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사람들은 남매가 아닌…….”
시하가 말을 다 마치기도 전에 갑자기 그의 차가운 입술이 그녀의 입술로 다가왔다. 그의 뜨거운 입김이 그녀의 얼굴을 덮었다. 시하는 일순간 가슴이 터질 듯 뛰었고, 머릿속이 새하얗게 되어 버렸다. 그런 시하와는 달리 후지는 여전히 그 아련한 눈빛으로 마치 신기한 물건이라도 발견한 듯 호기심 가득한 모습으로 그녀의 입술을 탐닉했다.
그때, 시하가 손으로 그의 목을 잡아 자신에게로 끌어당겼다. 후지의 놀란 표정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이왕 이렇게 된 거 나도 가만히 있을 순 없지!
호기심 가득하던 후지의 눈빛이 서서히 정욕으로 타오르기 시작했다. 그 불변의 차가운 얼굴이 뜨겁게 달아오르더니 그의 손이 자연스럽게 시하의 허리를 어루만졌다. 그가 힘껏 시하를 끌어당겼다.
처음에는 잠시 어찌할 바를 몰라 헤매는 듯하던 후지는 바로 노련하게 입을 맞추었다. 그런데 그때.
“어험, 두 분 뭔가 잊고 계신 거 아닌가요?”
젠장! 한옥의 목소리에 시하가 깜짝 놀라 자기도 모르게 후지를 밀치며 뒤로 물러섰다. 장롱 안에 숨어 있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쿵쾅! 소리와 함께 시하가 장롱 밖으로 밀려 나왔다. 급하게 후지를 잡는 바람에 그도 시하와 함께 장롱 밖으로 굴러 떨어졌다. 그들은 공교롭게도 몇 평 안 되는 신혼부부의 침상 위로 넘어졌다. 방 안의 공기가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고의가 아니었다고 하면 믿어 줄까?
“하, 하던 거 계속하실래요?”
침상에 있던 두 사람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러다 바로 공격 태세를 갖췄다. 영수가 먼저 그들을 향해 공격해 왔다.
하늘을 가득 채운 위압이 곧 시하에게로 다가오려고 했다. 순간 그녀의 허리를 감싼 후지가 그곳으로부터 몇 척이나 되는 거리로 물러섰다. 잠시 후, 커다란 진동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려보니 그들이 쓰러졌던 그 침상 뒷벽 부분이 영수의 공격에 산산이 부서졌다. 순식간에 방 절반이 날아가 버리며 뿌연 먼지가 날리고 있었다.
아무리 우리가 분위기를 망쳤다고 해도 그렇지 이렇게 화낼 일인가? 당신이 후지에게 이상한 걸 가르쳤다는 사실은 알고 있어요?
“뭐 하는 놈들이지?”
영수가 물으며 선검을 불러냈다. 검기가 가득한 검에서 살기마저 느껴졌다. 당장에라도 그들의 몸을 갈기갈기 찢어 놓기라도 할 듯 분노에 찬 표정을 짓고 있었다.
옷만 벗고 있지 않았어도, 더 심각하게 느껴졌을 텐데. 제일 처음 본 남자의 알몸이 후지가 처음이 아니라니 놀랍군. ……어? 근데 왜 당연하게 후지일 거라고 생각한 거야, 나는?
후지는 보기에 좋지 않았는지, 얼굴을 찌푸리며 손으로 시하의 눈을 가렸다. 맞은편에 있던 영수는 그제야 자신이 벗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당황했다. 그의 얼굴에 가득하던 살기가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그가 서둘러 자신의 옷을 찾기 시작했다.
“당, 당신들 가만두지 않을 거야. 도망가지 말고 거기서 기다려!”
하하, 기다리긴 왜 기다려, 누굴 바보로 아나!
“가자!”
후지가 두 손으로 결인을 하자 잠시 후, 그들의 발아래에 전송진이 나타났다. 시하의 몸이 밝은 빛에 둘러싸이더니 눈앞의 풍경이 순식간에 바뀌었다. 순식간에 또 다른 공간에 도착했다. 희미하게 화가 난 영수의 목소리와 술법을 부리며 내는 진동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당신들 거기 서, 거기 서라고!”
시하가 그제야 안심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휴, 좋은 경험이었어. 겨우 도망쳐 나왔네.
누가 뭐래도 영수는 태명파의 장문이었다. 만약 후지가 빠르게 움직이지 않았다면 그의 공격에 당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리고 방금 그가 뿜었던 위압은 전에 변태 성주가 뿜었던 것보다도 훨씬 높아 보였다. 시하는 이번에 중선 수행 계급의 위엄을 확실히 경험한 듯했다. 후지가 빠르게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면 어떻게 됐을지도 몰랐다.
“그런데 여기가 어디죠?”
시하가 주변을 둘러보며 물었다. 희미한 등불이 놓여 있는 아주 어두컴컴한 곳이었다. 자세히 살펴보니 어느 한 통로처럼 보였다. 후지가 아무 대답 없이 급히 주변에 진법을 펼쳤다.
“여기에 은신진은 왜 설치하는 거예요?”
그곳에서 탈출한 거 아니었어?
“우리의 기운을 숨겨야 돼.”
후지가 진을 설치하고 나서야 입을 열었다.
“우리는 대전 아래에 있어.”
“뭐라고요?”
시하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후지에게 물었다.
“대전 아래요? 그럼 아직도 태명파에 있는 거예요?”
“그래.”
그럼 방금 들은 것은 환청이 아니었구나. 영수의 목소리였어.
“임시로 만든 전송 진법이라 멀리 갈 수 없었어. 전에 대전 뒤를 탐색할 때 여기 지하에서 통로를 발견했거든.”
전송 진법은 많은 선기를 필요로 하지 않지만, 진법을 설치하려면 복잡하고 세밀한 과정이 필요했다. 보통 전송진을 설치하려면 최소한 몇 명이서 힘을 합쳐 오랜 시간이 걸려야만 성공했다. 후지가 단시간 내에 만들어 낸 진으로 두 사람을 이곳까지 전송한 것만으로도 이미 기적 같은 일이었다.
“걱정 마. 내가 있잖아.”
후지가 시하를 위로하며 머리를 쓰다듬더니 고개를 숙여 입을 맞췄다.
“이곳은 안전해.”
시하가 그의 입맞춤에 놀란 표정을 지었다. 자연스럽게 방금 그 일이 떠올라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얼굴이 후끈거려 후지의 얼굴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할 지경이었다.
왜 그러는 거지? 연애 경험이 없는 것도 아닌데. 물론 매번 오빠가 ‘넌 아직 어려, 급할 것 없어. 남자는 이 오빠 빼고는 모두 짐승이야.’라며 방해했지만 경험이 없는 것도 아니잖아. 두려워할 것 없어! 그리고 우리 두 사람은 진짜 남매도 아니고, 지금 남녀 관계로 조금 전환된 것뿐이니 당연히 아무 문제없을 거야.
생각해보면 후지는 훌륭한 남자였다. 잘생기고 수행 능력도 좋고 게다가 자신을 아껴 주고 있었다. 그런 사람에게 마음이 끌리지 않으면 그게 비정상이지 않을까?
그녀가 한참 생각에 잠겨 있는 동안 후지가 다시 한 번 입을 맞췄다. 그러고는 아쉬운 표정으로 그녀의 손을 꽉 잡았다. 순간 그곳에 이상한 기운이 감돌았다.
“후, 후지.”
하지만 그 와중에 시하는 아무리 생각해도 다시 한 번 확인하고 싶었다.
“응?”
이게 대체 무슨 의미인 거죠?
“작은 주인님!”
한옥이 갑자기 흥분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주인님의 기운을 감지했어요.”
한옥의 목소리에 애매한 분위기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한옥이 옆에 있다는 사실을 또 잊고 있었잖아. 이런 중요한 순간에 제삼자는 모른 척하면 안 되는 거냐?
“이번엔 분명해요. 서쪽에서 멀지 않은 곳이에요.”
한옥이 자랑스럽게 자신의 꽃잎을 흔들며 말했다. 그리고 한참 두 사람이 아무 대답도 하지 않는 걸 발견하고는 조용히 고개를 들었다.
작은 주인님의 눈빛이 너무 무서운데, 내가 뭐라도 잘못한 걸까? 난 억울해!
머리 위에서 커다란 진동음이 들려오더니 그들이 있는 그 좁은 통로에까지 먼지가 휘날렸다. 보아하니 영수 장문이 단단히 화가 난 듯했다.
“이제 어떡하죠?”
시하가 후지에게 물었다. 그곳이 어딘지는 모르겠지만 다른 통로에 비해 많이 낡아져 있어 특별히 지어졌다기보다는 대충 파 놓은 통로처럼 보였다. 때문에 그들도 함부로 움직일 수 없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오빠를 찾을 수 있을지 확실하지는 않았지만 한옥이 오빠의 위치를 감지할 수 있는 시간이 제한되어 있어 서둘러 서쪽으로 가야 했다.
“아직은 움직일 수 없어. 지금 나가면 너무 위험해. 밖이 조용해지면 기회를 봐서 나가야 돼.”
그들이 안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밖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시하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후지에게 물었다.
“여기까지 들어오는 건 아니겠죠?”
아주 가까운 곳에 있어 들어오지 못할 것도 없어 보였다.
“아니야. 이미 기운을 막는 진법을 쳤어. 이곳이 제일 안전한 곳이야. 장문이 이곳을 알아낸다 해도.”
후지가 자주색 부적을 꺼내 시하에게 건넸다.
“우린 이걸로 이곳을 떠나면 돼.”
시하가 부적을 받아 보니 전에 그녀에게 줬던 그 임시 전송부였다.
이렇게나 많이? 준비하고 있었으면 일찍 말을 하지.
시하가 그제야 안심하며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잠깐만! 근데 전송부가 있으면서 방금 왜 전송진을 사용한 거지? 능력을 뽐내고 싶었던 걸까? 하지만 제일 등잔 밑이 어둡다고 우리가 태명파의 바로 아래 있다는 걸 어떻게 알아차리겠어? 다시 말해서 후지의 진법 수준은 수준급이어서 절대로 문제없을…….
우르르 쾅쾅, 갑자기 거대한 소리가 들려오며 위에 있던 석벽이 순식간에 무너졌다. 어둡던 통로가 훤해지더니 크고 작은 돌들이 아래로 떨어져 얼굴에 먼지가 내려앉았다.
“흥, 당신들 도망칠 수 있을 줄 알았어?”
화가 잔뜩 오른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안전하다며? 이렇게 빨리 발견되면 어떡하자는 거야!
“이젠 어디로 도망가나 두고 보지.”
영수가 이번에는 옷을 걸치고 이를 악물며 수천수만 개의 검을 불러내더니 공격하기 시작했다.
후지도 선검을 불러냈다. 사방이 차가운 검기로 가득해지더니, 그의 검기가 용으로 변신했다. 거대한 빙룡이 평지에서 올라오자 그가 지나가는 곳마다 모두 얼음으로 변해 버렸다. 검기가 영수의 검기조차 꽁꽁 얼려 버렸다.
“흥! 능력은 제법이군!”
영수가 빙룡의 공격을 피해 후지를 아래위로 훑어보더니 차갑게 콧방귀를 뀌었다.
“아쉽지만, 금선밖에 안 되잖아?”
그가 왼쪽 손으로 결계를 하자 방금 빙룡이 얼려 버린 검기가 갑자기 화염으로 변해 타오르기 시작했다. 그의 검기가 순식간에 모든 얼음을 녹여 버렸다.
후지가 다시 검을 휘두르더니 동시에 다섯 마리의 빙룡을 불러내 그를 공격했다. 순간 천 리까지 모두 얼음으로 변해 버렸다.
“흥, 별거 없잖아!”
영수가 어림도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손에서 법결을 멈추지 않자 순간 화염이 거세게 타올랐다. 화염이 십여 미터 높이의 벽을 만들며 그들의 앞을 막더니 후지의 빙룡을 모두 태워 버렸다.
영수가 득의양양한 모습으로 마치 시체 보듯 그들을 바라보았다.
“그런 술법으로 날 상대하…….”
그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공중에 물이 되어 흩어졌던 얼음이 다시 얼더니 아래로 떨어졌다. 빙룡이 워낙 거대했기 때문에 물방울로 변한 그 양도 어마어마했다. 그 물방울들이 칼날 같은 얼음이 되어 아래로 떨어졌다.
영수가 급히 숨을 곳을 찾았지만 자신의 능력을 지나치게 믿은 나머지 방어 결계를 펼칠 틈도 없이 공격을 당했다. 심지어 그의 옆에 있던 그 화벽조차 더는 버티지 못하고 꺼져 갔다.
역시 후지는 내가 반할 만한 남자야. 이제 보니 이번 싸움은 우리가 이긴 듯하군.
“하하(夏夏).”
시하가 후지의 뒤에서 뭐라도 도와야 할지 망설이는 순간, 후지가 그녀에게로 돌아와 손을 내밀며 말했다.
“지금이야.”
시하가 후지의 손을 잡고 바로 전송부를 눌렀다. 이 기회에 아주 멀리 날아가 버리자.
시하가 들고 있던 전송부의 효과는 역시나 대단했다. 그녀가 전송부를 누르자마자 밝은 빛이 두 사람을 감쌌다. 시하는 얼음비에 파묻힌 장문을 바라보며 가운뎃손가락을 내밀었다. 다시는 만나지 말자. 안녕.
후지는 역시 그녀의 천사였다. 유혹하는 기술도 대단하고 또 적을 물리치는 능력도 있으니 그야말로 완벽한 동반자가 아닐까. 어딜 가도 이런 동반자를 다시 만나긴 어려울 듯했다.
그들을 감싸던 빛이 점점 더 밝게 빛나더니 드디어 영수의 영역을 벗어날 수 있었다. 눈앞에 또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이곳은 진법으로 가득한 석실?
“들어가, 감히 장문의 결혼식을 망치다니. 평생 이곳에 갇혀 있을 각오를 해야 할 거야.”
갑자기 분노에 찬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잠시 후, 익숙한 모습의 여자가 누군가에게 밀려 쿵 소리를 내며 그들 앞에 쓰러졌다. 동시에 쾅! 소리가 나더니 옥문이 닫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