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7화 (127/189)

“저는 차마 그녀에게 공격을 할 수는 없었고요.”

그가 고민스러운 표정을 짓더니 시하를 바라보며 말했다.

“하 소저가 다음 달에 폐관하고 대승에 오른다고 하더라고요. 그녀의 자질이 좋긴 하지만 지금의 수행 계급으로는 너무 성급한 것이 아닌지 걱정이 돼요. 그래서 소사숙께 그녀를 만나줄 수 있을지 부탁하려고 찾아온 거예요.”

유유가 대승기에 오른다고? 유유는 이제 화허중기밖에 안 되는데?

“대승기에 오르기에는 확실히 이른 감이 있긴 하지만.”

시하가 얼굴을 찌푸리며 잠시 뭔가 망설이더니 방 안에 앉아 호흡을 가다듬는 누군가를 바라봤다. 지금까지 시하는 단원을 도와 그의 손상된 경맥을 치유해주고 있었다. 진법의 거부 반응이 너무 심했던 탓인지 단원의 경맥이 아주 약해져 있었다. 시하가 어렵게 그의 영기를 눌러 놓으면 다음날 다시 엉망이 되어 있었다. 그는 또다시 피를 토하며 침상을 피로 물들였다. 매번 그가 어마어마한 양의 피를 쏟을 때마다 시하는 차마 그 광경을 지켜볼 수가 없었다. 보름이 흘러서야 겨우 대부분의 경맥이 돌아올 수 있었다.

제공이 시하의 시선을 따라 방 안을 살펴보았다. 그제야 그녀의 고민을 알아차리고 미간을 찌푸렸다.

“소사숙님, 저 사람의 상처가 걱정되시는 건가요?”

제공은 아직도 단원에 대한 편견을 버리지 못했다.

“경맥의 손상이 좀 심하지만, 회복하면 그렇게 심각한 상처는 아니에요. 이미 한 달이나 되었는데 왜 아직도 회복되지 않는 건지. 사소숙님, 정신 차리세요. 무슨 꿍꿍이가 있는지 누가 알아요!”

그가 말을 마치더니 방 안에 있는 단원을 한 번 흘겨봤다. 한참 호흡을 가다듬던 단원이 갑자기 눈을 뜨더니 차가운 기운을 뿜어내며 그들을 바라봤다. 제공은 그 단원의 눈빛에 눌려 몸을 벌벌 떨고는 시하의 뒤에 숨었다.

“일어났어요? 어때요. 좀 괜찮아졌어요?”

시하가 질문하면서 습관적으로 그의 맥을 짚어 보았다. 침상에 누워 있던 단원이 고개를 돌려 시하를 바라봤다. 방금까지만 해도 차갑던 그의 눈이 밝게 빛나고 있었다. 그가 희미한 목소리로 그녀를 불렀다.

“하(夏)…… 하(夏)?”

“네.”

시하는 그의 눈빛은 신경 쓰지 않고 계속해서 그의 맥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하하(夏夏)?”

“네?”

“하하(夏夏).”

“왜 그러는 거죠?”

몸에 무슨 문제라도 생긴 건가?

그가 갑자기 부드러운 눈빛으로 아무 말도 없이 시하를 바라봤다. 그러고는 입술을 아주 조금씩 움직였다.

“소사숙님.”

그때 제공이 밖에서 그녀를 기다리다가 초조한 마음에 안을 들여다보았다.

“알았어요.”

시하가 손을 흔들며 그에게 대답했다. 단원의 눈길이 입구 쪽으로 향하더니 차가운 눈빛으로 밖에 있는 제공을 쏘아봤다. 그 모습에 제공이 또다시 몸을 떨며 문 뒤로 숨었다. 내가 뭘 잘못하기라도 한 건가?

시하가 그의 경맥과 몸속의 영기가 안정된 것을 보고 그제야 안심하며 일어섰다.

“가려고요?”

단원이 얼굴을 찌푸리며 그녀에게 물었다.

“유유가 오랫동안 보러 오지 않아서 걱정스럽거든요.”

“유유는 괜찮아요!”

“그걸 어떻게 알아요?”

그가 놀란 표정을 짓더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시하는 그의 표정은 신경 쓰지 않고 말했다.

“보고 바로 돌아올게요. 경맥이 이제 거의 다 나았으니 푹 쉬세요. 영기는 함부로 사용하지 말고요.”

상처가 이제 안정되었으니 잠깐 다녀오는 동안 무슨 문제가 생기진 않겠지. 단원은 별다른 반대 의견 없이,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그녀를 바라보기만 했다. 시하가 빨리 유유를 만나야겠다는 마음에 서둘러 밖으로 나왔다.

“소사숙님, 빨리요. 빨리.”

그녀가 일어나는 모습을 보더니 제공이 기뻐하며 손을 흔들었다.

“걱정하지 마세요. 아무 일도 없을 거예요. 전에 사부님이 그렇게 죽이려고 해도 죽이지 못했죠. 지금은 하 소저가 더 급해요.”

문을 나서려고 하는데 갑자기 등 뒤에서 푸!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려보니 방금 전까지만 해도 멀쩡하던 단원의 입가에서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단원!”

왜 또 피를 토하는 거지? 시하가 놀라 다시 그에게로 돌아갔다. 자세히 살펴보니 역시 겨우 복구되어 있던 그의 경맥이 끊어져 있었다. 시하는 바로 그의 뒤에 다리를 틀고 앉으며 제공에게 말했다.

“먼저 가세요. 저도 바로 뒤따라갈게요.”

제공이 미간을 찌푸리더니 뭔가 찜찜한 표정을 지었다. 그가 창백해진 단원의 얼굴을 보더니 그제야 돌아서서 산을 내려갔다. 그가 검을 부려 산을 내려가고 나서야 단원이 안심하며 눈을 감았다. 나쁜 놈, 감히 내 누이동생을 뺏으려 하다니.

시하는 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아 그가 괜찮아질 것이라 생각했다. 한 달 동안 단원을 도와 경맥을 치료해 왔기에 그의 상처에 대해서는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의 몸 안에서 움직이고 있는 영기를 안정시키기만 하면 괜찮아질 수 있었지만 무엇 때문인지 이미 그녀가 몸속의 영기를 눌렀는데도 손을 거두기만 하면 그가 다시 피를 토했다. 원래는 몇 분이면 괜찮아질 수 있다고 생각했던 그의 몸이 몇 시진이 걸려서야 괜찮아졌다. 그녀가 정신을 차리고 나니 이미 아침이 밝아 있었다.

시하가 침상에 가득한 핏자국을 바라보다가 거진결을 불러내 깨끗하게 정리했다. 그러고는 아직도 창백한 그의 얼굴을 바라보며 주머니를 한참 뒤적이다가 신선한 연방 하나를 꺼내 들었다.

“연밥으로 보충 좀 할래요?”

방금 피를 많이 토했잖아요. 그때 단원이 놀라더니 그녀의 손에 있는 연방을 바라봤다.

“정생연밥?”

“그래요. 잠룡연에서 채집한 거예요. 당신한테 효능이 있을지 모르겠네요.”

그가 눈빛을 반짝이더니 시하를 한참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정생련은 아주 깨끗한 곳에서만 자란다고 들었어요. 천 년 동안 뿌리를 내리고, 만 년 만에 싹을 틔우고 백만 년 만에 꽃을 피우며 천만 년 만에 열매를 맺고 다시 만 년이 지나야만 그 열매가 영근다고 했죠. 이 연꽃은 부처의 성품을 가지고 있는 불문(佛問)의 지보예요.”

그 말을 들으니까 무슨 선도(仙桃)라도 되는 듯하잖아.

“그렇게 귀한 거예요? 그럼 어서 먹어요. 분명 효과가 있을 거예요.”

그가 부드러운 표정으로 시하를 바라보더니, 손으로 연방을 밀어내며 말했다.

“하하(夏夏), 전 이제 괜찮아요.”

좋은 물건인 건 맞았지만, 불수가 아니기에 먹어 봤자 낭비밖에 되지 않았다. 하지만 동생이 걱정해주니 기분이 좋았다. 그런데 그때 갑자기 붉은 그림자가 시하의 뒤에서 나타났다.

“삐약!”

두 개의 부드러운 손이 단원의 손 위에 올라가더니 황금빛 두 눈을 반짝이며 그 싱싱한 연방을 노려봤다.

“일어났어?”

시하가 기뻐 소리쳤다.

“먹어. 어서 먹어.”

시하의 말에 그녀가 기다렸다는 듯 손을 뻗어 연방을 잡았다. 그런데 단원이 갑자기 순식간에 그녀의 손에 들려 있던 연방을 낚아채고는 바로 자신의 주머니에 연방을 넣어 버렸다. 동생이 나한테 준 거야. 넌 저리 꺼져!

그녀가 5초 정도 멍하니 있다가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 원래도 그렇게 말이 유창하지 못했던 그녀는 다급하게 단원을 향해 울부짖었다.

“삐약, 삐약, 삐약, 삐약, 삐약!”

단원이 말도 없이 그 무표정한 얼굴로 자신의 아래에 있는 병아리를 바라봤다. 병아리는 길게 울부짖더니 피곤했던지 바닥에 주저앉아 몸에서 화염을 반짝였다. 그리고 잠시 후, 화염으로 둘러싼 봉황으로 변신하더니 아무것도 고려하지 않은 채 바로 단원을 향해 달려들었다. 시하가 깜짝 놀라 뛰어가 병아리를 잡았다.

“소란 피우지 마, 아픈 사람한테.”

봉황은 한참 몸부림을 쳐 보았지만 빠져나갈 틈이 보이지 않자 바로 몸에 있던 화염을 거두고 애원하듯 그녀에게 울부짖었다.

“삐, 약, 삐, 약.”

억울해요.

“연방은 네가 먹을 수 없어.”

이 연방이 좋은 물건이긴 했지만 불성이 있거나 불수인 사람들에게는 너무 과한 효능을 나타낼 수 있었다. 병아리는 서수(瑞獸)였지만 연방을 한 알 먹고 한 달 후에야 일어나지 않았는가. 너무 많이 먹다 탈이라도 나면 큰일이었다.

봉황은 온몸의 깃털을 축 늘어뜨리고 의욕 없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고는 자신의 붉은 엉덩이를 뒤뚱거리며 시하의 영수대를 바라보더니 그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주머니 속으로 들어가기 전 엉덩이를 뻣뻣하게 들어 올린 그녀는 자신의 꼬리를 밖에 남겨 놓으며 뭔가 불만을 드러내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이건 나한테 화가 났다는 건가?

시하가 고개를 돌려 옆에 있던 단원을 바라보았다. 착각인지 창백하기만 하던 그의 얼굴이 갑자기 괜찮아진 듯했다. 뭔가 늠름한 것이 아주 기분 좋은 듯 보였다. 사람 한 명이랑 새 한 마리가 내 눈앞에서 도대체 뭘 한 거야.

“어디 더 불편한 데 없어요?”

“없어요.”

나에게서 동생만 빼앗아 가는 사람만 없으면 괜찮아.

“경맥은요? 어디 불편한 곳은 없고요?”

“괜찮아요.”

“단전은요? 영기의 움직임은 괜찮아요?”

“괜찮아요.”

“그럼 이제 괜찮은 모양이네요?”

“그래요.”

“그럼 됐어요! 유유를 만나고 올게요.”

시하가 말을 마치고 바로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단원은 지금 피를 토해 버릴까 생각했다.

하지만 시하는 끝내 유유에게로 가지 못했다. 왜냐하면 유유가 직접 그녀에게로 찾아왔기 때문이다. 제공이 유유와 급하게 날아오더니 발이 땅에 닿자마자 큰 소리로 말했다.

“소사숙님, 얼른 여기를 떠나야 합니다.”

“왜 또 그러는 거죠?”

“계공이 왔어요!”

“계공이요? 그게 누구죠?”

“제 절에 있던 계자 항렬의 제자요. 바로 전에 가체사 앞에서 저와 저의 동료들을 살해했던 그자입니다.”

시하는 그때 막고 있던 중들이 하도 많아서인지 어떤 중이 그 공 자 호를 가진 중인지 알 수 없었다.

“가체사의 사람들이 이곳 대륙까지 쫓아왔다고요?”

제공이 몸에서 옥패 하나를 꺼내 들었다.

“이건 가체사 제자들이 밖으로 나올 때 지급하는 명패예요. 이것만 있으면 백 리 안에 있는 동문들의 위치를 감지할 수 있죠.”

자세히 보니 옥패 위에 희미한 푸른색 불빛이 반짝이고 있었다.

“분명 네다섯 정도일 거예요. 방금 계공의 영기를 느낄 수 있었죠. 아마 여기 가까운 곳에 있을 겁니다.”

“그들은 저희가 여기에 있다는 걸 어떻게 안 거죠?”

“저도 모르겠습니다. 가체사가 제자를 거두는 기준이 까다로워 제자가 그렇게 많지 않거든요. 이번에 이렇게 많은 제자들을 파견한 것은 아주 드문 일이라. 분명 저 한 사람을 잡으러 보낸 건 아닐 거예요.”

“저희를 잡으러 오는 것이 아니라도 그렇게 좋은 일만은 아니겠죠?”

“확실히 그렇겠네요. 그리고 계공의 수행 계급이 지금 아주 많이 오른 듯해요. 아마도 돈오(頓悟, 불교에서 참뜻을 문득 깨닫는다는 뜻을 의미함)였을 겁니다.”

“그럼 지금 그는?”

“그것까지는 저도 잘 모르겠어요.”

그때 침상에 누워 있던 단원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

“출규기! 앞에서 네 명의 낯선 영기가 느껴지고 있어요. 수행 계급이 제일 높은 사람이 출규기의 불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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