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35화 (135/189)

시하가 깜짝 놀라 고개를 돌렸다. 그녀의 뒤에 서 있던 후지가 결인한 손을 내려놓으며 얼어 버린 그를 향해 차갑게 말했다.

“말이 너무 많아.”

후지가 그에게서 시선을 거두더니 고개를 숙여 그녀의 얼굴을 바라봤다. 시하가 바로 손을 들며 말했다.

“알았어요! 다음엔 바보처럼 시간 낭비하지 않고 바로 공격할게요.”

그는 시하가 기뻐하는 듯해 부드러운 손길로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시하가 고개를 돌려 다시 그 문을 노려보더니, 몇 번이나 열려고 시도해 보았지만 요지부동이었다. 하지만 문 위에는 진법이나 법술도 보이지 않았다. 시하가 조급해져 화구술(火球術) 같은 술법으로 문을 폭파해 버리는 방법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때, 후지가 갑자기 결인을 하여 손에 금색 ‘卍’ 자 법부를 떠올리더니 문이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이건 불수의 법인 아니에요?”

언제부터 후지가 불수를 시작한 거지? 착각인지 모르겠지만 그 말을 들은 후지가 입꼬리를 씰룩거리는 듯했다.

“예전에 마사(魔傻)가 사용하는 걸 보고 배웠어.”

“마, 사? 저의 오라버니를 말하는 건가요?”

“그래.”

그 이상한 별명은 대체 어디서 온 걸까? 그 이름이 뭔가 잘 어울리는 듯한 이유는 뭐지? 그리고 오빠에게서 배웠으면 배웠지. 그 화난 듯한 표정은 뭐죠?

후지가 손을 움직이자 그 ‘卍’ 자 법부가 더 빠른 속도로 문을 향해 날아갔다.

진동 소리가 들리더니 원래는 요지부동이던 석문이 갑자기 양쪽으로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문이 그렇게 열리는 줄 알고 시하가 그곳을 바라보고 있는데 후지가 또다시 손을 움직였다. 잠시 후, 요란한 진동 소리가 들려오더니 석문이 부서져 버렸다.

“내가 조금 바꿔 봤어.”

후지가 자랑스러운 목소리로 칭찬을 바라며 말했지만, 입에 먼지를 잔뜩 머금은 시하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문을 조금 간단한 방법으로 열 순 없는 건가.

그때, 문 뒤로부터 검은 기운이 음침하게 밀려 나왔다. 원래도 어두침침하던 지하 세계가 그 검은 기운으로 인해 더욱 어두워졌다.

“이건, 이건 말도 안 돼.”

그 검은 기운의 영향인지 용오천을 묶고 있던 얼음이 점점 녹아내렸다.

“불문성지(佛問聖地), 여기에 어떻게 이런…….”

시하는 용오천을 신경 쓰지 않고 후지와 함께 문 안으로 날아 들어갔다. 주변의 검은 기운이 점점 더 짙어지자, 마치 그 검은 기운에 뒤덮인 듯한 착각이 들었다. 시하는 속도를 높이며 지도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날아갔다. 그렇게 목표 지점에 다다르고 나서야 시하는 그 안의 풍경을 제대로 살펴볼 수 있었다. 숨을 들이마시가 차가운 공기가 몸 안으로 들어왔다.

세상에! 이게 대체 다 뭐지?

그들 앞에 수백 명에 이르는 민머리 중들이 둘러앉아 있었다. 모두 가체사의 사람들로, 밖에 아무 의미 없이 떠다니는 천의맹의 사람들과는 달리, 이들은 검은 기운에 완전히 사로잡힌 듯 검은 촉수로 온몸이 감겨 있었다. 그 검은 촉수가 몸을 촘촘히 둘러싸고 있어 그들의 원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가끔 드러나는 그들의 승복이 아니었으면 시하는 그들이 가체사의 사람이라는 사실도 알 수 없었으리라. 왜 밖에는 몇 명의 가체사 승려를 제외하고 모두 천의맹의 사람들만 있는 것인지 의문이었는데, 알고 보니 가체사의 승려들은 모두 이곳에 와 있었다. 보아하니 문 밖에 남겨진 용오천 외에 가체사의 모든 사람들이 그 검은 기운에 감염된 듯했다.

하지만 두려운 것은 그 승려들이 아니었다. 사람들이 모여 있는 그 중앙 위에 약 오륙 미터의 구멍이 있었는데 머리처럼 생긴 검은색의 거대한 물체가 밖으로 튀어나와 있었다. 그 물체는 온몸이 까맣고 몸의 끝 부분에 쌍쌍의 하얀 구슬 같은 것이 나 있었다. 구슬이 눈동자처럼 이리저리 돌아갈 때마다 검은 점액 같은 것이 안에서 흘러나왔다. 그 검은 점액이 땅으로 떨어지자 살아 있는 물체인 양 꿈틀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귓전을 찌르는 듯한 그 익숙한 소리가 들려오더니 잠시 후, 안에서 검은 촉수 하나가 기어올라 와 제일 가까이에 있는 사람에게로 다가갔다.

모계제왕!

시하는 그제야 시스템의 의도를 알 듯했다. 공중에 있는 그 끔찍한 물체가 바로 이 수많은 에일리언들의 여왕이었다. 그 촉수들은 모두 이 여왕이 낳은 것이고.

하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중간에 있는 틈에 끼어 떠나지 못하고 있었다. 만약 그가 그곳을 나오는 날에는 그 검은 촉수들이 천하를 덮어 버릴 듯했다.

“허응, 허응, 허응.”

여왕이 그들을 발견했는지 이상한 울음소리를 내며 그 머리 부분에 있는 모든 눈을 미친 듯이 굴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원래는 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아 있던 살마특들이 뭔가 지령을 받았는지 일제히 돌아서더니 그들을 향해 다가오기 시작했다. 후지가 다시 한 번 ‘卍’ 자 결계를 하며 그들을 공격했다.

“여기서 움직이지 말고 있어.”

후지가 그 한마디를 남기더니 빛처럼 빠른 속도로 날아갔다. 온몸에 검은 촉수를 감은 승려들이 그의 뒤를 따라갔다. 한동안 그곳에는 서로 싸우는 소리와 귀를 자극하는 괴이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시하가 긴장한 얼굴로 공중에 검은 기운들에게 쫒기고 있는 후지를 바라봤다. 잠시 후, 시하의 머릿속에 들어온 시스템이 쉬지 않고 메시지를 보내왔다.

[어서 목표물을 제거하십시오! 어서 목표물을 제거하십시오!]

머릿속에 같은 메시지가 계속해서 반복되었다. 그리고 어두컴컴하던 눈앞에 갑자기 붉은 화살 모양이 나타나더니 앞에 있는 그 에일리언 여왕을 가리켰다.

시하가 욕하고 싶은 충동을 겨우 억눌렀다. 목표물을 제거해야 한다는 건 나도 잘 알지. 하지만 방법이 있어야 하잖아. 입으로 큰소리치는 건 나도 할 수 있다고! 겨우 몇 년 동안 배운 선법으로 뭘 할 수 있겠어. 그리고 난 불수도 아니잖아. 제공이나 다른 사람들처럼 정생련을 사용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후지처럼 배운 것이 많아 오빠가 하는 불수를 보고 바로 따라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병아리처럼 천성적으로 화봉의 기질을 갖고 태어나 연밥 몇 개에 바로 화연업화……. 어! 잠깐만! 병아리! 그걸 잊고 있었네.

시하가 공중에 있는 후지에게 큰소리로 외쳤다.

“오라버니! 여기 전체를 모두 얼음으로 얼려 버려요. 두꺼울수록 좋아요.”

공중에 하얀 그림자가 희끗거리더니 후지가 그에게 다가오는 에일리언을 물리치곤 바로 결계를 했다. 잠시 후, 거대한 흰색 진법이 공중에 나타났다. 하얀 안개가 하늘을 가득 덮자 그곳의 기온이 급격히 내려갔다.

시하의 발아래가 싸늘해지더니 겹겹이 얼어붙은 빙하가 나타났다. 빙하에 밀려 그녀의 몸이 오륙 미터 높이까지 올라갔다. 빙하가 곧 그 공중에 끼어 있는 ‘여왕’이 있는 곳까지 솟아올랐다.

“이제 그만하면 됐어요!”

시하가 큰소리로 외치며 후지에게 진법을 멈추도록 했다. 그리고 영기를 움직여 모두 순수한 수영기로 전환시킨 다음, 바로 아래에 있는 그 두꺼운 얼음 층을 내리쳤다. 그러자 얼음 층들이 순식간에 물로 변해 버렸다. 입구를 막고 있는 그 얼음 층 외에 전체 공간이 거대한 연못으로 변해 버렸다.

됐어!

시하가 기뻐하며 허리에 묶여 있던 주머니 안에 있는 물건을 사방에 뿌렸다. 그러자 텀벙텀벙 소리를 내며 물속으로 떨어졌다.

시하가 두 손으로 결인하며 몸속에 있는 모든 영기를 움직이자 순간 그녀의 영기들이 모두 밖으로 뿜어져 나왔다.

한 명의 수사로서 그것도 도겁기에 이른 높은 계급의 수사였지만 시하는 자신이 아주 가난한 수사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법기라고는 그 낡아빠진 영검 외에 아무것도 없었다. 때문에 그녀의 주머니에는 딱 두 가지 물품만이 있었다. 하나는 영석, 다른 하나는 병아리의 간식.

시하는 그제야 연밥이 간식도 되지만 원래는 정생련의 종자였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전에 제공과 연묵 두 사람이 갖고 있는 정생련이 너무 적다는 생각만 하고 있었는데 지금 보니 자신이 그 전체 금광을 소유하고 있었다.

그래 봤자 연꽃 몇 송이잖아. 내가 피워내면 되지.

시하가 목영기를 물속으로 전달하자 물속으로 떨어졌던 영석들이 모두 초록색으로 변했고, 연못 전체에서 짙은 목영기가 뿜어져 나왔다. 그리고 원래 수면 위에 떠 있던 연밥들이 꿈틀대기 시작하더니 서서히 싹을 틔우고 뿌리를 내리며 잎사귀를 만들었다.

얼마 가지 않아 전체 수면 위에 초록색 연꽃 잎들로 가득 찼다. 이어서 초록색 꽃봉오리들이 물속에서 솟아오르더니 연달아 무지갯빛 꽃을 피워 내기 시작했다.

“허응, 허응, 허응.”

여왕이 시하의 의도를 파악했는지 갑자기 격렬하게 몸부림을 치며 그 틈에서 빠져나오려고 하더니 다시 괴상한 비명을 질렀다. 그 비명 소리에 원래는 후지를 쫓아가던 살마특들이 갑자기 방향을 바꾸더니 그녀가 있는 수면 위로 날아가기 시작했다.

“하하(夏夏)!”

시하가 속으로 욕설을 퍼부었다. 그리고 속도를 높여 몸 안에 있는 영기와 물속에 있는 영석들을 가동시키고는 마음속으로 주문을 외우듯 소리쳤다.

어서 꽃을 피워. 빨리 꽃을 피우라고. 물론 내가 물리적인 편법을 이용한 건 맞지만 그래도 세상을 구하려는 이 마음을 봐서라도 얼른 피어 줘야지.

후지가 법결을 멈추지 않았지만 그녀에게로 달려드는 그 많은 살마특들을 모두 물리치기는 어려웠다. 그들이 시하가 있는 곳 가까이까지 다가가 그녀의 얼굴에 검은 기운을 뿜어내려는 순간 드디어 수면 위에 연꽃이 피어올랐다.

금빛 불광이 하늘로 솟아오르자 하늘을 가득 덮고 있던 그 살마특들이 모두 사라졌다. 그곳을 가득 덮고 있던 검은 기운도 갑자기 모두 사라졌고, 불광이 하늘로 더 높이 솟아올랐다. 높이 솟은 그 탑마저 모두 뚫어 버리며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귓전을 찌르는 듯한 그 날카로운 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왔다. 죽기 직전 최후의 발악처럼 구슬프게 들려오던 그 소리도 끝내 그 금빛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시하가 깊이 숨을 들이마셨다가 다시 내쉬려고 하는 순간 머릿속에 익숙한 소리가 들려왔다.

[띵! 어서 목표물을 공격하십시오.]

아직 목표물이 남아 있어?

시하가 고개를 돌려 그 틈에 끼어 있던 여왕을 바라보자, 언제 나왔는지 기다란 몸을 늘어뜨리고 그녀의 머리 위까지 다가와 있었다. 그 끔찍한 흰색 눈들이 박혀 있는 머리는 날카로운 이빨이 가득한 큰 입을 벌리고 그녀에게로 다가왔다.

[어서 목표물을 공격하십시오! 어서 목표물을 공격하십시오!]

젠장, 누군 공격해야 되는 걸 모르냐고. 중요한 건 정생련도 무서워하지 않는데 무엇으로 공격해야 되냐고! 주머니에 있는 물건까지 모두 털어 냈는데 나보고 뭘 더 어쩌라고. 이제 남은 건 휴대전화밖에 없는데, 그걸로 때려 볼까?

“허응, 허응.”

시하가 이를 악물며 손에 들고 있던 휴대전화를 그 거대한 입속으로 던져 넣었다.

꺼져!

시하가 돌아서서 아직 녹지 않은 얼음 층을 향해 미친 듯이 뛰어갔다. 아무 소용도 없을 줄 알고 무심코 던진 그녀의 공격에 갑자기 엄청난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다. 갑자기 그녀의 뒤에서 귓전을 때리는 듯한 날카로운 비명 소리가 들려왔고, 그 거대한 탑마저 흔들리더니 사방에 균열을 만들며 무너지기 시작했다. 후지가 시하를 안고 공중으로 날아오르며 무너져 내리는 돌들을 피했다.

시하가 고개를 돌려 보니 여왕이 고통스러운 모습으로 물속에서 허우적거리며 거대한 물보라를 일으키고 있었다. 눈이 잔뜩 박혀 있는 그의 머리 위에 검은 구멍 같은 것이 나타나더니 끊임없이 회전하며 빨판처럼 머리를 안으로 빨아들이고 있었다. 잠시 후, 여왕의 몸이 점점 작아지더니 나중에는 그 구멍 속으로 모두 사라져 버렸다.

헐, 휴대전화를 정말 무기로 사용할 수 있었다니.

[띵! 침입자 제거 성공!]

“세상에, 이제야 끝났네.”

시하가 길게 한숨을 내쉬며 줄곧 긴장하고 있던 마음을 그제야 풀어놓고는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하하(夏夏).”

후지가 손을 내밀며 시하를 부축했다.

“우선 여기를 나가야 해. 여긴 곧 무너질 거야.”

시하가 아예 그의 허리를 감싸 안으며 말했다.

“도와줘요. 다리에 힘이 없어요!”

시하는 걷고 싶었지만 아예 일어설 수조차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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