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요!”
그녀가 놀라서 바로 부인했지만 어딘가 모르게 부끄러워서 화를 내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처럼 신의도 모르는 사람을, 한 번 사라져서는 몇천 년 동안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그런 사람을 누가, 누가…….”
시하가 조용히 옆에 있던 제공을 바라봤다. 왜 일찍 얘기해 주지 않은 거죠?
제공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저도 몰랐어요. 순수한 우정이라고 하더니?
“근데 그를 좋아하면서 저는 왜 죽이려고 했던 거죠?”
내가 오빠의 동생이라면 더 잘해줘야 하는 거 아닌가? 오빠를 따라다니던 여자들 모두 그렇게 했었는데 이 사람은 왜 이러는 거지?
연묵은 다시 그 독화살을 뿜어낼 듯한 눈빛으로 시하를 보며 말했다.
“만약 당신이 그를 유혹한 것이 아니라면 그가 어떻게 여길 떠날 생각을 했겠어요.”
“유혹이요?”
그 말은 대체 어떻게 나온 거지? 설마 오빠가 내가 자기 여동생임을 얘기하지 않은 걸까? 나를 자신의 연적으로 알고 있는 거야?
“연묵, 당신 오해하고 있어요. 저와 그 사람은 그런 사이가 아니에요.”
“오해요? 감히 스스로 시하가 아니라고 할 수 있어요? 그 사람 맨날 말끝마다 그 이름을 달고 살았다고요. 그는 종일 그 이름을 부르면서 꿈에서도 당신을 찾으며 당신이 다른 사람에게 상처 입는 건 아닌지 걱정했어요. 나는 그와 생사를 함께했지만 저는 조금도 마음에 두지 않고 한 번 가서는 몇천 년 동안 돌아오지 않고 있죠. 이래도 당신이 그와 아무 상관이 없다고 할 수 있어요?”
“상관은 있죠. 하지만 당신이 생각하는 그런 관계는 아니에요. 우리는 혈연…….”
“그는 당신의 초상화까지 품고 다녔어요. 그것도 몇십 장이나요. 입만 열면 당신 자랑을 했죠. 천하에 당신보다 더 좋은 여자는 없다고까지 했다고요.”
말을 하면 할수록 연묵의 얼굴이 더욱 어두워졌다.
“흥, 평생 나를 지켜주겠다더니, 당신의 소식을 듣더니 바로 떠나 버렸어요. 그렇게 몰인정한 사람이에요. 설마 당신들이 남매 사이라고 할 건 아니죠?”
“남매 사이가 맞아요!”
그녀가 시하에게 어디 한 번 계속 속여 보라는 듯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저도 성이 시 씨잖아요.”
“쓸데없는 말은 그만해요. 호랑이를 잡으러 나섰다가 오히려 먹힌 꼴이 되었는데 아직도 저를 속일 필요가 있겠어요? 저는 그저 그 무책임한 남자를 때려죽이지 못하는 것이 한일 뿐이에요.”
“…….”
아직도 설명이 부족한 건가? 그때 제공이 참다못해 앞으로 나서며 그녀에게 말했다.
“존자, 오해예요. 이 사람은 저의 소사숙이 맞아요. 사부님의 친동생이라고요. 그리고 사부님이 이곳을 떠난 건 유명지해를 봉인하기 위해서였어요. 그리고 지금까지 소사숙과 상봉하지 못하고 있고요.”
“당신은 한 패이니 당연히 저 여자의 편을 들겠죠.”
연묵이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애쓸 필요 없어요. 이 잠룡연은 들어올 수 있지만 나갈 수 없거든요. 저도 나갈 방법이 없어요. 게다가 여기는 기이한 위험들이 도사리고 있는 곳이라 내가 죽더라도 도망갈 생각 말아요.”
이건 뭐 다 같이 죽자는 건가? 오빠는 대체 이 여자에게 무슨 짓을 한 거야. 그리고 왜 맨날 나만 당하는 거냐고!
시하는 어려서부터 오빠가 동생바보임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러한 증상들이 날이 가고 해가 바뀌면서 점점 더 심각해져서 거의 중증 말기 환자 수준에 이르고 있었다는 것을. 가정마다 아이 한 명만 낳아서 키우던 시대에 그녀의 출생은 완전히 의외의 사건이었다. 어린 오빠는 다른 사람이 갖고 있지 않는 거라면, 반드시 최고라는 심리가 있었다. 그렇게 하여 그는 시하가 태어나던 그때부터 돌이킬 수 없는 동생바보의 길에 입문하게 되었다.
그는 시하가 어렸을 때부터 동네방네 그녀를 자랑하고 다녔다. 그녀가 걷기 시작할 때도, 학교에 들어갈 때도 길을 가다가 누군가를 만나면 득의양양하게 말했다. 제 동생인데 사랑스럽죠? 당신은 동생이 없겠지만 저는 있답니다!
상대가 어떤 표정을 짓든 상관하지 않고 매번 혼자 큰 소리로 웃곤 했다. 그런 상황은 계속 지속되다가 그녀가 대학교에 들어가 고향을 떠나면서 조금씩 호전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의 동생 자랑은 끊이지 않았다. 그는 그녀가 곁에 없자 차선책으로 사진을 들고 다니며 자랑하기 시작했다. 친척, 친구, 직장 동료, 심지어 청소하는 아주머니들에게까지.
그런 상항은 그녀가 새로운 친구를 사귀는 데 아주 큰 장애물이 되고 있었다. 왜냐하면 매번 새로운 친구를 만나 자신을 소개하려고 하면 그러기도 전에 상대가 먼저 이렇게 말하곤 했으니까.
너의 이름은 시하잖아. 나 너 알아. 네 오빠가 얘기했었어!
매번 이런 상황에 부딪칠 때마다 시하는 화가 나서 피를 토하고 싶을 지경이었다. 그런 상황이 잦아지면서 시하는 적응해 버렸지만 뜻밖에도 오빠의 그 동생 자랑이 이제는 함정에 빠지게 하는 기능으로 바뀔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 정도가 얼마나 심각한지 그녀가 아무리 설명을 해도 사람들이 전혀 믿지 않았다.
최소한 연묵은 완전히 그녀를 믿지 않고 있었다. 시하와 제공은 반 시진이 되도록 그녀를 설득했다. 심지어 육천 년 전의 오빠와 연결하여 직접 얘기하도록 했지만 아쉽게도 그들 사이의 시간 차로 그는 연묵이 누군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 때문에 오히려 연묵의 의심만 더 사고 그녀의 마음은 전혀 움직이지 못했다. 연묵이 두 사람을 향해 비웃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시하가 답답한 표정을 지었다. 이제 정말 방법이 없어 포기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우선 눈앞에 있는 위기부터 해결한 다음 다시 얘기하기로 했다.
잠룡연은 너무 위험한 곳이었다. 그들의 수행 계급이 낮은 건 아니었지만 그곳은 오래된 신족이 사는 곳이었다. 방금 그 화벽에도 하마터면 전멸할 뻔했는데 아직 어떤 무시무시한 것이 남아 있을지 아무도 알 수 없었다. 때문에 지금 제일 중요한 것은 여기서 나가는 일이었고 얘기는 돌아가서 하는 수밖에 없었다.
시하는 연묵이 이곳은 들어올 수만 있고 나갈 수는 없다고 했지만 절대적인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전에 오빠가 여기서 정생련을 찾아서 밖으로 나갔던 거잖아? 연묵도 오빠가 어떤 방법으로 이곳을 빠져나온 건지 모르지만 그래도 아직 희망은 있어 보였다.
바로 그런 점 때문에 연묵은 두 사람이 천진하고 주제넘다고 생각했지만 그들의 행동에 반기를 들거나 개인적인 원망은 드러내지 않고 나갈 방법에 대해 건의했다. 밖에 그 화벽이 있으니 지금 밖으로 나가는 건 적절하지 않았다. 세 사람은 잠시 쉬었다가 오히려 동굴 깊은 곳으로 더 들어갔다. 혹시 다른 길이 있을 수도 있으니 우선 동굴을 살펴본 후 다시 얘기하기로 했다. 그들은 그렇게 반 시진이나 걸어 들어갔다. 동굴은 생각보다 깊었고, 안으로 들어갈수록 점점 넓어졌다. 주변에 있는 석벽에 파란 빛을 뿜어내는 돌들이 동굴 안을 환하게 비추고 있었다.
보아하니 이곳은 뭔가 사연이 있는 동굴 같은데. 시하는 동굴 안에 혹시 무슨 비밀이라도 감춰져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조금 흥분되기 시작했다. 동굴이 산 중심으로 통하는 길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하가 한참 생각에 잠겨 있는데 그녀의 눈앞에 갑자기 푸른빛을 뿜어내는 석벽이 나타나 길을 가로막았다.
“길이 없네요?”
시하가 앞으로 나서 자세히 석벽을 살펴보았다. 이 동굴은 누군가 고의로 파 놓은 듯했다. 안으로 들어올수록 넓어지고 있어서 분명 길이 통해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왜 여기서 막히는 거지? 아니지, 여기가 입구일 수도 있나?
“왜 이런 거죠?”
제공이 황당한 표정을 지으며 앞뒤로 오가더니 몇 번이고 주위를 살폈다. 하지만 아무리 살펴도 진법이라든지 환술의 움직임은 보이지 않았다. 동굴에서 정말 그렇게 죽어야만 하는 건지 잠시 힘이 빠졌다.
“소사숙님, 이걸 어떡하면 좋죠? 다시 가야 될까요? 아니면 돌아가야 하는 걸까요?”
“지금은 방법이 없네요.”
젠장, 괜히 여기까지 걸어왔잖아. 부실공사는 역시 위험하다니까!
그들이 돌아서려고 하는데 갑자기 벽 너머로 울부짖음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는 칼날처럼 날카롭게 그들의 머릿속을 찔렀다. 아주 독특한 소리에 시하는 머리가 터질 것처럼 아프고 온몸의 영기마저 갑자기 제어할 수 없게 되었다. 바로 입으로 피를 토해 냈다. 말할 수 없는 통증이 몰려오면서 그 소리에 영혼마저 사라질 듯한 느낌이 들었다.
영혼!
“이 소리가 넋을 부르고 있어요!”
시하가 정신을 차리고 다리를 틀고 앉으며 다급히 소리쳤다.
“어서! 오식(五識, 눈, 귀, 코, 입, 몸)을 봉인하고, 정신을 집중하여 원신(元神)을 지켜요!”
제공도 시하의 말을 이해하고 바로 오식을 봉인하고 영기를 움직여 원신을 보호했다. 그의 수행 계급이 그녀보다는 높아 별 상처는 받지 않았지만 옆에 있던 연묵은 중상을 입은 관계로 영기를 움직이지 못하고 있어 오식만 봉인했고, 원신은 점점 불안한 상태로 넘어가고 있었다. 그녀가 겨우 숨을 몰아쉬며 온몸에서 피를 흘렸다.
시하가 입술을 깨물며 그녀의 등 뒤로 손을 뻗어 영기를 전달해 주었다. 연묵이 순간 정신을 차리더니 반사적으로 미간을 찌푸렸지만 별다른 저항은 하지 않고 오히려 마음을 가라앉히며 시하의 영기가 자신의 몸속으로 잘 들어올 수 있도록 원신을 보호했다.
그녀의 영기가 특별해서인지 두 사람 모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어디로부터 온 건지 알 수 없었던 이상한 소리는 일각이 지나서야 비로소 멈췄다. 제공이 일어서며 지결(地訣)을 거두더니 말했다.
“이 길은 막혔어요. 여기 있다가는 너무 위험할 듯합니다. 빨리 이곳을 떠나는 것이 좋겠어요.”
“그래요.”
밖에 뭐가 있는지 알 수 없지만 만약 안으로 쫓아 들어온다면 꼼짝 못 하고 당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렇다면 아예 밖으로 나가 맞서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빨리 가요.”
“미련하기는!”
오는 내내 아무 말도 하지 않던 연묵이 갑자기 소리쳤다. 그러고는 제공을 바라보더니 차갑게 웃으며 얼굴 가득 비웃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다시 시하를 바라보더니 눈빛을 반짝이며 뭔가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잠시 후, 그녀가 다시 원래의 그 오만한 표정을 회복하며 그들에게 말했다.
“누가 이 길이 막혔대요?”
시하와 제공이 놀라 그녀를 바라봤다.
“그게 무슨 뜻이에요?”
“수행을 그렇게 오래 했다면서, 당신들은 저기 뒤에서 나는 물소리가 안 들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