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48화 (148/189)

시하는 우선 태명파로 가기로 결심했다. 오빠가 그곳에 나타났었으니 단서를 남겨 놓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곳에서도 뭔가 찾지 못하면 마선 대륙에라도 가 볼 참이었다. 하지만 그전에 처리해야 할 일이 있었다.

“왜 우리를 따라와?”

시하가 고개를 돌려 소심을 바라보았다. 암운성을 탈출한 지도 오래되어 위험을 벗어난 뒤였다. 시하는 함께 동행할 의사가 없음을 밝혔지만 그녀는 여전히 그들 뒤를 따라오고 있었다.

“하 언니. 아직도 화가 나 있는 거예요? 제가 잘못했어요. 하지만 저도 어쩔 수 없는 사정이 있었어요.”

“그게 뭔데? 말해봐.”

소심이 뭔가 망설이는 듯하더니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구체적인 원인은 지금 말할 수 없어요. 하지만 하 언니, 저를 믿어 주세요. 언니를 해칠 생각은 전혀 없었어요. 전에는 임시적인 계책일 뿐이었어요. 그래도 다시 돌아가 언니를 구하려고 했던 거고요.”

“소심. 난 너에게 무슨 이유가 있든 상관없어. 하지만 배신은 그냥 배신이야. 네가 절대적인 이유를 찾는다고 해도 우린 이미 상처를 받았다고. 네가 그 원인을 찾는다고 해서 그 상처가 사라지지 않아. 우리를 해칠 마음이 없었다는 말은 믿을게. 어쨌든 오늘 네가 우릴 구해 준 건 사실이니까. 고마워. 하지만 난 너를 믿을 수가 없어. 우린 너의 목숨을 구해 줬잖아. 네가 어떤 마음을 품었든 더 묻지 않을게. 이걸로 서로의 빚은 갚은 걸로 하고 우리를 쫓아오지 마.”

“하 언니.”

큰 충격을 받은 듯, 소심은 그 자리에 굳은 표정으로 멈추었다. 시하는 개의치 않고 후지와 검을 부려 서쪽으로 날아갔다. 검의 속도를 더욱 높이자, 시하가 더는 자신과 함께하지 않기로 마음을 굳힌 걸 눈치챘는지 소심도 뒤를 따르지 않고 다른 방향으로 날아갔다.

무엇 때문인지 시하는 지금의 소심을 보기만 하면 마음이 차갑게 변했다. 게다가 변태 성주가 무의식중에 했던 말이 떠올라 소심이 아무리 말 못 할 이유가 있다 해도 시한폭탄 같은 그녀를 곁에 두고 싶진 않았다.

그리고 시하는 지금 오빠가 벌여 놓은 아수라장을 정리하러 가는 길이라 그쪽 사람들과 싸우게 될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그때 한옥이 갑자기 자신의 잎사귀를 흔들며 시하에게 말했다.

“주인님, 저 여자 기운이 좀 이상했어요.”

“기운?”

“선기가 흐르고는 있지만 흩어지지 않고, 신식이 안정되긴 했지만 응집되지 못하고 있었어요.”

“알아듣게 얘기해!”

걸핏하면 이상한 전문 용어만 쓰잖아.

“저 여자의 몸에 있는 선기가 밖으로 흐르고 있어.”

후지가 설명하자 한옥이 이어서 말했다.

“바로 그거예요. 선기는 모두 단전에 모여 있다가 술법을 상용할 때에만 경맥을 거쳐 나오게 되어 있죠. 하지만 소심은 온몸이 선기로 둘러싸여 있었어요. 처음에는 수행 계급이 올라가서 선기가 몸을 둘러싸고 있는 줄 알았는데, 살펴보니 그 선기는 그녀의 몸에서 나오고 있었어요.”

시하는 그제야 한옥의 말을 알아듣고 대꾸했다.

“심심해서 선기를 갖고 장난치는 건 아니겠지?”

오랫동안 단전을 비워 두면 계급이 내려갈 수도 있는데, 아예 수행을 다시 할 참인가?

후지가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

“고의로 그러고 있는 건 아닐 거야. 몸에 있는 선기가 그러는 것이지.”

“선기요? 설마?”

시하는 전에 변태 성주에게 잡혔을 때 본 물건을 떠올렸다.

“아마 맞을 거야. 다만 왜 그렇게 특수한 무기를 갖고 있는지 이유를 모르겠어.”

후지의 말에 그 순간, 변태 성주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태명파 장문과 연관이 있는 듯해요.”

“태명파 장문?”

“네, 변태 성주에게서 들었어요. 그 장문에게 뭔가 죄를 지은 모양이에요. 그리고 태급전의 물건도 훔쳤고요.”

그래서 그 무극전의 사람들이 그녀를 쫓아다닌 것이라고 했다.

“그녀가 그 무기로 장문에게 복수하려는 건 아니겠죠?”

“어찌됐든 오늘 이후로 다시 접촉할 일은 없으니 미리 방비했다 생각하면 되겠네.”

“맞아요.”

선기가 아직 발동하기도 전에 사람의 몸에서 흘러나오는데 발동하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는 아무도 몰랐다. 소심처럼 속을 알 수 없는 사람은 믿을 수가 없었다. 시하는 처음부터 남쪽으로 가는 목적을 그녀에게 가르쳐 주지 않았던 것이 천만다행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검을 부려 밤낮을 쉬지 않고 달려왔지만 보름이 걸려서야 태명파의 범위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들은 바로 태명파로 들어가지 않고 부근에 있는 작은 마을에서 소식을 들어 보기로 했다. 운이 좋았던 건지 그 작은 마을은 유난히 시끌벅적했다.

길은 선인들로 가득했고 사람들의 얼굴이 모두 흥분되어 있었다. 사방에 갖가지 색과 같은 모양의 교복을 입은 선인들이 뭔가 열심히 토론하며 화기애애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시하는 차를 마실 수 있는 곳을 찾아 그곳에서 일하는 심부름꾼에게 이것저것 물어보며 정보를 얻기로 했다.

“선우님, 마을이 항상 이렇게 떠들썩한가요?”

“아니에요.”

심부름꾼이 차를 따르더니 그녀와 후지를 살펴보고는 흥겨운 목소리로 말했다.

“두 선우님은 산선(散仙)이시죠? 태명파는 처음이세요?”

“네.”

“그럼 모르시겠군요. 사실 이 마을은 아주 작아서 평소에는 사람이 별로 없어요. 두 분이 시기를 잘 맞추셨지요. 태명파에 최근에 좋은 일이 있어서 각 선문에서 제자들을 파견하여 덩달아 이곳까지 사람들이 많아진 거예요.”

“오, 각 선문에서까지 왔군요. 근데 무슨 좋은 일인 거죠?”

“세 가지 좋은 일이 있어요.”

심부름꾼이 시하의 질문에 흥분하며 말했다.

“이틀이 지나면 저희 태명파의 영수 장문과 소근(蘇謹) 선자가 연을 맺죠. 그래서 각 선문에서 두 사람을 축하하기 위해 사람을 보내 왔답니다.”

“아.”

장문이 결혼을 하는구나.

“그리고 공교롭게도 요 며칠 태명파에서 10년에 한 번 문객(門客)을 선발하는 날이라 산선들이 아주 많이 모여들었어요. 그래서 이 작은 마을이 시끌벅적해졌죠.”

“문객을 받아요?”

이건 기회야! 태명파에 들어갈 이유를 찾고 있었는데 하늘이 기회를 주고 있잖아. 이제 보니 이제 일이 잘 풀리려나 보네.

시하가 후지를 바라보며 눈빛을 보냈다.

“당신들도 이름을 등록하려고 온 산선들이시죠?”

“……맞아요.”

“그럼 빨리 서둘러야 해요.”

심부름꾼이 멀지 않은 곳에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을 가리켰다.

“오늘이 등록할 수 있는 제일 마지막 날이거든요. 유시(오후 5시~7시)가 지나면 10년을 더 기다려야 해요.”

“고마워요. 선우.”

시하가 서둘러 탁상 위에 있는 차를 마시고 후지와 함께 그곳으로 가다가 갑자기 뭔가 떠올라 심부름꾼에게 질문했다.

“근데, 방금 태명파에 세 가지 좋은 일이 있다고 하지 않았어요? 한 가지 좋은 일은 뭔가요?”

“그건 아주 대단한 일이에요. 혹시 전에 저희 태명파로 쳐들어왔던 그 마선을 아세요? 그가 잡혔대요!”

“뭐라고요?”

“하하(夏夏).”

후지가 시하의 손을 잡아당겼다. 시하가 그제야 정신을 차리며 조급한 마음을 누르고 낮게 한옥을 불렀다.

“한옥?”

“작은 주인님. 아주 미세하긴 하지만 저 산에서 주인님의 기운이 느껴지고 있어요.”

시하는 순간 긴장되기 시작했다. 오빠가 정말 저기에 있는 걸까? 침착해야 돼! 당황하면 안 돼.

“선우님, 방금 당신이 말한 그 마선은…….”

너무 흥분된 나머지 심부름꾼은 두 사람의 이상 행동을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말을 이었다.

“보통 인물이 아니에요. 듣자하니 전에 그가 영수 장문에게 상처를 입힌 적이 있었대요. 그 후 태명파에서 사람들을 출동시켜 찾아보았지만 계속 찾지 못하고 있었죠. 근데 이번에 장문이 상처를 회복하고 몇몇 장로들과 함께 나가 잡아 온 거예요. 듣자하니 영수 장문이 자신의 결혼식 날 친히 그 마선을 처리할 거라고 하더군요.”

오빠가 아직은 괜찮다는 말이네. 아직 시간이 있어서 다행이야.

“그 마선이 그렇게 대단한데 태명파의 감방에 가둘 수 있을까요?”

시하가 떠보듯 질문하자, 심부름꾼이 그녀를 흘겨보며 대답했다.

“마선을 어떻게 함부로 가두겠어요. 구체적으로 어디에 가두었는지 저희 소선들은 알 수 없어요. 영수 장문이 잡아 왔으니 가두는 것도 알아서 잘하시겠죠.”

“그렇겠네요.”

시하는 초조한 모습을 사람들에게 더 이상 감추기 어려울 정도였다. 하지만 꾹 참고 잠시 그곳에 앉아 있기로 했다. 잠시 후, 그곳에 선석을 지불한 뒤 후지와 함께 태명파의 문객으로 등록하는 곳에 걸어갔다.

오빠가 우리가 도착하기 전에 이상한 일만 벌이지 않으면 좋겠는데!

“한옥, 오라버니가 저 안에 있다고 확신할 수 있어?”

시하가 눈앞에 펼쳐진 인산인해를 바라보며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물었다.

“작은 주인님, 걱정하지 마세요.”

한옥이 자신의 줄기를 꼿꼿이 세우며 꽃잎을 두드렸다.

“주인님은 저 대전 뒤에 계신 것이 분명해요.”

“정말?”

“믿어 보세요. 문제없어요! 이 한옥이 당신을 속인 적 있었나요?”

“그럼 전에 틀린 길을 안내했던 사람은 누구지?”

시하가 눈을 흘겼다. 그들이 태명파로 들어온 지 이미 3일이나 되었다. 오빠와의 계약 시 맺어진 한옥의 지각을 의지하여 그들은 이미 그곳을 모두 뒤지고 다녔지만 매번 허탕만 치고 다녔다. 그들은 오빠의 그림자도 찾지 못했다. 후지가 깔아 놓은 은신술법이 아니었으면 이미 누군가에게 잡혀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너의 신임도 이제 바닥을 보이는 듯한데?”

“작은 주인님. 저도 어떻게 된 일인지 모르겠어요. 주인님의 위치가 계속 바뀌고 있어요. 하지만 전에 저희가 갔던 곳에서 주인님의 기운을 확실히 느낄 수 있었어요.”

“됐어. 우선 들어가서 다시 얘기해.”

오빠가 태명파를 그 지경으로 만들어 놓았으니 이해 못할 것도 아니지. 어렵게 사람을 잡았으니 장소를 옮겨 가며 엄격하게 감시하는 것도 당연했다.

시하는 눈앞에 빼곡하게 서 있는 사람들을 보며 머리가 조금 어지러웠다. 오늘이 바로 그 장문의 결혼식이 치러지는 날이었다. 그곳은 축하하러 온 하객들과 선물을 구경하러 온 사람들로 발을 디딜 틈이 없었다. 그리고 전 안에는 각 파에서 파견된 장로들과 우수한 제자들이 앉아 있었다.

그들은 이제 갓 태명파로 들어온 제자들이었기 때문에 그곳에 앉을 자격이 없었다. 그러나 하필이면 한옥이 오빠의 기운이 느껴지고 있다고 한 장소가 바로 그 전 쪽이었다.

“오라버니, 어떡하죠?”

“아직 기다려야 해.”

시하는 어쩔 수 없이 조급한 마음을 누그러뜨리며 기다리기로 했다.

혼례를 치르면 하객들에게 답례하는 시간은 있겠지. 그럼 전 안에 있던 사람들도 나와야 될 것이고, 그때 조용히 숨어 들어가면 되겠어.

그렇게 정오까지 기다렸는데 대전 안에서 갑자기 커다란 소리가 들리더니 사람들이 뿔뿔이 흩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제일 먼저 달려 나온 사람들은 바로 붉은 예복을 입은 남자와 여자였다.

광장에 있던 사람들이 갑자기 환호하더니 이어서 그들을 축하하는 말들을 하며 물밀 듯이 문 입구로 몰려갔다.

“지금이야.”

안에 있던 사람들이 거의 다 빠져나가자 후지가 그녀의 손을 이끌고 조용히 대전 안쪽으로 다가가 밀려나오는 하객들 무리에 슬쩍 끼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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