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45화 (145/189)

“오라버니, 여기 너무…….”

“조용하다고?”

“맞아요!”

시하가 주변을 둘러봤다. 줄 서 있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았는데 왜 이 정원에는 우리 두 사람만 있는 거지?

“그리고 이 바닥에 있는 돌들의 배열이 조금…….”

진법! 시하가 놀라며 후지와 눈을 마주쳤다. 등 뒤에서 식은땀이 흐르는 것이 느껴졌다. 후지가 손을 뻗어 시하를 잡았다.

“가!”

“하지만 소심이!”

“시간이 없어!”

후지가 검을 불러내며 몸을 일으켰다. 방금 전까지도 조용하던 지면이 갑자기 밝은 빛을 비추더니 그들이 있던 그 정원을 모두 덮어 버렸다. 시하는 온몸이 무겁게 눌리는 것을 느끼며 후지와 함께 그 자리에 주저앉아 버렸다.

후지가 부축하지 않았다면 시하는 아예 쓰러질 뻔했다. 진법의 힘이 얼마나 강한지 아무리 노력해도 일어설 수가 없었다. 그들이 저항하면 할수록 그 압력이 더 크게 몸을 짓눌러 제대로 제어할 수조차 없었다.

“선기를 움직이지 마. 상처를 입을 수 있어!”

후지가 시하에게 소리치더니 보기만 해도 끔찍한 붉은 피를 흘렸다.

“오라버니!”

시하는 후지가 그렇게 무기력하게 당하고만 있는 모습을 처음 보았다. 황급히 그의 상처를 살피려고 했지만 몸이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걱정하지 마. 진을 설치한 사람은 우리 선력(仙力)을 봉인하려는 것뿐이야.”

선력을 봉인한다고?

“하하하, 맞아!”

갑자기 건물에서 요염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건 봉인진이 맞아. 당신들을 그 진에서 죽게 하기엔 너무 아까워.”

붉은 옷을 걸친 누군가가 건물 밖으로 나왔다. 여자는 온몸에 붉은 빛깔의 옷을 걸치고 바닥까지 긴 머리를 늘어뜨리고 있었다.

그녀는 그들이 있는 곳으로 천천히 다가왔다. 얼굴에 형용할 수 없는 표정을 지으며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두 사람을 바라봤다. 뭔가 만족스러운 풍경이라도 감상하듯 시선을 고정시키더니 더욱 요염한 미소를 지었다.

“역시 인간계의 절색이야!”

“당신 누구야?”

여자가 더욱 크게 웃더니 그들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지금은 몰라도 돼. 나의 암운성으로 들어가면 시간은 많으니, 우리 천천히 친해지자고.”

나의 성?

“당신이 그 성주예요?”

그 남자만 잡아서 죽인다는 그 변태?

“하하하, 눈치가 빠르네. 그렇게 큰 대가를 치르고 바꿀 만했어.”

바꿔? 무슨 뜻이지?

그때 여자가 건물 안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당신 말이 맞아. 저 사람, 아주 만족스러워. 나도 동의해.”

그러자 건물 안에서 익숙한 그림자가 나타났다. 시하가 자신의 눈을 의심하며 그 사람을 바라봤다.

“소심?”

소심은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다. 게다가 더는 그 천진난만하던 모습이 아닌, 아주 냉정한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

그녀는 시하와 후지의 수행 계급을 잘 파악하고 있었기에 그곳에 진법을 설치하고 고의적으로 안내한 것이었다.

와! 이런 나쁜 계집애, 저 변태 성주와 같은 패거리였어? 난 많이 친해졌다고 생각했는데!

다만 그녀가 이 성에 들어오면서부터 계획을 갖고 있었는지, 아니면 무극전 사람들에게 쫓긴 것부터가 모두 연극이었던 건지는 알 수 없었다.

소심은 주먹을 꼭 쥔 채 아무런 답도 하지 않았다. 그저 고개를 숙인 채 그들을 바라보지도 않고 있었다. 그들을 보고 싶지 않은 건지 아니면 그럴 수 없는 건지.

그때 옆에 있던 변태 성주가 웃으면서 말했다.

“놀랄 것 없어. 이 세상이 원래 그래. 이익이 있으면 최대한 활용해야지.”

“쓸데없는 소리 그만 지껄여!”

소심이 더는 그녀의 말을 듣기 힘들었던지 소리쳤다.

“나한테 준다고 했던 물건은요?”

“쳇, 재미없어.”

여자가 콧방귀를 뀌더니 손에서 물건 하나를 꺼냈다.

“자, 어렵게 내 맘에 드는 사람을 만났으니 이 성주가 오늘 마음 좀 쓰지. 이건 선물로 줄게.”

이런 나쁜 계집애, 우리를 팔아먹은 거야?

소심이 여자의 손에서 물건을 건네받더니 걸음을 재촉하며 전송진이 있는 방향으로 걸어갔다.

이런 배은망덕한 계집애를 구해 주다니, 내 눈이 썩었지!

“이제 우리 셋만 남았네.”

그 변태 성주가 다시 진 안에 있는 그들을 바라보며 눈빛을 반짝였다. 그녀가 불처럼 뜨겁게 타오르는 눈빛으로 그들을 아래위로 살피기 시작했다. 시하는 잠시 자신이 벌거벗겨진 듯한 착각이 들었다.

이 변태가 설마.

시하는 갑자기 소심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이 성주는 색을 밝혀서 항상 강제로 성안에 용모가 준수한 남자들을 끌어들인다고 했다.

설마 호구 오라버니의 외모에 반한 걸까? 후지의 용모면 그럴 만도 하지. 젠장, 그럴 줄 알았으면 후지에게도 역형단을 먹일걸! 잘생긴 남잔 정말 귀찮아!

“이런 절색은 역시 이 성이랑 제일 잘 어울리지.”

변태 성주가 눈을 가늘게 뜨고 후지를 향해 다가왔다. 시하가 깜짝 놀라며 후지의 손을 잡았다. 안 돼! 절대로 안 돼!

“네가 나를 따르면 지금부터 다른 남자는 쳐다보지도 않는다고 약속하지. 당신에게 본 성주와의 결혼을 허락하겠어.”

꿈도 야무지네. 당신이 원한다고 우리 오라버니가 당신을 받아 줄 것 같아?

“어때? 당신이 대답만 해주면 지금이라도 이 진법을 풀어 줄 수 있어.”

그녀가 얼빠진 표정으로 손을 내밀더니, 별안간 시하의 얼굴을 매만졌다.

시하는 일이 조금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이 위장한 모습을 스스로 봐서 알지만 그렇게 추한 모습도 그렇게 매력적인 얼굴이라고도 할 수 없었다. 그리고 처음부터 사람들의 눈에 띄게 하지 않기 위해 변장한 것이라 외모가 평범할수록 유리했다. 어쨌든 그 순수하고 자연스러운 후지의 매력하고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모습이었다. 근데 그 노련한 여성주가 아무리 눈이 멀었다고 해도 자신을 마음에 들어 하는 것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객잔에 머물 때도 여주인이 저에게만 각별히 친절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늘 차와 물을 나르며 곁을 맴돌았다. 물론 대부분 후지와 소심에게 들켜 방까지는 들어올 수 없었지만 어떻게든 근처로 접근하려고 했던 모습을 보면 지금 생각해도 이상했다.

심지어 변태의 제안을 거절하고 이 감방으로 끌려오던 중에도 여선들이 수줍은 미소를 보내었다. 시하는 자신이 감방이 아니라 마치 술집으로 끌려가는 듯한 착각마저 들었다. 그런 그들의 모습에 시하는 손발이 오그라들 정도였다.

이건 뭔가 이상해, 아주 이상해!

“한꺼번에 모든 여자들의 미의 기준이 이상해질 수는 없는 거잖아요? 이건 너무 비정상적이라는 생각 안 들어요?”

“작은 주인님, 그러고 보니 확실히 뭔가 이상하긴 해요.”

한옥이 시하의 말에 동의햇다.

“그렇지, 뭔가 이상하지?”

“네, 어떻게 여선뿐이겠어요. 작은 주인님이 이렇게 예쁜데 남선도 당신의 미모에 넘어가야 하는 것이 맞죠.”

“……저리 가!”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라고!

“하하(夏夏), 혹시 이 상황이 언제부터 시작됐는지 기억해?”

후지가 진지한 얼굴로 그녀에게 질문하기 시작했다.

“언제냐고요? 아마도 이 성에 들어오고 나서……. 아니, 정확히 말하면 내가 경맥을 씻은 다음인 듯해요.”

시하는 그날 물에서 나오고 나서 소심의 표정이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챘었다. 특히 역형단을 먹은 후 더 그랬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 나쁜 계집애가 나한테 교태를 부린 거였어?

시하는 자기도 모르게 또다시 손발이 오그라드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럼 작은 주인님이 들어가신 그 연못에 뭔가 문제가 있는 걸가요?”

한옥이 묻자 후지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건 아닐 거야. 하하(夏夏)의 몸에는 아무 이상도 나타나지 않고 있어.”

“그럼 어떻게 된 거죠? 물이 맞지 않는 걸까요?”

“한옥, 이 선계의 물은 정말 경맥을 씻고 선인의 몸으로 변신하는 기능만 있는 거야?”

다른 부작용이 있는 건 아니겠지? 예를 들어 갑자기 매력적인 사람으로 변신한다든지 그런 효능은 없는 거지?

“그건 확실해요. 모든 선계가 다 아는 사실이죠. 아, 하지만 선기가 원래 갖고 있던 영기보다 더 강하면 선인의 몸으로 변신할 때 몸 안에 있는 기운을 더욱 강화할 수는 있어요. 영근이 없다는 차이는 있지만 몸 안에 있는 모든 잠재력이 더욱 분명하게 드러나는 효능이 있죠. 영기를 부수고 합류하는 그곳에서 근본으로 돌아가 선인의 몸으로 변신하는 거예요.”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못 알아듣겠어.”

“간단하게 말하면 전에 그 몸속에 있던 영근은 사라지지만 속성은 더욱 분명해지고 강해진다는 말이에요. 화 영근을 가진 사람은 불의 속성이 더욱 강해지고, 목 영근의 속성을 가진 사람은 그 속성이 더욱 강해져 많은 식물들을 다스릴 수 있게 되는 효과를 보일 수 있죠. 이 점은 그 나쁜 선수도 알고 있는 사실이고요.”

한옥이 후지를 바라보며 자신의 꽃잎을 마구 흔들자, 후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확실히, 비승하고 난 후 나의 빙 속성(冰 屬性) 기운이 더욱 짙어진 듯해.”

바로 그런 효능 때문에 후지는 비승 후 바로 금선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이다. 그 말은 경맥을 씻고 선인의 몸으로 변신하는 그 연못은 사실 자신의 속성을 더욱 강하게 하는 마법 기능도 갖추고 있다는 말이었다.

후지는 빙 영근 선수였기 때문에 빙 속성이 더욱 강해져 있었고, 한옥은 목 영근의 화요로 목 속성이 더욱 강해져 있었다.

난 순양 영근인데 그럼 내가 강해 진 건 그럼 양, 양기! 젠장! 왜 하필이면 순양 기운인 거지! 이제 보니 순양의 양기는 그 양이었잖아! 이런 영근을 어디에 쓸 수 있는 거지!

이게 바로 지금까지 그렇게 많은 여자들을 끌어당긴 힘이었던 걸까? 이런 영근이 여자의 몸에 있어도 되는 거야? 선인이 되려고 비승했더니 여자나 유혹하고 다니게 생겼잖아. 이건 잘못돼도 한참 잘못됐어!

시하는 욕이 나오려는 것을 간신히 참았다.

“하하(夏夏).”

후지가 위로하듯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아무 말도 하지 마요. 혼자 있고 싶으니까. 이제 시집도 못 가게 생겼다고요.”

“괜찮아. 무서워하지 마. 내가 있잖아.”

“무슨 상관이에요. 나랑 결혼이라도 하게요?”

“좋지.”

“네?”

“좋아.”

그가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자, 시하의 얼굴이 순식간에 빨갛게 달아올랐다. 잠룡연에서 나눴던 그 영문을 알 수 없는 입맞춤이 자연스럽게 머릿속에 떠올랐다. 시하는 갑자기 후지가 어색하게 느껴져 자기도 모르게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남매 사이라면서요. 하지만 우린 혈연관계는 아니잖아? 그러니까 그 가능성이 있……. 정신 차려! 정신 차려!

실망한 듯한 그의 눈빛을 보자 시하는 점점 더 답답해졌다. 잠룡연의 일에 관해서는 아직 물어보지도 못하고 있었다. 전에는 부끄러워서 물어보지 못했다면 지금은 어디서부터 말을 시작해야 할지 몰랐다. 특히 지금처럼 후지가 그녀의 오라버니인 상황에서는 말을 꺼내기가 더욱 어려웠다.

어찌됐든 3천 년 이후 나에 대한 그 순수하지 못한 감정이 지금은 어떤지 물어볼 수가 없잖아?

“후지, 우리 진지하게 얘기 좀 나눠요.”

“응?”

도대체 무슨 생각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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