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2화 (122/189)

단원이 얼굴을 찌푸리며 그를 못마땅하다는 듯 쳐다보더니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계위진술은 사실 진법을 이용하여 완전히 새로운 공간을 창조해 내는 것이었다. 상고의 그 비경들도 바로 이러한 방법으로 만들어진 곳이었다. 하지만 눈앞에 보이는 그곳은 너무 커서 비경보다는 하나의 작은 세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했다.

제공이 흥분된 표정을 짓고 단원에게 말했다.

“계위진술은 오래전에 이미 사라졌는데 여기 잠룡연에서 만나게 될 줄 꿈에도 몰랐군요. 그리고 단원 존상께서 이 상고의 진법을 작동하실 줄은 더욱 더 몰랐습니다.”

단원이 그 말에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시하를 바라보며 말했다.

“저기가 출구예요.”

제발 칭찬 좀 해 달라는 듯한 그의 표정은 무시한 채, 시하는 앞에 있는 잔디밭을 따라 걸음을 옮겼다. 그녀는 가는 내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옆에 있는 사람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은 채 걸어갔다. 단원이 정말 강제로 이곳까지 데리고 들어올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이렇게 들어오고 나니 일은 그녀가 생각했던 것보다 좀 더 불편하고 짜증 나는 쪽으로 흘러가고 있는 듯했다.

어찌됐든 시하는 이번 일로 그에게 빚을 진 건 분명했다. 이후로는 그녀가 배은망덕한 사람이 되어 그를 배신하지 않는 한, 계속해서 그렇게 그와 함께 가야만 할 듯했다. 시하는 생각하면 할수록 화가 나서 걸음을 옮길 때마다 분풀이를 하듯 바닥을 밟았다. 누군가 건드리기만 하면 바로 싸울 듯한 충동까지 느껴졌다.

시하가 더는 참지 못하고 폭발하려는 순간, 갑자기 그녀의 앞에 머리 하나가 나타났다. 그녀가 제때 걸음을 멈추지만 않았다면 그 앞에 있는 머리와 부딪칠 뻔했다.

“뭐 하는 거예요?”

멀쩡하게 있다가 갑자기 허리를 숙여 머리를 들이미는 이 행동은 대체 뭘 의미하는 거지? 단원은 아예 그녀의 앞에 다가서더니 얼음처럼 차가운 그 얼굴을 찌푸리고는 걱정하듯 말했다.

“얼굴 찌푸리지 마요.”

그는 그녀의 표정이 거슬렸는지 손을 뻗어 미간을 만지려고 했다. 시하가 미간을 찌푸리며 자기도 모르게 그의 손을 피했다.

“당신 대체 무슨 생각인 거죠?”

단원이 그녀를 한참 바라보다가 그제야 입을 열었다.

“화난 거예요?”

그가 입술을 깨물더니 뭔가 결심한 듯 갑자기 손가락 두 개를 내밀었다. 그리고 그 손가락 두 개로 자신의 볼을 끌어 올리며 기이한 표정을 지었다. 시하가 할 말을 잃은 멍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 갑자기 그 이상한 얼굴은 뭐죠?

“지금 날 놀리는 거예요?”

단원은 마치 벼락 맞은 사람처럼 굳어졌다. 큰 충격을 받았는지 그 자리에 서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의 얼굴은 비구름이 잔뜩 끼어 있는 것처럼 어두워져 있었고, 표정은 마치 세상을 잃은 듯했다.

이렇게 마음 아파 할 건 없잖아. 그 유치한 얼굴로 나를 놀라게 한 건 본인이면서! 아직 화도 내지 않았건만 왜 그렇게 울상을 하고 있는 건데?

“당신 방금 웃은 건가요?”

단원이 놀라더니 그걸 이제 알았냐는 듯 바로 원망 어린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그게 정말 웃는 거였다고? 얼마나 오랫동안 무표정한 얼굴을 하고 있었으면, 손가락으로 끌어당겨서까지 웃어야 하는 건데. 어이가 없어서, 정말!

시하는 단원이 어딘가 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뭔가 계속해서 시하에게 잘 보이려고 노력했다. 시하가 선검파를 떠날 때만 해도 그는 아주 차가운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곳을 떠난다고 했을 때도 그녀를 만류하지 않았다. 근데 지금은 그녀를 챙길 뿐만 아니라 가끔 두 눈으로 무언의 메시지까지 보내며 완전히 다른 사람처럼 행동했다. 시하가 의심스러워 영력으로 그를 살펴보았지만 자신의 몸에 있는 동심인과 확실히 연결되어 있었기에 그가 다른 사람일 가능성은 전혀 없었다.

그때 갑자기 기뻐하는 제공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찾았어요.”

시하는 그제야 그들이 점점 더 넓게 트인 곳을 걷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잔디밭 중앙에 갑자기 거대한 석문이 나타났고, 제공과 연묵이 영력을 움직여 그 문을 밀려고 했다.

그 문은 거대한 석벽 위에 끼워져 있었고, 문 위에는 전에 계위진 위에 있던 그 이상한 문자와 같은 글씨가 새겨져 있었다. 그리고 몇 개의 쇠사슬이 감겨져 있었다. 제공과 연묵이 젖 먹던 힘까지 다해 문을 밀었지만 여전히 요지부동이었다.

제공이 얼굴을 찌푸리며 문 아래위를 자세히 살펴보았다.

“이상하네요. 문 위에 영력의 움직임은 전혀 없는 데다가 술법이 설치되어 있지 않은데 왜 열리지 않는 걸까요?”

“쇠사슬을 끊은 다음에 다시 밀지 그래요?”

시하가 참다못해 그들에게 말했다. 쇠사슬이 그렇게 단단하게 감겨져 있는데 어떻게 열리겠어요.

“쇠사슬이요? 무슨 쇠사슬을 말씀하시는 거죠?”

제공이 놀라며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시하를 바라봤다.

“그 문 위에 검은색 쇠사슬이요.”

시하가 문 위 중간쯤을 가리키며 말했지만, 제공과 연묵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소사숙님, 이건 그저 평범한 석문인데요?”

위에는 아무것도 없어요.

시하가 놀라며 그들을 바라봤다. 이렇게 두꺼운 쇠사슬이 어떻게 보이지 않는다는 거지? 설마 나만 저 쇠사슬을 볼 수 있는 건가? 잠깐만, 저건 쇠사슬이 아니야.

자세히 보니 그 문 위에 감겨 있는 것은 바로 흑기(黑氣)였다. 흑기는 마치 살아 있는 생물체처럼 문 위에서 꿈틀대고 있어 보기만 해도 속이 울렁거렸다. 흑기가 방금 문을 밀려고 서 있던 제공과 연묵에게로 다가가더니 그들 몸 위로 올라가려고 했다.

“빨리 돌아와요.”

시하가 놀라며 두 사람을 끌어당기자 흑기가 바로 흩어졌다. 제공이 뭔가 이상하다는 걸 눈치채고 그녀에게 물었다.

“소사숙님, 뭘 보신 거예요?”

“저도 뭔지 모르겠어요.”

시하는 그 흑기가 왜 자신에게만 보이는 건지 알 수 없었다. 그 흑기는 아주 흥분해서 두 사람을 감으려고 하는 듯했다. 그때 단원이 갑자기 입을 열더니 시하를 바라보며 엄숙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계음기(異界陰氣)예요. 이 생물은 당신들이 한 번도 보지 못한 음침한 세계와 연결되어 있죠. 형체가 없지만 영혼을 삼키는 무서운 생물이에요. 그리고 일반인들에게는 보이지 않고 아주 순수한 생물만이 그를 물리칠 수 있어요.”

순수한, 설마 내 영근 때문인 건가? 그래서 나에게만 보인 걸까?

“영혼을 삼킨다고요?”

제공이 얼굴이 창백해졌다. 세상에 그렇게 무서운 물건도 있었어? 세상 만물에 혼백이 없다면 그건 완전히 사라지는 거잖아? 그 보이지도 않는 생물이 영혼을 삼킬 수 있다니!

“그럼 어떡하면 좋죠? 저 음기를 물리치지 않으면 저희는 어떻게 돌아갑니까?”

단원이 차가운 표정으로 제공을 바라보며 대꾸했다.

“당신들, 정생련을 갖고 있지 않나요?”

제공이 기뻐하며 정생련을 떠올리고는 기쁜 표정을 지었다. 정생련이 바로 그 순수한 생물이었지, 참.

“그렇군요! 존상, 고마워요. 하마터면 그걸 잊을 뻔했네요.”

그는 바로 주머니에서 정생련을 꺼내 들었다. 연꽃이 나타나자 석문 위에 짙게 깔려 있던 흑기가 바로 수그러들었다. 제공이 두 손에 정생련을 들고 그쪽을 향해 걸어갔다. 그러자 석벽 위를 가득 감싸고 있던 쇠사슬 모양의 흑기가 갑자기 무슨 변고라도 만난 듯 미친 듯이 요동치며 도망가려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얼마 가지 못해 정생련이 내뿜는 빛에 산산이 흩어지며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소사숙님?”

제공은 흑기를 보지 못했기에 시하에게 확인하듯 물었다.

“이제 없어요.”

제공이 그제야 안심하며 영기를 이용해 석문을 밀었다. 요지부동이던 석문이 갑자기 덜컹 소리를 내며 양쪽으로 열렸다. 문 안에서 밝은 빛이 새어 나오더니 문 뒤로 둥근 형태의 구멍이 나타났다. 사방이 뭔가 강력한 힘에 의해 찢기는 듯 그 공간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허공이 무너지고 있어요!”

연묵이 놀라 소리쳤다.

“이게 어떻게 된 거죠?”

시하도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잠룡연은 수선계 밖에 있는 오래된 비경이었다. 일반적으로 그곳을 들어가거나 나가려면 그 공간을 뚫어야만 가능했다. 하지만 전에 신족이 갇혀 있는 곳이었기에 들어올 수만 있고 나갈 수는 없었다. 그리고 일반인이 갖고 있는 기술로는 절대 잠룡연을 뚫을 수 없었다. 때문에 연묵도 처음에 그곳을 절대 나갈 수 없다고 한 것이었다.

때문에 그들 앞에 있는 구멍에 대해 그녀는 자신의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구멍은 분명 밖으로부터 뚫린 것이었다. 그것도 이미 오래전부터 뚫려 있었던 것으로 보였다. 대체 누가 이렇게 대단한 능력을 갖고 있는 거지?

“늦기 전에 어서 여기서 나가요!”

제공이 출구를 가리키며 소리쳤다. 연묵도 고개를 끄덕이며 제공의 뒤를 따라 출구로 걸어 나갔다. 그때 시하가 손을 뻗어 두 사람을 막았다.

“잠깐만요! 그렇게 간단하지만은 않을 거예요. 한 가지 확인해 봐야 할 것이 있어요.”

시하가 영검을 불러내 뒤에 꼼짝 않고 서 있던 사람을 겨누며 소리쳤다.

“당신 도대체 정체가 뭐죠?”

단원이 갑자기 바뀐 그녀의 모습을 바라보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하하(夏夏).”

“닥쳐요! 도대체 정체가 뭐죠? 왜 단원의 모습으로 가장하는 건가요? 무슨 목적으로요?”

그가 놀라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제공이 그녀의 곁으로 다가오더니 의문스러운 표정을 짓고 물었다.

“소사숙님?”

시하가 손에 들고 있던 검을 꽉 잡으며 마음의 경계를 늦추지 않고 그에게 소리쳤다.

“연기하지 마요! 잠룡연의 열쇠는 연묵의 손에 있고 단원은 이곳을 아예 모르고 있는데 당신은 어떻게 이곳에 다른 출구가 있다는 걸 알고 있죠? 방금 그 오래된 진법도 다른 사람들은 다 못하는데 왜 당신만 열 수 있었던 거냐고요. 그리고 어떻게 우리가 정생련을 갖고 있다는 걸 알고 있죠?”

정생련이 자라는 연못은 용의 혼백이 열어준 데다가, 심지어 오빠도 발견하지 못했던 곳인데 어떻게 알고 있었던 거지? 그에게 이상한 점이 너무 많아 시하는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마도 그녀의 몸에 있는 동심인도 그가 처음부터 손을 쓴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하의 말을 듣고 있던 제공과 연묵의 표정도 점점 어두워졌다. 그리고 시하의 곁으로 다가와 뒤에 서더니 마치 적을 바라보듯 단원을 바라봤다. 확실히 그의 등장은 너무나도 공교로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사전에 모든 것을 알고 있었던 것처럼 충분한 준비를 마친 후 그들을 구하려고 나타난 듯했다.

단원은 아무 대답 없이 그저 그윽한 눈빛으로 시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눈에 가득 반짝이던 별빛이 하나둘 꺼져 가더니 짙은 억울함만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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