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39화 (139/189)

“하하(夏夏)?”

정신이 든 시하가 자기도 모르게 두 손을 쳐들며 말했다.

“풀 생각은 전혀 없었어요!”

“…….”

잠시 침묵이 흐르던 그때, 머리 위에서 우레 소리가 들리더니 갑자기 하늘이 어두워지며 먹구름이 몰려왔다. 설마 선계에서는 이상한 생각만 해도 벼락을 맞는 걸까?

“하하(夏夏), 뇌운(雷雲)의 범위를 벗어나 있어.”

“네?”

“내 뇌겁이 도착했거든.”

뇌겁? 그건 대경계에 오를 때에나 필요한 거 아닌가? 승계를 하려는 건가? 그런 거면 잘됐네. 역시 공부 귀신이야, 여기 온 지 얼마나 됐다고.

“그럼 전 먼저 갈게요.”

당신은 승계 잘하고 있어요!

시하가 달아오른 얼굴을 느끼며 돌아서서 마음을 진정시키려고 하는 그때, 후지가 갑자기 손을 잡아당겼다. 그의 눈에 번뇌가 가득했다.

“왜요?”

후지가 하늘을 바라보더니 얼굴을 찌푸리며 그녀에게 힘주어 말했다.

“오라버니를 기다리고 있어야 돼!”

“알겠어요. 그럼 제가 누굴 기다려요?”

그제야 그는 안심한 듯 그녀 주변에 결계를 했다. 그리고 아쉬운 듯 손을 잡고 한참을 망설이다가 그녀를 힘껏 밀치며 말했다.

“명심해. 그 자리에 있으면 오라버니가 찾으러 올게. 기다리고 있어야 돼!”

시하의 몸이 가벼워지더니 빠른 속도로 후방으로 날아갔다. 뒤에서 계속해서 후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함부로 다니지 말고 날 기다리고 있어야 돼. 기다려. 반드시!”

시하가 거의 십 리 밖을 벗어나 어느 산비탈에 이르자 그의 목소리가 다시 들리지 않았다. 결계가 사라지지 않고 여전히 그녀의 몸을 보호하고 있었다.

시하가 고개를 들어 그제야 그 뇌겁이 얼마나 무시무시한 것인지 확인할 수 있었다. 그 시각 하늘은 온통 어두움으로 덮여 있고 구름 사이에 가끔 번개가 반짝거리고 있었다. 하늘에 가득한 위압으로 공기마저 무겁게 느껴졌다. 곧 구름 사이로 뭔가 하늘땅을 뒤흔들 만한 어마어마한 것이 나타날 듯했다. 시하는 이번 뇌겁이 아래 세계에서 봤던 그 싸구려 뇌겁과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한가하게 시하가 도망가진 않을지 신경 쓰는 걸 보면 이 뇌겁이 그에게는 별것 아닌 듯 보였다. 그리하여 시하는 안심하고 바닥에 주저앉아 뇌겁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시하의 머릿속에 갑자기 방금 봤던 후지의 그 핑크빛 몸이 자꾸 떠올랐다. 겉보기엔 그렇게 차가운데 몸은 정작 엄청 뜨거웠다.

만약 방금 그 허리띠를 풀었다면……. 어험! 정신 차려! 후지는 날 동생으로 생각하는데, 그럼 안 돼! 아무래도 엄숙한 사상 교육에 들어가야겠어. 우린 아주 순수한 남매 사이라고! 다 그 외모 때문이야, 자꾸 날 유혹하잖아!

시하가 고개를 흔들며 머릿속에 떠오른 그 생각들을 떨치고 뇌운이 있는 곳을 바라봤다. 드디어 거대한 진동 소리와 함께 엄청난 빛줄기가 구름 밖으로 나타나더니 바로 바닥을 향해 매섭게 내리쳤다.

십 리 밖 지면에서 밝은 빛이 반짝이더니 이어서 엄청난 충격이 가해지며 그 힘이 사방팔방으로 퍼져 나갔다. 순간 흙먼지가 치솟으며 몇십 리 밖의 지면이 모두 뒤집힌 듯 그곳에 있던 초목들과 바위들이 순식간에 먼지로 변해 버렸다.

시하가 깜짝 놀라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그녀를 감싸고 있던 결계를 제외한 모든 공간이 순식간에 잿더미로 변해 버렸다. 한참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다가 그제야 후지가 왜 자신에게 이 결계를 쳐 주었는지 알았다.

이건 거의 원자탄이잖아! 내가 아무리 간이 크다고 해도, 이런 대량 살상 무기에 어딜 도망가겠어?

시하가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시하는 무시무시한 뇌겁 때문에 조용히 결계 속에 앉아 함부로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뇌겁이 한 번 떨어질 때마다 땅이 꺼지며 주변이 움푹움푹 패이고 있었다. 79번째 뇌겁이 내리자 시하가 앉아 있던 그 산비탈도 점점 높아지기 시작했다. 9981번까지 이제 두 번 정도 더 남아 있었다.

시하가 그제야 숨을 돌렸다.

이제 끝이야.

하늘에서 진동 소리가 들려왔다.

80, 81…… 82, 83, 84.

“뭐지? 81로 끝나는 게 아니었어?”

뇌겁은 항상 81에서 끝났는데 어떻게 된 일이지?

“설마, 선계의 규칙은 다른 걸까?”

“바보 같기는! 이건 두 번째 겁뇌잖아요.”

갑자기 그녀의 옆에서 낯선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시하가 놀라 일어서서 주변을 살펴보았다. 하지만 사람의 그림자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누구지?”

“함부로 움직이지 마요! 지금 날 밟으려고 하잖아요.”

밟는다고?

시하가 머리를 숙여 아래를 보니 방금 전에 앉았던 그 자리에 꽃 한 송이가 피어 있었다. 다섯 개의 꽃잎을 가진 아주 평범한 꽃이었다.

화요(花妖)?

“너 말을 할 수 있는 거야?”

“쓸데없는 소리!”

꽃이 자신의 가지를 흔들며 말했다.

“만물에는 모두 영기가 있어요. 이곳은 선계이니 내가 말을 할 수 있는 게 그렇게 신기한 일도 아니죠.”

시하가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무릎을 꿇고 앉아 자기도 모르게 그 꽃을 찔러 보았다. 말하는 꽃은 처음 보네.

“지금 뭐 하는 거예요?”

꽃이 깜짝 놀라며 가지를 뒤로 젖히더니 잎사귀 두 개를 감아 올리며 허리에 손을 올려놓은 듯한 자세를 취했다. 꽃이 화가 나서 시하에게 말했다.

“불량배 같으니, 이 어른한테 지금 뭘 한 거죠?”

살다 살다 불량배라는 소리는 또 처음 들어 보네.

“넌 어디에서 나타난 거지?”

“흥, 난 쭉 여기에 있었어요. 당신의 수행 능력이 아주 낮아서 날 발견하지 못한 것뿐이지.”

그가 자신의 잎사귀를 흔들며 시하에게 말했다.

“내게서 멀어져요. 난 당신의 그 바보 병을 옮고 싶지 않으니까.”

형태는 없어도 성격은 아주 괴팍하네.

자세히 살펴보니 그의 몸에 요기(妖氣)는 없는 것 같았다.

“꼬마 화요, 넌 무슨 꽃이지? 국화 요괴?”

“국화 요괴는 당신이겠죠. 이 몸은 화선(花仙)이라고요. 요기가 없는 화선이요. 모르겠어요?”

변신할 수 없는 화선이라니.

“요괴도 몰라보는 걸 보니 정말 미련한 선수이군요.”

꽃이 차갑게 콧방귀를 끼더니 손가락보다도 더 얇은 가지를 꼿꼿이 세우며 자랑스럽게 말했다.

“내 정체를 말하면 당신은 깜짝 놀랄걸요. 천지에 하나밖에 없는 유일한 몸, 바로 그 초목화선(草木花仙) 한옥왕화선(寒玉王花仙)이라고요.”

“한옥왕화?”

익숙한 이름인데, 어디서 들었었지?

“내가 역겁을 할 때 사고만 나지 않았어도 당신 같은 지선은 나를 쳐다볼 수도 없었을 거예요. 흥!”

그가 득의양양한 표정으로 그녀에게 말했지만, 그와 입씨름하기 귀찮아진 시하는 뇌겁이 내리고 있는 방향을 가리키며 물었다.

“아, 방금 그 두 번째 겁뇌는 무슨 뜻이지? 선계 겁뇌는 모두 두 번씩 내리는 거야?”

“당연히 아니죠.”

그가 자신의 붉은 꽃잎을 마구 흔들며 경멸하는 듯한 모습으로 말했다.

“대경계에 오르는 겁뇌는 모두 99로 끝나는 건 맞지만 이번에 겁뇌를 맞는 사람은 자신의 계급을 압제했기 때문에 두 번의 대경계가 쌓여 있었던 거예요. 그러니 겁뇌도 당연히 두 번 맞아야죠.”

“그 말은, 그가 지선에서 바로 금선에 오른다는 거야?”

후지도 자신이 아래 세계에 있을 때 본인의 계급을 압제했다고 했었다.

“맞아요.”

역시 공부 귀신. 올라오자마자 바로 두 계급이나 오르다니. 난 몰래 올라온 편입생밖에 안 되잖아!

“두 계급을 한꺼번에 오르는 일은 흔치 않은 일인데 보아하니 역겁을 맞는 사람의 능력이 엄청난 모양이에요.”

꽃이 몸을 휘청거리며 그를 인정하는 듯한 말투로 말했다.

“그거야 당연하지!”

시하가 자랑스럽게 말했다. 그 사람이 바로 내 오라버니라고!

“흥, 하지만 아무리 강해도 제 주인님보다는 강하지 못할걸요.”

“너도 주인이 있어?”

“당연하죠. 저의 주인님은 이 천지의 일인자로 이 삼계에서 유명한 인물이에요. 당신들 같은 선수들하고는 비교가 안 돼요. 그의 수행 계급은 측량할 수도 없고, 아래 세계에 있을 때부터 그를 당할 상대가 없었어요. 선계에 올라와서도 아마 같을 거예요.”

“주인이 혹시 선수?”

“당연하죠. 그는 아주 고귀한 마선이에요.”

마선은 동화 속에나 나오는 인물인데, 고귀하긴 무슨.

“주인님이 어딜 가든 아무도 그를 건드릴 사람이 없어요.”

“그렇게 대단해? 근데 왜 너를 여기에 남겨 둔 거지?”

꼬마 화선이 놀라더니 갑자기 가지를 축 늘어뜨렸다.

“내가 겁뇌를 할 그 당시 신지(神智)가 손상되지만 않았어도 주인님께서는 저더러 혼자 여기서 상처를 치유하라고 하시지 않았을 거예요. 하지만 이제 괜찮아요. 곧 있으면 주인님과 만나게 될 테니까요. 그나저나 선수! 어서 저를 뽑아 주지 않고 뭐 해요?”

“내가 너를 왜 뽑아 줘야 하지? 넌 상처를 치유하는 중이라면서?”

“전 이미 회복되었어요. 비록 아직 형태는 없지만 저의 주인님을 찾으면 회복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 거예요. 방금 그 겁뇌를 보니 당신의 결계가 저까지 구한 모양이에요. 저와 함께 주인님을 찾는 것을 허락하도록 하죠.”

시하가 황당해하며 그를 바라봤다. 잘난 척도 이런 잘난 척은 또 처음 보네. 날 물고 넘어지겠다?

“그것참 고마운 소리네.”

“그래요. 나한테 고마워해야 돼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우리 주인님을 만나고 싶어 하는데요. 아직, 어어, 어디로 가요?”

“안녕.”

“잠깐만, 아직 절 뽑아 주지 않았잖아요. 어딜 가는 거죠?”

“내가 봤을 때 넌 신지가 아직 회복되지 않은 듯해. 조금 더 그러고 있어.”

도와주는 건 좋은데 도움을 요청하는 방법이 맘에 안 들어.

말을 마친 시하는 거들떠보지 않고 바로 후지가 있는 곳을 향해 날아갔다. 뇌겁은 이미 끝나 있었다.

“이봐요. 당장 돌아와요!”

꼬마 화선이 다급히 잎사귀를 흔들었다.

“그분은 제 주인이라고요. 당신은 그를 만나고 싶지 않아요? 당신이 나를 도와주면 주인님이 아주 고마워하실 거예요. 그는 마선의 일인자예요. 아무도 그를 당할 수 없다고요. 북대륙 전체가 저의 주인님 거라니까요? 그를 만나고 싶지 않아요?”

시하가 쏜살같이 몸을 날려 다시 그 꼬마 화선에게로 돌아와 물었다.

“네 주인의 이름이 뭐야?”

* * *

“조금만 참아. 내가 들어갈게.”

“아, 전 처음이라고요. 살, 살살 해요.”

“이렇게?”

“아! 너무 아파요.”

“내가 경험이 없어서 그래. 이만 멈출까?”

“아니요! 계속, 좀 더 깊이, 깊이 해봐요.”

“이렇게?”

“맞아요. 바로 거기예요. 아, 더 힘껏 해봐요.”

“목소리 낮춰. 살살 아님 더 세게?”

“음, 아.”

“……당신들 거기서 뭐 하는 거죠?”

후지는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 마치 그동안 자신이 공들여 가꿔 왔던 텃밭에 도둑이 든 듯한 기분이 들었다. 시하를 자신의 품속으로 끌어당긴 그의 온몸에 아직도 뇌압의 여운이 남아 있어 한기가 느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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