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51화 (151/189)

“하 언니!”

소심이 놀란 얼굴로 시하를 부르더니 입을 막고 기침하기 시작했다. 소심은 온몸에 중상을 입었고 혈흔을 묻히고 있었다. 마치 여기저기 몸이 뜯긴 인형처럼 곧 숨을 거둘 것 같은 상태였다. 그녀가 잡힌 줄은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험한 상처를 입고 있을 줄이야. 영수 그 나쁜 놈, 이렇게 심하게 손을 쓰다니.

시하가 얼굴을 찌푸리며 양기단(養氣丹)을 꺼내 건넸다.

“이걸 먹어. 조금 괜찮아질 거야.”

소심이 머뭇거리더니 감동과 억울함이 뒤섞인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그리고 단약을 받아 입으로 삼켰다. 잠시 후, 소심이 기운을 조금 차린 듯 물었다.

“하 언니가 어떻게 여기에 있는 거죠? 설마 언니도.”

그 질문에 대한 답은 사양할게. 우리 스스로 들어온 거라고 창피해서 어떻게 말해? 이게 대체 무슨 전송부냐고! 위기를 피하기 위해 사용하는 법기라면서요. 전송 지점이 너무 제멋대로인 거 아니에요? 이번에는 아예 감방으로 데려왔잖아. 그들의 수고로움만 덜어 준 거 아니야?

“후지, 저한테 준 그 법기, 혹시 복제품 아닌가요?”

후지도 그들의 운이 하도 기가 막혔던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니면, 다시 한 번 사용해 볼까?”

그러네, 아직 더 남았잖아. 그 장문이 우리를 발견하기 전에 다시 사용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어. 계속 사용하다 보면 또 괜찮은 곳으로 갈 수도 있으니까.

시하가 바로 남아 있던 부지(符紙)를 꺼내어 만졌다. 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왜 아직 여기에 있는 거지?

“하 언니, 그거 혹시 전송부예요? 소용없을 거예요. 이곳은 태명파의 비밀 감방인데, 석벽이 영석을 막고 선력의 진법까지도 막을 수 있어요. 이곳에서는 선력이 아예 통하지 않죠. 그 어떤 법기부지(法器符紙)도 선법도 아무 소용없어요.”

소심이 말을 마치더니 다시 기침하기 시작했다.

“방금 단약을 먹었는데 왜.”

시하는 그제야 이곳에선 선법을 사용할 수 없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그 이유 때문에 단약의 효과도 크게 발휘되지 못한 것이다.

“전 괜, 괜찮아요! 콜록, 콜록! 저는 절대로 그 쓰레기 같은 사람들 앞에서 죽을 수 없어요!”

그녀의 말에 한이 서려 있었다. 시하가 참다못해 입을 열었다.

“그럴 필요 있을까?”

자신을 사랑하지도 않는 남자를 위해서 스스로를 너무 괴롭히는 거 아냐?

소심은 그녀의 말뜻을 이해하지 못한 듯 물었다.

“방금 그 대전 앞에 하 언니도 있었군요? 저도 그럴 가치가 있는 건지 없는 건지는 잘 모르겠어요. 단지 울분을 참을 수가 없었죠. 저와 소근은 어려서부터 함께 자랐어요. 전 태어나면서부터 오성(悟性)과 자질이 뛰어나 항상 그녀에게 모든 걸 양보했죠. 심지어 소근을 대신해 비승하는 천겁(天劫)도 맞았다고요. 하지만 저한테 돌아온 건 배신뿐이었어요! 영수에 대한 나의 감정을 알면서도, 제가 경고했음에도 소근은……! 저는 도무지 참을 수가 없어요!”

소심이 더욱 분노하자 시하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자매간에 서로 상처를 주고받는 상황을 전혀 이해할 수 없어 뭐라 말을 할 수 없었다. 시하가 주변을 둘러보며 어떻게 그곳을 나가야 할지 생각해보기로 했다.

시하가 후지에게 눈빛을 보내며 어떻게 하면 쥐도 새도 모르게 빠져나갈 수 있을지 고민했다. 그때 갑자기 옥문 위에 있던 작은 문이 열렸다.

“뭐라 시끄럽게 떠드는 거야? 소심, 널 구할 사람은 아무도 없……. 당신, 당신들은 뭐지?”

문지기가 놀란 표정으로 갑자기 옥 안에 나타난 두 사람을 바라봤다. 그리고 잠시 후, 고개를 돌리더니 크게 소리쳤다.

“이봐요. 여기 죄인을 빼내려는 사람들이 있어요!”

개뿔, 감방 안에 갇힌 사람이 어떻게 죄인을 빼내냐.

시하가 부지를 돌돌 말아 아직 문이 닫히지 않은 틈을 타, 상대의 얼굴에 던지며 크게 소리쳤다.

“열염부(熱焰符)다!”

아무 방비도 없이 있던 문지기가 시하가 던진 부지를 보더니 비명을 지르며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후지!”

지금이에요!

거의 동시에 후지가 손을 휘저으며 검기를 불러내 문을 공격했다. 그곳에서 술법을 사용할 수 없었지만 싸움을 아예 할 수 없는 건 아니었다. 그리고 검은 순수하게 물리적 공격이었다. 상대가 마침 작은 문을 여는 바람에 잠시 문 위에 있던 방어진법이 닫혀 버려 공격하기에는 아주 적절한 기회였다.

큰 진동 소리와 함께 앞에 있던 철문이 나가떨어졌다. 철문이 마침 문 앞에 주저앉아 그들을 지키고 있던 문지기의 몸에 떨어졌다.

“하하(夏夏). 어서.”

“네.”

시하가 그의 뒤를 따라 옥문을 나서려다가 바닥에 쓰러져 있는 소심을 부축했다.

“걸을 수 있어?”

“하 언니.”

소심이 놀란 얼굴로 시하를 바라봤다.

“쓸데없는 소린 하지 마! 우릴 따라오지 못해도 난 상관하지 않을 거야.”

소심이 눈빛을 반짝이며 시하의 부축을 받고는 중얼거렸다.

“……고마워요.”

그들이 옥문을 나서자 철문에 깔려 있던 문지기기 갑자기 일어나 사람들을 부르기 시작했다.

“여기 와 봐요! 누군가 탈옥하려 하고 있어요. 도망가고 있다고요!”

그렇게 큰 철문이 날아갔는데도 아직 살아 있다니. 대체 머리가 얼마나 단단한 거야? 역시 선법이 없으니까 불편하네.

시하가 발을 들어 그의 엉덩이를 걷어찼다. 방금 몸을 일으키던 문지기가 제대로 서지도 못한 채 시하의 발길에 채여 석벽에 가서 부딪쳤다. 큰 소리와 함께 벽에 부딪힌 문지기는 일어나지 못했다. 하지만 그가 외친 소리에 다른 문지기들 십여 명이 그들을 향해 달려왔다.

시하가 앞으로 나서며 후지의 옆으로 다가섰다. 아예 그들을 뚫고 나가야 할지를 고민하는 순간 누군가의 여유로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무슨 일인데 이렇게 시끄러워?”

잠시 후, 온몸에 푸른 옷을 걸친 남자가 감방 입구로 들어왔다. 그는 손에 부채를 들고 여유로운 걸음으로 걸어오더니, 세 사람이 있는 곳을 보곤 놀라서 멈추었다.

“육 장로님!”

문지기들이 그에게 예를 갖추었다.

재수도 없지. 그 쓰레기 장문을 피했더니 이번엔 장로를 만났네. 수행 계급은 딱 봐도 그 쓰레기 장문이랑 비슷할 듯한데.

“오, 난 또 무슨 일이라고.”

그 장로가 주위를 둘러보더니 눈을 가늘게 뜨고 손에 들고 있던 부채를 펼쳤다. 그러고는 애매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제 보니 꼬마 미인이 오셨네.”

“사 사제!”

남자의 뒤에 있던 제자가 바닥에 쓰러져 있던 문지기 제자를 보고 다가와 부축했다. 그가 세 사람을 경계하듯 바라보며 남자에게 말했다.

“장로님, 장문께 알려야 할까요?”

“서두를 것 없어.”

“그렇지만, 저 소심이란 여자는 장문께서 특별히 조심하라고 하셨어요. 만약 도망이라도 가면.”

“도망? 누가 이 석옥(石獄, 돌로 만든 감방)에서 도망갈 수 있지?”

그가 손을 흔들자 갑자기 양쪽에 있던 커다란 석벽이 밝게 빛나더니 결계가 나타났다. 결계에서 짙은 살기가 느껴지고 있었다. 감방을 나와서도 이렇게 많은 진법들이 있었다니, 이곳을 뚫고 나가지 않은 것이 어찌 보면 다행이었다.

“그럼 이 사람들은?”

제자가 그들을 가리키며 묻자 남자가 손을 흔들며 귀찮은 듯 말했다.

“됐어. 이곳은 나에게 맡기고 모두 나가 있어.”

제자들은 그의 명령을 감히 거역할 수 없어 어쩔 수 없이 그곳에서 물러갔다. 방금까지 붐비던 그곳에는 제자들이 물러가며 남자와 세 사람만 남게 되었다.

“꼬마 미인, 무서워할 것 없어. 내가 있는 한 아무도 당신을 건드리지 못할 거야. 이리 와, 이 오라버니가 좋은 곳으로 데려다주지.”

그가 욕정이 넘실거리는 얼굴로 다가와 시하의 손을 잡았다.

“하 언니.”

소심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그녀를 잡아당기며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후지 역시 앞으로 나서며 손에 들고 있던 검을 꽉 부여잡았다. 그리고 차가운 목소리로 남자에게 소리쳤다.

“꺼져!”

“오, 미인을 구하려는 영웅이로군!”

남자가 차갑게 콧방귀를 뀌더니 후지를 한 번 훑어봤다.

“자기 꼴을 잘 봐 봐. 그런 꼴로 저 여자가 당신을 좋아하길 바라는 거야?”

그가 고개를 쳐들고 후지를 경멸하듯 바라봤다. 하지만 시하를 바라보더니 다시 온화한 표정을 지었다. 분명 보통의 모습을 하고 있었지만 그는 몸에서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그리고 여전히 달래는 듯한 말투로 시하에게 말했다.

“꼬마 미인, 어때? 이 오라버니와 나가서 산책이나 하지 않을래? 아무도 당신을 막지 못할 거야.”

“필요 없어요.”

시하가 얼굴을 찌푸리며 치밀어 오르는 화를 참았다.

“그렇게 빨리 거절할 것 없잖아?”

시하에게 거절당한 남자가 화를 내지 않고 부채를 두드리며 계속해서 말했다.

“당신들이 누군진 모르겠지만 이 석옥에 들어온 이상 술법이 아무리 좋아도 여길 나갈 순 없을 거야. 하지만 이 오라버니를 따르면 당신이 무사히 이곳을 나갈 수 있게 해주지. 두 친구도 놓아준다고 보장하고. 이 제안은 어때?”

“하 언니, 그를 믿으면 안 돼요. 이 사람의 수행 계급을 측량할 수 없어요. 바로 저 사람이 저를 대전에서 공격했지요. 대극검도 저 사람에게는 아무 소용이 없었어요.”

“아, 그러고 보니 당신은 바로 그 결혼을 망친 여자군.”

남자가 그제야 소심을 알아보고 손뼉을 쳤다. 그러고는 아래위로 한 번 훑어보더니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쯧쯧쯧, 어쩌다가 꼴이 그렇게 됐대? 너무 흉하잖아. 그래서 장문이 당신을 싫어하는 거군.”

“당신, 콜록콜록!”

“우리 꼬마 미인은 당신이랑 다르지. 난 이렇게 유쾌하고 맑은 소저가 좋아.”

남자가 그렇게 말하곤 선검을 불러내자 그곳은 선기로 가득 찼다.

“태극검!”

소심이 검을 보며 소리쳤다.

“방금 주워 온 거야. 꼬마 미인, 당신만 나를 따르면 이 검도 당신한테 줄 수 있어. 어때?”

“좋아요!”

시하의 말에 그곳에 있던 두 사람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바라봤다. 후지가 미간을 찌푸리며 검을 잡더니 바로 그 파란 옷을 입은 장로를 공격했다. 감히 내 누이를 건드려?

“잠깐만요. 후지.”

시하가 막으려고 했지만 후지는 이미 그에게 다가가고 있었다. 남자가 몸을 비키며 후지의 공격을 피했다. 그리고 손에 들고 있던 태극검을 들고 후지와 싸우기 시작했다.

“흥, 주제를 모르는군.”

후지가 아무리 우수한 검 실력으로 버틴다고 해도 시간이 오래 걸릴수록 불리한 상황에 놓일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상대는 손에 태극검을 들고 있었다. 남자가 태극검을 흔들 때마다 수천수만 개의 검기가 나왔다.

“어서 가!”

자신이 오래 버티지 못할 걸 알았는지 후지가 그들에게 먼저 빠져나가라고 소리쳤다.

“나중에 내가 찾을 테니까 먼저 나가 있어.”

후지가 말을 마치고 검을 휘두르자 살기를 가득 뿜어내던 결계가 순식간에 부서지며 통로를 나타냈다. 하지만 뒤에 있던 장로가 그쪽 문을 공격했다. 후지가 몸을 피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피하지 않고 자신의 몸으로 그 검을 막으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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