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9화 (129/189)

제공의 이번 행동은 그들이 이미 상의한 결과였다. 그들이 그 같은 결정을 내린 이유는 그곳이 가체사도 아니었고 그 네 명의 사람들에게 당하느니 먼저 강하게 나오는 것이 좋을 듯하다는 생각에서였다. 연묵은 차가운 얼굴로 고개를 돌려 자신에게서 제일 가까이 서 있는 사람을 향해 물었다.

“제진, 어서 얘기해봐요.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죠?”

시하가 그제야 제일 옆에 있는 그 사람이 바로 제진이라는 것을 알아챘다. 자세히 살펴보니 지난 번보다 그의 수행 계급이 또다시 올라 있는 듯했다. 그의 온몸은 검은색으로 뒤덮여 있었고, 세상 모든 만물을 불쌍히 여기는 듯한 비탄한 표정은 더 이상 보이지 있었다. 검은 줄무늬가 가득 덮인 그의 얼굴에 분노의 기색은 전혀 없었고, 오히려 평온해 보였다. 그는 마치 방금 그 소란은 아예 목격하지 않은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제진이 고개를 돌려 연묵을 보더니 온화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사부님. 저도 방금 저 사람의 이야기가 무슨 뜻인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제공은 동문을 살해하고 사찰의 지보 정생련을 훔쳐가 가체사에서 쫓겨났지요. 저의 사찰의 역적은 바로 제공입니다!”

제공이 더욱 화가 나서 그에게 소리쳤다.

“당신, 지금 누구한테 뒤집어씌우려고. 지금 그게 무슨 궤변이에요! 나는 가체사 주지고 정생련은 원래부터 내 손에 있었는데 내가 왜 그걸 도둑질하죠? 이 일은 분명 내가 없는 틈을 타서 당신들 네 명이서 꾸민 일이에요. 근데 지금 그걸 누구한테 뒤집어씌우는 겁니까?”

“제공이 한 일은 가체사의 유음벽이 모두 말해주었습니다. 그러니 이제 더는 궤변을 늘어놓지 마시죠.”

“누가 악한 짓을 했는지는 당신들 스스로가 제일 잘 알겠죠. 가체사는 이곳에서 만 리 길이나 되고 중간에 환해까지 있으니 어떻게 거짓말을 해도 아무도 모를 테니까요.”

“이 일이 당신과 상관없다면 왜 이곳에 나타났죠?”

“당신들 같은 역적들이 세간을 어지럽힐 것이 걱정되지 않았다면 나도 이곳까지 오지 않았을 겁니다.”

제공이 말을 마치더니 자비로운 모습으로 두 손을 합장하며 염불을 외웠다. 정색한 제공의 모습은 제법 위엄이 느껴지고 있었다. 사람들은 그의 말에 머리가 어지러울 정도였지만 제공의 화난 모습을 보며 화를 참는 눈치였다. 제공의 모습은 확실히 뭔가 맨손으로 역적을 제압한 듯한 위압감이 느껴지고 있었지만 반대로 그 네 사람은 웬일인지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들은 화가 난 기색도 없이 미간 한번 찌푸리지 않고, 지나치게 평온한 모습을 보였다. 시하의 마음속에 이상하게 뭔가 계속 찜찜한 느낌이 들었다.

제진은 연묵을 사부로 모시고 있었다. 때문에 연묵은 설사 마음속에 의심되는 부분이 있더라도 지금 당장 섣불리 판단할 수 없었다.

“가체사에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죠? 도대체 누가 한 짓입니까.”

“연묵 존자. 부처께서는 무엇을 심든 그것을 열매로 얻을 것이라고 하셨죠. 빈승은 가체사의 주지입니다. 때문에 문하의 사람이 마도에 들어섰다면 그 책임은 모두 저에게 있지요. 그날 어떤 일이 있었든 더는 변론하고 싶지 않습니다. 하지만 오늘 그 못된 놈을 반드시 잡아내겠어요. 선이든 악이든 그 결과에 대해서는 제가 모두 책임질 겁니다.”

제공이 말을 하면서 또다시 염주를 꺼내 들었다. 주변의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고 악의 무리와 끝까지 투쟁할 것이라는 강한 의지를 내비쳤다. 그는 상대와 논쟁 한번 하지 않았지만 오히려 상대방이 역적이라는 사실을 더욱 견고하게 하고 있었다.

시하가 마음속으로 제공을 응원했다.

제공의 말이 끝나자 역시나 제진을 바라보는 연묵의 눈빛이 순식간에 바뀌기 시작했다. 연묵이 미간을 찌푸리더니 제공에게 말했다.

“걱정하지 마세요. 만약 제진이 정말 어떤 악한 일을 저질렀다면 저도 지켜보고만 있지 않을 거예요. 하지만 아직은 확실하지 않…….”

시하가 참지 못하고 앞으로 한 걸음 나서며 제공의 말에 힘을 실었다.

“저기, 연묵 존자. 전에 저희가 왜 당신을 찾아갔는지 아시죠? 왜 그 모험을 무릅쓰고 잠룡연으로 들어가야만 했는지. 그리고 제공이 왜 저와 함께 그곳으로 들어갔을까요? 만약 정말 저 사람들이 말한 것처럼 제공이 동문을 죽인 살인자고, 정생련을 도둑질한 사람이라면, 그는 왜 자신의 목숨까지 걸어 가면서 다시 잠룡연에 들어갔겠어요? 단순히 배나 부르자고 그 위험한 곳까지 들어갔을까요?”

연묵이 놀라더니 화난 얼굴로 옆에 있던 제진을 향해 소리쳤다.

“제진, 감히 이렇게 악한 일을 저지른 거예요?”

순식간에 사람들이 네 사람의 곁을 떠나 버리면서 주변에는 아무것도 없이 텅텅 비어졌다. 비록 수선계에서는 때리고 죽이는 일이 흔했지만 사문을 배신하고 동문을 살해한 이와 같은 악행은 마수나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심지어 상대는 자비를 근본으로 하는 불수이니 그 일의 엄중함은 말할 나위가 없었다.

연묵이 화가 단단히 난 모습으로 손을 들어 법기를 불러내더니 당장에라도 문파를 더럽힌 그 불순분자를 제거할 듯한 태세를 취했다. 하지만 법기가 제진의 몸에 닿기도 전에 갑자기 그의 몸에서 검은 빛이 나타나더니 연묵의 법기를 지워 버렸다. 마치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이건 말도 안 돼!”

연묵이 놀란 표정으로 제진을 바라봤다. 감히 내 법기를 빼앗다니.

반면 네 명은 사람들의 태도 변화를 전혀 눈치채지 못한 건지 여전히 그 자세를 유지하고 있었다. 당황하는 기색은커녕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고, 마치 그 자리에 고정된 사람들처럼 전혀 흐트러짐 없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시하의 마음속에 있던 그 찜찜함이 점점 더 깊어졌다. 너무 담담한 거 아냐?

연묵이 첫 공격에 실패하고 다시 결계를 만들었다. 순간 지면에 금빛 광채가 가득 비치더니 거대한 卐 자 법진이 나타났다. 법진으로부터 여러 꿰미의 법부들이 나타났다. 공중에 반투명한 금빛 장막이 나타나더니 아래에 있는 네 명에게 내려앉았다. 장막이 네 사람을 그 안으로 가두려는 것처럼 보였다.

“존자, 제가 도울게요!”

전 안에 있던 사람들이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연묵에게로 다가왔다. 사람들은 그들에게 잘 보이고 싶었는지 각각 법보를 꺼내 들고 네 사람을 둘러쌌다. 순식간에 전 안에 각양각색의 법기들이 나타나더니 네 사람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법기들이 다가오자 아무 움직임도 보이지 않던 네 사람이 갑자기 두 손으로 합장을 하고는 바른 자세로 서서 길게 소리 질렀다.

“아-!”

그 순간 사람들의 법기는 물론, 연묵이 불러냈던 그 금빛 법진마저 모습을 감춰 버렸다.

“내, 내 법기!”

“이게 말이 돼요?”

“동시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의 법기를 빼앗다니!”

사람들이 서로 얼굴을 마주보며 황당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어떤 사람들은 심지어 자신의 본명(本命, 메인 법기)을 꺼내 들었다가 피를 토하고 있었다.

“이건 무슨 공법이죠?”

제공이 상대의 공격에 놀란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시하가 또다시 무표정한 얼굴로 돌아온 네 사람을 바라보며 말했다.

“공법이 아니에요. 저들 몸에 있는 검은 빛 때문이에요!”

시하는 분명 네 사람의 뒤에 있던 그 검은 빛이 사람들의 법기를 삼켜 버리는 것을 봤다.

“검은 빛, 그게 뭔데요?”

제공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시하에게 물었다.

“바로 저들 뒤에, 당신은 안 보여요?”

그때 연묵이 차가운 표정을 짓더니 제진을 꾸짖었다.

“흥, 음기가 그렇게 짙은 걸 보아하니 불문심법(佛問心法)은 절대로 아닌 듯하고, 제공의 말처럼 확실히 당신이 사문을 배신했겠군요. 오늘은 내가 사문을 배반한 그 불순분자를 제거할 차례인 모양이에요.”

그녀가 더는 망설이지 않고 바로 출규기의 위압을 방출했다. 순식간에 하늘을 가득 채운 영압이 땅으로 내려오기 시작했다. 아름답던 전이 그녀의 위압 아래 산산이 부서지기 시작했고, 순식간에 한 무더기의 나뭇조각들로 변해 버렸다.

연묵이 무기를 불러내 공중으로 날아오르려고 했지만 뜻밖에도 사람들이 망설이기 시작했다. 법기를 빼앗긴 이들도, 대승기의 수행 계급을 갖고 있는 이들도 그들 네 명과 큰 실력 차이를 갖고 있었다. 다시 말해서 역적을 제거하는 일은 자신들 문파하고 상관없는 일이었고, 체면을 세우더라도 목숨을 걸고까지 세우고 싶진 않았다. 그리고 그들에게는 그렇게 많은 법기가 남아 있는 것도 아니었다.

시하는 처음부터 다른 사람들의 도움은 필요하지 않았다. 다만 그들을 이용하여 연묵을 그들 편으로 만들고 싶었을 뿐이다. 연묵은 출규기였고, 거기에 제공까지 더하면 그 네 사람을 상대해도 승산이 있을 터였으므로.

다시 말해서 전에 그들이 말했던 것도 전부 거짓말은 아니었다. 제공은 확실히 동문 제자들을 살해한 일이 없었고, 정생련을 훔친 적도 없었다. 이 일은 보나마나 제진 그 백련화가 저지른 것이 틀림없었다.

다만, 그 백련화가 분명 10년의 공덕을 잃었음에도 불구하고 왜 이렇게 빨리 수행 계급을 회복하고, 오히려 전보다 더욱 강해졌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 점은 시하도 정말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었다.

“소사숙님.”

제공이 고개를 돌려 시하에게 물었다. 시하가 고개를 끄덕이며 영검을 불러냈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옆에서 무기를 꺼내는 유유를 바라보며 말했다.

“유유, 넌 여기 남아 있어!”

“언니, 저는…….”

“말 들어!”

시하가 그녀의 말을 끊으며 연묵과 함께 네 명에게 다가갔다. 유유가 이를 악물며 사람들 속으로 다시 돌아갔다. 그녀의 수행 계급으로는 확실히 도울 수 있는 일이 없어 보였다.

그 4인조 그룹은 여전히 아무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다. 제공과 연묵이 힘을 합하여 전보다 열 배 강한 법인을 방출했지만 그들은 한 걸음도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마치 그런 공격쯤은 아예 성에 차지 않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들 앞에 나타난 그 크고 작은 봉우리처럼 생긴 법인들에도 전과 동일한 일이 발생했다. 네 사람이 여전히 두 손을 합장하며 손뼉을 치더니 전과 동일한 소리를 냈다.

“아-!”

그 소리는 마치 인적이 드문 산골짜기에 울려 퍼지는 메아리처럼 순식간에 주봉으로 울려 퍼졌다. 분명 네 명이서 내는 소리였지만 시하의 귓가에는 천만 가지의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그 소리는 만여 명의 귀신들이 한꺼번에 울부짖는 듯 끔찍했다.

그녀가 봤던 그 검은 빛도 동시에 네 사람의 등 뒤에서 나타났다. 엄청난 기세의 법인들이 순식간에 그 검은 빛에 삼켜 버렸다. 상대가 그렇게 쉽게 두 사람의 법인을 소멸시키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한 제공과 연묵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봤다. 하지만 그 검은 빛은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공중에 있는 그들을 향해 다가갔다.

“제공!”

그렇게 서 있으면 어떡해요! 시하는 방금 불러냈던 천만 검진(劍陳)의 방향을 틀어 그들 앞을 막아섰다. 그리고 그 검은 빛이 그들까지 삼키려는 것을 저지했다. 시하는 그녀의 영검도 법기처럼 그 검은 빛에 삼켜 버릴 것이라 생각했지만, 뜻밖에도 쨍그랑 소리가 들려오더니 그 검은 기운이 시하의 영검에 부딪쳐 되돌아갔다. 검은 빛은 마치 영검에 덴 것처럼 급하게 네 사람 뒤로 되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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