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37화 (137/189)

시하의 마음이 서늘해지면서 온몸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시하의 머릿속에 말도 안 되는 생각들이 떠올랐다. 엄청난 공포감이 몰려와 더는 깊이 생각하기조차 어려웠다.

“하하(夏夏).”

후지가 의문스러운 표정으로 그녀를 불렀다. 시하가 그제야 놀라 정신을 차리며 후지를 바라봤다. 후지가 창백한 얼굴로 뭔가 누르고 있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당신 왜 그래요? 사람 놀라게 하지 마요.”

시하가 서둘러 그에게로 다가갔다. 후지가 시하를 지긋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이미 늦었어.”

“뭐가요?”

시하가 아직 무슨 영문인지 어리둥절하고 있는데 잠잠하던 하늘에서 또다시 밝은 빛이 내려왔다. 천음이 울려 퍼지고 밝은 빛이 하늘 가득 비치더니 닫혀 있던 하늘 문이 또다시 열렸다. 그리고 이번에는 그 밝은 빛이 후지의 몸을 감싸기 시작했다.

시하가 그제야 무슨 영문인지 깨달았다. 사람들의 수행 계급이 그 영우로 인해 한 경계씩 올라가면서 원래 비승기에 있던 후지의 수행 계급도 함께 오른 것이었다.

“오라버니!”

시하가 다급히 후지의 손을 잡고 뭔가 말하려고 했다. 그때 후지를 비추던 빛줄기가 시하의 몸으로 넘어오더니 따뜻한 기운을 전했다. 순식간에 두 사람의 몸이 공중으로 떠오르더니 그 하늘 문 안으로 들어갔다. 그들이 통과하자 마치 등불이라도 끄듯 또다시 하늘 문이 닫혀 버렸다. 잠시 후, 그들의 귓가에 한 남자의 음성이 들려왔다.

“드디어 올라왔네요. 축하해요. 승선(升仙)을 축하해요.”

어라? 이건 생각했던 거랑 다르잖아? 여긴 VIP 특급 통로 아닌가? 근데, 나랑은 무슨 상관이지?

“선우(仙友)님들, 어, 왜 두 명이 더 많은 거지?”

흰옷을 입고 서 있던 사람이 그들을 보며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젊은 나이로 보이는 그는 온몸에서 선기(仙氣)를 뿜어내고 있어 그가 입은 옷에서조차 뭔가 특별한 질감이 느껴졌다. 그가 온몸에서 사람을 제압하는 듯한 위압감을 뿜어내며 포권을 하고 있던 두 손을 내려놓기도 전에 뭔가 놀란 듯한 표정을 짓더니 그녀를 바라봤다.

시하가 노려보는 듯한 그의 눈빛을 견디지 못하고 자기도 모르게 인사했다.

“하, 하이.”

흰옷을 입은 청년이 놀라더니 그제야 정신을 차리며 그녀가 안고 있는 병아리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한참 후에야 한숨을 내쉬더니 의미심장한 목소리로 후지에게 말했다.

“선우님, 이왕 수행을 하기로 했으면 세속의 일은 모두 버리고 수행에만 집중했어야죠. 신선의 세계와 일반 세계는 구분되어 있어서 가족은 데려올 수 없어요!”

이제 보니 난 무임승차를 한 모양이로군.

청년이 이번에는 시하에게 말했다.

“소저, 미리 성선하는 것이 그렇게 좋은 일만은 아니에요!”

“저기, 선장(仙長)님. 저도 올라오고 싶어서 올라온 것이 아니에요. 저 사람 옆에 서 있었는데 어떻게 된 일인지 그 빛이 저까지 끌고 올라왔어요. 아니면 제가 다시 내려갈까요?”

“그건 말도 안 돼요. 그 빛은 한 번도 틀린 적이 없어요. 이건 천규(天規, 하늘의 규칙)라서 비승기에 이르지 못한 사람은 하늘 문을 통과할 수 없어요. 설사 아무리 시간이 촉박하다 해도…….”

그가 중간에 말을 멈추더니 순간 뭔가 떠오른 듯 헛기침을 몇 번 하곤 입을 열었다.

“어, 괜찮아요. 이미 여기까지 올라왔으니 그냥 비승(飛升)에 성공한 걸로 하죠!”

천규라면서요? 규칙이 변해도 너무 빠르게 변하는 거 아니에요?

“제가 소개를 깜박하고 있었네요. 저는 이번에 당신들의 안내를 맡은 청축(靑筑)이라고 해요. 당신들은 방금 이곳으로 올라왔기 때문에 선계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나중에 다시 알려줄게요. 우선 저와 함께 세영지(洗靈池)로 가서 속세에서 가져온 모든 것을 씻어 버리세요.”

“잠깐만.”

어떻게 돌아가야 하는지부터 얘기해 주시죠.

하지만 그 사람은 이미 은빛 돌들이 깔려 있는 그 길로 걸어가고 있었다. 마치 그곳에 1초도 머물기 두려운 사람처럼 서둘러 그곳을 떠나 버렸다.

시하가 주변을 살펴보았지만 먼저 올라온 유유와 다른 사람들은 보이지 않고 있었다. 설마 먼저 올라온 사람들은 벌써 이곳을 떠난 걸까?

“왜 아직도 움직이지 않죠? 빨리 와요. 빨리요.”

그들이 따라오지 않고 있자 청축이 재촉했다. 시하와 후지가 서로 시선을 맞추고 영문을 모른 채 그의 뒤를 따랐다.

됐어, 돌아가는 방법은 나중에 다시 물어보지 뭐.

주변을 살펴보니 그곳은 사방이 대나무로 빼곡하게 둘러싼 죽림이었다. 다만 그곳의 대나무는 이상하게도 초록색이 아니라 금빛을 띠고 있었다. 잎사귀까지 금빛을 띠고 있어 그곳에서 뿜어져 나오는 빛으로 눈이 부실 지경이었다.

와, 이건 완전히 토호의 스펙이잖아. 진짜 금인진 모르겠지만.

시하가 대나무 잎 하나를 따서 이발로 깨물어 보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며 앞으로 걸어갔다.

“도착했어요.”

청축이 앞에 있는 진법을 가리켰다.

“진법을 지나면 바로 세영지가 나와요. 어서 안으로 들어가요.”

그가 선인(仙印)을 하며 법진을 움직이려는 순간 갑자기 하늘에서 요란한 소리가 들려오더니 땅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시하가 고개를 돌려 보니 우측 하늘에 갑자기 눈부신 붉은빛이 나타나 대나무의 그 빛을 모두 눌러 버렸다.

“큰일 났어요. 이미 열렸어요. 빨리 가야 돼요!”

청축은 양손으로 한 사람씩 잡아, 바로 법진 안으로 밀어 넣었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제대로 파악하기도 전에 눈앞의 풍경이 언뜻 흔들리더니 이미 또 다른 세계가 펼쳐졌다.

그들의 눈앞에 아름다운 집 한 채가 나타났다. 수선문파에서 보았던 그 전당만큼 웅장하진 않았지만 사방에 선기가 가득하고 아름다운 노을이 그곳을 비추고 있었다. 그리고 옆에는 두세 마리의 선학이 여유롭게 거닐고 있어 제법 선경의 풍경을 뽐내고 있었다.

청축이 다시 길게 한숨을 내쉬며 마치 큰 위험으로부터 겨우 목숨을 건진 듯한 모습을 보였다. 엄숙하던 그의 표정이 그제야 조금씩 풀리기 시작했다. 긴장한 그의 모습을 보며 시하가 참다못해 질문했다.

“선장님, 방금 그 빛은 뭔가요?”

청축이 놀라는 듯하더니 이내 웃는 얼굴로 시하에게 말했다.

“누군가 근처에서 도술을 부린 것뿐이에요. 당신들은 신경 쓸 것 없어요.”

그가 헛기침을 하더니 화제를 다른 곳으로 돌렸다.

“여기가 바로 인선전(引仙殿)이에요. 성선이 되어 이곳에 온 모든 사람들은 당분간 여기서 지내게 돼요.”

시하가 그곳을 자세히 살펴보니 건물 가운데 희미하게 ‘인선(引仙)’ 두 글자가 있었다. 청축이 그들을 데리고 가운데에 있는 그 건물로 걸어가 몇 바퀴를 돌더니 수기(水氣)가 가득한 어느 한 곳에서 걸음을 멈췄다. 그러고는 가운데에 있는 저수지를 가리키며 말했다.

“두 선우님, 여기가 세영지예요. 두 분께서도 이미 눈치채셨겠지만, 이곳으로 오면 몸 안의 영기를 움직일 수 없게 되죠. 그리고 선기를 받아들일 수 없게 돼요. 이 세영지의 물로 세속의 모든 것을 씻으면, 신선의 몸으로 거듭날 거예요. 정확히 말하면 이 세영지의 물을 통과해야만 진정한 신선이 될 수 있어요. 지금 바로 들어가세요. 신선의 몸으로 돌아오면 그때 두 분께 이 신선 세계에 대해 다시 자세히 설명해 드릴게요.”

시하가 그 기이한 연못을 자세히 살피던 그 순간, 청축이 손을 내밀어 막았다.

“소저, 잠깐만요! 소저는 수행 계급이 비승기에 이르지 못해 세영지의 선기를 견딜 수 없어요. 때문에 세영지에 몸이 닿으면 경맥이 모두 끊길 수 있어요.”

“아.”

시하가 바로 내디뎠던 발을 다시 거둬들였다.

“걱정하지 마세요. 인선전은 아래 세계하고는 달라 이곳에는 수행의 장벽이 없거든요. 여기서 지내다 보면 소저도 바로 비승기에 이르게 되어 저 연못으로 들어가 신선의 몸을 갖게 될 거예요.”

“알았어요. 고마워요.”

시하가 고개를 끄덕이며 후지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그럼 저는 밖에서 기다릴게요.”

후지가 얼굴을 찌푸리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분명 아무 내색도 하지 않았지만 그는 온몸으로 불만스러움을 드러내는 듯했다. 혼자 들어가는 게 적잖이 싫은 모양이었다. 시하가 입을 삐죽 내밀며 그의 모습을 지켜보다가 말했다.

“걱정하지 마요. 밖에서 기다릴게요. 도망가지 않을게요.”

그제야 후지가 연못으로 들어갔다.

* * *

세영지 근처에 있는 다락방으로 올라온 시하가 참다못해 그에게 유유와 함께 올라온 사람들의 소식을 물었다.

“오늘 비승한 사람들 중 여자 한명이랑 남자 한 명 보지 못하셨어요? 남자는 민머리예요.”

“승선지도(升仙之道)는 아주 어려운 것이라 몇백 년 동안 저도 당신들 두 사람 외에 다른 사람은 보지 못했어요.”

“어?”

이게 무슨 말이지?

“소저의 말을 들어보니 당신 친구들은 불수인가 보죠?”

“맞아요. 불수예요.”

“그럼, 그럼 그들은 아마 이미 다른 승선대(升仙臺)로 갔을 거예요.”

“다른 곳이요?”

청축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신선계의 기초 지식에 대해 늘어놓기 시작했다.

수선계에서처럼 신선계에도 세력 범위와 지위의 높고 낮음이 구분되었다. 다시 말해서 신선계는 동서남북으로 네 구역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그리고 매 구역마다 선존(仙尊)이 관리하고 있었고 매 구역마다의 천규도 서로 달랐다. 네 구역의 선민(仙民)들은 기본적으로 서로 왕래할 수 없었다.

승선 후에도 수선계에서처럼 수행을 계속해야 하나, 계경(界境)이 조금 다를 뿐이었다. 방금 신선계로 올라온 사람들은 지선(地仙)이라 부르고, 그 이후부터는 현선(玄仙), 금선(金仙), 중선(重仙), 상선(上仙)으로 나누었다. 중선에 이른 사람을 선존이라고 칭하는데 마선(魔仙)과 요선(妖仙), 그리고 전체 신선계를 통틀어 그 계급에 오른 사람은 열 명도 되지 않았다.

동대륙과 서대륙은 모두 성선이 되려고 하는 사람들이 모여 있었고, 남대륙은 요선이 되려고 하는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그리고 불수들은 은하계 밖에 있는 세계에 자리하고 있어 신선계와 거의 마주치지 않는다. 그리고 제일 신비스러운 곳은 바로 마선으로, 마수도 성선이 될 수 있었다.

마선들의 수가 제일 적었지만 많은 이들이 이미 살기를 가진 높은 경지에 이르러 항상 북쪽에 있는 얼음 층에 숨어 있었다. 그리고 북쪽 선계는 모든 선인들이 쉽게 드나들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그곳을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은 각 대륙을 관리하고 있는 선존뿐이었다.

그들이 올라온 승선대는 남쪽에 위치했고 근처에는 동대륙이 있었다. 그곳은 승선대에 오르는 의미가 특수하여 어떤 대륙에도 소속되지 않았다. 전체 선계에 모두 세 개의 승선대가 있는데 하나는 이곳에 있고 다른 하나는 북대륙의 제일 끝에, 또 다른 하나는 바깥 세계에 있는 불수들이 있는 그곳에 있었다.

청축은 일반적으로 승선하는 사람들이 통과하는 하늘 문이 각각 달라서 유유와 다른 사람들은 이미 바깥 세계에 있는 그 불수들이 있는 곳으로 갔을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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