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41화 (141/189)

여기까지만 보면 무극전은 열세한 무리를 격려하는 모범적인 우두머리처럼 보였다. 강자가 무리의 우두머리가 되어 통치하는 방식이 다른 대륙과 크게 다르지만, 그들도 그렇게 형편없는 집단만은 아니었다. 중요한 것은 이곳으로 올라온 비천계 사람들이 전체 선계를 그들의 낡은 관습으로 어지럽히고 있다는 것이었다.

어떤 것이든 이로움과 폐단이 있기 마련이었다. 비천계는 영기가 충족하여 비승하는 비율이 높긴 했지만, 다른 세계에는 없는 폐단이 하나 있었다. 그 세계의 여성들은 모두 수선을 할 수 없었다. 시하가 올라온 천택대륙과는 다르게 비천계에서는 남자만이 영근을 갖고 있었다. 때문에 장생을 추구하는 수사들에게는 여자의 위치가 아주 낮았다. 비천계의 수사들의 눈에 수선을 할 수 없는 사람은 그저 평범한 사람에 불과하여, 향로를 할 수 있는 자격조차 없는 여성으로 분류되었다. 그러한 관념은 뿌리가 깊어 선계에 올라와서까지 바뀌지 않았다.

그리하여 동방 대륙으로 들어간 여선들은 전부 좋지 않은 결과를 맞이했다. 경시와 멸시, 조롱도 괜찮았지만 운이 없으면 그들에게 잡혀 향로가 되어 죽을 때까지 갇혀 지내야 했다.

한마디로 동방 대륙에 있는 선수들은 전부 성차별주의자들이었다.

젠장, 제일 역겨운 놈들이야.

그리하여 비승하는 여선들 중 스스로 죽음을 자처하여 동방 대륙으로 들어가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시하는 그의 말을 듣고 그곳으로 들어가지 않은 게 천만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시하의 수행 계급에 벌써 죽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작은 주인님, 자칭 인도자라고 하는 선인들은 선계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사기꾼들이에요. 비승대 부근을 전문적으로 노리며 방금 비승한 사람들을 속이는 자들이에요. 만약 자질이 좋으면 각 세력들에 그 사람을 소개하여 좋은 인연을 맺으려고 하죠. 자질이 일반적인 사람들이라면, 법보를 갈취해 선석(仙石)으로 바꾸고요. 작은 주인님은 여선이니까, 그 청축이라고 하는 지선이 데려가려고 했던 곳은 아마도 동방 대륙이었을 거예요. 그곳에 당신을 향로로 팔아넘기려고 했겠죠.”

선계에도 사기꾼이 있다니!

시하는 오싹해지는 것을 느꼈다. 처음, 인선루라고 하는 곳에 있을 당시 청축은 확실히 그녀에게 동쪽으로 갈 것을 추천했다.

“근데 내가 거기에서 열흘도 넘게 있었는데 왜 계속 손을 쓰지 않았던 거지?”

만약 동쪽으로 팔아넘길 속셈이었다면 그녀의 수행 계급으론 반항도 제대로 하지 못했을 텐데 왜 열흘이 넘도록 아무것도 하지 않은 거지?

“아마도 남쪽과 동쪽이 싸우고 있었기 때문일 거예요. 남쪽의 선존은 오랫동안 동쪽의 사람들을 못마땅하게 생각해서 항상 무극전 그쪽 사람들과 싸움을 하곤 했어요. 아마 그자도 그동안 동쪽으로 가긴 힘들었을 거예요.”

시하가 그때 인선루를 덮쳤던 붉은 불길을 떠올렸다. 젠장, 이제 보니 그놈이 정말 날 속일 속셈이었네. 연못에서 열흘 넘게 몸을 담그고 그녀가 불러도 깨어나지 못하고 있던 후지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한옥, 그놈이 선계의 물은 선인의 몸으로 거듭나게 한다고 해서, 후지는 보름이나 연못에 몸을 담그고 있었는데 괜찮은 거겠지?”

시하가 걱정된 얼굴로 묻자,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사실이에요. 선계의 물은 확실히 선인의 몸으로 거듭나게 하는 효능을 갖고 있어요.”

시하는 안심했지만, 동방 대륙은 확실히 갈 수 없게 되었다. 청축 그자가 함정을 파 놓은 것이 분명했다.

“서쪽으로 가자.”

후지가 시하의 손을 잡아당기며 영검을 불러냈다. 착각인진 모르겠지만 예전보다 그의 손에 힘이 더 들어가 있는 듯했다. 시하는 한옥까지 끌어당겨 후지와 함께 서쪽으로 날아갔다.

하늘로 오르고 나서야 시하는 후지가 이번에 맞은 겁뇌의 범위가 얼마나 컸는지 제대로 볼 수 있었다. 눈이 닿는 곳마다 모두 초토화되어 있었고, 탄 냄새가 물씬 풍겨 왔다. 그리고 전에는 무성하던 숲에 풀 한 포기도 보이지 않았다.

순간 시하는 자신이 방화범을 방관한 듯한 죄책감마저 들었다. 이렇게 큰 숲에 다시 나무가 자라나려면 얼마나 걸려야 하는 걸까?

“우레가 그렇게 오랫동안 내렸는데 다친 사람은 없는지 모르겠네요.”

꽃이든 풀이든 상처를 입는 건 나쁜 거니까. 후지가 고개를 돌려 시하를 바라보며 대꾸했다.

“그렇지 않아.”

왜지?

“작은 주인님, 걱정하지 마세요.”

그녀의 소매에 찰싹 붙어 마치 옷에 인쇄된 꽃무늬처럼 잠잠하던 한옥이 말했다.

“밖에서 도겁을 하는 선인이 흔치 않지만 선계에 영지가 있는 정괴들은 천뇌에 기민한 편이에요. 때문에 겁뇌가 내리기 전에 이미 모두 숨었을 거예요.”

“숨어?”

어디로 숨는데? 동물은 도망이라도 가지만 나무나 화요들은 어떻게 숨는다는 거지?

“당연히 지하에 숨는 거죠.”

자세히 살펴보니 역시 초토화된 땅속에 초록색이 스멀스멀 밖으로 삐져나오고 있었다. 우와, 선계의 숲에 방화, 방뇌, 방도겁 모드가 설계되어 있었네. 정말 대단한걸?

“그 일대에 있는 뇌압이 모두 사라지면 그들은 다시 밖으로 올라와요. 얼마 가지 않아 여기가 또다시 빼곡한 숲으로 변해 있을 거예요. 그리고 선인들은 바보가 아닌 이상 누군가 도겁을 하는 곳에 들어오려고도 하지 않아요.”

선계에는 방화범이 없다고 하니 시하는 이제야 안심이 되어 말했다.

“하지만 선계의 겁뇌는 너무 요란해요. 다른 선계도 겁뇌가 모두 이렇게 어마어마한가요?”

겁뇌의 경험이 전혀 없고 기껏해야 영석에 얻어맞았던 경험이 전부인 시하로서는 이런 대우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다시 한 번 선계 식물들의 생존 환경을 위해 3분간 애도하려는 순간, 쾅! 검은 그림자 하나가 하늘에서 떨어졌다.

두 인간과 꽃 한 송이가 3초 동안 말없이 서로의 얼굴만 바라보았다. 젠장, 다친 사람은 없다면서요!

“사람 살려!”

시하가 후지를 이끌고 아래로 내려갔다. 그리고 초토화가 된 흙더미 속을 한참 헤매다가 온몸이 까맣게 타 버린 사람을 찾아냈다. 그래도 다행히 아직 숨은 붙어 있었다.

“오라버니.”

시하가 고개를 돌려 후지를 바라봤다. 상처를 치유하는 방법은 제가 잘 모르잖아요.

후지가 얼굴을 찌푸리더니 손으로 거진결을 했다. 순간 시커먼 잿더미처럼 보이던 사람이 그제야 원래 모습을 회복했다. 자세히 살펴보니 여자였다. 피부는 백옥같이 희고, 앵두처럼 붉은 입술과 눈처럼 하얀 치아를 갖고 있었다. 감전에 중력을 잃은 긴 머리카락과 검게 더러워진 옷만 아니었어도 꽤 아름다운 미인이라고 할 수 있었다. 시하가 조용히 시선을 그녀의 가슴으로 가져갔다. 음, 나보다 평평하네. 그럼 안심이야.

후지가 손을 내밀어 상대의 맥을 짚더니 한참 후에야 입을 열었다.

“선기가 소진되었을 뿐이야. 괜찮아.”

잠시 졸음운전을 한 거로군. 몸이 이렇게 바짝 마른 걸 봐서는 방금 그 겁뇌와 무관한 듯하진 않은데?

“깨어나게 할 수 있어요?”

후지가 고개를 끄덕이며 손가락을 여자의 미간으로 가져가 선기를 불어넣었다. 잠시 후, 여자가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눈꺼풀을 움직이더니 나중에는 미세한 소리를 내며 의식을 회복했다.

“당신은…….”

시하가 손을 흔들며 그녀에게 인사했다.

“마침 이곳을 지나가다가 당신이 떨어지는 걸 목격했어요. 괜찮아요?”

“당신이 저를 구한 거예요?”

“그런 셈이죠.”

“구해 줘서 고마워요.”

그녀가 몸을 일으키려다가 시하의 뒤에 있던 후지를 발견하더니 놀란 얼굴로 다시 주저앉았다.

“당신 누구죠? 뭐 하려는 거죠?”

귀신이라도 본 듯한 표정에 시하는 어리둥절해했다. 후지의 얼굴을 보고 놀라다니. 비주얼로 따지면 내 얼굴을 보고 더 놀랐어야 하는 거 아니야? 선계의 미적 기준은 조금 다른가?

“무서워하지 마요. 저의 오라버니예요.”

시하가 안심시키자 그제야 그녀의 얼굴이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여전히 후지를 경계하는 모습을 보였다.

“저 사람, 무극전의 사람 아니에요?”

그녀가 겁에 질린 모습으로 후지를 가리켰다. 무극전이라면 익숙한 이름인데.

“당연히 아니에요. 저희 남매는 방금 비승하여 아직 어느 문파에도 소속되지 않았어요.”

“그렇군요.”

여자가 그제야 안심하는 모습을 보였다.

“아, 근데 당신은 어쩌다가 겁뇌를 맞은 거죠?”

시하가 화제를 돌렸다. 바보가 아닌 이상, 겁뇌가 있는 곳으로 들어오는 사람은 없다고 했던 한옥의 말이 떠올랐다.

여자는 뭔가 떠오른 듯 얼굴이 창백하게 변하더니 옷을 꽉 부여잡고 손을 떨었다.

“사실 저는.”

그녀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갑자기 먼 곳에서 방울 소리가 들려왔다. 보통의 방울 소리와 달리 뭔가 침울한 기운을 풍기고 있었다.

“누군가 오고 있어.”

후지가 무거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여자는 얼굴이 순식간에 하얗게 질려 입을 열었다. 그러고는 눈물을 흘리며 시하의 다리를 부여잡고 애원하듯 간청했다.

“저를 잡으러 오고 있는 거예요. 소저, 부탁이에요. 저는 향로가 되기 싫어요. 저를 좀 구해 주세요!”

“향로?”

“저들은 무극전의 사람들이에요.”

그녀가 더 많은 눈물을 흘리며 시하를 향해 머리를 조아리기 시작했다. 그 방울 소리가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들은 이쪽으로 오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상대가 어떤 수행 계급을 갖고 있는지 알 수 없었지만 도망가기에는 이미 늦어 버렸다.

“오라버니?”

시하가 급히 고개를 돌려 후지를 바라보자, 그는 혼을 흔들어 진법을 쳤다. 투명한 수막이 세 사람을 둘러쌌다. 그것은 은폐하는 법진이었다.

시하가 주저앉아 여자의 입을 가리고 조용하라는 손짓을 보냈다. 여자가 그제야 울음을 멈추었다. 잠시 후, 푸른 옷을 입은 두 그림자가 그들 앞에 나타났다.

두 명의 남성이었고 둘 다 키가 크지 않았다. 한 사람은 아주 마른 체형으로 눈가까지 움푹 들어가 있어 보기에도 아주 냉혹한 외모였다. 다른 한 명은 사각형 얼굴에 건장한 체형이었지만 얼굴에 비해 아주 작은 눈을 가지고 있었다. 그 작은 눈으로 매서운 눈빛을 뿜어내는데 흡사 도둑놈처럼 보였다.

두 사람의 옷에는 소매에 팔괘 모양의 도안이 새겨져 있었다. 희미하게 ‘무극’ 두 글자가 보였다. 여자는 온몸을 벌벌 떨며 공포가 극에 달한 듯한 모습을 보였다.

시하가 그제야 무극전 그 세 글자를 떠올렸다. 그건 한옥이 말했던 곳이잖아. 보아하니 모두 나쁜 놈들로만 가득한 문파인 듯하네.

“말도 안 돼. 분명 이곳으로 오는 걸 느꼈는데.”

두 사람 중 마른 체형의 사람이 구리 방울을 들고 사방을 살피더니 화가 난 얼굴로 말했다.

“내가 말했잖아. 그 쇄령주(鎖零咒)는 먹히지 않는다니까. 내 말을 들었어야지.”

작은 눈의 남자가 자신의 짧은 수염을 만지며 웃는 얼굴로 말했다.

마른 체형의 남자가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작은 눈의 남자를 노려보더니 말했다.

“내 쇄령주는 지금까지 아무 문제없었어. 방금 이곳에 누군가 도겁을 하지 않았어도 그년이 나의 쇄령주를 풀지 못했을 거야.”

“어쨌든 그 계집애는 도망갔잖아.”

“흥! 이 겁뇌 범위에 들어왔으면 분명 상처가 가볍지 않을 거야. 멀리 도망가지 못했겠지.”

마른 체형의 남자가 법기를 불러내더니 다른 방향으로 날아갔다. 작은 눈을 가진 남자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더니 웃으며 그의 뒤를 따랐다.

시하가 그제야 안심하며 옆에 있던 여자를 내려놓고 몸을 일으키려고 했다. 순간 후지가 그녀를 잡아당기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시하가 아직 반응도 하기 전에 앞에 또다시 그들의 그림자가 나타났다. 방금 그 마른 체형의 남자와 작은 눈의 남자가 다시 돌아왔다.

일부러 떠난 척한 거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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