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38화 (138/189)

“세영지는 사람의 자질에 따라 안에 들어가 있는 시간이 모두 다르다는 말씀이신가요?”

“맞아요. 짧게는 두세 시진 정도, 길면 서너 시진 정도?”

“길어지면 하루도 걸리겠네요?”

“맞아요!”

“예외는 없는 거죠?”

“지금까지는 그랬어요.”

“확실해요?”

“확실할…… 거예요.”

“좋아요. 그럼 저에게 설명 좀 해봐요. 후지는 들어간 지 보름이나 되었는데 왜 아직도 나오지 않고 있죠?”

청욱은 헛기침을 하더니 대꾸했다.

“어험, 아마도 후지 선우님의 자질이 비범하여, 조금 오래 걸리는 것뿐이에요. 그러니 시 선우님은 조급해하지 마세요. 제가 인선루(引仙樓)에 오랫동안 있었지만 세영지가 실수하는 건 한 번도 본 적이 없어요.”

“그게 정말이에요?”

시하가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그를 바라봤다.

벌써 보름이나 기다렸는데요?

“확실해요.”

청축이 고개를 힘껏 끄덕였다.

세영지가 있는 곳을 바라보았지만 무슨 일인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그곳에서 꼬박 보름이나 기다렸지만, 후지는 입정에서 깨어나지 않고 있었다. 그곳에 있는 선기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시하의 수행 계급도 이제 대경계나 상승하였다. 시하의 수행 계급이 이미 비승기를 넘어 지선에 이르러 곧 그 연못에 들어가게 되었는데 후지는 여전히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조급하지 않다는 말은 거짓말이었다. 청축이 세영지에 있는 사람은 강제로 중단시킬 수 없다고 시하에게 말해주지만 않았다면 시하는 신선이고 뭐고 설사 마도에 들어선다고 해도 그 안에 있는 후지를 강제로 끌고 나오고 싶은 심정이었다.

시하가 여전히 의심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자 청축이 안심시키며 말했다.

“시 선우님, 걱정하지 마세요. 저희 이 인선루는 아주 안전한 곳이에요. 저 세영지는 선계에서 유일하게 상고의 선석(仙石)들로 만들어진 곳이죠. 세영지는 선기를 더욱 단단하게 하고 영기를 모아주고 심신을 지켜주는 효능도 있어요. 때문에 후지 선우님이 저 연못 안에 오랫동안 있는다고 해도 전혀 문제될 게 없지요.”

“그렇게 신비한 곳이에요?”

“당연하죠. 이 세영지뿐만 아니라 여기 인선루에 있는 탁상, 의자,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도 모두 의미가 있는 것이라 아무도 함부로 건드릴 수 없어요. 전체 선계에서 이곳처럼 안전한 곳은 없을…….”

그가 아직 말을 마치기도 전에 갑자기 멀지 않은 곳에서 진동 소리가 들려오더니 그들이 있는 곳까지 흔들리기 시작했다.

무슨 상황이지?

시하가 깜짝 놀라 옆에 있는 기둥을 잡고 겨우 몸을 일으켰다. 고개를 들어 보니 멀지 않은 곳 하늘가에 눈부신 붉은빛이 비치고 있었다. 그 빛은 어딘가 많이 익숙한 모습이었다.

주변의 선기가 요동치기 시작하더니 마치 지진이라도 난 듯한 진동음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왜 또 온 거지?”

청축이 일어서더니 귀찮은 듯한 표정으로 그곳을 바라봤다.

“어떻게 된 거죠?”

“전방에 있는 선계 변두리에서 누군가 도술을 부리고 있어요.”

청축이 결계를 하며 손에 들고 있던 총채를 흔들자 잠시 후, 반투명한 결계가 밝게 빛나며 전체 인선루를 뒤덮었다. 그곳을 흔들던 진동이 다시 멈추자, 그가 길게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남쪽 대륙과 동쪽 대륙이 예전부터 화목하지 못했어요. 근데 승선대가 두 대륙의 경계에 있어 조금이라도 의견이 맞지 않으면 바로 싸우기 시작해요.”

그런 거였어? 선인들도 이렇게 폭력적인 줄은 몰랐네. 그러고 보니, 전에 봤던 그 붉은빛도 그 승선대에서 본 듯한데.

“남쪽 대륙은 요선들이 많고, 동쪽 대륙은 성선이 되려는 수사들뿐이니 서로 의견이 맞지 않는 것도 당연하죠.”

청축이 고개를 돌려 시하를 바라보더니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말했다.

“선우님은 앞으로 신선이 되시려면 절대 남쪽으로 가지 마세요. 저희 같은 선수(仙修)들은 동쪽으로 가는 것이 안전하니까.”

시하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점점 더 짙어지고 있는 그 붉은빛을 보며 걱정스럽게 물었다.

“저희 여기에 계속 있어도 괜찮은 거예요?”

선인들이 싸우고 있는데 괜찮은 걸까? 전에 수선계에 있을 때도 높은 계급의 수사들의 싸움은 엄청 참혹했는데, 심지어 이건 그보다 더 높은 선인들의 싸움이잖아. 그럼 위험 지수도 그만큼 더 높아지는 거 아니야?

“선우님, 걱정하지 마세요. 이곳에서 변계는 몇백 리나 되는데 싸움이 아무리 커도 여기까지 미치지는 못할 거예요.”

“확실해요?”

“당연하죠. 저는 이곳에서 몇천 년이나 살았어요. 그러니 걱정하지 마세요. 아무 문제없어요!”

“그럼 다행이네요!”

시하가 그제야 안심하며 숨을 크게 내쉬었다. 잠시 후, 거대한 진동음이 울려 퍼졌다.

“착각인 거죠? 청축, 저는 왜 저 붉은빛이 이쪽으로 오는 것 같죠? 와, 정말 오고 있어요!”

“선우님, 걱정하지 마세요. 여기는 둘레가 십 리나 되는 선풍림(仙楓林)이에요. 설사 이곳으로 온다고 해도 수림이 깊고 울창하여 전송진이 없으면 여기까지 들어오기 어려워요.”

“정말이에요?”

“걱정 마세요. 문제없어요!”

치지직, 나무숲이 불빛으로 뒤덮였다.

“세상에! 나무가 모두 타고 있어요. 들어올 수 없다면서요?”

“선우님, 걱정 마세요. 선풍림이 없다고 해도 이곳을 보호하고 있는 이 결계는 구천현명진(九天玄茗陳)이에요. 천뇌가 내려와도 끄떡없어요.”

“그게 정말이에요?”

“걱정하지 마세요. 문제없어요!”

쿵쾅.

“결계가 부서졌어요! 부서졌다고요. 버틸 수 있다면서요?”

“선우님, 걱정하지 마세요. 결계가 없어도 이 건물은 천년 된 자심목(紫芯木)으로 지은 거라 절대…….”

쿵쾅, 건물의 대들보가 무너져 내렸다.

“전체 선계에 여기보다 더 안전한 곳은 없다면서요? 지금은 왜, 어? 어딜 갔지?”

시하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봤다.

“당신 언제 하늘로 올라간 거죠?”

“시 선우님, 제가 갑자기 처리해야 할 일이 있어서요. 청산은 변하지 않고 푸른 물은 영원하리, 인연이 닿으면 나중에 또 만나요!”

그냥 그렇게 도망가는 거야?

“잠깐만요! 당신이 가면 인선루는 어떡해요. 세영지가 파괴될 수도 있다고요.”

나중에 비승한 사람들은 어떻게 신선이 될 수 있는 거죠?

청축이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시하에게 말했다.

“그 연못의 물은 그냥 일반 물이에요. 나중에 다시 파면 그만이에요.”

그가 말을 마치더니 돌아서서 멀리 날아가 버렸다.

보통 연못? 천하에 유일한 곳이라며? 이제 보니 이 연못의 물은 선계에서 생활수로 사용하는 일반 물이라는 거잖아? 그럼 도대체 왜 우리를 여기로 데려온 것이지?

그 붉은빛은 이미 계단까지 다가오고 있었다. 전체 다락방이 마치 두부처럼 힘없이 흐느적거리며 곧 무너지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지금은 청축을 찾아가 물어볼 시간이 없어. 도대체 우리에게 뭘 속이고 있는 거지?

시하가 영기를 움직이며 세영지 제일 뒷부분으로 뛰어들었다. 후지가 그곳에 있어 시하는 도망갈 수조차 없었다.

“후지, 후지!”

밖의 상황이 그 지경인데도 후지는 여전히 입정 중에 있었다. 시하가 참다못해 그를 밀치며 소리쳤다.

“후지! 정신 차려요!”

후지는 여전히 아무 반응도 없었다. 시하는 강제로 그를 끌고 나올 수도 없어 다시 힘껏 흔들었다.

“어서 정신 차려요! 후지!”

시하가 몸을 흔들어 보아도 후지는 눈 한 번 깜박하지 않았다.

“지금 일어나지 않으면 우린 여기서 끝장이에요.”

붉은빛이 그들이 있는 곳까지 다가와 아름답던 다락방은 이미 폐허로 변해 버렸다. 시하는 그 붉은빛 속에서 살기를 느낄 수 있었다. 그 붉은빛이 연못 속으로 들어오며 순식간에 연못의 모든 물을 말려 버렸다. 시하가 목청껏 소리쳤다.

“오라버니!”

그 순간, 갑자기 시하의 몸이 위로 가볍게 뜨더니 이미 그 붉은빛과 반대되는 방향으로 날아가고 있었다. 마지막 순간 후지가 깨어났다.

“놀랐잖아요!”

시하가 그제야 긴장을 풀며 앞에 있는 사람에게 자신의 몸을 기댔다. 후지가 놀라며 그녀의 허리를 더욱 힘껏 잡았다. 그들은 끊임없이 한참을 날아 붉은빛이 보이지 않자 안심하고 아래로 내려왔다. 후지가 시하를 안심시키듯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더니,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어색하게 달랬다.

“착하지, 괜찮아, 괜찮아.”

“괜찮다니 그게 더 이상하죠!”

다리에 힘이 하나도 없다고요!

시하가 그를 밀쳐내며 아래위로 한 번 훑어봤다.

“입정은 왜 그렇게 오래 해요? 하루면 끝난다면서요?”

후지가 그녀의 맥을 짚더니 말했다.

“전에 압제되었던 수행 계급을 그 연못에서 회복하려다 보니 오래 걸렸어.”

“수행 계급이 압제돼요? 잠깐만요. 그 말은 여기 올라오기 전에 이미 비승기에 올랐는데 수행 계급을 압제하면서 미룬 거예요?”

“그래.”

와! 정말 대단한 사람이야.

“아, 세영지를 미리 나왔는데 무슨 문제가 있는 건 아니죠?”

청축이 그 연못은 함부로 나올 수 없다고 했었다. 연못을 함부로 나올 경우 그 결과가 아주 엄중하다고. 때문에 시하도 후지를 강제로 끌고 나오고 싶었지만 참고 있었던 것이었다.

“괜찮아요? 어디 불편한 곳은 없어요?”

시하는 생각할수록 걱정되어 그의 몸 여기저기를 만져 보고 눌러 보며 살피기 시작했다.

“괜찮아.”

후지는 아무 저항도 없이 시하가 자신의 몸을 살피도록 했다. 시하는 그의 몸을 한참 만지다가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그제야 후지가 연못에 몸을 담그고 있었던 사실을 떠올렸다. 그것도 옷을 모두 벗은 채로. 물론 바지는 입고 있었지만 온몸이 젖어 아직도 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잠시 그들 사이에 형용할 수 없는 어색한 기류가 흘렀다.

맹세코 시하도 처음에는 그가 걱정됐었다. 하지만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녀의 두 손이 그의 가슴에 놓여 있었다. 중요한 건, 그 촉감이 그렇게 나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특히 그녀의 손가락 사이로 보이는 그 애매모호한 붉은 두 점은 과히 감상할 가치가 있었다. 건장한 그의 가슴에 물인지 땀인지 알 수 없는 액체가 흐르고 있었다. 시하의 시선이 그 액체를 따라 내려갔다. 액체가 그의 아름다운 복근으로 내려가더니 다시 그의 치골까지 이르렀다. 그리고 또다시 그의 아랫도리를 묶어 놓은 그 허리띠 사이로 흘러 들어갔다. 그가 입은 흰색 바지는 물에 젖어 이미 반투명한 상태가 되어 버렸고 허리띠는 대충 매듭을 지어 놓은 상태였다. 시하가 자기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키며 자신의 그 못된 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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