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34화 (134/189)

후지가 공중에 나타나 결인을 하더니 단칼에 아래에서 올라오는 검은 기운을 떨어뜨리며 차갑게 말했다.

“잠시 여러분의 오식을 폐관할게요.”

그가 말을 마치자 영검들이 사람들의 주변을 에워싸고 돌기 시작했다.

잠시 후, 주변의 모든 소리가 사라졌다. 갑자기 나타난 그 소리뿐 아니라 바람 소리마저 들리지 않았다. 사람들이 그제야 안심하며 계속해서 영기를 전달했고, 시하도 서둘러 진안의 영기를 전환시켰다.

드디어 진법이 병아리의 보호 구역까지 번져 가 사방으로 확장되었고, 불광의 빛기둥도 조금씩 확대되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영력을 전달하니 사방의 검은 기운들이 점점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 검은 촉수들마저 불광에 노출되면서 바로 사라졌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진법 안에 불광이 증가하며 더는 시하가 영기를 전환하지 않아도 영기가 스스로 불광으로 전환되었다. 주변이 점점 더 밝아지고 있었다. 시하는 심지어 사찰 주변 나무들까지도 볼 수 있었다. 이제 그들이 있는 몇 리 밖까지 검은 기운은 전혀 보이지 않고 있었다.

병아리가 체력을 모두 소모하고 시하의 곁으로 돌아와 스스로 영수대 안으로 들어갔다. 진법이 정화되는 범위가 확장되면서 후지도 진 중심으로 돌아와 사람들과 함께 영기를 주입시켰다.

진법을 어떻게 설계한 것인지 시하의 몸 안에 있는 영기도 이제 바닥을 보이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들의 사정도 비슷했다. 모두 영기를 다 쏟아 내고 피곤해했다. 이제 진법은 후지 한 사람의 영기로 버티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도 사람들은 섣불리 진에서 손을 떼지 못했다. 아주 조금, 조금만 있으면 불광이 전체 가체사를 덮고, 그렇게 되면 그들이 이길 수 있었다. 승리가 바로 눈앞에 있었다.

갑자기 멀지 않은 불탑에서 대량의 검은 기운이 몰려나오더니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괴이한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그 소리에 그들의 오식을 막고 있던 진법이 모두 파괴되었다. 뭔가 애처롭기도 하고 원망하는 듯한 그 소리는 비행기가 내는 요란스러운 진동 소리를 내다가 브레이크를 밟는 듯한 날카로운 소리를 냈다. 그 소리는 사람들의 영혼까지 파고들어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 잠시 후, 아주 거대한 촉수가 뱀처럼 그 검은 탑을 감고 올라갔다.

[띵! 모계 왕자 발견, 어서 목표물을 소멸하고 침입을 막으십시오! 어서 목표물을 소멸하고 침입을 막으십시오!]

목표물을 소멸하라고? 이렇게 크고 거대한 에일리언을?

[띵! 어서 집행하십시오. 어서 집행하십시오!]

지금 나랑 장난해? 진법을 멈출 수도 없지만 저 물건이 불광 속에서도 살아 있는 걸 보면 딱 봐도 업그레이드 버전 같은데 상대를 하더라도 방책이 있어야 할 것 아니야? 그리고 저 탑 안에 더 무시무시한 물건이 감춰져 있을지 누가 알아.

[띵! 5초 내에 목표물에 이르지 못하면 징벌 시스템이 작동됩니다!]

잠깐만, 언제부터 징벌 시스템이 있었던 거지?

[5, 4, 3, 2, 1.]

“002호! 당신 미쳤어요?”

시하가 물어볼 틈도 없이 전류가 온몸을 타고 돌면서 말할 수 없는 통증을 가하기 시작했다. 마치 온몸이 불에 타서 쪼그라드는 듯한 통증에 시하가 바닥에 무릎을 꿇고 주저앉았다.

“하하(夏夏)!”

후지가 깜짝 놀라며 바닥에 쓰러진 시하를 부축했다. 그리고 습관적으로 그녀의 맥을 짚으며 몸속에 있는 영기를 살폈다. 그러다 그녀의 머릿속에 다른 물건이 숨겨져 있는 것을 발견하고 얼굴을 찌푸리며 바로 결계를 하더니, 그녀의 머릿속에 있는 그 물건을 봉인했다.

하지만 영기가 미처 안으로 들어가지 않아, 겨우 완화됐던 그 찌릿한 충격이 다시 몰려왔다.

“멈춰요!”

시하가 남은 힘을 다해 후지의 손을 끌어당기고 앞에 있는 탑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저를 저 탑 안으로 데려가요. 어서요!”

후지가 망설이지 않고 바로 시하를 안아 그 높은 탑이 있는 곳으로 날아갔다.

그 침입자의 미션이 떨어지고 나서부터 시하의 머릿속에 있던 002호가 조금 이상해진 듯했다. 전에는 자세히 생각할 겨를이 없었지만 이번 일로 시하는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시하는 그가 미션을 제시할 때 ‘융합’이라고 딱 한마디를 했던 것이 기억났다. 만약 그 말대로라면 002호는 어떤 물건과 융합되었다는 거지?

002호가 융합될 유일한 가능성을 가진 물건은 전에 시하가 발견한 오빠의 휴대전화뿐이었다. 그렇다면 이 휴대전화에도 시스템이 있는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그 시스템의 이름은 서열을 보면 001호임이 분명했다. 융합 후에 오빠의 휴대전화가 다시 열리지 않은 것도 아마 그 때문인 듯했다.

침입자의 미션도 그렇고 방금 부여된 제왕의 미션을 봐도 그녀의 머릿속에 있는 그 002호는 전에 알고 있던 그 시스템이 아닌 모양이었다. 최소한 융합되고 난 후 뭔가 바뀌었다는 것만큼은 그녀도 추측할 수 있었다. 하지만 뭔가 거부할 수 없도록 몰아붙이는 수단만큼은 시스템이랑 많이 닮아 있었다.

나를 여기까지 차원 이동하게 만든 그 시스템이랑 닮았어!

높은 탑에 가까워질수록 그녀의 몸에 느껴지던 그 찌릿한 통증이 점점 사라지고 있었다. 시하는 그제야 한숨을 돌렸지만, 이번에는 그녀의 머릿속에 높은 탑의 모습을 담은 전체 도안이 나타났다. 탑의 밑 부분에는 붉은 점이 반짝거리고 있었다. 붉은 점 위에는 감탄 부호가 그 주위를 둘러싸고 있었다. 보아하니 그곳이 바로 시스템이 말한 목표 지점이자 제왕이 있는 위치인 듯했다.

후지가 탑 근처에 이르러 안으로 들어가기도 전에 탑을 감싸고 있던 그 거대한 검은 촉수가 갑자기 그들에게로 다가왔다. 촉수는 마치 그들이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막으려는 듯했다.

“물러서!”

후지가 차가운 얼굴로 온몸에서 한기를 뿜어내자 주변에 하얀 기류가 떠올랐다. 시하도 그렇게 화난 그의 모습은 처음 보는 듯했다. 그가 손에 들고 있던 검을 들어 올리자 공기가 점점 얼음으로 변하더니 눈앞에 거대한 빙산 하나가 나타났다. 그가 내뿜는 한기에 그 검은 촉수의 몸이 꽁꽁 얼어붙었다. 하지만 잠시 후, 그 거대한 검은 촉수가 얼음 안에서 꿈틀거리더니 상처는커녕 아무런 장애도 받지 않은 것처럼 그들을 공격해 왔다.

“술법이 아무런 효력도 없는 거예요?”

시하가 놀란 표정으로 후지에게 물었다. 방금 그 촉수들은 몸집도 작고 술법으로 공격하면 바로 흩어졌는데, 이건 설마 업그레이드 버전인 건가?

후지는 시하를 데리고 몸을 피할 수밖에 없었다. 무슨 술법을 사용하든, 검을 이용해 직접적으로 공격해도 아무 소용이 없었다. 어떤 공격이든 전혀 흔들림 없는 모습을 보이고 있어 그들은 마치 환영을 공격하는 듯한 착각마저 들었다.

이렇게 가다가는 끝이 없을 것 같아.

시하가 고개를 들어 높이 솟은 탑을 바라보다 고개를 돌렸다.

“오라버니, 아래로 내려가 바로 탑 안으로 들어가요.”

후지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시하를 안고 탑 아래에 있는 입구 쪽으로 향했다.

“쿠와앙!”

그 거대한 검은 촉수가 갑자기 크게 울부짖으며 분노하더니 그들의 뒤를 쫓아왔다. 촉수가 바로 그들을 따라 잡으니, 그녀의 뒤에서 음한 기운이 느껴지고 있었다.

시하가 이를 악물며 옆에 있는 영수대를 두드리고는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미안, 네가 수고 좀 해 줘야겠어.”

“삐약!”

순간 밝은 불빛이 영수대 안에서 비치더니 봉황의 소리가 들려왔다. 병아리는 또다시 거대한 화봉(火鳳)으로 변신하더니 날카로운 발을 드러냈다. 그리고 그 거대한 검은 촉수를 잡더니 거세게 타오르고 있는 깃털을 휘날리며 공격하기 시작했다.

역시 정생련과 홍련업화만이 이 에일리언을 공격할 수 있군.

“하하(夏夏)?”

후지가 시하의 손을 잡았다. 병아리가 이미 고전을 겪은 후였기 때문에 시하는 최대한 빨리 탑 속으로 들어가 시스템이 말한 그 물건을 찾아내야 했다. 병아리를 도울 수 있는 방법은 그것밖에 없었다.

입구로 들어서는 순간 시하의 눈앞이 캄캄해지더니 밖에서 들려오던 소음이 모두 차단돼 안은 이상하리만큼 고요했다. 밖에서 보던 그 높이와는 달리, 안에는 높이 솟은 계단 대신 어디로 통하는지도 알 수 없는 좁고 어두운 길들이 사방팔방으로 뻗어 있었다. 그리고 모든 통로 옆에는 셀 수 없이 많은 불상들이 세워져 있었다.

심리적인 작용인지 알 수 없지만 갑자기 그렇게 많은 불상들이 있어도 장엄하고 엄숙하다기보다 저승에 온 듯 음산했다.

“저쪽 길이에요.”

시하가 오른쪽에 있는 통로를 가리키며 후지를 이끌었다.

의외인 것은 오는 내내 아무 장애도 없었다는 것이었다. 심지어 그 뼛속까지 파고드는 음한 기온조차 모두 자취를 감춰 버렸다. 그들이 오른쪽에 있는 거대한 문 앞에 이르자 문 위에 두 개의 불상이 엄숙하고도 장엄한 모습으로 세워져 있는 게 보였다.

시하는 몸이 오싹해지는 한기를 느끼며 알 수 없는 두려움에 휩싸였다. 마치 그 문 뒤에 엄청 두려운 물체가 나타날 듯해 숨도 제대로 쉬지 못했다. 그때, 후지가 그녀의 손을 꽉 잡았다. 시하가 놀라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는 문을 가리켰다.

“이 문 안에 유명지해를 만들고, 가체사를 지금의 모습으로 만들어 놓은 물건이 있어요!”

후지가 얼굴을 찌푸리더니 그녀를 자신의 등 뒤로 끌어당기며 말했다.

“조심해. 내 뒤에 꼭 붙어 있어.”

그들이 결인을 하여 그 문을 열려고 하는 순간 옆에서 갑자기 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구냐. 감히 금지 구역까지 들어오다니.”

문 옆에서 빛이 반짝이더니 아주 눈에 익은 민머리의 인물이 나타났다.

“용오천!”

그동안 보지 못했던 오두방정이잖아.

그도 시하를 보고 놀라며 소리쳤다.

“순풍 은인님! 당신이 어떻게 여기에?”

“그건 내가 묻고 싶어요. 그나저나 몸은 괜찮아요?”

자세히 살펴보니 그의 몸에는 그 어두운 기운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보아하니 영혼은 멀쩡한 듯했다.

“저요?”

그가 어리둥절한 얼굴로 그녀에게 반문했다. 마치 시하가 왜 그런 질문을 하는지 전혀 눈치채지 못하는 듯했다. 그러다 갑자기 뭔가 떠오른 듯 엄숙한 표정으로 말했다.

“은인님, 여긴 저희 가체사의 금지 구역이에요. 가까이 다가오시면 안 돼요. 어서 여길 벗어나는 것이 좋겠군요.”

“금지 구역이요? 안에 뭐가 있는지는 몰라요?”

“은인님, 혹시 들어가려는 건 아니죠? 당신이 저의 사부님께 오해가 있다는 건 잘 알지만, 이곳은 저희 사찰의 금지 구역이에요. 은인님께서 무슨 일로 이곳에 오셨는지는 모르겠지만 빈승, 이곳을 지키는 책임자로서 아무도 이곳으로 들여보낼 수 없어요.”

“용오천, 당신에게 자세히 설명할 시간이 없어요. 이 일은 아주 복잡해서, 안에 있는 일을 해결한 다음에 설명할게요.”

“안 돼요! 저는 가체사의 제자예요. 사찰의 규칙을 지켜야 하죠. 그러니 은인님, 저를 곤란하게 하지 마세요.”

아주 앞뒤가 꽉 막힌 놈 같으니라고.

“가체사요? 그거 알아요? 가체사는 이미 끝났어요.”

“그게 무슨 말씀이시죠?”

“도대체 여기에 얼마나 있던 거예요? 어쨌든 이거 하나만 알아 둬요. 당신이 계속 저를 막고 있으면 가체사는 물론 전 세계가 끝장날 거예요.”

“은인님, 함부로 말씀하지 마세요. 환해에서의 일은 사부님의 잘못이 있긴 했지만 당신은 그의 수행을 망쳐 버렸어요. 근데 그렇다고 억울하게 그 일과 무관한 저의 사찰까지 공격할 필요는 없잖아요.”

“내가 복수나 하려고 겁 주는 걸로 보여요?”

“아미타불.”

염불만 외우는 그를 보며 시하는 믿을 수 없어 했다. 환해에서 그의 새로운 모습을 봤었다면, 지금의 그는 아예 모르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사람이 이렇게 변할 수가 있다니. 만약 그 이유가 시간이라면 그들은 수천 년 동안 떨어져 있었지만, 후지는 수만 년 동안이나 떨어져 있었잖아!

“당신이랑 이럴 시간 없으니까 저리 비켜요!”

화가 난 시하가 이번에는 아예 영검을 불러내 겨냥했지만 그는 여전히 그들 앞을 막아섰다.

“시주님, 돌아가세요.”

“저리 비켜요!”

“돌아가세요!”

“내가 당신을 공격 못할 줄 알아요?”

“시주, 아야!”

그가 말을 다 마치지 못하고 갑자기 비명을 지르더니 옆에 있는 석벽에 부딪쳤다. 철썩 소리와 함께 벽 위의 얼음물이 쏟아졌고, 순식간에 그의 몸은 소시지처럼 벽에 얼어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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