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16화 (116/189)

그녀가 말을 하면서 결계를 하자 방금 흩어졌던 불꽃들이 다시 커지며 수백, 수천 개의 화룡으로 변신해 그 두 사람을 공격해 왔다. 제공이 놀라며 어쩔 수 없이 결계를 불러냈다. 그가 뜨겁게 활활 타오르는 화룡을 막으며 연묵에게 소리쳤다.

“존자, 그건 오해입니다!”

연묵은 그의 말은 들은 척도 않고 계속해서 술법을 멈추지 않았다.

“그 여자를 보호하면 당신도 같이 죽여 버릴 거예요.”

“존자, 당신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지 않아요. 이제껏 안면도 없었는데 어떻게…….”

“닥쳐요! 당신은 내가 노안이라도 있는 줄 아나 본데, 내가 이 여우같은 여자를 알아보지 못할 줄 알아요? 오늘 이 여자를 죽이지 않으면 맘속에 한이 풀리지 않을 거예요.”

“존자!”

“나쁜 년, 죽어 버려!”

두 사람이 더욱 격렬하게 충돌했다. 한 사람은 화룡으로 상대를 공격하고, 다른 한 사람은 얼음 기둥으로 그걸 막으니 하늘 가득 수증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시하는 그 광경을 지켜보고만 있을 뿐 완전히 그 두 사람의 관심 밖에 있는 듯했다.

뭔가 버려진 듯한 이 느낌은 뭐지? 차라리 나도 끼워 주면 안 될까요? 그냥 빈말이라도 좋으니까 뭐라고 좀 해 봐요!

시하가 참다못해 손을 들고 두 사람의 싸움을 잠깐 중단시키며 입을 열었다.

“저기 연 소저, 제가 무슨 잘못을 했는지 설명 좀 해 줄 수 있을까요?”

그렇게 화가 나서 날뛰는 모습을 보니, 그 이유가 단순히 그녀의 성 때문만은 아닌 듯했다. 연묵이 그제야 그녀를 쏘아보고는 씹어 삼킬 듯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나쁜 년, 스스로 어떤 일을 저질렀는지는 본인이 제일 잘 알 텐데?”

“저는 몰라요!”

연묵은 화가 극에 달한 듯하더니 다시 냉정을 되찾고 말했다.

“나는 당신 같은 인간하고는 말을 섞고 싶지 않아.”

뭐가 뭔지 얘기해 줘야 알 것 아냐! 말을 하다가 마는 이런 사람이 제일 싫어! 화만 내고 말을 안 하면 어쩌자는 건데!?

“내가 오늘 직접 당신을 죽여 그 허당 나쁜 놈이 평생 후회하도록 만들겠어.”

우리 오빠하고는 또 무슨 상관인데?

연묵이 더는 설명할 기미를 보이지 않고 두 손을 들어 결계를 하기 시작했다. 방금까지 하늘에서 춤추고 있던 화룡들이 갑자기 멈춰서더니 다시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녀가 갑자기 경문(經文)같은 것을 읊자 주변에 셀 수 없이 많은 법부들이 나타났다.

“홍련업화(紅蓮業火)예요!”

시하의 옆으로 다가온 제공이 긴 주문을 외우기 시작하며 그녀의 공격을 막으려 했다. 시하도 결계를 하고 그녀의 공격에 맞서려 했지만 그 순간 연묵의 옆에 불꽃이 나타나더니 그녀의 몸 전체가 화염으로 이루어진 홍련으로 변신했다. 그리고 그 화염들이 연결되면서 하나의 불바다를 형성했다. 그녀의 뒤에 보이는 하늘마저 거대한 화염 풍랑을 만들었고, 온 천지가 불타오르고 있었다.

잠깐만, 천지! 시하의 가슴이 쿵쿵거리며 눈이 휘둥그레졌다. 시하가 덜덜 떨리는 손으로 연묵이 있는 곳을 가리켰다.

“도망쳐요!”

시하는 말을 마치고 제공이 법결을 완성했는지 신경도 쓰지 않은 채 그를 끌어당겨 젖 먹던 힘까지 다해 뒤로 검을 부려 도망갔다.

“흥!”

두 사람이 도망가는 모습을 본 연묵이 경멸하는 눈빛으로 그들에게 말했다.

“이제 보니 그 나쁜 놈이 아주 겁쟁이 같은 자를 제자로 둔 모양이네. 화련업화에도 이렇게 놀라 도망가다니. 그래도 그 나쁜 놈이…….”

그녀가 말을 다 마치기도 전에 갑자기 거대한 불길이 몰려왔다. 연묵은 원래 화 영근이고 수행 계급도 높아 몸 자체가 이미 범상치 않은 화염 덩어리였다. 때문에 그녀가 그렇게 뜨거운 열기를 느끼기는 쉽지 않았다. 그녀가 자기도 모르게 뒤를 바라본 순간, 눈앞에 붉은 불길이 온 세상을 덮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것은 불로 만들어진 거대한 화벽(火壁)이었다. 화벽이 전체 하늘을 덮고 있어 온 천지가 마치 타오르고 있는 듯했다. 화벽이 하늘을 가득 덮고 그들이 있는 곳을 향해 불을 토했다. 그 화벽이 내뿜는 불길은 영혼까지 태워 버릴 듯한 독특한 기운을 갖고 있는 듯했다.

이제 보니 방금 제공이 말했던 화염이 화련업화뿐은 아니었네. 바로 이걸 말하는 거였어.

연묵이 놀라 멍한 표정을 지었다. 분명 몸을 피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아무리 움직이려 해도 움직여지지 않았다. 그 화염이 아직 그녀에게까지 닿지 않았지만 그녀는 자신의 몸이 견디기 어려울 정도로 뜨거워지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잠시 후, 그녀의 눈과 귀, 입과 코 등 그녀의 몸에 있는 모든 구멍을 통해 피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그녀가 그 낯선 화벽 안에 갇혀 죽기만을 기다리고 있는데, 갑자기 허리가 뭔가에 조여지는 느낌이 들었다. 영기로 형성된 쇠사슬이 그녀의 허리를 감싸더니 화벽의 압제로부터 벗어나도록 멀리 끌어당겼다.

시하가 한 손으로 제공을 들고 다른 한 손으로는 연묵을 이끌며 정신없이 앞만 향해 날아갔다. 다행히 제공이 바로 정신을 차리고 영기를 움직여 돕는 바람에 겨우 그 화벽을 따돌릴 수가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여전히 그 화벽의 위협에서 완전히 벗어난 건 아니었다.

시하가 다급히 주변을 살피며 몸을 피할 만한 곳이 있는지 찾아보았다. 하지만 눈길이 닿는 곳마다 모두 황량한 곳이라 피할 곳은커녕 큰 돌덩이 하나 찾아보기 어려웠다. 어떡하지? 설마 이곳에서 정말 죽는 건 아니겠지?

시하는 검을 부리면서 화벽을 피할 방법을 생각했다. 그들이 한참 날아가자 드디어 앞에 거대한 산봉우리 하나가 나타났다. 산봉우리는 구름 속으로 높이 솟아 있어 그 끝이 보이지 않았다. 그 산봉우리 위에는 많은 궁전들이 있었지만 온전한 것이 하나도 없는 듯했다. 멀리서 바라보니 여기저기 부서져 있는 모습이 오랫동안 방치된 건물처럼 보였다.

“저기 동굴이 있어요!”

시하가 산 끝자락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제공이 바로 그곳을 향해 날아가 동굴 안으로 들어갔다. 그들이 그 안으로 들어간 지 얼마 되지 않아 등 뒤에서 쫓아오던 화벽이 뜨거운 열기를 내뿜으며 동굴 입구로 밀려들어 갔다. 순간 동굴 입구의 암석은 시뻘건 용암으로 변하면서 안으로 흘러들었다.

다행히 동굴이 아주 깊어 그들은 깊숙이 몸을 숨길 수 있었다. 암석이 용암으로 변화는 속도도 점점 느려지고 있었다. 그들은 동굴 안에 있는 석벽까지 이르러 더는 붉은 불빛이 보이지 않을 때쯤 되어서야 멈춰 섰다.

죽는 줄 알았네. 대체 방금 그건 뭐지?

시하가 그제야 안심하며 크게 숨을 내쉬었다. 그러다가 하마터면 그녀의 오른쪽에 있던 누군가에 의해 철퍼덕 바닥에 넘어질 뻔했다.

“이거 놔!”

방금까지도 놀라 쥐죽은 듯 조용하던 연묵이 갑자기 시하를 밀어내며 뒤로 몇 걸음 물러섰다. 그녀의 입가에 아직도 핏자국이 남아 있는 걸 보니 상처가 깊어 보였다. 그녀는 여전히 화가 난 표정으로 시하를 바라봤다.

“당신의 가식 따위는 필요 없어.”

제공이 눈썹을 치켜세우며 화를 내며 소리쳤다.

“연묵 존자! 방금 소사숙께서 당신을 구해주셨다고요!”

“흥, 그 속에 무슨 마음을 품고 있는지 누가 알아요.”

연묵은 여전히 얼굴에 불쾌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내가 저 여자를 놓아줄 거라는 착각은 하지 않는 게 좋을 거예요! 저런 나쁜 년은 그 몸을 갈기갈기 찢어 놔도 이 분이 풀리지 않을 테니까.”

“연묵 존자, 너무하시는군요!”

“또 이 여자를 감싸는 거예요?”

“그녀는 저의 소사숙이니까요.”

“그럼 더더욱 죽어야겠군요!”

“존자, 말이 너무 심하시군요.”

“아직도 저와 맞서려는 거예요? 제가 상처를 입었다고 당신과 이 나쁜 년을 무서워나 할 것 같아요? 당신들 같은 인간쓰레기들은 죽여 버리면 그만이에요. 시동 그 나쁜 놈은 당신과 같은 제자밖에 두지 못했군요. 역시 시 씨 인간들은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된 물건들이 없다니까. 조상도 모두…….”

연묵의 말이 점점 더 심해지자 시하의 얼굴이 어둡게 변했다. 시하가 손을 들어 연묵의 오른쪽 뺨을 매섭게 내리쳤다. 찰싹! 소리가 동굴 안에 울려 퍼지면서 연묵의 고운 얼굴에 붉은 손자국이 부어올랐다.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한다고 상대의 언행이 점점 도를 넘어서자 시하도 더는 참지 못하고 그녀의 뺨을 후려갈겼다.

“말을 제대로 해요.”

연묵이 뒤늦게 자신의 뺨을 어루만지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감히 나를 때렸어?”

“그래요. 어쩔 건데요!”

찰싹! 시하가 다시 손으로 뺨을 갈기자, 이번에는 연묵의 왼뺨에 손도장이 찍혔다.

“이런 나쁜 년!”

찰싹! 원 플러스 원이다!

“이런, 나쁜!”

찰싹! 이건 증정용이다!

“내가 가만 두지 않을…….”

찰싹! 이건 할인용!

“아! 이걸 죽여 버릴…….”

찰싹, 찰싹, 찰싹, 찰싹, 찰싹. 한동안 동굴 안에는 찰싹거리는 소리만 울려 퍼졌다. 그 청아한 소리가 멀리 동굴 밖까지 날 정도였다. 그 광경에 기가 눌려 버린 제공은 뒤로 몇 걸음 물러섰다. 갑자기 소사숙이 조금 무서워지는 건 뭣 때문이지?

잠시 후, 상대의 입에서 더는 욕설이 나오지 않자 시하가 그제야 손을 멈추었다.

“미안해요. 제가 성질이 더러워서 입을 사용하는 걸 별로 선호하지 않아요.”

그래서 주로 손만 사용하죠.

“이제 얘기 좀 해볼까요?”

시하가 손이 저린 듯 손을 풀었다. 그리고 옆에 있는 돌을 가리키며 그녀에게 그쪽으로 가서 앉으라고 손짓했다.

“당신은 왜 저를 그렇게 미워하는 거죠?”

연묵의 얼굴은 이미 부어서 찐빵이 되어 있었지만 아직도 독화살을 쏠 듯한 눈빛을 하고 있었다. 그녀는 방금 그 이상한 화벽의 공격에 상처를 입어 영기를 조금도 움직일 수 없었다. 때문에 지금 저항력을 완전히 상실하고 있었다.

“흥!”

그녀가 시하를 무시하며 차갑게 콧방귀를 뀌고는 고개를 돌려 버렸다. 시하가 화를 내지 않고 주먹을 힘껏 날리며 뿌드득! 소리를 냈다. 연묵의 몸이 균형을 잃고 바닥으로 쓰러졌다. 그녀는 시하에게 당하고만 있는 것이 부끄러웠는지 시하를 매섭게 쏘아봤다. 하지만 아쉽게도 찐빵같이 부은 얼굴에 오색찬란한 도장까지 찍혀 있어 그 얼굴에 위압감이라고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그녀가 입을 열었지만 그 또한 바람 새는 소리에 불과했다.

연묵이 공손한 목소리로 말했다.

“당신, 다 알고 있으면서 왜 묻는 거죠?” “내가 뭘 알고 있는데요?”

처음부터 그녀를 공격한 건 연묵이었다. 그리고 그들을 이곳 잠룡연까지 밀어 넣지 않았는가. 만약 시하가 그녀의 손을 잡지만 않았으면 지금쯤 그녀와 제공만 이 난관에 봉착해 있었으리라.

“연기하지 마요! 당신만 아니었으면 그가 왜 다시 돌아오지 않는 거죠? 벌써 몇천 년이나 지났는데 왜 돌아오지 않는 거냐고요!”

“그 사람이요? 시동을 얘기하는 거예요? 설마 잠룡연에서 그가 오기를 기다렸던 거예요?”

연묵이 시하에게 속마음을 들킨 듯 놀란 표정을 지었다. 시하가 놀라며 자신에게 얻어맞아 찐빵이 되어 버린 그녀를 아래위로 훑어보았다. 내가 생각하는 그런 건 아니겠지?

“당신, 시동을 좋아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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