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19화 (119/189)

“제 오빠가 당신한테 뭘 한 거죠?”

바닥에 엎드려 시하의 칭찬을 끊임없이 반복하던 용이 고개를 살짝 들고 머리를 갸우뚱하며 눈을 껌뻑거렸다. 그러다 잠시 후, 다시 그녀를 향해 칭찬과 사과를 반복하기 시작했다.

말을 말아야지! 보아하니 이 용의 혼백은 정말 지능이 낮은 모양이야. 침입자를 공격하는 것 외에 칭찬하는 기능만 탑재되어 있나 보지?

“연묵 존자, 당신은 혹시 알고 있는 거라도 있어요?”

제공이 고개를 돌려 유일하게 이 내막을 알 만한 연묵에게 물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녀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당시에 시동이 저보다 먼저 이곳에 들어왔었어요. 제가 들어왔을 때에는 용의 혼백이 이미 그에게 제압당하고 난 후였죠. 때문에 그 내막은 잘 몰라요.”

시하가 별것 아니라는 듯 손을 휘저으며 말했다.

“어쨌든 용이 저희를 무서워하잖아요. 공격만 하지 않으면 됐죠.”

시하는 누가 얘기해주지 않아도 어떤 일이 있었는지 대충 추측할 수 있을 듯했다. 아마 용이 전에 자신에 대해 뭐라 얘기했다가 오빠에게 호되게 당한 것이 분명했다. 누군가가 시하에 대해 안 좋은 얘기를 하면 그를 혼내 주는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기에 시하는 이제 놀라지도 않았다. 시하가 돌아서서 주변을 살펴보다가 연잎이 있는 곳에 시선을 고정하며 입을 열었다.

“주변을 한번 살펴봐요. 혹시 다른 정생련이 있을지도 모르잖아요!”

혹시 이곳을 나갈 단서가 있을 수도 있고요.

하지만 연묵이 그녀의 말을 비웃으며 말했다.

“흥! 아주 이상적인 생각이군요. 정생련은 불계의 지보예요. 땅의 영기와 천운에 따라 생존하는 것인데 어떻게 또…….”

그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 묵묵히 시하를 칭찬하며 여전히 긴장된 모습으로 있던 용이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굵고 긴 꼬리로 뒤에 있는 수막을 휘저었다. 그러자 잠시 후, 물 장벽이 양쪽으로 열리며 또 다른 공간을 드러냈다.

그 안에도 물이 가득 차 있었고 초록색으로 가득 찬 그 공간 중간에 정생련이 무지갯빛 불광(佛光, 중생을 깨우치는 부처님의 광명)을 반짝이며 고상한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확실히 두 번째 정생련은 없었다. 왜냐하면 계속해서 제3의, 제4의, 제5의, 제N의 중생련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소사숙님, 이건!”

제공이 눈을 비비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잘못 본 건 아니겠지? 불계 지보라며? 이렇게 많이 생산해도 되는 건가?

용의 혼백은 시하에게 애교라도 부리는 듯한 소리를 내더니 하얀 뱃가죽을 드러내고 이리저리 굴러다녔다. 마치 누군가의 칭찬을 갈구하는 고양이처럼.

“알려줘서 고마워요. 이제 가도 돼요. 당신을 괴롭히지 않을 테니까.”

용의 혼백은 특별 사면이라도 받은 사람처럼 바로 몸을 일으키더니 물 안으로 모습을 감추었다. 그녀가 다시 생각을 바꾸기라도 할 듯 순식간에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저쪽으로 가 봐요.”

시하가 큰 연못을 향해 걸어가자 나머지 두 사람도 그녀의 뒤를 따랐다. 제공이 가까이에 있는 연꽃 하나를 잡고 영기를 이용해 안을 살펴보더니 더욱 놀란 표정을 지었다.

“정말 정생련이에요!”

가체사에 있는 것과 똑같은 정생련이었지만 그것보다 영기가 더욱 짙을 뿐이었다.

“당신들은 불수이니 몇 개 뽑아서 몸을 보호하는 데 사용해요.”

시하가 두 사람에게 말하자, 제공과 연묵이 눈빛을 마주치더니 망설이지 않고 다가가 은은하게 불광을 내뿜는 그 연꽃을 꺾었다. 그 꽃은 그들의 수행에 확실히 많은 도움이 되리라.

시하는 선수이고 몸 자체가 순양기 체질이기에 그녀의 영기는 아주 깨끗한 상태였다. 때문에 정생련은 시하에게 아무 의미도 없었다. 두 사람이 연꽃을 꺾는 동안 시하는 연못을 따라 그곳을 둘러보았다. 그 연못은 아주 컸고 정생련 외에 다른 생물은 자라지 않고 있었다. 어떤 연꽃은 급하게 자란 듯 녹색의 연방(연밥이 들어 있는 송이)만 높이 솟아 있었다.

음, 연밥은 없나? 시하가 자기도 모르게 연방 하나를 잡고 살피자 정말 연밥이 있었다. 그것도 아주 빼곡하게 들어 있어 곧 연방을 뚫고 나올 듯했다.

이 연밥은 먹을 수 있는 걸까? 불계의 지보를 먹는 건 너무 부도덕한 행위이겠지?

시하는 한참 열심히 연꽃을 채집하는 두 사람을 바라보며 재빨리 연방 하나를 뜯어 냈다.

연밥을 꺼내려면 한참이나 걸릴 줄 알았는데 연방은 아주 쉽게 벗겨졌다. 연방을 가볍게 비틀자 바로 하얗고 부드러운 연육이 드러났다. 역시 불계 지보라고 할 만하네. 딱 봐도 맛있어 보여. 시하가 아무도 모르게 연육을 입에 넣으려는 순간 갑자기 허리 쪽이 묵직해지더니 발을 헛디디는 바람에 연못 안으로 미끄러졌다.

보복이 너무 빠른 거 아냐?

“소사숙님!”

제공이 그녀에게 다가오더니 손을 뻗어 그녀를 물 안에서 꺼내 주었다.

“괜찮으세요? 무슨 일이죠?”

그가 그녀에게 거진결(去塵訣)을 걸며 의문스러운 얼굴로 바라봤다.

“전 아무것도 하지 않았어요!”

뭘 훔쳐 먹었다는 얘기는 죽어도 못해.

그가 얼굴을 찌푸리더니 갑자기 놀란 얼굴로 그녀를 가리키며 말했다.

“소사숙님, 당신.”

시하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말했잖아요. 저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어요!”

“그게 아니라 소사숙님, 당신 오른쪽에 있는 주머니를 보세요!”

시하는 고개를 돌려 그가 가리키는 쪽을 바라봤다. 주머니가 갑자기 농구공만 한 크기로 불어나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점점 더 커지고 있었다. 물을 먹고 커지는 건가? 아니지, 이건 주머니잖아.

“병아리!”

주머니 안에 있던 알을 꺼내 들자 역시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다. 원래는 티 없이 하얗기만 하던 알 겉면에 희미하게 형광 빛이 감돌며 그 위에 복잡한 금색 무늬가 나타났다. 이 모습은 어디서 많이 봤는데.

“나오려고 하는 거예요.”

시하의 마음이 뭉클해졌다. 너무 잘됐어. 그렇게 기다렸는데 노란 병아리가 드디어 돌아왔네.

“제공, 미안한데 저를 도와 호법(護法)을 좀 해줘야겠어요.”

영수가 세상에 나오면 위험한 일이 많고, 대량의 영기가 필요했다. 비록 그곳의 영기가 아주 충족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시하는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좋아요.”

제공이 고개를 끄덕이며 알 주변에 영기를 끌어들이는 진법을 몇 개 펼쳐 놓고 그 중앙에 앉았다. 시하는 그 옆에 앉아 알을 지켜봤다. 연묵은 그들과 익숙하지 않은 사이라 두 사람을 힐끗 바라보기만 하고 끼어들지 않았다. 다만 얼굴을 찌푸리며 돌아서서 몇 걸음 걸어가더니 들어왔던 그 자리에 멈춰서 누군가 방해하지 못하게 지키고 섰다.

탁탁탁. 병아리가 이번에는 얼마 가지 않아 알 위에 균열을 만들어 내었다. 시하는 전에 그 작은 병아리가 알을 깨고 나오던 모습을 떠올렸다. 그리고 크게 숨을 내쉬며 조용히 그 긴 시간의 사투를 지켜보았다.

알의 겉면 한 쪽이 높이 들렸다. 언제부터 과정이 이렇게 간소화된 거지? 잠깐! 품종도 바뀐 듯한데?

제일 먼저 연근처럼 생긴 작은 두 손이 나타나더니 그다음엔 동글동글한 작은 얼굴이 나타났다. 머리 위에 아직 알껍데기가 붙어 있었다. 그 작은 얼굴은 눈을 몇 번이나 부르르 떨더니 가느다랗게 실눈을 떴다.

노란 병아리가 아니었어? 왜 사람이 나타난 거지? 설마 그때 알을 잘못 가져온 걸까?

알 안에 있던 작은 사람이 눈을 뜨더니 그녀를 보고 갑자기 흥분하기 시작했다. 하얗고 여린 작은 다리로 힘껏 밖으로 기어 나오려고 했다.

“삐, 삐약, 삐약, 삐약!”

시하가 손을 뻗어 알 안의 사람을 안았다. 그리고 법의를 꺼내 덮어 주었다. 법의에는 자동으로 크기를 조절하는 법진이 있어 옷이 순식간에 작은 크기로 줄어들었다. 작은 얼굴은 아직 익숙하지 않은지 옷을 보다가 다시 그녀를 바라보며 눈을 반짝였다. 그러고는 그녀의 가슴에 만족한 듯 얼굴을 비볐다.

시하는 그제야 자신의 품에 안긴 그 귀여운 소녀를 자세히 살펴볼 수 있었다. 그녀는 대여섯 살 되어 보이는 체구를 지녔고, 긴 머리카락이 아예 바닥까지 닿아 있었다. 그녀의 이마에 희미한 화염 자국이 있는 것 외에 다른 아이들과 별다른 차이는 없었다.

“소사숙님, 이게 당신이 말씀하셨던…….”

제공이 놀란 얼굴로 그녀의 품에 안겨 있는 어린아이를 바라보았다. 역시 신족이야. 태어나자마자 모습을 다 바꾸고. 그가 참다못해 손을 뻗어 소녀의 머리를 어루만졌다. 그러자 지금까지 조용하기만 하던 소녀가 갑자기 매서운 눈빛으로 제공을 노려봤다. 순간 그의 몸에서 신족의 위압이 뿜어져 나왔다.

“꺼져! 안 그러면 당신을 잡아먹을 거야!”

제공이 무방비 상태로 있다가 놀라 발을 헛디디며 바닥에 철썩 주저앉았다. 엄, 엄청 무시무시한 위압이잖아. 방금 그 귀엽던 모습은 내 착각인 건가?

소녀가 제공을 향해 얼굴을 찌푸리더니 팔로 시하의 목을 감싸고 만족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아버지.”

“소사숙님, 당신.”

“아니에요!”

이봐요. 내가 설마 이 애 엄마에게 뭔 짓이라도 했을까 봐? 저는 여자예요. 여자라고요!

도대체 다들 하나같이 상의라도 한 걸까? 예전에는 몸에 드래곤볼이 있어서 그렇다 쳐도 지금은 그것도 없는데 왜 또 아버지라는 거지? 내가 어디가 아버지처럼 생겼는데? 대체 어디가?

시하가 자신의 품에 안겨 있는 소녀를 밀어냈다. 이놈의 계집애 썩 물러가. 안 그러면 경찰 부를 거야! 어리석은 봉황은 아직도 상황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했는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그리고 갸우뚱하며 그녀의 오른손에 시선을 고정시키더니 눈빛을 반짝이며 입을 열었다.

“아버지.”

시하가 재빨리 손으로 그녀의 입을 가리며 한 마디 한 마디 힘주어 말했다.

“따라 해봐. 언, 니, 언, 니! 언니.”

“언니?”

분명 아버지인데 왜 언니라고 부르라는 건지, 소녀는 영문을 알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아직 어려서인지 바로 다른 곳에 집중했다. 소녀는 그녀의 오른손을 노려보며 발을 구르더니 군침을 꿀꺽 삼켰다. 시하가 손을 펴며 그제야 손안에 있는 연밥을 바라봤다.

“이걸 갖고 싶은 거야?”

소녀가 힘껏 고개를 끄덕였다.

“자!”

시하가 연밥을 손에 들려주자 소녀가 바로 자신의 입으로 가져갔다. 그러고는 씹지도 않고 바로 삼켜 버렸다. 그렇게 먹다가 체하는 거 아냐?

“삐약.”

연밥을 먹은 소녀가 기쁜 듯 다시 그녀의 품으로 들어오더니 허리를 끌어안고 만족한 표정을 지었다. 소녀는 다른 사람이 어떤 표정을 짓든 전혀 개의치 않고 만족한 듯 시하의 품에 얼굴을 비볐다.

“근데 제공, 얘 키가 조금 큰 것 같지 않아요?”

방금까지 소녀는 분명 시하의 다리만큼 왔었는데 지금은 시하의 허리까지 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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