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52화 (152/189)

“후지!”

시하가 바로 남자를 공격하려 하자, 남자는 갑자기 자신에게로 다가오는 시하를 보고 놀랐는지 후지를 더 이상 공격하지 않았다. 그는 태극검을 옆으로 던지더니 시하를 안고 뒤로 몇 걸음 물러섰다. 그리고 잠시 후,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오, 꼬마 미인, 이 오라버니한테 그렇게 빨리 안기고 싶었어?”

그는 고개를 숙여 시하의 얼굴에 입을 맞췄다.

“하하(夏夏)!”

얼굴이 파랗게 질린 후지가 몸을 날려 시하를 구하려고 했다. 시하는 화를 참으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리고 잠시 후, 그 주먹으로 옆에 있는 남자의 배를 힘껏 가격했다.

“헉.”

날렵하게 검을 휘두르며 우쭐대던 남자가 시하가 날린 주먹에 고통스럽게 배를 움켜쥐고 허리를 구부렸다. 시하는 아랑곳하지 않고 그의 귀를 잡아 비틀더니 이를 악물며 말했다.

“재밌어? 허당 오라버니?”

“아파, 아파, 아프다고!”

남자가 바로 항복하며 울상을 지었다. 순간 그의 얼굴에 깃들어 있던 난폭함, 체면, 악의가 모두 사라졌다.

“오랫동안 못 본 사이에 실력이 많이 늘었네. 이제 동생까지도 유혹하냐, 어?”

시하가 점점 더 분노하며 그의 귀를 360도로 돌렸다.

“살살, 살살하라고! 잘못했어, 동생아. 한 번만 봐줘. 난 네 오빠잖아. 친오빠!”

“흥! 이제야 인정하는 거야? 얼른 그럴 것이지!”

“이런 상황에서 연기는 필수잖아?”

“그 뒤에 싸운 것도 그럼 연기였어?”

“아아아, 동생, 내가 잘못했어. 이렇게 많은 사람 앞에서 내 체면도 좀 생각해줘야지!”

“흥.”

시하가 그제야 그의 귀를 놓아주었다. 시동이 뒤로 한 걸음 물러나며 벌겋게 달아오른 자신의 귀를 움켜쥐었다.

역시 내 동생이야. 여전히 열정이 넘쳐나는군.

옆에 있던 두 사람은 의외의 전개에 어리둥절해했다. 후지가 검을 잡고 있던 손에 힘을 풀었다.

“하하(夏夏)?”

“하 언니.”

“당신들이 본 그대로예요. 저의 친오빠예요.”

시하가 아직도 귀를 어루만지고 있는 시동을 바라보며 눈을 흘겼다.

“저희가 찾았네요.”

“주인님!”

한옥이 튀어나오더니 시동에게 다가갔다.

“많이 보고 싶었어요.”

시동이 한옥을 바라보더니 손으로 밀쳐 내며 말했다.

“네가 누군데?”

“저는 한옥이에요. 주인님이 계약하신 꽃이요.”

한옥이 얼른 자신의 꽃잎을 가리켰다.

“한옥? 난 널 몰라.”

시하의 귓가에 뭔가 부서지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오빠는 양심이 찔리지도 않아?

반면 시동은 자신의 두 귀를 어루만지며 뻔뻔스러운 얼굴로 시하에게 말했다.

“이렇게 빨리 오라버니를 알아볼 줄은 몰랐네. 역시 내 동생이야. 감동이었어. 언제부터 날 알아봤던 거야?”

“나에게 작은 미인이라고 할 때부터.”

“어떻게 한눈에 바로 알아봤지? 역시 남매는 마음도 연결되어 있나 봐.”

“아니야! 그렇게 구역질 나는 칭호를 나한테 사용할 사람은 오빠밖에 없어.”

자기 동생을 미인이라고 생각하는 게 뭐가 잘못된 거지?

“그리고 또 그렇게 내 얼굴에 면상을 비볐다간 죽을 줄 알아!”

“아이고, 그건 너무 냉정해. 어렸을 때는 이렇게 해도 좋아했잖아.”

그가 억울한 표정을 짓더니 더욱 힘껏 시하의 얼굴에 제 얼굴을 비볐다.

“하지 말라고!”

시하가 시동을 밀쳐 냈다.

“동생, 네가 제일 사랑스러워. 많이 보고 싶었다고.”

시하의 마음속에 남아 있던 마지막 인내의 끈이 끝내 끊어지는 듯했다. 시하가 깊게 숨을 내쉬며 그들을 지켜보고 있는 두 사람을 보며 말했다.

“미안해요. 사적인 일을 좀 처리하고 올게요.”

시하가 말을 마치더니 고개를 돌려 소 힘줄처럼 자신에게 끈질기게 붙어 있는 시동에게 주먹을 날렸다. 이미 시하가 오랫동안 참아 왔던 주먹이었다. 하지만 주먹에 얻어맞은 그는 여전히 행복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아, 역시 익숙한 주먹이야. 너무 그리웠어. 와서 더 때려 봐. 오빠는 영원한 너의 샌드백이니까. 아아아, 동생, 이번엔 좀 아팠어. 잠깐만, 얼굴은 때리지 마. 멈춰, 아아아아, 너무 냉정해!”

그렇게 일방적인 시하의 공격은 십여 분 동안이나 계속됐다. 시동의 얼굴은 이제 원래의 얼굴을 알아보지 못할 정도였다. 시하가 그제야 거친 숨을 내쉬며 손을 멈추었다.

“말해봐. 어쩌다가 이렇게 변신한 건지.”

시하는 지금 그의 낯선 모습이 술법으로 변신한 것이 아니라 원래의 모습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히히히, 멋있게 변신한 오빠의 모습에 놀란 건 아니지?”

시동이 눈을 깜박이며 여전히 실없이 웃고 있었다.

“어서 말해!”

시동이 놀라 미소를 거두었다가 망설이듯 입을 열었다.

“일이 좀 있었어. 그래서 몸을 바꾼 거야. 하지만 괜찮아. 다시 돌아갈 수 있었는데 이 모습이 지금은 더 편해서 그런 것뿐이야.”

“정말이야?”

“정말이야. 내가 언제 널 속인 적 있어?”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쭉 그랬거든!”

“중요한 건 우리가 지금 만났다는 거잖아. 내가 드디어 널 찾았다고!”

시하는 그동안의 설움, 고독함, 고단함 등의 감정들이 일시에 밀려왔다.

“동, 동생! 왜 그래? 울, 울지 마!”

시하가 참았던 울음을 터뜨리자 시동의 얼굴에 미소가 완전히 사라졌다. 그가 울고 있는 시하를 안고 등을 가볍게 두드려 주며 그녀가 그동안의 설움을 모두 쏟아 내도록 위로했다.

“이 나쁜 놈아. 대체 어디에 있었던 거야? 내가 얼마나 찾아다녔는지 알아? 얼마나 많은 곳을 갔고, 얼마나 많은 설움을 겪었는지 아냐고? 엄마 아빠한테 약속했잖아. 날 보살펴 준다고!”

“그래, 그래, 내가 잘못했어.”

“난 오빠밖에 없어. 오빠밖에 없다고. 나 너무 무서웠어. 다시 오빠를 찾지 못할까 무서웠다고. 나 집에 돌아가고 싶어!”

시하가 그동안의 고뇌들을 모두 쏟아 냈다. 시동은 여전히 등을 두드려 주며 시하를 달래었다.

“울지 마. 오빠가 여기 있잖아.”

시하가 코를 훌쩍이며 시동을 뿌리치려는 순간 누군가 그녀에게로 다가와 손을 잡아당겼다. 후지가 굳은 표정으로 시하를 힘껏 끌어안았다.

“후지, 대체 뭐 하는 거지? 이제 선계까지 와서 날 기분 나쁘게 하는 거야? 내 동생을 이리 내놔!”

후지가 시하의 손을 놓지 않고 더욱 힘껏 끌어안았다.

“걘 내 동생이야. 그 손 놓지 않으면 내가 당신 죽여 버릴지도 몰라!”

“어디 한번 해봐.”

“지금 나랑 싸우자는 거야 뭐야! 내가 무서워할 줄 알아?”

시동이 바닥에 있는 검을 주워 후지에게로 다가갔다. 후지도 망설이지 않고 검을 들고 시동을 향해 다가갔다. 두 사람이 곧 싸움을 벌이려고 했다.

“그만. 지금 장난해?”

시동이 억울한 표정으로 시하를 바라봤다. 후지도 마찬가지였다.

“동생, 저놈한테 속으면 안 돼.”

시동이 서둘러 시하에게 고자질했다.

“저자가 아래 세계에 있을 때 자기의 수행 계급이 높은 걸 이용해 내 일을 얼마나 방해했는지 몰라. 이번에 너에게 접근한 것도 분명 뭔가 속셈이 있어서일 거야.”

“그건 모두 당신 스스로 그르친 거잖아.”

“지금 뭐라고? 다시 한 번 얘기해봐!”

“무능한 자신을 탓해야지.”

“내가 너 죽여 버릴 거야!”

“무서워할 줄 알고?”

“그만해!”

시하가 크게 소리쳤다. 허당 오라버니는 한 명이면 충분한데 두 명으로 늘어날 듯했다.

“지금 싸울 때예요? 여기가 어딘지 잊었어요? 얼른 정신 차리지 못해요?”

두 사람이 놀라더니 그제야 싸움을 멈추고 서로를 쏘아보며 고개를 돌려 버렸다.

시하는 머리가 아파왔다. 두 사람 모두 평소에는 똑똑한 줄 알았는데 왜 둘이 만나니 갑자기 지능이 떨어지는 듯하지? 둘이 너무 닮아서 서로 거부반응을 보이는 걸까?

“오빠, 우리는 영수에게서 방금 도망 나왔어. 때문에 태명파에 더 머무를 수 없어. 무슨 일이든 우선 여길 나가고 나서 다시 얘기해.”

“대전 뒤에서 일어났던 그 소동의 원인이 너희임을 이제야 알겠군.”

시동이 조금 짙은 색상의 석벽을 가리키며 말했다.

“내가 그 뒤에 비밀 통로 하나를 내놓았어. 그 통로로 산 아래와 통할 수 있지.”

그가 말을 하면서 석벽 쪽으로 걸어가더니 가는 길에 시하의 옆에 바싹 붙어 있는 후지를 쏘아보며 말했다.

“이리 와서 도와!”

그가 손에 들고 있던 태극검으로 석벽을 찌르자 검 위에 선기가 마치 수도꼭지를 틀어 놓은 것처럼 물밀 듯이 석벽 아래로 흘러 들어왔다. 잠시 후, 쿵 소리와 함께 석벽 위에 손가락 두 마디 정도의 균열이 나타났다.

시동이 석벽에서 검을 빼더니 두 손을 균열 안으로 집어넣으며 또다시 후지에게 말했다.

“뭘 봐? 어서 끌어당겨!”

두 사람이 힘을 합쳐 벽을 끌어당기자 거대한 결영석(結靈石)이 그제야 양쪽으로 열리더니 안에 칠흑같이 검은 통로가 나타났다.

“동생. 어서 가자.”

시동이 시하에게 손을 흔들며 말했다. 시하가 그의 뒤를 따르려고 하자 소심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소매를 끌어당겼다.

“하 언니.”

“걱정 마. 내 오빠야. 친오빠!”

시하가 그녀를 안심시키며 그의 진짜 이름은 밝히지 않았다.

“우리는 아주 오랫동안 헤어져 있었어.”

여전히 의심스럽긴 했지만 소심은 더 질문하지 않고 그녀의 뒤를 따라 통로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안으로 들어가자 시하의 몸이 가벼워지며 몸의 선기가 다시 회복되는 것이 느껴졌다.

선기가 회복되자 허당 오라버니가 결계를 하며 석벽을 다시 봉인했다.

통로 안이 아주 어두워 후지가 화구(火球)를 불러내 앞에서 걸어가고 소심이 그다음으로 걸어갔다. 시하는 그에게서 조금 떨어져 제일 뒤에서 걸어갔다. 그곳은 아주 캄캄한 통로였고, 앞에 희미하게 갈림길도 보였다. 통로는 아주 초라한 것이 한눈에도 대충 파 놓은 듯했다. 어딘가 모르게 익숙한 느낌도 들었다.

“오빠, 혹시 대전 아래에 있던 그 통로도 오빠가 파 놓은 건 아니지?”

“응? 대전? 그쪽에는 내가 비밀 통로를 너무 많이 파 놓아서. 어떤 통로를 말하는 거지?”

자기가 굴착기라도 되는 줄 알아?

“그렇게 많은 비밀 통로는 왜 파 놓은 건데?”

“뭐 좀 조사하기 위해서였지.”

“무슨 조사?”

“당연히……. 맞다. 내 휴대전화는 어디에 있는 거지? 아직 갖고 있어?”

“휴대폰? 저번에 내가 유명지연에 있을 때 주웠어.”

“버려, 어서.”

“응?”

“설명할 시간이 없어. 어서! 우선 꺼내 봐.”

그가 표정을 굳히고 크게 소리쳤다. 앞에 가고 있던 후지와 소심마저 그 소리에 놀라 고개를 돌렸다.

시하가 이미 오랫동안 먹통이 되어 버린 휴대전화를 꺼내 그에게 건넸다. 시동이 휴대전화를 받자마자 제대로 살피지도 않고 바로 던져 버렸다. 그리고 바로 화결(火訣)을 하더니 바닥에 있는 휴대전화를 모두 태워 버리고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시하가 놀란 표정으로 그에게 물었다.

“저게 없으면 우린 어떻게 돌아가?”

“저건 우릴 돌아가게 하지 않아. 나중에 설명할게. 다른 하나는?”

“2호는 내 신식 안에 있어.”

“뭐라고?”

그의 얼굴이 하얗게 질리더니 초조한 표정을 지었다.

“어떻게 신식으로 들어간 거지? 안 돼. 다시 꺼내야 해. 그건 너무 위험해.”

“도대체 왜 그러는 거야? 무슨 문제라도 있어?”

“그 미션 아직도 오고 있는 거야? 그동안 무슨 특별한 상황은 없었어?”

“내가 선계에 올라온 이후로는 2호도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았어.”

“반응이 없었다고?”

그가 그제야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럼 됐어.”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건데?”

시동은 얼굴이 어두워지더니 고개를 들어 그녀를 바라봤다. 그가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시하를 바라보더니 뭔가 고통스러운 듯한 표정을 지었다.

“왜 그러는 거야?”

“하하(夏夏), 내가 이 세계에 온 지 얼마나 됐는지 알아?”

“얼마나 됐는데?”

“3만 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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