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하는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그의 손을 잡은 뒤, 따라오는 사람에게 소리치며 앞에 나타난 그 길을 따라 검을 부렸다.
하지만 주변에는 검은 기운이 너무 많이 깔려 있었고, 그 검은 촉수가 사방에 포진되어 있었다. 그리고 정생련 외에 다른 법기들의 공격은 아무 소용도 없었다. 잠깐 흩어지는 것 같다가도 바로 원래의 상태로 회복되었고, 조종을 당하고 있는 천의맹 제자들마저 그들을 공격해 왔다. 천의맹 제자들이 아직 그 검은 기운에 완전히 잡혀 있는 건 아니었지만 그들이 시하와 일행을 공격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었다. 일반 제자들의 공격은 그렇다 쳐도 장로나 높은 계급이었던 사람들은 원래 가지고 있던 수행 능력에 검은 기운의 능력까지 더해져 수행 계급이 더욱 높아진 상태였다. 진안으로 들어온 사람들은 각문파의 장로급 인물들이긴 했지만 수행 계급이 대부분 대승기에 이르렀다. 다행히 선검문에서 온 제자들 중 몇 명의 도겁기의 수사들이 있었다. 더구나 청명은 수행 계급이 출규기였기 때문에 조금 곤란한 상황이긴 했지만 그래도 그들과 상대해볼 만했다.
시하는 단원이 옆에 붙어 있어, 그 검은 기운과 촉수가 얼씬도 하지 못했고, 가까이 몰려 왔다가도 바로 흩어져 버렸다. 때문에 시하는 가장 한가한 사람 중 한 명이었다. 뒷정리를 하거나 단원의 뒤에 숨어서 가끔 불의의 공격을 한 번씩 날리는 것이 전부였다. 시하는 순간 자신이 뭔가 우두머리의 여인이 된 기분마저 들었다.
울부짖는 소리가 다시 울려 퍼지더니 또다시 통로 하나가 나타났다. 단원이 시하를 이끌고 안으로 더 깊숙이 들어갔다.
시하가 고개를 들어 물 한 방울 샐 틈 없이 자신을 보호하고 있는 사람을 바라보다가 자기도 모르게 그를 불렀다.
“후지.”
꼿꼿이 서 있던 그가 갑자기 발을 삐끗하더니, 겨우 몸의 중심을 잡고는 고개를 돌리지도 않은 채 그 자리에 그대로 멈춰 섰다. 마치 돌 조각처럼 딱딱하게 굳어졌다. 시간이 한참 지난 후 그가 불안한 목소리로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하하(夏夏).”
“언제부터 기억이 돌아온 거죠?”
“한, 한 달 전부터.”
“상처는요?”
“이제 괜찮아.”
“아.”
한 달 전이라면, 바로 시하가 그의 손상된 경맥을 반복하여 복구하던 그때였다. 매번 그녀가 다른 일을 처리하려고 하면 그의 경맥에 문제가 생기곤 했었다. 시하도 그가 그렇게 높은 수행 계급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경맥이 그렇게 연약한 것에 의문을 갖고 있었다.
그게 모두 고의였다니.
시하가 깊게 숨을 들이마시며 당장이라도 복수하고 싶은 충동을 가라앉혔다.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야!
“하하(夏夏).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마요. 돌아가서 다시 얘기해요.”
그녀가 화가 많이 난 듯해 후지는 살짝 울고 싶어졌다.
주위의 검은 기운들이 다시 모이기 시작하며 그들의 속도도 많이 느려졌다. 사람들은 계속해서 몰려오는 검은 촉수들을 제거해야 했다. 진안으로 깊이 들어갈수록 그 검은 기운과 촉수들이 점점 더 많아졌다.
처음에는 검을 부려서 날아갔지만 안으로 들어갈수록 속도가 줄어들어 보행할 수밖에 없었다. 어떤 사람들을 부상을 입기도 하더니, 더 이상 앞으로 나갈 수 없게 되었다. 심지어 후지가 뿜어내는 검기조차 그 짙은 흑무(黑霧)를 제거하지 못했다.
시하가 신식을 통해 살펴보니 진안은 그들이 있는 곳에서 아직 100m 정도의 거리를 남겨 두고 있었다. 검은 촉수의 공격에 상처를 입은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영기로 전신을 보호하세요. 특히 머리를 보호해야 해요.”
시하가 그들에게 소리쳤다. 지금 보니 전원이 상처 없이 돌아가기는 어려운 듯했다. 머리에 명혼(命魂)만 있으면 영혼이 온전하지 않더라도 혼비백산에 이르는 것은 막을 수 있었다.
사람들이 그녀의 말대로 바로 행동에 옮겼지만 그대로 가다가는 사상자도 발생할 듯했다. 시하의 마음이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어떡하지?
“삐약.”
원래는 화가 나서 영수대에 숨어 있던 병아리가 웬일인지 머리를 내밀었다. 방금 잠에서 깬 듯 눈을 비비더니 하얗고 부드러운 두 손을 내밀며, 불쌍한 표정으로 그녀를 불렀다.
“아버지, 안아줘요!”
“…….”
“삐약?”
병아리는 그제야 주변의 상황을 눈치챘는지 멈칫하더니 작은 얼굴을 찌푸리고는 위압적인 울음소리를 냈다. 고통스럽게 하는 물건이라도 본 듯 몸에 불빛을 밝게 빛내며 다시 새 모양으로 돌아갔다. 그러고는 몸의 깃을 뻣뻣이 세우더니 몸을 날려 영수대 밖으로 나왔다.
시하가 말릴 새도 없이 병아리는 앞으로 공격해 갔고, 순식간에 거대한 봉황의 모습으로 변신했다. 온몸에 붉은 불빛을 반짝이며 크게 울부짖더니 앞에 있는 검은 기운을 향해 다가갔다.
순간 피처럼 붉은 불빛이 맹렬한 기세로 그의 주변을 불태웠다. 시하가 긴장된 마음으로 그 모습을 지켜봤다. 하늘에 가득하던 검은 기운이 화염을 만나기만 하면 모두 뒤로 물러섰다. 그리고 원래는 흩뜨리기만 하고 공격은 할 수 없었던 그 검은 촉수도 화염에 타서 애처로운 비명 소리를 내고 있었다.
“봉, 봉황.”
그곳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놀란 표정으로 그 광경을 지켜봤다.
이건 그 상고 시대의 그 신수(神獸)잖아?
반면 선검문의 몇몇 사람들은 담담한 표정으로 그를 지켜보았다.
음, 오래전에 봤었지!
그때 청명이 화염을 알아보고 소리쳤다.
“이 불은, 홍련업화(紅蓮業火)!”
홍련업화는 정생련처럼 불수계 전설 속의 물건이었다. 업화는 모든 죄악을 태웠지만, 정생련은 정화만 할 뿐이었다.
둘 다 이런 효력을 갖고 있을 줄은 몰랐네.
시하는 돌아가면 병아리에게 더 많은 연밥을 먹여야겠다고 결심했다.
“어서 나가야 돼요!”
후지가 사람들에게 소리치자, 그제야 모두 정신을 차리고 뚫린 통로를 통해 진안이 있는 곳으로 날아갔다. 멀지 않은 곳에 법진이 반짝이고 있었다. 그 진은 뭔가에 의해 파괴된 것처럼 보였다. 진은 희미하게 빛이 비치고 있어 마치 전압이 부족한 전등처럼 보였다.
시하가 고개를 들어 아직도 분노하며 날고 있는 병아리를 바라보며 큰 소리로 소리쳤다.
“진안을 둘러싸고 날아!”
병아리는 그녀의 말을 들었는지 방향을 바꾸어 진안을 감싸 돌기 시작했다. 잠시 후, 붉은 불길이 주위를 감싸며 그들과 진 사이에 안전 지역이 확보됐다. 시하가 정생련을 꺼내 진안 중심에 올려놓았다.
연꽃이 바닥에 닿자 곧 무너져 가던 진법이 갑자기 빛을 내며 다시 전력을 충분히 회복한 듯한 모습으로 돌아왔다. 시하가 고개를 돌려 사람들에게 말했다.
“됐어요. 이제 영기를 진법 안으로 주입시키기만 하면 돼요.”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모두 피곤한 상태였고,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오는 길에 상처를 입고 팔다리를 잃었지만 뭐라고 이견을 내지는 않았다. 사람들이 진안 주변에 둘러앉아 아무 망설임 없이 모두 자신의 영기를 진법 안으로 주입시켰다. 결과는 예측하기 어렵지만 모두 한마음으로 도전하고 있었다.
시하가 고개를 들어 공중에 있는 병아리를 걱정스럽게 바라봤다. 홍련업화가 검은 기운들을 막고 있긴 했지만 병아리는 아직 어렸기에 얼마나 견딜 수 있을지는 시하도 장담할 수 없었다.
후지가 한 손을 시하의 머리 위에 올려놓으며 무표정한 얼굴로 담담하게 말했다.
“내가 갈게. 걱정 마.”
시하가 초조한 마음에 자기도 모르게 그의 소매를 잡아당겼다. 그런데 그가 갑자기 고개를 숙여 가까이로 다가오더니 말했다.
“오라버니를 믿어.”
입술이 닿을 것만 같은 거리에 있어 그의 뜨거운 입김이 그대로 그녀의 얼굴에 닿았다. 그동안 시하의 머릿속에 잠재워져 있던 기억이 스쳐 지나가자, 그녀의 얼굴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잠시 후에야 시하는 너무 가깝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고 바로 앞에 있는 그를 힘껏 밀어냈다.
“이, 이렇게 가까이에서 말할 것까진 없잖아요. 어서 가요. 빨리요!”
후지가 시하에게 밀려 뒤로 한걸음 물러섰다. 그러고는 눈빛을 흐리더니 억울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시하의 얼굴이 더욱 뜨겁게 달아올랐다.
“왜 아직 그러고 있어요! 빨리 가요! 계속 그러고 있으면 제가 발로 차 버릴 수도 있어요.”
후지가 그제야 검을 부려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그는 검을 부리면서도 한편으로는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봤다.
시하가 깊게 숨을 들이마시며 자기도 모르게 스멀스멀 샘솟고 있는 감정을 억눌렀다.
잠룡연에서 후지가 했던 키스는 아무 의미도 없는 거였어. 어릴 땐 오빠가 나에게 뽀뽀를 했었으니, 후지도 분명 같은 마음에서 한 거였을 테지. 우린 순수한 의남매일 뿐이야. 이건 분명해.
시하는 자기도 모르게 떠오르던 그 영문 모를 감정들을 떨쳐 내고는, 전신부(傳迅符)를 불러내 밖에 있는 세 사람에게 진을 펼쳐도 된다는 신호를 전달했다. 시하가 다리를 접고 앉아 온몸의 영기를 정생련 속으로 주입시켰다.
틀림없어. 진법이 아니라 정생련이야.
정생련이 진안 위에 있지만 진안 주변에 영기를 불광에 물들게 하는 정도였다. 진안에 있는 모든 영기를 불광으로 덮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렇게 하려면 영기가 연꽃을 지나 다시 진법으로 들어오는 방법밖에는 없었다.
하지만 모든 수사들이 각자 다른 영근을 갖고 있고, 정생련은 원래 어떤 속성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특정 영기만 받아들일 수는 없었다. 그리고 불수는 영기가 아닌 공덕으로 수행하기 때문에 불수만이 정생련을 움직일 수 있었다. 하지만 단일 속성을 받아들일 수 없을 뿐 모든 영기를 받아들일 수 없진 않았다.
그녀는 특수하게도 모든 영근을 아우르는 광영근(光靈根)을 갖고 있었다. 정화련(淨化蓮)을 사용할 순 없었지만 그녀의 영기를 거부할 수도 없었다.
시하는 정생련으로부터 불광을 끌어낸 다음, 진안에 있는 영기를 그녀의 영기와 같은 속성으로 전환시키려 했다. 그렇게 하면 불광도 동일한 영기를 따라 진법 안으로 들어올 수 있었다.
시하는 집중하여 영기를 정생련에서 진법 안으로 이동시켰다. 그리고 다시 다른 사람들의 영기를 둘러싸며 서서히 그 영기들을 광속성으로 전환시키자 불광도 따라서 진안으로 들어갔다. 원래는 4, 5m 정도밖에 되지 않던 진법들이 점점 밖으로 확장되고 있었다.
“효과가 있어요!”
사람들이 기뻐하며 영기를 더욱 빠르게 진안으로 주입시켰다.
같은 시간 밖에서 진을 펼치고 있던 세 사람도 진을 완성하며 세 갈래의 금빛 줄기를 진안으로 주입시켰다. 금빛 줄기가 진안으로 들어오더니 진 중심에 있는 정생련과 연결되었다. 두 번째 진법, 환영진이 살아나면서 진안의 영기가 불광을 띠고 순환하기 시작했다.
바닥에 있던 금빛이 더욱 왕성해지면서 아예 기둥을 형성하더니 허공을 뚫고 위로 솟아올랐다. 순간 머리 위에 짙게 깔려 있던 검은 기운이 흩어지면서 어두운 밤하늘에 구멍 하나가 뚫린 듯한 모습이 나타났다.
갑자기 애처로운 비명이 공중에서 들려왔다. 마치 수만 명의 괴물들이 울부짖는 듯한 날카로운 소리가 귓전에 들려왔다. 사람들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멍하니 있는 사이 누군가 의식을 잃고 피를 토했다. 방금까지 확대되던 진법이 순식간에 절반이나 줄어들었다.
그들 앞에 있던 진법이 얼마 버티지 못하고 몇 번 진동 소리를 내었고, 하늘에서 영검이 아래로 떨어지며 사람들 주변에 꽂혔다. 검이 허공을 가르는 소리에 그 처량한 비명 소리가 잠시 눌려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