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0화 (120/189)

“확실히, 영력도 몇 배나 늘어난 듯해요.”

“설마 정생련의 연밥이 얘 수행 계급과 성장을 촉진시키는 걸까요?”

“방금 그녀가 먹은 것이 연방의 연밥이었다면 맞을 거예요. 신족과 이 정생련 모두 옛날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거라 이러한 반응이 일어나는 것도 당연하답니다.”

“몇 개 더 먹여야겠네요. 그럼 더 빨리 자랄 수 있잖아요?”

전에 화영이 시하에게 병아리는 원래 성봉(成鳳)이었는데 오랫동안 음부의 세계에 갇혀 있어서 지금의 모습을 갖게 되었다고 했었다.

“안 돼요! 지금 몸으로는 동시에 그렇게 많은 연밥의 영력을 감당하기 어려워요. 한꺼번에 너무 많이 먹으면 몸이 터져서 죽을 수도 있죠. 그녀가 연밥의 영력을 완전히 흡수하면 그때 다시 얘기합시다.”

“그럼 여기서 많이 채집해서 미리 준비해 두는 게 좋을 듯해요. 당신도 가서 다시 연꽃이나 꺾어요!”

“좋아요.”

제공이 그제야 돌아가서 계속해서 연꽃을 채집했다. 시하는 소녀를 안고 아예 능수주(凌水咒)를 하여 물위로 걸어가 연방을 채집하기 시작했다. 이제야 당당하게 연방을 채집할 수 있다니, 이 아이 정말 시기적절하게 나타난 천사야.

“아버지, 여기에요. 여기!”

저 아버지라는 말만 빼면 좋을 텐데.

정당한 명분이 생긴 시하는 조금도 망설임 없이 연방을 보면 바로 따서 주머니 안으로 집어넣었다. 시하는 아예 연못 이쪽에서 저쪽까지 깨끗하게 훑으며 주머니의 대부분을 채우고 나서야 돌아섰다.

시하는 연밥의 영력이 너무 강하여 보통 사람은 먹을 수 없다는 제공의 말을 떠올리며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만약 내려가서 연근을 파 오면 전분이라도 조금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소사숙님, 괜찮으세요?”

제공이 흥분된 모습으로 연묵과 함께 걸어오고 있었다. 그들은 각자 손에 두 개의 정생련을 들고 있었다. 그는 시하가 주머니 안으로 연방을 넣고 있는 것을 보며 미안한 듯 말했다.

“정생련은 정말 구하기 어려운 건데, 매 송이마다 불광이 가득하여 망설이다가 한 송이만 더 채집하기로 결정했어요. 사숙께서는 연방 한 개만 채집하신 건가요?”

시하가 태연한 얼굴로 그에게 대답했다.

“네, 한 개만 채집했어요. 그걸로 충분해요.”

연묵이 얼굴을 찌푸리며 그들에게 물었다.

“여기 별다른 이상은 나타나지 않은 듯하죠? 당신 그쪽에서 단서 같은 건 발견 못했어요?”

젠장, 연방을 채집하는 데만 집중하다가 정작 중요한 일을 잊고 있었네.

“다시 한 번 둘러볼까요?”

연묵이 길게 탄식하며 말했다.

“됐어요. 전에 왔을 때 여기서 이 연못을 발견하지도 못했는데, 무슨 단서가 있겠어요.”

아니에요! 다시 한 번만 기회를 줘요!

“소사숙님, 얼굴이 왜 붉게 달아오른 거죠?”

제공이 갑자기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며 묻자, 시하가 놀라며 말했다.

“설마요! 저는 거짓말해도 얼굴이 달아오르지 않아요.”

“…….”

그때 연묵이 머리 위를 가리키며 소리쳤다.

“위를 봐요!”

원래는 물로 형성되어 있던 푸른 공간은 갑자기 불이 일어난 것처럼 붉은색으로 변했다. 그게 아니라 정말 불이 일어나고 있었다. 물 위에 불빛이 비치며 마치 정말 타오르고 있는 듯했다. 물방울이 끊임없이 떨어지고 있었지만 화염이 수막을 뚫고 나오면서 그 모습이 점점 더 선명해지기 시작했다.

“방금 그 화벽이에요!”

시하가 놀란 나머지 욕이 나올 듯한 충동을 느꼈다. 그러고 보니 그들이 아직 산 안에 있다는 걸 깜빡하고 있었다. 이곳으로 몸을 피하고 난 후 그 화벽이 다른 곳으로 지나 간 줄로만 알고 있었는데 이제 보니 계속 밖에 있었던 것이다. 화벽이 전체 산을 모두 태워 버릴 기세로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물이 점점 더 많이 쏟아지며 머리 위에 물 담장이 점점 얇아지고 있었다. 그런 속도라면 그 화벽에 곧 그들을 태워 죽일 듯했다.

“어흥.”

그때 도망쳤던 용의 혼백이 갑자기 물속에서 솟아오르더니 바로 공중에 있는 화벽을 공격했다. 방금까지도 아주 얇던 수막이 다시 몇 배나 두꺼워졌다. 그들이 아직 허둥대고 있을 때 갑자기 화벽 안에서 묵직한 남자의 음성이 들려왔다.

“흥, 주제넘기는.”

순간 그들 앞에 있던 화벽이 갑자기 푸른색으로 변했고, 물 담장이 순식간에 열려 버렸다. 그 틈으로 푸른색 화염이 아래로 밀려왔다. 그녀의 옆에 서 있던 제공과 연묵이 갑자기 다리에 힘이 빠진 듯 바닥에 무릎을 꿇고 주저앉았다.

“당신들 왜 그러는 거죠?”

“저도 모르겠어요.”

제공이 땀을 흘리며 마치 뭔가에 눌린 것처럼 말하기도 어려운 듯 겨우 입을 열었다.

“아마도, 위압인 듯해요!”

저 화벽은 대체 뭐길래 용의 혼백도 막지 못하는 거지? 방금 분명 사람의 목소리가 들렸는데 왜 그림자도 보이지 않는 거야?

시하가 습관적으로 검을 부려 보았지만 물러설 길이 보이지 않았다. 위에는 불이 막고 있었고, 옆에는 물 담장이 있어 완전히 길이 막혀 있었다. 간신히 방어진법을 펼쳤지만 아무 소용도 없었다. 주변에 물이 점점 더 줄어들고 있었다. 화염이 이미 그들의 코앞까지 다가오고 있었다. 그곳의 공기가 뜨겁게 달아오르더니 연못에 있던 연잎들이 모두 타 버렸다. 세 사람이 비통한 심정으로 그 광경을 지켜봤다.

그럴 줄 알았으면 더 많이 채집할걸.

그들은 속수무책으로 불이 아래로 떨어지는 것을 지켜보고만 있었다. 그들이 버티고 있던 진법마저 뿌직 소리를 내며 조각이 나 버렸다. 이제 끝장이네!

“어흥.”

방금 공중으로 솟아올랐던 용의 혼백이 비명을 지르더니 잠시 후 물로 변해 버렸다. 시하의 마음이 무거워졌다.

“삐약, 삐약, 삐약.”

그녀의 품에 있던 소녀가 갑자기 흥분하기 시작하더니 그녀의 품을 비집고 나와 하늘을 향해 크게 울부짖었다.

“삐약.”

잠시 후, 그들 주변에 투명한 형체의 어린 봉황의 몸이 나타나더니 그 푸른 화염을 몇 척이나 멀리 밀어냈다.

“어?”

남자의 그 묵직한 음성이 다시 울려 퍼졌다. 공중에 있던 화염도 그 소리에 잠시 멈칫하는 둣했다.

“어떻게?”

하지만 그것도 잠시 화염이 옆에 있던 연못을 모두 태워 버리고, 연못 안에 있던 연잎들을 태워 버리며 그들에게로 다가왔다. 발아래가 뜨거워진다 싶더니 순간 살을 에는 듯한 통증이 몰려왔다.

일촉즉발의 순간 갑자기 눈앞의 공간이 흔들리기 시작하더니 마치 누군가가 찢어 놓은 것처럼 눈앞에 하얀 구멍이 생기며 허공이 찢겨 나갔다. 시하가 놀랄 틈도 없이 그 구멍 안에서 갑자기 손 하나가 나오더니 그녀를 힘껏 잡아당겼다. 시하의 몸이 바로 그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잠깐만, 아직 아래에 사람이 더 있어요!

시하가 손에 영기를 모아 아래에 있는 제공과 연묵의 몸을 감고 힘껏 잡아당겼다.

“기다려요!”

밖에서 남자의 그 묵직한 음성이 다시 들려왔다. 그가 다급한 목소리로 외쳤다.

기다리긴 개뿔! 시하가 조금 더 힘껏 두 사람을 잡아당겼다. 시하는 구멍이 사라지고 그 화벽과 완전히 단절되고 나서야 비로소 안심할 수 있었다. 눈앞에 밝은 빛이 반짝이자, 고개를 들어 위를 보았더니 웬 한 쌍의 눈과 시선이 마주쳤다. 시하를 잡아당겼던 손의 주인공이었다.

“이제 괜찮아요.”

순간 시하가 정신을 차리며 그에게 물었다.

“당신이 어떻게 여기에 있는 거죠? 여행이라도 온 거예요?”

그녀를 구한 사람은 뜻밖에도 단원이었다. 사방을 둘러보니 그곳은 아직 잠룡연인 듯했다.

“당신이 여긴 왜 들어온 거죠?”

그가 여전히 그 차가운 얼굴을 뻣뻣이 쳐들고 있다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그녀를 보며 말했다.

“당신이 여기 있잖아요.”

분명 평소와 같은 말투였지만 그 속에 뭔가 억울함이 묻어 있는 듯했다.

“제가 여기에 있는 게 당신이랑 무슨 상관이라고요?”

“하하(夏夏).”

그가 길게 한숨을 쉬더니 그녀의 손을 잡으려고 했다. 어떻게 된 일인지 알 수 없지만 시하는 여전히 단원을 보면 그가 오빠에게 검을 꽂던 순간이 떠올랐다. 시하가 자기도 모르게 그의 손을 뿌리치며 소리쳤다.

“만지지 마요!”

그가 놀라서 그 자리에 멈춰 섰다. 순간 그곳의 공기마저 저기압으로 바뀌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제공이 두 사람을 지켜보다가 어색한 듯 끼어들며 입을 열었다.

“단원 존자, 오랜만이네요. 여기까지 들어오신 걸 보니 혹시 나가는 방법도 알고 계신가요?”

단원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심지어 그를 향해 눈길도 주지 않고 있었고, 그의 말은 아예 듣지도 않고 있는 듯했다. 제공이 갑자기 머쓱해져 시하를 바라봤다.

“사숙님.”

제공이 도움을 청하는 듯한 표정을 짓자, 시하는 어쩔 수 없이 방금 제공이 했던 질문을 단원에게 다시 한 번 물어보았다.

“당신은 나가는 방법을 알고 있는 거예요?”

“네.”

“어떻게 나갈 수 있죠?”

그가 손을 들어 자신의 영검을 불러내고는 그녀의 손을 끌어당겼다.

“가요.”

시하가 눈썹을 치켜세우며 그의 손을 뿌리치려고 했지만 그가 자신을 돕고 있다는 사실을 떠올리며 꾹 참고 영검 위로 올라섰다. 제공과 연묵도 기뻐하며 바로 검을 부려 그들의 뒤를 따랐다.

두 사람이 미처 따라오지 못할 걸 배려해서인지 단원은 비교적 느린 속도로 날아가고 있었다. 예전에는 바람같이 빠른 남자였다면 지금은 아주 신사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특별히 결계까지 걸어 시하의 주변을 막아주기까지 했다.

단원은 그녀의 손을 잡고 계속해서 놓아주지 않았다. 잡고 있는 손이 조금만 느슨해지려고 하면 다시 꽉 잡았다. 그의 손길에서 환희와 애틋함, 그리고 그리움까지 느껴졌다.

시하는 그 이상한 감정이 점점 더 깊이 느껴졌지만 그녀 역시 거부감이 들지 않았다. 그가 잡고 있는 손에 땀이 가득 찼는데도 말이다. 설마 방금 그 화벽 때문에 너무 놀라서 머리가 이상해진 걸까? 아니면 그가 지금 나를 구해줘서 그러는 걸까?

시하는 갑작스러운 자신의 감정에 마음이 혼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분명 그는 오빠를 죽인 원수였기에 분명한 선을 긋고 싶었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못하고 예전의 좋았던 모습만 자꾸 떠올리고 있었다. 시하는 그런 혼란스러운 심정에도 불구하고 아무 말 없이 그의 도움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시하가 고개를 숙이고 발아래에 있는 순백의 영검을 바라보다가 놀라 눈이 휘둥그레졌다.

“단원, 이 검은.”

이건 그가 옥화파에 있을 때 사용하던 검이잖아?

그가 기억을 잃고 난 후에는 이 검을 사용하는 걸 보지 못했다. 그저 수행 계급이 높아져서 다시는 그 검을 사용하지 않는 줄로만 알았다. 그래서 품계가 더 높은 다른 검으로 바꿔 사용하는 줄로만 알았는데.

단원이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더니 억울한 표정을 지으며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당신이 좋아하지 않는 듯해서 바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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