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14화 (114/189)

제공이 얼굴을 찌푸리며 곤혹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게다가 절로 돌아가 보니, 사람들이 뭔가 좀 이상했어요.”

“어떤 사람들이 이상했다는 거죠?”

그가 생각에 잠긴 듯하더니 다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저도 뭐라 말하기는 어렵군요. 아마도 제 착각이겠죠.”

시하가 갑자기 한 사람을 떠올리며 말했다.

“당신 혹시 그 남자한테 밉보인 일이라도 있었어요?”

계속해서 제공을 공격하고 있는 듯하던 그 남자.

“누구 말하는 거죠?”

“왜 그 온몸에 검은 옷을 입고 어깨를 드러내던 사람이요. 머리가 번개맞은 것처럼 되어 있던.”

그가 혼란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검은 옷이요? 우리 절의 제자들은 모두 승복을 입고 있어서 검은 옷을 입은 사람은 없습니다. 소사숙님께서 잘못 기억하고 계신 거 아닐까요?”

“지금 장난해요?”

시각적인 충격이 그렇게 강렬했는데 내가 기억 못하는 게 이상하지.

“다른 사람들은 그를 사숙이라고 부르던데요?”

“사숙이요? 혹시 제진 사제를 말하는 건가요?”

시하가 벌떡 일어서며 소리쳤다.

“제진이요? 방금 그 검은 남자가 제진이라고요? 그 속 다르고 겉 다른 그 인간?”

“네. 방금 사람들을 이끌고 있던 그 사람은 제진이 맞아요. 하지만 그는 방금 저희와 똑같은 흰색 승복을 입고 있었는데요.”

“그게 무슨 말이에요. 제가 색맹도 아닌데 흑백도 구분을 못할…….”

잠깐! 시하가 놀라서 눈을 크게 뜨며 제공을 바라보았다.

“당신 눈에는 그가 흰옷을 입은 걸로 보였다는 건가요? 그럼 머리는요? 그 사람 등 뒤에 나뭇가지처럼 생긴 막대기도 꽂고 있었어요.”

제공은 더욱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소사숙님, 어떻게 절에 머리를 기른 사람이 있겠어요.”

시하는 뭔가 벼락을 맞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어떻게 된 거지? 그 사람이 정말 그 제진이라고? 흰옷을 입고 있었다지만 내가 본 것은 분명…….

제공이 나를 속일 일은 없을 테고, 그렇다면 딱 한 가지 가능성밖에 없어. 내가 본 것과 제공이 본 것이 다르다는 것. 설마 내 눈에 무슨 문제라도 있는 걸까? 하지만 문제가 있더라도 긴 머리와 나뭇가지 같은 건 잘못 볼 리가 없을 텐데.

게다가 제진과 그녀는 원한 관계였다. 어떻게 보면 그녀가 그의 공덕을 날려 버린 거나 마찬가지였지만 방금 그는 그녀를 원망하는 말 한마디도 없이 아주 평온한 모습을 보였다. 그녀에게 아무런 감정도 없는 것처럼.

그녀가 한참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제공이 물었다.

“소사숙님? 왜 그러시는 거죠?”

시하가 얼굴을 찌푸리며 전에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그리고 제공에게 제진과 있었던 일들과 그 결과에 대해 자세하게 얘기해 주었다. 제공이 주지라 어떻게든 그를 변호하는 말 몇 마디는 할 줄 알았지만 그녀의 말을 듣더니 바로 화를 내었다.

“제진, 그 나쁜 놈이 당신한테 그런 짓을 했군요. 그가 절에 돌아왔을 때 그 사실을 알았다면 제가 가만두지 않았을 겁니다.”

이런 반응까지 기대했던 건 아닌데.

“내가 그놈의 공덕을 열 배는 날려 버릴 수 있어요. 당신, 화 안 나요?”

“당연히 화가 나죠!”

“그놈이 감히 당신에게 그런 짓을 하다니. 공덕을 날려 버리는 걸로는 부족해요. 제가 일찍 알았으면 그놈을 죽여 버렸을 겁니다.”

“그 사람은 당신 사제 아닙니까.”

“사제가 다 무슨 소용이에요! 저는 그와 동문도 아니에요. 그저 같은 절에 지내는 사이라 사제라고 불러준 것뿐입니다. 평소에는 그렇게 조용하게 지내더니 뒤에서 사숙님을 괴롭히는 짓이나 하다니, 얼굴 두꺼운 놈! 내가 그놈 집안 전체를 멸하겠어요. 소사숙님, 조금만 기다리세요. 제가 지금 바로 가서 그놈을 혼내 줄게요.”

그가 말을 마치더니 정말 손에서 염주 꾸러미를 꺼내고는 법기를 타고 날아오르기 시작했다. 시하가 급히 손을 뻗어 그를 잡아당겼다. 정말 가려고요?

“잠깐만요! 지금 뭐 하려는 거죠?”

“소사숙님, 저를 말리지 마세요. 사부님께서 소사숙님의 존엄은 신성한 것이라 절대로 침범할 수 없다고 하셨어요!”

침범은 무슨, 내가 무슨 국토라도 돼? 도대체 우리 오빠한테서 뭘 배운 거야?

“제가 소사숙님의 복수를 하지 못하면 절대로 돌아오지 않을 테니. 걱정하지 마세요.”

어떻게 걱정을 안 해. 방금 도망 온 곳으로 다시 가는 건데, 지금 무슨 유격전이라도 벌이겠다는 건가? 걱정 안 하는 게 더 이상하잖아!

“됐어요.”

이 사람은 어떻게 항상 모 아니면 도인 거지? 전에 그 엄숙하고 진중한 모습은 다 어딜 간 거야? 제발 다시 그 가면이라도 쓰라고요.

“안 돼요. 이건 사문의 영예가 걸린 문제예요.”

“당신 혼자 그들을 당해 낼 수 없어요.”

“머리카락이 짧아도 피는 뜨겁게 흐르고 있어요. 존엄을 잃을 수는 없습니다.”

그가 자랑스러운 표정을 짓자, 시하가 손을 풀어주고는 바로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여보세요. 오라버니? 제공을 사문에서 쫓아내고 싶은데 오라버니 생각은 어…….”

“사숙님!”

방금 막 날아오르려던 제공이 놀라 바로 원래 위치로 돌아왔다. 그러고는 그녀의 손을 잡더니 다시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소사숙님, 정생련과 관련해서 제게 생각이 있어요. 한 번 들어 보실래요?”

제공이 시하에게 아주 중요한 일 하나를 알려 주었다. 전에 오빠가 정생련을 찾으러 갔을 때, 그들과 동행했던 사람이 한 명 더 있었는데 바로 제진의 사부였다. 그는 연묵(蓮墨)이라 불리는 불수로, 만약 정생련에 관한 것을 알려면 그를 찾아가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라 했다.

시하는 제공이 누명을 벗는 일은 접어두고, 오빠의 일을 알아보는 것을 도와주자 무척 감동했다. 하지만 제진의 사부를 찾아가 이 일을 알아보는 것에 대해서는 뭔가 썩 내키지 않았다.

“그 둘은 사제 사이였고, 당신은 아직도 반역자의 누명을 벗지 못하는데 그가 저희한테 알려 주겠어요?”

그리고 나도 그놈의 제진과 그렇게 좋은 사이가 아니라고요.

“그건 걱정하지 마세요! 연묵 존자는 마음이 깨끗하고 선량하여 저희가 간절히 부탁하면 거절하지 못할 거예요.”

이유가 너무 허접하다는 생각이 드는 건 무엇 때문일까?

“그리고 연묵 존자는 사부님과도 오랜 친구예요. 생과 죽음을 함께한 친구이니, 존자께서는 분명 저희를 도와주실 겁니다.”

왜 썩 믿음이 가지 않는 거지?

“걱정하지 마세요. 문제없으니까!”

“알겠어요. 당신을 한 번 더 믿어 보죠.”

지금은 딱히 다른 방법도 없으니까요. 시하가 바로 검을 부려 제공을 따라 잠룡연(潜龍淵)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 * *

제공이 잠룡연은 동쪽 끝에 있다고 했다. 두 사람의 수행 계급이 낮지 않지만 가체사 사람들을 피하려면 숨 죽여서 천천히 가야만 했다. 그리하여 그들은 이틀이나 걸려서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잠룡연은 정말 폐관하고 죽은 듯 숨어 있기에 좋은 곳이었다. 그곳에 있는 푸르른 산과 물은 아름답기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순간 그녀의 마음까지도 가벼워지는 듯했다.

“제공. 정말 연묵이 오라버니와 친하다고 확신해요?”

“당, 당연하죠.”

“생사를 같이 한 친구라고요?”

“어, 그럴 거예요.”

“그가 친절하게 저를 맞을 거고요?”

“아마도요.”

시하가 숨을 들이마시며 입구에 있는 석벽에 큰 글씨로 쓰여 있는 글자를 가리켰다.

“그럼, 저기 위에 쓰인 글자에 대해 설명 좀 해 볼래요? ‘시 씨 성을 가진 자는 개라도 출입을 금지한다.’ 이건 대체 무슨 뜻이죠?”

제공이 어색하게 이마의 땀을 닦았다.

“소사숙님, 사실 저는 몇천 년 동안 이 존자를 만나지 못했어요. 아마도 거의 시대가 달라서 그럴 겁니다.”

“다르긴 뭐가 달라요!”

이건 달라도 너무 다르잖아. 오빠는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지?

“하하하, 아니면, 저희 그냥 돌아갈까요? 사실 지금 떠나도 아직 늦지 않…….”

“누가 잠룡연으로 난입한 거지?”

그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시하의 가슴이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며?

방금까지도 석벽 옆을 겹겹이 둘러싸고 있던 나무숲이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옆으로 갈라졌다. 그리고 잠시 후 그들의 눈앞에 순 화초 넝쿨로 구성된 ‘녹색 통로’가 펼쳐졌다.

상쾌한 바람이 불면서 통로 안의 꽃잎들이 하늘 가득 날리더니 그들에게 날아왔다. 그리고 그들 주위를 맴돌며 춤을 추기 시작했다. 잠시 후 그 꽃잎들은 흰 바탕에 붉은 꽃무늬가 수놓인 옷을 입은 소녀로 변신했다. 시하가 놀라서 멍하니 그 모습을 바라봤다.

뭔가 있어 보이는 등장이야. 마치 컴퓨터로 만들어 낸 사람 같네. 잠깐, 여자? 여긴 불수가 아니었어?

시하가 질문하려는 순간 제공이 먼저 그녀의 앞으로 다가가더니, 그동안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매우 공손한 태도로 예를 갖추었다.

“제자, 연묵 존자께 인사 올립니다.”

“제공?”

연묵 존자가 그를 알아보고 잠시 놀라는 듯하더니 다시 차가운 표정을 지었다.

“몇천 년 동안 만나지 않은 사이, 간이 더 커졌나 보네요. 감히 잠룡연까지 들어오고. 당신의 그 허당 사부는요?”

허당? 분명 오빠를 비웃는 말인데 이상하게 공감이 가네?

“존자께서는 모르시겠지만 제자, 지금까지도 사부님을 만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계속 찾아다니고 있지만 아직도 사부님의 소식을 모르고 있죠.”

연묵이 놀라며 눈썹을 치켜세웠다.

“아직도 그를 찾지 못했다고요? 이 몇천 년 동안 그는 대체 어디로 간 거죠? 어떻게 아직도 찾지 못할 수가 있습니까, 도대체.”

그녀가 말을 멈추더니 뭔가 떠오른 듯 다시 원래의 냉정함을 되찾았다. 마치 방금 그 다급했던 모습은 그녀가 아닌 듯했다.

“됐어요. 이렇게 오래됐는데 그가 어딜 갔는지 누가 알겠어요? 흥! 그처럼 그렇게 신의가 없고, 배은망덕하고 무정한 소인배는 영원히 돌아오지 않는 편이 좋죠.”

오라버니가 도대체 왜 신의가 없고, 배은망덕하고 무정하다는 거지? 자세히 좀 말해 줄 수 없겠니?

“이렇게 오래되었는데 당신도 이제 그만 찾아요. 이제 한 절을 책임지고 있는 주지인데 가체사의 일만 처리하기에도 벅차지 않습니까. 그가 모습을 드러내고 싶지 않아 하면 당신이 찾아도 아무 소용없어요. 목숨을 걸고 정생련을 찾아왔던 그때와 지금의 그는 다른 듯해요. 어쨌든 그렇게 비겁한 사람은 누구의 손에 죽어도 싸요! 시 씨들은 제대로 된 사람이 없어!”

뭐지, 이 의문의 1패는. 그래서 오빠가 대체 당신한테 무슨 짓을 한 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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