많은 비밀 통로를 파 놓은 거야? 파 놓기 전에 표시라도 해 놓으면 안 돼?

“됐어, 아니면 우리 돌아갈까?”

“안 돼.”

이번에는 후지가 소리쳤다.

“호산대진이 이미 작동을 시작한 걸 보면 우리가 이미 석옥을 탈출했다는 사실을 누군가 알고 있을 거야.”

그의 말도 일리가 있었다. 그들이 석옥을 나와서 이미 한 시진이나 이 통로를 걷고 있었다. 그의 말대로 분명 밖에서 누군가는 그들이 탈출한 사실을 이미 알고 있으리라. 그러다가는 시동의 신분까지 그들에게 노출될 수 있었다. 지금은 그야말로 진퇴양난에 직면한 것이었다.

“이제 어떡하죠?”

“호산대진은 지하에서는 비교적 약한 편이야.”

후지가 무거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선기가 제일 약한 곳을 찾아 뚫고 나갈 수 있을지를 살펴봐야겠어.”

“알겠어요.”

시하가 주변을 살피며 진법의 움직임을 느껴 보려고 했다.

“조심해.”

후지가 그녀의 손을 막으며 이어서 말했다.

“이 진법은 아주 위험해서 바로 만질 수 없어. 신식을 통해 살펴보는 것이 좋을 거야.”

시하가 고개를 끄덕이자, 후지가 시하의 손을 더욱 힘껏 잡으며 말했다.

“내가 살펴볼 테니까, 옆으로 와서 진법의 변화를 살피고 있어.”

“알겠어요.”

시하가 그의 옆으로 다가가 도왔다. 한 사람은 진법의 변화를 살피고 한 사람은 신식으로 진법을 살폈다. 두 사람이 함께 협력하는 모습이 조화로워 보였다.

뒤에서 오랜만에 만난 자신의 여동생을 지켜보던 시동은 고개를 돌려 오래된 숙적인 후지를 쏘아봤다.

착각인가? 두 사람 분위기가 뭔가 심상치 않은데? 왜 이렇게 거슬리지!

시동이 앞으로 나서며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었다. 그리고 시하를 다시 자신의 뒤로 끌어 왔다.

음, 이제야 마음이 좀 놓이는군.

“진법을 살피면서 내 동생의 손은 왜 잡고 있는 건데?”

시동이 후지를 흘겨보며 말했다. 그러고 보니 지금까지 두 사람이 어떻게 만났고, 또 어쩌다가 함께 있게 된 것인지 한 번도 묻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자신이 없는 동안 아래 세계에서 자신을 죽이려고 쫓아다니던 후지를 여동생이 만났다는 사실에 마음이 불편했다.

“이리 와. 오빠랑 저쪽으로 가 보자.”

시동이 시하를 이끌고 걸음을 옮기며 계속해서 생각에 잠겼다.

“동생, 후지 저 자식은 좋은 사람이 못 돼. 앞으로는 가까이 지내지 마.”

“둘은 좋은 친구 사이가 아니었어?”

“누가 저런 변태랑 친구야.”

“그럼 유명지연에서는 왜 그 중요한 일을 그에게 맡긴 건데?”

진짜로 오빠를 살해한 줄 알았다고!

“그건 어쩔 수 없어서 그런 거였어. 아무튼 그와 가까이 지내지 않는 것이 좋을 거야.”

“그러고 보니, 왜 그 시스템에서 벗어나려고 했는지 오빠는 아직 말해 주지 않았어.”

오빠의 방법이 정말 먹힌 걸까? 여기 올라오고 난 후 신식 속에 그 2호가 한 번도 나타난 적이 없잖아.

“동생, 아직도 모르겠어? 만약 그 에일리언들이 다른 행성에서 들어온 침입자들이라면, 그럼 우리는 어떻게 될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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