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데, 그 나쁜 놈을 찾지도 못했으면서 무슨 일로 저를 찾아온 거죠?”
연묵이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찾아온 이유를 묻자, 제공이 진지한 표정으로 허튼소리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사실 이번에 찾아온 것은 정생련의 일 때문입니다. 존자께서도 이미 알고 계셨겠지만 유명지해의 위기는 이미 해결됐지요. 하지만 원래 절에 있던 정생련이 갑자기 도둑을 맞았습니다. 이는 저도 미처 알고 있지 못한 사실이었어요. 제 생각에는 그 보물을 훔쳐간 사람이 유명지해의 봉인과 무슨 연관이 있는 듯해요. 이 일은 천하 창생들의 생존과 관련된 문제이기 때문에 직접 존자를 뵙고, 전에 두 분께서 정생련을 찾아왔던 일을 들으려고 온 거예요.”
이유 한 번 참신하지. 제진과 우리의 갈등은 완전히 배제해 버렸잖아. 거기에 창생이라는 대의까지 끌어들이고. 하지만 방금까지 정신없이 쫓기느라 옷에 피까지 묻어 있는데 어떻게든 그냥 방문객으로는 보기 어렵지 않을까. 그렇게 심한 거짓말에 누가 속겠어.
“그런 일이 있었군요!”
이걸 믿어? 그래서 제공이 그녀의 마음은 순수하다고 했던 건가? 이건 순수한 정도가 아니라 아예 텅 비어 있는 수준인데.
“정생련의 일은 말하자면 아주 길어요. 들어가서 얘기하죠.”
연묵이 안으로 안내하다가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이상한 눈빛으로 시하를 바라봤다.
“한 사람이 더 있었네요? 당신은 누구죠?”
심지어 그동안 그녀를 아예 신경도 쓰지 않았던 모양이다. 제공이 서둘러 앞으로 나서며 설명했다.
“이 분은 저의 오래된 친구예요. 길에서 만났는데 같이 오게 되었습니다.”
“당신도 여수사 친구를 사귈 수 있어요?”
연묵은 마치 신대륙이라도 발견한 듯한 표정으로 시하를 바라봤다.
“됐어요! 암튼 성이 시 씨만 아니면 괜찮아요. 어서 들어가요!”
연묵이 더는 설명을 듣고 싶지 않은 듯 손사래를 치더니 그녀에게 물었다.
“아, 근데 당신 이름이 뭐예요?”
“저는 순풍택배예요.”
왜 머릿속에 제일 먼저 떠오른 이름이 하필 이거였을까.
“그 이름은 뭔가 좀 이상하네요. 한 번도 순풍이라는 성씨는 들어보지 못해서 그런가. 뭐, 됐어요. 들어가요!”
연묵이 손을 흔들자 그들의 눈앞에 있던 녹색 통로가 세 사람이 지나갈 수 있는 넓이로 변했다. 그녀가 앞으로 먼저 들어가고, 시하와 제공이 뒤를 따랐다. 통로의 끝이 보이지 않아 한참 더 가야 하는 줄 알았는데, 통로에 들어서는 순간 녹색 풍경이 갑자기 모습을 바꾸었다. 눈앞에 엄청난 도림(桃林, 복숭아 나무숲)이 펼쳐지더니 복숭아꽃이 바람에 날리기 시작했다. 마치 분홍빛 바다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고, 시하는 순간 도화원에 온 듯한 착각이 들었다.
연묵이 그들을 데리고 도림 깊은 곳으로 들어갔다. 겹겹이 우거진 도림 숲을 지나자 눈앞에 짙은 녹색 초원이 펼쳐졌다. 초원 안의 초목들은 아주 규칙적으로 자라 있었고 대략 몇백 미터나 넓은 완벽한 원형 모양을 하고 있었다. 방금 물을 뿌려 놓은 듯 풀잎마다 물방울이 맺혀 있었다. 가끔 위로부터 밝은 빛이 지면으로 비치고 있었다.
한눈에 봐도 이건 보통 풀이 아니야!
연묵이 걸음을 멈추자 제공이 참지 못하고 그녀에게 물었다.
“이곳은?”
“당신들, 정생련의 일을 알고 싶다면서요? 당시에 나와 그 인간은 바로 여기 잠룡연에서 불보(佛寶)인 정생련을 발견했어요.”
“여기가 바로 잠룡연이라고요?”
“정확히 말하면 이 위가 잠룡연이에요.”
시하가 고개를 들어 위를 바라보다가 깜짝 놀라 소리쳤다.
“호, 호수다.”
하늘을 바라보니 호수의 초록색 물결이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그럼 지면에 비치던 그 밝은 빛도 호수의 물빛이 반사된 거였구나. 시하가 참다못해 앞으로 손을 내밀어 보았다. 물이 떨어지지 않고 있었다.
“정생련에 관련된 일에 대해서는 저도 여기서 발견되었다는 것밖에는 몰라요. 유명지해가 폭발하고 나서, 그는 여기에 유명지해를 봉인할 수 있는 물건이 있다고만 말했었어요. 정생련이 여기에 있다는 걸 그 인간이 어떻게 알았는지는 저도 잘 모르고요.”
보아하니 이 정생련은 정말 시스템이 발송한 임무가 맞는 듯해.
“그럼 사부님은 유명지해를 어떻게 봉인할지에 대해서도 말씀하셨나요? 봉인한 다음에는 어떻게 해야 할지도요.”
제공이 다급히 묻자 연묵이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가 당신한테 얘기하지 않았나요? 정생련을 찾았던 곳에 천연지일(天淵之印)을 남겨 놓았어요. 그는 그것이 잠시 유명지해를 봉인해 줄 거라고 했죠.”
“천연지일이요?”
시하가 놀라서 묻자 제공이 그녀에게 설명했다.
“바로 그전에 유명지해의 멸영지기(滅靈之氣)를 봉인했던 그 봉인을 말하는 거예요. 정생련은 확실히 진안을 봉인했었지만 그 봉인은 천 년마다 조금씩 약해져서 다시 보강할 필요가 있었죠. 그걸 보강하는 날이 바로 천연지일(天淵之日)이었고요.”
이제 보니 전에 제공이 선검파에서 말했던 그 천연지일이 이걸 말하는 거였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압제하고 있는 것일 뿐이죠. 지금 유명지해가 원래의 모습을 회복하여 강풍음기도 모두 사라진 걸 보면 분명 그 봉인을 사용한 건 아닐 거예요.”
시하가 마음이 초조하여 연묵에게 물었다.
“존자, 제공의 사부님께서 혹시 천연지일 외에 유명지해의 문제를 해결할 다른 방법에 대해서는 언급한 적이 없나요? 어떻게 발동시킨다든지?”
만약 방법을 안다면 왜 오빠가 단원에게 그런 부탁을 한 건지 이유를 알 수 있으리라.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요? 만약 단번에 모든 걸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우리가 그렇게 고생스럽게 정생련을 찾지도 않았을 거예요. 그리고 잠룡연에서 나온 후 그 사람도 종적을 감추어 버렸어요.”
그녀가 화가 난 듯 마치 불이라도 뿜어낼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다 깊이 숨을 들이마시더니 날카로운 목소리로 말했다.
“만약 그를 다시 만난다면 몸을 다섯 토막으로 나누고, 뼈를 태워 가루로 만들 거예요. 그렇게 해도 아마 제 분이 사라지지는 않겠지만.”
원한이 아주 깊은 모양이로군.
그때 그녀는 뭔가 생각난 듯 눈을 가늘게 뜨고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그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맞아요. 유명지해의 문제는 이미 해결되지 않았나요? 그걸 그가 해결한 게 아니었어요? 설마 두 사람 한 패가 되어 저를 속이고 있는 건 아니겠죠?”
시하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듯했다. 너무 정확하게 맞췄잖아?
제공이 황급히 나서며 고개를 저었다.
“존자가 오해하신 거예요. 제자, 확실히 사부님을 만나지 못했어요. 그렇지 않으면 제가 여기까지 정생련의 일을 물으러 오지 않았겠죠. 존자께서 믿지 못하시면 혹시 정생련이 아직 가체사에 있는지 스스로 한번 느껴 보시면 되지 않겠습니까.”
연묵이 그제야 그의 말을 믿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휴, 그래도 그나마 머리가 돌아가는 일행이 있어서 다행이네. 간 떨어지는 줄 알았잖아!
“됐어요! 제가 아는 건 여기까지예요. 더 많은 단서를 찾고 싶으면 잠룡연에 한 번 가 봐요.”
시하가 고개를 들어 위에 있는 호수를 바라보며 물었다.
“잠룡연이요? 저기로 들어갈 수 있는 건가요?”
연묵이 손을 움직이자 손바닥만 한 크기의 모래시계가 나타났다.
“평소에는 들어갈 수 없지만, 마침 이 잠룡연의 열쇠가 제 손에 있네요. 이것만 있으면 안으로 들어갈 수 있어요.”
그녀가 고개를 돌려 그들을 바라보더니 입꼬리를 들썩거리며 의미를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었다.
“왜요? 들어가려고요?”
시하가 아직 답도 하지 않았는데 제공이 앞으로 나서며 거절했다.
“존자, 농담하지 마세요. 잠룡연은 용족들이 전쟁 포로들을 가두어 두는 유배지라는 걸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저희같이 어린 후배들은 용족을 상대할 능력도 없어요. 당시에 저희 사부님도 몸에 용족의 물건을 지니고 있고 용족의 기운을 갖고 있었으니, 모험을 한번 할 수 있었던 거였죠.”
그 호수가 그렇게 위험한 곳이었어? 바로 쳐들어가지 않은 게 다행이네.
“됐어요. 그렇다면 저도 도울 수 있는 것이 없네요. 가셔도 좋아요! 하지만.”
그녀가 도림 속으로 들어가려다 걸음을 멈추더니 갑자기 화제를 바꾸고는 시하를 쏘아보며 말했다.
“저 여자는 여기 남아야 해요!”
뭐라고요? 시하가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연묵이 갑자기 손에 들고 있던 모래시계를 돌리자 모래가 아래로 흘러내렸다. 시하의 발아래가 가벼워지더니 몸 전체가 공중에 있는 호수를 향해 날아올랐다. 귓가에 연묵의 화난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쁜 년, 이름을 바꾼다고 내가 너를 알아보지 못 할 줄 알아? 가서 죽어 버려!”
“소사숙님!”
제공이 급히 그녀를 끌어내리려고 손을 뻗어 위로 날아올랐다. 하지만 시하를 잡기는커녕 오히려 그녀가 더 빠르게 멀어지도록 했다.
시하가 가까워지는 호수를 보며 마지막 희망을 품듯 한 손으로는 제공의 손을 잡고, 다른 한 손으로는 영기를 모았다. 그때 시하의 손에 갑자기 뭔가 꽉 조이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흰색과 붉은색이 뒤엉킨 그림자가 갑자기 그녀의 손을 잡더니 가까이 다가왔다. 시하는 얼굴에 통증이 느껴지는 듯하더니 순간 눈앞이 캄캄해졌다. 호수 위에서 쿵쿵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잠시 후, 새로운 지도상에 제공과 시하, 그리고 연묵의 그림자가 나타났다. 그곳에 기이한 정적이 약 2초 정도 흘렀다. 잠시 후, 연묵이 화가 폭발하여 십여 미터 밖으로 물러서며 손을 휘저었다. 잠시 후 화룡 한 마리가 위압적으로 두 사람을 압박하며 공격해 왔다.
시하가 긴장하며 자기도 모르게 결계를 불러내 그녀의 공격을 막았다. 제공이 시하보다 한 발 먼저 나서서 법인을 했다. 바람이 길게 불더니 순식간에 사람 높이만큼 커지며 앞에서 날아오는 화룡을 바로 흩어 버렸다. 거대한 화염이 순식간에 불꽃으로 변하며 바닥으로 떨어졌다.
제공이 무거운 목소리로 그녀에게 질문했다.
“존자, 대체 왜 그러시는 거죠?”
연묵이 더욱 화가 난 모습으로 시하를 노려보더니 차갑게 콧방귀를 뀌고 얘기했다.
“왜냐고요? 저희 잠룡연의 규칙을 몰라요? 설마 제가 당신한테 다시 한 번 얘기해 줘야 하는 건 아니죠?”
제공이 황급히 그녀에게 설명했다.
“존자, 이 친구가 성이 시 씨인 건 맞지만, 그런 나쁜 사람은 아니에요. 이번에 이곳으로 온 것은 단지 정생련의 일 때문에 어쩔 수 없었습니다. 존자께 양해를 구한다는 걸 깜박 잊었네요.”
“성이 시 씨인 것뿐이에요?”
연묵이 눈을 가늘게 뜨고 시하를 아래위로 훑어보았다. 안 그래도 화가 나 있던 그녀는 시하의 성이 시 씨라는 사실을 알고 폭발하는 듯했다.
“당신 성이 뭐든 상관없이 오늘이 바로 제삿날인 줄 알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