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8화 (128/189)

제공이 놀라 소리쳤다.

“뭐라고요? 사람들이 이미 영악파에 도착했다고요?”

단원이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한 명은 대승, 두 명은 도겁기예요.”

제공이 미간을 깊이 좁혔다. 그들을 이기지 못하는 것도 당연했지만 상대는 그들보다 훨씬 수도 많았다. 그리고 그들과 비교하면 이쪽은 제공 외에 모두 수행 계급이 낮았다. 비록 단원이 있긴 했지만 공교롭게도 병상에 있는 몸이지 않은가. 있어 봤자 아무 효력도 발휘하지 못할 것이 불 보듯 뻔했다.

“소사숙님, 어떡하죠?”

“지금 도망가도 늦지 않을까요?”

이미 도망가기에는 늦어 버린 듯했다. 문밖에 영악파의 제자가 다가와 예를 갖추더니 큰 소리로 말했다.

“존상님들, 문파에 귀빈이 방문하시어 장문께서 여러분을 주봉 대전으로 모시라고 하셨습니다.”

보아하니 이미 문 앞까지 온 모양이었다. 이젠 억지라도 받아들이는 수밖에.

제공의 말대로라면 가체사를 나오는 제자들은 모두 그 명패를 갖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그렇다면 상대방도 이미 제공이 이곳에 있는 것을 알고 있으리라. 지금 그들을 데리러 사람을 보낸 걸 보면 직접적으로 공격할 생각은 없어 보였다. 아마도 단원이 두려웠겠지.

시하가 제공과 상의한 뒤 전당으로 가서 그곳의 상황을 직접 살펴보기로 했다. 무슨 상황이 벌어지면 도망가면 그만이었으니까.

시하는 단원에게 방에 그냥 머물도록 했다. 그의 상처가 깊은 것을 상대에게 알릴 수 없었다. 시도 때도 없이 피를 토해 내니, 그가 지금 깊은 상처를 입고 있다는 것은 금방 들통 나리라. 그러니 아직은 방에 남아 있는 것이 좋을 듯했다.

이러한 결정에 대해 단원은 그저 지긋이 바라보다가 돌아서서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분명 동의한다는 의미였겠지? 항상 무표정이니 알 수가 있어야지! 시하가 깊이 숨을 들이마시며 아직도 영수대 밖으로 삐져나와 있는 병아리의 작은 엉덩이를 두드리며 주봉이 있은 곳으로 날아올랐다.

시하가 영악파 주봉 대전을 찾아온 것은 이번이 두 번째였다. 지난번에는 그녀가 어떻게 하다 보니 금단기 우승을 하게 되어 상을 받기 위해 왔었지만, 심리적인 작용 때문인지 지난번과 비교했을 때 분위기가 좀 더 어두웠다.

제공도 오랜만에 진지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방금까지 여자 뒤나 쫓아다니던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 없을 정도였다. 시하도 덩달아 정신을 바짝 차리며 언제든지 싸울 수 있는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들은 검에서 내려 바로 대전 문으로 걸어갔다. 대전 문 앞에 거의 도착할 즈음 방금까지도 화가 나 있던 봉황이 갑자기 영수대에서 머리를 삐쭉 내밀었다.

아직 사람의 모습으로 돌아오지 않은 그녀가 시하의 어깨 위로 올라갔다. 발로 그녀의 어깨를 꽉 잡는 바람에 시하의 어깨에 통증이 느껴졌다. 봉황은 날개를 활짝 펼치며 마치 곧 공격이라도 할 듯한 태세를 취했다. 두 눈으로 문 안쪽을 노려보더니 평소와는 다른 뭔가 위협적인 울부짖음 소리를 냈다. 마치 전투 명령을 기다리는 군인처럼 비장한 모습이었다.

“왜 그러시는 거죠?”

제공과 유유가 멈춰서더니 걱정스러운 얼굴로 그녀의 어깨에 있는 봉황을 바라봤다.

“저도 모르겠어요.”

시하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귓가에 익숙한 소리가 들려왔다.

<경고! 엄중 경고! 침입자 발견! 침입자 발견!>

그녀의 시야에 눈앞에 붉은 자막이 나타났다. 무슨 상황이지?

“언니! 언니!”

그녀가 아무 움직임도 보이지 않고 있자 유유가 손을 뻗어 몸을 흔들었다.

“응? 응!”

시하가 그제야 놀라며 정신을 차렸다. 눈앞에 나타났던 그 자막도 바로 사라졌다. 다만 그녀가 보고 있는 오른쪽에 빨간색 삼각형 부호가 여전히 남아 있었다. 시하가 내시를 살펴보니 역시나 신식 안에도 그 부호가 걸려 있었다.

“002! 당신 살아 있어요?”

시하가 시험 삼아 시스템을 불러 보았다. 유명지해에서 오빠를 만나고 난 후 002호는 마치 전원이 꺼진 것처럼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또다시 그 이상하고 고통스러운 미션을 전달하지도 않았고, 그녀가 먼저 소환해 보아도 묵묵부답이었다. 그녀의 신식 안에 있는 도표가 아니었다면 시하는 시스템이 그녀의 몸에서 완전히 해제된 줄 착각할 정도였다. 근데 지금 이 순간 갑자기 나타나다니.

“이 경고는 무슨 뜻이죠? 누가 침입자라는 거예요?”

시하가 한참을 기다려 보았지만 다시 아무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설마 프로그램이 다운된 걸까? 이 시스템은 대체 어느 회사에서 생산했길래 품질이 이래!

시하가 서둘러 오빠의 휴대전화를 꺼내 보았더니, 빨간색 부호가 나타나 있었다. 홈 버튼을 아무리 눌러 보아도 화면에는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았다. 시하가 휴대폰을 다시 주머니에 넣었다. 보아하니 이번에는 답을 찾기 어려울 듯해.

고개를 들어 전방을 바라보니 전당이 있는 곳에 어두운 기운이 있는 듯했다. 착각인지 모르겠지만 그쪽으로 다가갈수록 뭔가 음침하고 익숙한 기운이 느껴졌다. 한 걸음 앞으로 나서는 순간 갑자기 어두운 것이 나타나더니 그녀의 얼굴을 향해 다가왔다. 순간 그 어두움에 마음이 철렁 내려앉아, 시하가 놀라서 뒤로 물러섰다.

제공이 의문스러운 표정으로 시하에게 물었다.

“왜 그러시는 거죠?”

“안에, 어라?”

시하가 설명하려는 순간 방금 그녀를 덮쳐 왔던 그 어두움이 사라져 버렸다. 마치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흔적도 없이.

“방금 검은 안개 같은 걸 보지 못했어요?”

“검은 안개요?”

제공과 유유가 서로 마주보며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설마 환각인가?

유유가 돌아서서 그녀를 보며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언니, 왜 그래요? 우리 그냥 가지 말까요? 지금까지 단원의 상처를 치료해주느라 영력이 많이 소모되었을 거예요.”

시하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단원의 수행 계급이 워낙 높아 그저 그의 영기를 조금 인도해준 것뿐이었다. 오랜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영력을 많이 소모하여 환각에 이를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계속해서 뭔가 불길한 예감이 느껴져 아무래도 조심하는 것이 좋을 듯했다.

대전에는 사람들로 꽉 차 있었다. 보아 하니 영악파의 고급 간부들은 모두 모인 모양이었다. 다른 문파의 장문과 장로들도 얼굴을 보이고 있었는데 모두 대승 이상의 높은 수행 계급을 갖고 있었다. 엄청난 수행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그 전 안에 가득 차 있었다.

세 사람이 입구로 들어서자 흰옷을 입은 세 수사가 그들에게 예를 갖추었다.

“사숙님께 인사 올립니다!”

시하가 놀라며 발걸음을 멈췄다. 이 세 사람은 대체 누구지?

제일 앞에 선 몸매가 과하게 풍만한 남자가 그녀의 뒤를 살펴보며 물었다.

“사숙님, 사부님은 왜 오시지 않은 거죠?”

사부? 시하가 놀라며 앞에 선 그 뚱보를 자세히 살펴보았다. 그제야 시하의 머릿속에 그동안 잊고 있던 이름 하나가 떠올랐다. 단원의 그 뚱보 제자 2호잖아? 그의 뒤에 있는 두 사람은 전에 그녀를 도와 병아리를 구해줬던 금 영근과 토 영근이었다. 시하가 기뻐하며 그들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오랜만이에요! 당신들이 여기까지는 어쩐 일이에요?”

“전에 여기에 진법이 열리면서 태고의 허공이 무너지고 사방의 영산이 모두 흔들리면서 장룡연마저 무너졌어요. 제정과 제청은 이 일을 조사하러 왔다가 이곳에서 사부님의 영기를 발견하고 함께 온 거예요.”

하지만 단원이 봉우리 위에 진법을 설치하고 시하와 제공 그리고 유유 외에 사람들은 출입을 금지하고 있을 줄은 그들도 모르고 있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영악파 아래에서 사부를 기다리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청명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시하에게 물었다.

“사부님은.”

“걱정하지 마요. 괜찮아요!”

시하가 그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하자 청명이 그제야 안심했다.

”두 분 존상께서 오셨군요. 마중 나가지 못해 죄송해요!“

영악파의 장문 현기가 그들에게로 다가오며 환하게 웃었다. 그가 예를 갖추더니 그들을 전 안으로 안내했다.

”안으로 모실게요.”

주변을 살펴보니 영악파의 교복 외에 복장이 다양하게 섞여 있었다. 한눈에 봐도 다른 학교의 학생들인 것을 알 수 있었고 모두들 처음 보는 얼굴들이었다. 그들 중에 눈에 익은 한 남자가 시하의 눈에 들어왔다. 남자의 옆에는 뜻밖에도 연묵이 서 있었다.

그들이 들어오는 것을 보더니 연묵이 여전히 못마땅한 얼굴로 시하를 흘겨봤다. 연묵이 다시 고개를 돌려 옆에 사람과 대화를 이어 갔다. 그녀가 있는 곳을 바라보니 뜻밖에도 네 명의 사람들이 버티고 서 있었다.

어깨가 드러나는 V라인의 장포를 입고 가슴에 이상한 검은 법문을 새기고 있었다. 자유분방한 스타일의 폭탄머리를 하고 있었고, 등 뒤에는 나뭇가지인지 뭔지 알 수 없는 검은 막대기 같은 물건을 꽂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그 막대기 같은 것이 미세하게 움직이고 있어 마치 뱀처럼 사방으로 꿈틀대고 있었다. 이곳 사람들하고는 분위기가 완전히 다른데, 도대체 어디에서 나타난 거지?

현기가 제공과 가체사의 원한을 아예 모른 채 기분 좋게 웃으면서 말했다.

“며칠 전 대사님께 듣자하니 가체사에서 오셨다면서요? 마침 공교롭게도 가체사에서 고승 몇 분이 오셔서, 여러분도 동문인 듯해 제가 특별히 이곳으로 모셨습니다.”

그가 전당 안에 있는 그 네 명의 사람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 네 명의 살마특이 가체사의 승려들이라고? 절에서 언제부터 머리를 기를 수 있었던 거지?

제공이 맞은편에 있는 그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역시 저들이었네요. 소사숙님, 저 먼저 시작할게요.”

응? 뭘 시작한다는 거지?

“대사님, 이 네 분은…….”

“이런 나쁜 놈들!”

현기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제공이 갑자기 두 손을 허리 위에 얹더니 단전에서부터 우러나는 큰 소리로 그들에게 소리쳤다. 그의 꾸짖음 소리에 전당이 진동했다.

“스승을 속이고 가문을 욕되게 하는 이런 나쁜 놈들! 내가 오늘 네놈들을 벌하지 못하면 내 성을 갈 것이다.”

그가 손을 들어 결인을 하더니 염주를 불러내 네 사람을 향해 내리쳤다. 제공의 공격은 요란스러워 보였지만 사실 영력은 별로 사용하지 않고 있었다. 맞은편에 서 있던 네 명이 가볍게 결계를 하며 제공이 날린 염주를 막아냈다. 네 사람에게서 제일 가까이 있던 연묵이 안색을 굳히고 제공에게 소리쳤다.

“제공, 지금 뭐 하는 거죠?”

제공이 손으로 염주를 거두더니 여전히 화난 표정을 지었다. 그는 다시 공격하지 않고 이를 악물며 네 사람에게 소리쳤다.

“뭘 하냐고요? 문파를 어지럽힌 불순분자를 제거하는 거죠!”

“불순분자요? 그게 무슨 말이에요?”

제공이 손을 부들부들 떨며 네 사람을 가리켰고, 여전히 화난 목소리로 그녀에게 말했다.

“저 사람들에게 물어봐요. 저들이 한 짓은 저들 스스로가 제일 잘 알 테니까요.”

제공이 말을 마치더니 네 사람을 더는 보고 싶지 않은 듯 고개를 돌려 버렸다. 그러고는 시하를 바라보더니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조용히 속삭였다.

“소사숙님, 어때요? 저 잘했죠?”

“약간 과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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