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묵이 언짢은 표정으로 앞에 있는 석벽을 가리키며 말했다. 물소리? 물소리가 들린다는 건 출구가 있다는 건데! 시하가 바로 돌아서서 석벽에 기대어 한참 귀 기울였지만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안 들리는데요?”
물소리가 어디에서 들렸다는 거지?
“소사숙님, 벽에 기댈 필요 없이 영기로 느끼면 알 수 있지 않겠습니까.”
우리 소사숙님은 뭔가 수사의 모습은 없는 모양이야. 제공이 손을 뻗어 한 손을 석벽 위에 올려놓고 영기를 움직이더니 놀란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저쪽에 아주 짙은 수 영기가 느껴지고 있어요. 안에 공간이 아주 큰 것 같아요. 다만 여기에서 약 몇십 미터 거리에 있는 모양이에요.”
시하가 기뻐하며 영검을 꺼내 들었다.
“그럼 뭘 더 망설여요? 어서 파야죠!”
“바로 파내면 움직임이 너무 커서 동굴이 무너질 수 있어요.”
“그럼 어떡하죠?”
“사부님께서 전에 일수인진(一水引陳)을 가르쳐주신 적이 있습니다. 물 위에서 전송할 수 있어, 저희를 과거로 보내 줄 수 있죠.”
제공이 숨을 크게 들이마시더니 결인을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원형의 법진이 앞에 있는 석벽 위에 나타났다.
“안에 어떤 상황인지 모르니 제가 먼저 들어갈게요. 항상 조심하셔야 합니다.”
그가 방어 결계를 만들어 법진 안으로 사라졌다. 시하도 결계를 만들고 고개를 돌려 옆에 있는 연묵을 바라봤다. 그리고 그녀가 영기를 움직일 수 없다는 사실을 떠올리며 그녀에게 결계를 하나 만들어 주었다. 연묵이 시하의 행동에 놀라며 뜻밖이라는 듯 눈이 휘둥그레졌다.
“당신.”
“뭐요?”
연묵이 눈썹을 치켜세우고 입꼬리를 몇 번이나 움찔거리며 뭔가 말하려 하더니 끝내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그저 차갑게 콧방귀만 뀌었다. 그리고 힘껏 고개를 돌리며 분노와 번뇌, 그리고 고민이 뒤섞인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저건 병이야, 병. 시하는 더 이상 그녀를 신경 쓰지 않고 바로 전송진 안으로 들어갔다. 눈앞이 뭔가 반짝하는 순간 또 다른 세계가 펼쳐졌다. 연묵이 말했던 것처럼 안은 엄청 넓은 공간을 갖고 있었다. 동굴 안이 어둡긴 했지만 앞으로 바라보니 짙은 푸른빛이 반짝거리고 있었다. 곳곳에 풍랑이 넘실대고 있어 그곳은 완전히 하나의 물로 형성된 세계처럼 보였다. 게다가 그곳의 물살은 뭔가 좀 이상하게도 지구의 중력을 벗어난 듯한 모습이었다. 하늘과 땅에서 흘러나오는 물들이 나선형을 이루며 공중으로 솟아오르고 있었다. 그들이 서 있던 그곳은 바로 소용돌이의 중심이었다. 시하는 잠시 자신이 마치 수정용궁에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시하가 아직 이 풍경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는데 그녀의 뒤를 따라 들어오던 연묵이 그 풍경을 보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이건 말도 안 돼요! 어떻게 여기랑 통해 있는 거죠? 입구는 이곳에 있지 않은데요?”
“존자는 여기 오셨었나요?”
제공이 묻자 연묵은 한참을 망설이더니 그제야 입을 열었다.
“맞아요. 저는 이곳에 왔었어요. 전에 저와 당신의 사부가 정생련을 찾은 그곳이죠.”
정생련! 멀지 않은 곳에 연잎이 날리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그 위로 희미하게 순수한 영기도 느껴졌다. 시하는 원래부터 정생련의 단서를 찾기 위해 온 것이었다. 길을 잘못 들어선 줄로만 알았는데 뜻밖에 이곳까지 오게 될 줄이야. 하지만 오빠가 그곳에 뭔가 남겨 놓았을지가 문제였다.
제공도 얼굴에 뜻밖이라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소사숙님, 가 볼까요.”
시하가 고개를 끄덕이며 연잎이 날아오는 방향을 향해 걸어갔다. 제공과 연묵이 그 뒤를 따랐다. 그곳은 사방에 물이었지만 그리 깊지는 않은 듯했다. 그녀가 그곳에 가까워질수록 공기 중에 그 연꽃 영기가 점점 더 짙어졌다. 맑고 그윽한 그 향기가 마치 마음속에 있는 모든 부정적인 생각들을 차분하게 안정시켜 주는 듯했다.
“이 영기는, 역시 정생련이네.”
제공이 확신에 차서 고개를 끄덕였다. 시하가 앞으로 두 걸음 나서며 자세히 살펴보니 연잎은 아주 적어서 모두 일고여덟 개밖에 되지 않았다. 겉모습은 일반 연잎과 다를 바 없었고, 중간에 반들반들한 줄기가 방금 꽃을 빼앗겨 억울한 듯한 모습으로 곧게 뻗어 있었다. 시하는 한눈에 누구의 짓인지 바로 알 수 있었다.
시하의 마음속에 의문이 생겼다. 만약 당시에 정생련이 정말 여기에 있었다면 오빠가 꽃을 잘라간 지 이미 몇천 년이 흘렀다는 건데 이 줄기는 왜 아직도 이곳에 있는 걸까? 이미 시들어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그녀의 의문을 파악하기라도 한 듯 연묵이 설명했다.
“정생련은 천지가 낳아 키우고 있는 지극히 순수한 생물이에요. 상고 시대부터 이 연꽃은 이미 존재하고 있었죠. 성장이 아주 느려서 몇천 년이 흘러도 이 생물에게는 순간에 불과하답니다.”
이제 보니 신진대사가 느린 거였네. 시하가 연잎을 자세히 바라보니 정생련이 사악한 기운을 제거한다는 것 외에는 별다른 단서를 찾을 수 없었다. 내가 방향을 잘못 잡은 걸까?
“소사숙님, 어떡하죠?”
제공이 김빠진 목소리로 그녀에게 물었다. 그들이 헛걸음을 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됐어요. 생각해보니까, 오라버니도 우리가 여기까지 올 줄은 몰랐을 듯해요.”
그러니 단서를 남겨 놓지 않은 건 당연한 일이었다.
“우선 나갈 방법부터 찾아보고 나가서 다시 얘기해요.”
“그래요.”
그때 연묵이 갑자기 비웃는 듯한 얼굴로 그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아마 그렇게 간단하지 않을 거예요. 나갈 수 있는 방법이 있다고 해도 당신들에게는 기회가 없을 테고요.”
시하가 놀란 얼굴로 그녀에게 물었다.
“무슨 뜻이죠?”
“흥, 당신들도 알다시피 이곳은 정생련이 자라고 있는 곳이에요. 근데 설마 이곳에 그 보물을 지키는 영수가 있다는 걸 모르진 않겠죠?”
어흥, 어흥. 마치 그녀의 말에 화답이라도 하듯 갑자기 거대한 울부짖음 소리가 길게 울려 퍼지며 수정궁이 다 흔들거렸다. 이 소리 뭔가 익숙한데?
“정생련을 수호하는 것 역시 용의 혼백이에요.”
수정궁 안에 용이 살고 있다는 말이야?
어흥, 용이 크게 울부짖자 사방에서 조용하게 흐르고 있던 물줄기가 갑자기 끓어오르듯 부글부글 소리를 냈다. 그리고 잠시 후, 거대한 그림자가 주변에 있는 그 수막 위에 나타나더니 사방에 있는 나선형 물줄기 위로 요동치기 시작했다. 그 자태가 점점 커지더니 서서히 긴 용의 모습을 만들어 냈다.
“누가 감히 우리 용족의 물건을 건드리지?”
아주 굵고 분노에 찬 목소리가 수정궁에 울려 퍼졌다. 시하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듯했다.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시하가 고개를 돌려 옆에 있던 제공에게 물었다.
“당신이 얘기만 잘하면 괜찮지 않을까요?”
연묵이 그녀를 보며 제공 대신 대답했다.
“소용없어요. 이곳을 지키는 것은 용의 혼백뿐이에요. 때문에 당신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는 지능은 갖고 있지 않아요.”
그럼 일찍 좀 얘기하지! 뒷북만 치고 있잖아요!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눈치챈 듯 연묵이 차갑게 말했다.
“여기로 들어올 때 용의 혼백은 이미 저희의 등장을 알고 있었을 거예요. 용의 혼백을 이길 수 있다고 해도 절대 몸을 피할 수는 없어요.”
수막 위에 있는 용의 그림자가 물을 가르며 나타났다. 용은 족히 십여 미터나 되는 길이에 삼사 미터 넓이의 몸통을 갖고 있었다. 몸 전체는 투명한 물로 되어 있어 용의 수염이 물보라처럼 휘날리고 있었다. 그가 몹시 화가 난 모습으로 세 사람의 머리 위로 날아올랐다.
시하가 이를 악물며 법검을 불러내자 제공도 방어 결계를 펼쳤다.
어흥, 거대한 용이 입을 벌리고 다시 한 번 귀청이 떨어질 듯한 거대한 울음소리를 냈다. 방금까지도 그녀의 옆에 서 있던 제공과 연묵이 갑자기 무릎을 꿇더니 바닥에 엎드려 아무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다. 결계도 쨍그랑 소리를 내며 조각이 나 버렸다.
이, 이건 완전히 맞설 만한 상대가 아니잖아! 젠장! 완전 급이 달라. 자기보다 약한 사람을 괴롭히기나 하고!
“우리 신족을 범한 자들은 모두 죽여 버릴 것이야!”
그 목소리가 다시 울려 퍼지더니 공중에 있던 그 거대한 용이 바로 그들에게 다가왔다. 그들이 바로 한 입에 먹힐 듯한 그 순간, 시하가 제공과 연묵의 손을 이끌고 뒤로 몇십 미터 밖으로 물러나 피했다.
“당신, 당신이 어떻게?”
방금 몸의 균형을 잡고 바닥에 선 연묵이 놀란 표정으로 시하에게 물었다. 제공도 놀란 표정으로 그녀에게 물었다.
“소사숙님, 괜찮아요?”
“내가 별일이 있어 보여요?”
“그게 아니라 소사숙님, 혹시 느끼지 못하세요?”
“뭘요?”
그녀가 질문하기도 전에 거대한 용의 울부짖음 소리가 다시 울려 퍼졌다. 하지만 시하의 의문은 여전히 가시지 않고 있었다.
“나의 용위(龍威)를 다 막다니.”
용위? 시하가 놀라며 그 용을 바라봤다. 그런 물건이 있어요? 난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는데? 설마 방금 제공과 연묵은 그것 때문에 꼼짝 못했던 건가?
용이 화난 모습으로 그녀를 매섭게 노려보며 말했다.
“이렇게 평범한 인간이 어떻게! 도대체 무슨 물건이지? 범인(凡人), 어서 이름을 말해봐!”
“용 선생님 안녕하세요! 저는 시하라고 해요. 시간의 시, 춘하추동의 하!”
시하가 말을 마치자 주위에 1초 정도의 정적이 흘렀다.
그런데 방금까지도 위풍당당하던 용이 마치 감전된 듯 뻣뻣하게 굳어 버렸다. 그의 눈은 놀라 앞으로 툭 튀어나왔고 입은 아래위로 덜덜 떨리고 있었다.
“시, 시, 시시시.”
무슨 충격이라도 받은 것처럼 한참 말을 더듬던 그의 아래턱이 점점 더 아래로 벌어졌고, 잠시 후 아예 떨어지고 말았다. 정말 떨어진 건가? 그의 아래턱이 사라진 순간 갑자기 물줄기가 소리를 내며 아래로 쏟아졌다.
잠시 후, 그가 갑자기 위에서 날아 내려오더니 몸집을 순식간에 사람 키만 한 크기로 줄였다. 그리고 작아진 자신의 사지를 덜덜 떨며 바닥에 이마를 찧기 시작했다.
“미안해요! 미안해요! 제가 잘못했어요, 잘못했어요! 저를 때리지 마세요! 시하 님은 영원무궁한 하늘의 복을 누리시고, 만수무강하시면서 천하를 다스리실 거예요. 시하 님은 세상에서 제일 착한 동생이시고, 시동 님은 세상에서 제일 착한 오라버니죠! 시하 님은 반드시 오라버니의 곁으로 돌아올 것이고, 남매가 함께 집으로 돌아갈 거예요.”
“…….”
젠장! 지금 대체 뭐라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