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42화 (142/189)

“여기에 없다니, 설마 내가 잘못 추측한 걸까?”

“보아하니 계집애가 능력은 있는 모양이로군. 여기에서 도망가다니.”

“됐어. 어찌됐든 지선에 불과해. 우선 돌아가서 보고부터 해야겠어.”

마른 체형의 남자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다시 날아올랐다.

이젠 정말 간 거겠지?

시하가 한참을 앉아 있다가 몸을 일으키려고 하자 후지가 다시 저지했다. 역시나 두 사람은 다시 그곳으로 돌아왔다. 이번에는 두 사람이 근처를 샅샅이 살피는 바람에 하마터면 그들이 숨어 있는 진법까지 건드릴 뻔했다.

“그놈의 계집애, 다시 내 손에 들어오는 날엔, 흥!”

“사형, 걱정하지 마.”

작은 눈의 남자가 경멸하는 듯한 눈빛으로 냉소하며 말했다.

“이곳을 지나면 바로 요수들이 사는 곳이야. 그 계집애가 이곳을 벗어났다고 해도 어딜 가겠어? 그곳의 요왕은 선수들을 죽이지 못해 난리인데, 그 계집애가 그곳에 간다고 목숨이라도 건질 수 있겠어?”

“만약 그 계집애가 서쪽으로 갔다면, 거기도 우리 무극전을 지나야 하잖아?”

“그때가 되면 당신은 문파로 돌아가 통보해, 그 계집애가 이 동방 대륙에 있는 한 반드시 잡는다고.”

“하지만 그 계집애가 자신은 태명파(太明派)의 사람이라고…….”

“흥! 태명파는 무슨, 그 밥통 같은 무리들이 우리 무극전을 어떡할 건데? 그들은 아직 자기들 문제도 해결하지 못하고 있잖아. 북쪽에 있는 마수의 우두머리와 한 판 붙었다고 했지. 지금은 아마 자신을 돌보느라 이런 일에 신경 쓸 겨를도 없을 거야.”

마른 체형의 남자가 그제야 안심하며 작은 눈의 남자와 함께 하늘로 날아올랐다.

여자는 얼마나 놀랐는지 두 사람이 멀리 사라지는 것을 보고 나서야 덜덜 떨며 몸을 일으켰다. 그녀가 시하를 붙잡고 오랫동안 누르고 있던 설움을 터뜨리며 호소하기 시작했다.

그녀의 이름은 소심(蘇沁)이었고 얼마 전, 이곳으로 비승하여 올라 왔다고 했다. 그들과 달리 그녀는 운 좋게 선계로 비승하였는데, 그곳이 바로 서부 대륙에 있는 태명파의 영역이었다고 했다. 그리하여 그녀는 자연스럽게 태명파에 가입하게 되었지만 문파에 입문하고 나서 얼마 되지 않아 습격을 당하게 되었다. 그때 북쪽의 우두머리가 태명파로 들어와 1급 선기(仙器)들을 도적질하고, 문파의 장문은 중상을 입었다. 서쪽의 사람들은 습격에 모두 당황했고 문하의 제자들을 파견하여 다른 마선들이 또다시 습격하지는 않을지 동태를 살피게 했다.

소심도 파견된 그 제자들 중 한 사람이었다. 수행 계급이 너무 낮은 관계로 동쪽으로 파견되었는데, 어느 날 경계를 서고 있던 동쪽 대륙에서 마선의 출입이 감지되자 신입 제자로서 뭔가 공로를 세우고자 하는 욕심에 아무런 의심 없이 쫓아 들어갔다고 했다. 하지만 그것이 누군가 고의로 흘린 정보인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녀는 서부 대륙을 나서자마자 바로 그 마른 체형의 남자에게 잡혀 무극전(太極殿)이라 하는 곳으로 끌려갔다. 그들은 그녀를 그곳으로 끌고 가 강제적으로 수행 계급을 상승시키는 파영단(破靈丹)을 감행하였다. 그리고 향로로서 문하 제자들의 채보(采補, 도교(道敎)에서 타인의 정혈(精血)을 취하여 자신을 보익하는 것)로 이용되었다.

이제 보니 동대륙에는 정말 짐승 같은 놈들만 살고 있네. 아니지, 그런 놈들은 짐승만도 못한 놈들이지. 이건 그냥 인신매매잖아! 여자들을 꾀어서 팔아먹는 거랑 뭐가 다르지? 게다가 여자를 아예 사람 취급도 하지 않고 있어.

여자는 자신이 동대륙에 잡혀가 바로 쇄령주에 갇히게 되어 어디로 도망가든 모두 실패했다. 그녀가 어렵게 이곳까지 도망 온 이유는 남쪽에 있는 요선들의 손에 들어가 죽는 한이 있어도 그곳에서 향로 노릇은 하고 싶지 않아서였다. 하지만 재수 없게도 누군가가 도겁을 하는 바람에 그녀도 겁뇌에 맞으면서 영력이 모두 소진되어 버렸다. 그 겁뇌 덕분에 쇄령주에서는 벗어날 수 있었지만 도망갈 수 있는 영력은 모두 소진되었다.

“그 두 사람은 저를 3박 4일이나 쫓아다녔어요. 저도 도저히 방법이 없는데, 당신들과 함께 갈 수 있을까요? 어디든 괜찮으니 영력을 회복하면 바로 떠날게요. 절대로 당신들을 힘들게 하는 일은 없을 거예요. 부탁이에요!”

“저희도 마침 서대륙으로 가려던 참이었어요. 같이 가죠.”

“고마워요!”

“별거 아니니까 그렇게 고마워할 것 없어요.”

그때 후지가 갑자기 영검을 불러내 그곳을 떠날 채비를 했다.

“이곳에 오랫동안 머무를 수 없어.”

시하는 그제야 그곳이 그렇게 오랫동안 머무를 수 있는 곳이 아니라는 사실을 떠올렸다. 그 두 사람이 언제 또다시 이곳으로 돌아올지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다.

후지는 그들의 수행 계급이 현선(玄仙)밖에 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때문에 혹시 싸움이 일어나더라도 후지가 훨씬 우위에 있었지만, 시하와 소심이 있었기 때문에 싸움을 피하는 것이 상책이었다.

“좋아요. 어서 가요.”

하지만 소심의 모습을 보니 도저히 검을 부릴 수 있는 상태가 아닌 듯해 어쩔 수 없이 시하가 그녀와 함께 검을 타기로 했다. 그리하여 시하는 자신이 아래 세계에서 사용하던 그 초라한 검을 불러내 그녀를 자신의 검 위로 끌어당겼다.

시하가 손뼉을 치며 검을 부리려는데 후지가 차가운 얼굴로 노려보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왜 그러는 거죠?”

예전엔 항상 함께 검을 탔었는데. 그가 미간을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

“아무것도 아니야!”

그러고는 갑자기 시하의 치맛자락에 마치 꽃무늬처럼 찰싹 들러붙어 있던 한옥을 뜯어냈다. 한옥이 비명을 질렀다.

“와, 나쁜 선수 같으니, 날 놓지 못해요? 저는 작은 주인님의 꽃……!”

후지는 한옥의 비명에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은 채 바로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누이와 같이 날지는 못해도 다른 남자랑 함께 날도록 놔둘 수는 없지. 그것이 수꽃이라고 해도 절대로 안 돼!

“선우님, 저 사람은?”

후지의 차가운 눈빛을 느낀 소심이 불안한 표정으로 시하에게 물었다.

“걱정하지 마요. 멀리 가지 못할 거예요.”

시하가 영력을 움직여 따라가자 역시 멀지 않은 곳에서 후지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이 쫓아오자 그제야 다시 검을 부려 앞으로 날았다. 후지는 그들과 삼 미터의 간격을 유지하며 날아가고 있었다. 십여 분 정도를 날아 그들은 드디어 겁뇌 범위를 벗어날 수 있었다.

“아, 방금 태명파 장문에게 중상을 입힌 사람이 마선이라고 했죠?”

“듣자하니 북쪽에서 왔다고 했어요.”

“서대륙의 장문들은 모두 중선 계급을 갖고 있잖아요? 어떤 마선이 그 장문에게 상처를 입힐 수 있는 거죠?”

“그렇긴 한데, 그 마수의 우두머리는 보통 마선이 아니었어요.”

“얼마나 대단한데요?”

“수행 계급도 아주 높고 신분도 특수해요. 듣자하니 선수는 물론이고 마선들도 그를 잡을 수 없다고 했어요.”

“그럼 그 사람도 참 힘들겠네요? 아, 그 재수 없는 놈의 이름은 뭐죠?”

“제가 입문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정확하진 않지만 그의 성이 좀 특이한 듯했어요. 시?”

순간 시하의 다리가 휘청거려 하마터면 검 아래로 떨어질 뻔했다. 그 재수 없는 놈이 오빠라고?

“그러고 보니 지금까지 은인님의 존함을 묻지 못, 어! 어?”

그녀가 아직 말을 마치지 못했는데 시하가 온몸의 영기를 움직이더니 더 빠른 속도로 앞을 향해 날기 시작했다. 이제 서대륙으로 가야 할 이유가 분명해졌다. 그것도 지금 당장 빨리 가야 했다.

하지만 하얀 그림자가 그녀 옆에 나타나더니 손을 잡아당기는 바람에 뒤로 다시 돌아가야만 했다.

“하하(夏夏).”

후지가 무거운 목소리로 시하를 부르더니 엄숙한 얼굴로 급하게 굴지 말라고 했다.

“저도 알아요. 지금 서대륙을 가게 되면 그렇게 평탄치 않을 거라는 걸요.”

그가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맑은 연못을 가리키며 말했다.

“넌 이미 비승기에 도달했어. 그러니까 우선 경맥을 씻은 다음 선인의 몸으로 변신해야 돼.”

시하가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그리고 겨우 마음속에 들어찼던 충동을 가라앉혔다.

맞아! 지금의 수행 계급으로는 아무 지선이나 와서 공격해도 당해 내지 못할 거야. 얼마 전, 태명파로 들어간 사람이 오빠라는 사실을 알고 있긴 하지만, 그쪽 상황이 그렇게 낙관적이지 않을 수도 있잖아. 그리고 그 허당 오라버니의 성향대로라면 또 어떤 판을 벌여 놨을지 아무도 모르지. 그때 가서 혹시라도 충돌이 생기면 후지를 돕지는 못하더라도 피해를 줘선 안 돼.

“좋아요!”

어찌됐든 시하는 우선 신선의 몸으로 변신하기로 했다. 우선 지선이 되고 나서 다시 얘기하자.

앞에 있는 연못은 아주 작고 바닥이 다 보일 정도로 맑았는데, 이런 연못은 선계에서 어딜 가나 볼 수 있었다.

시하가 연못으로 내려가려고 하자 후지가 저항하지 말고 순리에 맡기라고 일러 주었다. 시하는 깊이 숨을 들이마시며 정신을 집중시킨 후 연못으로 들어갔다. 온몸에 작은 침이 있는 듯한 느낌이 들더니 전방에서 날카로운 가시들이 찔러 오기 시작했다. 시하가 반사적으로 영기를 움직여 저항하려 했다. 그러다가 후지의 말을 떠올리며 그 충동을 다시 가라앉혔다. 가시로 찌르는 듯한 느낌이 온몸으로 퍼져 갔다.

시간이 조금 지나서야 그 바늘로 찌르는 듯한 느낌이 사실은 아주 특수한 기운임을 알 수 있었다. 생각해 보니 아마도 전설 속의 그 선기인 듯했다. 하지만 공기 중에 어디에나 있어 본능적으로 그녀의 몸을 밀어내고 있던 선기가 그 연못 안에서는 조금 더 따뜻하게 다가오고 있었다. 그리고 물이 흐르면서 그녀의 몸을 씻어 냈다.

잠시 후, 선기가 몸 안으로 흘러 들어오며 통증이 더욱 강렬해졌다. 그 선기가 몸속으로 들어오자 시하가 저항하지 않으려고 애를 써도 몸속의 영기가 자동으로 그 생소한 기운을 밀어내고 있어 시하의 경맥에 끊긴 듯한 통증이 몰려왔다.

몸속에서 두 종류의 기운이 충돌해 곧 녹초가 되어 쓰러질 듯했지만 얼마 가지 않아 멈추었고, 가득 찬 선기가 몸 안에 있는 영기를 감싸기 시작했다. 선기는 영기를 삼키며 원래 몸속에 있던 영기들을 동일한 선기로 전환시켰다. 경맥 안에 있던 영기들이 전부 선기로 전화됐다. 그 영기들이 아주 적긴 했지만 대부분 모두 단전 안에 머물고 있었다.

시하는 방금 그 통증을 떠올리며 이번에는 자동으로 들어오던 선기의 양을 스스로 조절하기 시작했다. 우선 일정량의 선기를 끌어들여 시험한 다음 조금씩 그 양을 늘려 가며 천천히 전체 단전을 채워 갔다.

그 작업은 아주 힘이 많이 들어가는 일이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영기로 가득하던 단전 안이 드디어 선기로 가득하게 되었다. 시하는 온몸이 한결 가벼워진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비승하고 난 후부터 계속 그녀의 몸을 감싸고 있던 압력감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허리와 다리의 통증도 모두 가셨다. 이 상태라면 5층은 말할 것도 없고 500층이라도 단숨에 올라갈 수 있을 듯했다.

선기는 끊임없이 시하의 몸속으로 흘러 들어왔다. 방금 전보다 더 빠른 속도로 흘러 들어오더니 이제는 공기 중의 선기조차 그녀의 몸속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선기가 경맥을 씻은 다음, 이번에는 그녀의 몸속에 있던 잡다한 불순물을 모두 밖으로 내보냈다. 시하는 자신의 피부에서 갈색 불순물이 흘러나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얼마나 지났는지 선기가 더는 몸속으로 들어오지 않을 때쯤 시하는 거의 다 변신했음을 감지했다. 이제 그만 연못을 나가 좋은 신선이 되리라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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